* * *
“뭐여.”
차에서 내린 태화의 첫마디.
상호의 반응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뭐여, 여긴.’
깡촌의 시골집.
그 집을 보자마자 이서의 표정이 썩어들어갔다.
“……쯧.”
“여기가 어디예요? 멍.”
단비가 눈을 깜작이며 물었다.
상호는 해련을 돌아보며 설명을 구했다. 트렁크에서 짐을 꺼내던 해련이 아이들을 향해 씩 웃었다.
“내 집.”
상호도 단비처럼 눈을 끔뻑였다.
“교장선생님 집이요?”
“응. 옛날 집. 개벽 전에 살던 곳이야. 지금도 가끔은 오고.”
해련이 짐을 들고 마당을 가로질렀다.
“좀 낡긴 했지? 그래도 안은 깨끗하니까, 걱정 말고 들어와요.”
상호와 아이들은 집을 향해 걸어갔다.
“야, 단비야. 저기 니 집 있다.”
“응? 어디? 멍.”
태화가 가리킨 곳에는 낡은 개집이 하나 놓여 있었다. 상호는 태화를 향해 씁 하고 으르는 소리를 내었다.
“이태화.”
“아 예~ 예예예예~.”
“놀러 와서까지 혼날래?”
“놀러 와서까지 혼낼꼬얌?”
“……하아.”
대체 언제 철이 들까. 그는 한숨을 쉬고 해련의 집으로 들어갔다.
해련이 말한 대로 안은 깔끔했다. 딱 시골 할머니 집. 누런 장판에 나무 벽장.
액자나 시계 같은 것은 치웠는지, 벽에 못 구멍이 간간이 보였다.
초란이 가방을 내려놓으며 초조한 눈길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으…….”
“초란이 왜 그래? 멍.”
“화장실이…….”
그 말에 하솔이 초란의 손을 잡아끌었다.
“이쪽.”
둘은 문지방을 넘어 안쪽으로 사라졌다.
안으로 들어서는 게 자연스럽다. 꼭 어디에 뭐가 있는지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상호는 그런 하솔의 모습을 보며 고개를 기웃했다.
‘하솔이는 이런 시골집이 익숙한가? 아닌데, 단순히 그런 정도가 아닌 것 같기도…….’
그렇게 의문을 품는 순간, 해련이 갑자기 그의 손을 잡아끌었다.
“애들 밥 먹여야지. 와서 좀 도와요.”
“아, 네, 네.”
상호는 해련을 따라 주방으로 들어갔다.
* * *
“아이고~.”
마루에 누운 태화가 배를 벅벅 긁었다.
“심심해 뒈지겠네~.”
“옥수수나 먹어.”
상호는 소쿠리에 담긴 옥수수를 집어 태화에게 내밀었다. 그러자 태화의 이맛살이 팍 찌그러졌다.
“맛없어!”
“맛으로 먹냐. 입이 심심하면 먹는 거지……. 씹다 보면 달달해.”
“그럼 고구마 까 줘.”
“……그래.”
그래서 고구마 껍질을 까게 되었다.
다 깐 고구마를 태화의 입가에 들이밀자 태화가 한입을 베어 물었다.
태화는 또다시 눈살을 찌푸리고는.
“퍽퍽해.”
그 말을 남기고 남은 고구마를 상호의 입에 쑤셔 넣었다.
상호는 고구마를 우물거리며 마루를 둘러보았다. 마루에는 단비가 멍하니 앉아서 꼬리를 살랑거리고 있었다.
“단비야?”
“멍?”
“친구들이랑 놀지 왜 그러고 있어.”
“다 따로 놀아요.”
“뭐 하고 있는데?”
“초란이는 책 읽고, 이서는 핸드폰 하고, 하솔이는…… 뭐 하는진 모르겠는데 바빠 보여요.”
상호는 태화의 다리를 툭 쳤다.
“야, 동생들하고 좀 놀아 주고 그래.”
“야, 단비야. 심심하면 옥수수 먹어.”
“일어나서 좀 돌아다녀! 배만 긁지 말고.”
“아이~, 뭐 이런 델 데려왔어! 나가도 할 게 없잖아.”
