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01화 (201/501)

* * *

“끄응…….”

 해련이 팔을 쭉 뻗으며 기지개를 켰다.

“후아아……. 어라? 내가 언제 여기 왔지?”

“제가요.”

 상호는 짤막하게 대답하고 다시 칫솔을 물었다.

교장의 방이라 그런지 볕이 잘 들었다. 아침의 햇살이 쏟아진 이불은 딱 봐도 벗어나기 힘들어 보였다.

해련이 그 이불 위에서 뒹굴다가 고양이처럼 엎드려 허리를 쭉 폈다.

“아이구, 허리가 아픈데…… 간밤에 강 선생이 굴렸나?”

“인디언밥이라도 맞았겠죠.”

“그게 뭐야?”

“벌칙으로 등 때리는 거요.”

“때려? 왜?”

“……세대 차이라고 생각하세요.”

 설명하기 귀찮다. 상호는 이를 닦으며 핸드폰으로 일정을 확인했다.

“좀 있으면 나가야겠는데