깡촌도 보통 깡촌이 아니어서 슈퍼도 보이지 않았다. 딱히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던 상호는 애꿎은 옥수수만 깨작거렸다.
‘경치는 좋네.’
5월의 산과 하늘. 마당의 낮은 담벼락 너머로 펼쳐진 풍경이 꽤나 화사했다.
해가 아직 높지 않아서 처마 아래로 볕이 들었다. 뜨뜻해진 마루는 낮잠을 자기에 딱 좋은 온도였다.
‘……졸리다.’
서서히 무거워지는 눈꺼풀을 들지 못하고, 상호는 잠에 빠져들었다.
* * *
“선생님.”
누군가 어깨를 흔들었다. 상호는 퍼뜩 눈을 떴다.
“응?”
“식사하세요.”
하솔이 쪼그려 앉아서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앞치마를 입은 걸 보니 아마 해련의 식사 준비를 도운 모양이었다. 상호는 하늘이 어둑해진 것을 보고 당황했다.
“지금 몇 시야?”
“여섯 시요.”
점심 먹고 잤으니 꼬박 반나절을 잔 셈이었다.
그는 몸을 일으키며 하솔의 앞치마를 빤히 바라보았다.
“네가 교장선생님 도와드렸어?”
“네.”
“왜?”
그 말에 하솔은 눈길을 피했다. 무언가를 숨기려는 듯이.
뭐 딱히 중요한 일은 아니니. 상호는 머리를 긁적이며 방 안으로 향했다.
방에는 둥그런 앉은뱅이 식탁에 다섯 명이 둘러앉아 있었다.
“강 선생, 얼른 들어와요~.”
“쌤! 밥 먹어.”
안에서 구수하고 정겨운 냄새가 났다.
다른 아이들도 데려왔으면 좋았을걸. 상호는 쓰게 웃으며 안으로 들어섰다.
“소고기무국이야? 맛있어?”
“맛있더라. ……야이씨, 잠깐만. 야, 견단비!”
“응? 왜?”
“왜 또 섞어 먹어! 밥맛 떨어지게!”
“이러면 맛있어, 멍…….”
“나 이 누렁이랑 밥 못 먹겠어! 어우!”
음식 냄새와 소란이 좁은 방을 가득 채웠다.
* * *
“어때요, 잘 놀았어요?”
“예.”
상호는 천장을 보며 대답했다.
침대 하나 놓인 작은 안방. 방금 막 침대 옆에 이불을 깔고 누운 참이었다.
침대 위에서 해련이 그를 내려다보았다. 분홍색 원피스 형태의 잠옷을 입은 채로.
“낮에는 잠만 자던데?”
“저녁에 놀았죠. 별도 보고 이야기도 하고…….”
“한 명은 잘 안 끼는 것 같던데.”
“이서요? 좀 그런 감이 있긴 한데…… 여기 따라와 준 것만 해도 감지덕지죠, 뭐.”
“그래?”
해련이 씩 웃었다.
“낮에 많이 자서 잠 안 오겠네요?”
“……그건 아니에요.”
“잠 안 오니까 다른 거 할까?”
“미쳤죠? 거실에 애들 있어요…….”
상호는 이불을 끌어 올리고 잠을 청했다.
하지만 해련은 그를 가만히 놔둘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그녀는 아예 침대에서 내려와서는 상호의 옆에 누웠다.
그리곤 키득거리며 상호의 뺨을 집었다.
“애들이랑 놀았으면 나랑도 놀아줘야지?”
“안 졸려요?”
“늙으면 잠이 없어.”
“언제는 젊다면서 자기 편할 때만…….”
상호는 한숨을 푹 쉬고 해련의 가느다란 허리를 끌어안았다.
해련이 눈을 큼지막하게 떴다.
“……벗을까?”
“아니…… 환장하겠네, 외로우시다길래 조금만 맞춰 드리는 거예요. 이 이상은 안 해요.”
“그래? 그래도 뭐, 천릿길도 한 걸음부터니까.”
“천릿길인 줄은 아셔서 다행이네요.”
“시작이 반이래.”
해련의 팔다리가 슬금슬금 상호를 옭아맸다.
“나머지 반은 언제 채울까?”
“……일단 절대로 오늘은 아니구요.”
상호는 해련의 머리를 품에 안았다.
“주무세요. 빨리.”
꼭 부부가 하는 것처럼.
아마도 그녀에게 익숙한 장소에서, 익숙한 행동을 해 주는 것. 해련은 그걸 바라고 그를 이곳에 데려왔는지도 몰랐다.
나이답지 않은 어린 행동이라도, 상호는 거기에 맞춰 주었다.
“응.”
해련이 눈을 감았다.
“그러면 이렇게…… 같이 자는 거네요.”
“네.”
“강 선생.”
어둠 속에서 해련의 눈이 반짝였다.
“역시 강 선생이 좋아.”
상호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함부로 대답할 수가 없어서.
그러나 지금은.
맞춰 주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저도요.”
그 말에 해련은 맑게 웃었다.
* * *
짹짹거리는 새소리가 아침을 알렸다.
시골이라 그런지 유난히 가깝고 우렁차서, 창문을 닫았음에도 마치 연 것처럼 귀를 찔렀다. 상호는 그 사소한 고통에 눈살을 찌푸리다가 고개를 들었다.
“……으음.”
해련이 그의 품에 기대어 자고 있었다.
굳이 깨울 필요는 없을 것이다. 상호는 다시 고개를 내려놓고 멍하니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일요일인가.’
어린이날 당일이었다.
거실 쪽에서 아이들 목소리가 들렸다. 새소리가 시끄러우니 일찍 일어났을 법도 했다.
‘밥 먹여야지.’
그런 생각을 하며 해련을 살짝 치우고 일어나려 하는데, 방문이 벌컥 열렸다.
문가에 선 하솔.
해련을 품은 상호.
둘의 눈동자가 정통으로 마주쳤다.
“…….”
“…….”
“쿨…….”
해련이 천하태평하게 코를 골았다.
말려 올라간 잠옷 아래로 새하얀 다리가 드러났다. 창문에서 내려온 햇살이 그곳을 유난히 밝게 비추고 있었다.
상호의 머릿속도 그 다리처럼 새하얘졌다.
“하솔아, 이건…….”
하솔은 말없이 돌아서서 주방으로 향했다.
이제는 오해라고 할 수도 없었다. 어찌됐건 껴안고 같이 잔 건 사실이니까. 더 이상 변명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상호는 한숨을 푹 쉬고 해련을 살살 흔들었다.
“교장선생님. 식사하세요.”
“으응……?”
해련은 부스스 몸을 일으키더니 상호를 보며 눈을 깜작였다.
“누가 차렸대……? 내가 하려고 했는데…….”
“하솔이가 차렸나 봐요.”
“그래……? 아이구…….”
해련이 기지개를 켜더니 상호의 품에 얼굴을 폭 묻었다.
“오랜만에 늦잠을 잤네. 강 선생 덕분에…….”
“더 주무시고 싶으시면 주무세요.”
“아니야, 나도 일어날게……. 밥 먹어야지.”
둘은 함께 일어나서 이불을 갰다.
* * *
“또, 또, 또! 또 섞는다 또!”
“멍! 언니도 먹어봐, 맛있어…….”
“열무김치를 고깃국에 섞어먹는 인간이 어딨냐고!”
아침 댓바람부터 소란이다. 상호는 국을 뜨다 말고 태화를 째려보았다.
“야, 밥상머리에서 시끄럽게 하지 마.”
“아니 이걸 봐! 애가 개밥을 먹는다고!”
“남이 어떻게 먹든 뭔 상관이야. 부대찌개도 처음엔 쓰레기죽이었어 임마.”
“우씨, 내가 저렇게 먹으면 잔소리 오지게 했을 거면서…….”
그때 태화의 주머니에서 진동 소리가 났다.
“뭐야.”
태화는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화면을 확인했다.
그리곤 멍하니 눈을 끔뻑였다.
“……어라.”
둘러앉은 모두의 시선이 태화를 향했다. 그 뒤에 이어질 말을 기다리는 듯이.
하지만 태화는 더 말하지 않을 생각인지, 핸드폰을 내려놓고는 묵묵히 숟가락을 들었다.
단비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무슨 일이야?”
상호도 궁금해하는 눈빛으로 태화를 바라보았다.
평소답지 않게 조용하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놀리고 깐죽대고 화내고 있었는데. 핸드폰을 확인한 후로는 그냥 말없이 밥만 먹고 있었다.
이윽고 태화가 어깨를 들썩였다.
“별거 아냐.”
“뭔데 그래, 궁금하게……, 멍.”
“무슨 일인데?”
상호가 묻자 태화가 눈을 마주쳐 왔다.
그러고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태평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꼭 아침에 신문에서 읽은 소식을 전하는 것처럼.
자신과는 상관없는 이의 소식을 전하는 것처럼.
“그 인간 죽었대.”
184. 아버지의 장례식
태화는 조용히 식사를 마쳤다.
하지만 밥을 다 먹은 후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이전의 밝은 모습으로 돌아와서는, 쉴 새 없이 단비를 놀려대다가 기어코는.
“으아앙멍아앙!”
또 애를 울렸다.
그러나 상호는 태화를 혼내지 않았다. 아침에 태화가 한 말의 뜻을 알고 있었기에.
그게 태화에게 중요한 일이든, 중요치 않은 일이든. 오늘만은 태화를 혼낼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래도 확인은 해야지.’
그는 문을 열고 마루로 나왔다.
마루에는 태화가 누워서 멀거니 마당을 바라보고 있었다.
“태화야.”
그가 부르자 태화가 뒤를 돌아보았다. 무슨 일 있냐는 듯이 태연한 표정으로.
“왜?”
“문자가 온 거야?”
“응.”
상호는 태화의 곁에 앉았다.
“뭐라고 왔는데?”
“장례식장에서. 장례식 한대.”
“한번 봐봐.”
태화가 핸드폰을 내밀었다.
화면에는 장례식장의 주소와, 부친 이중선의 부고를 알리는 문자가 띄워져 있었다.
상호는 그 문자를 유심히 살피다가 물었다.
“갈 거야?”
“아니.”
태화는 고개를 가로젓고 하품을 했다.
“굳이 갈 필요 없잖아? 내가 가서 뭐해.”
“그냥 확인하려고 물어 봤어. 그럼 내가 갈게.”
“쌤이? 왜?”
“잘 치르는지는 봐야지.”
그런 사람이라도 학부모니까, 마지막 가는 길은 봐 두고 싶었다.
“내일 갈 거니까, 가고 싶으면 말해.”
“그럴 일은 없을걸. 아무리 쌤이 같이 간다 해도.”
태화가 마당을 향해 빙글 돌아누웠다.
“타이밍이 좋네, 참.”
“응?”
“어린이날이잖아.”
태화의 목소리는 평온했다.
“평생 받아본 적 없는 어린이날 선물이려나.”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고 믿고 싶다.
상호는 위를 올려다보며 대답했다.
“그건 하늘만 알겠지.”
맑은 하늘에 구름 한 점이 흘러갔다.
* * *
다음 날 아침.
“짐 다 챙겼어?”
상호는 차 주변에 늘어선 아이들을 둘러보며 물었다.
“핸드폰하고 책하고. 빠뜨린 거 없지?”
“네.”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학교로 돌아갈 시간. 올 때와 달리 이번에는 해련이 운전석에 앉았고, 상호는 조수석에 올랐다.
뒷자리의 분위기는 달라지지 않았다.
“아오, 개털! 꼬리 좀 가만히 놔둬, 색갸!”
“멍! 잡지 마, 아파! 세희 언니한테 이를 거야!”
“단비야, 선생님 여기 있다.”
“아 맞다, 선생님! 언니가 꼬리 막…… 흐끄윽!”
“태화, 살살해.”
“웅.”
상호는 태화를 혼내지 않았다. 평소와 다르게.
해련은 그런 그의 모습이 의아했는지, 운전을 하는 중에 자꾸만 그를 흘끗거리다가, 이내 넌지시 말을 걸었다.
“강 선생.”
“네?”
“휴게소 좀 들를까?”
이유는 짐작이 갔다. 그래서 묻지 않았다.
“좋죠.”
상호는 그렇게 대답하며 차창 밖으로 펼쳐진 풍경을 바라보았다. 어제처럼 맑은 하늘 아래로 산과 들이 조용히 펼쳐져 있었다.
‘요즘은 날씨가 좋네.’
차는 오랫동안 한적한 시골길을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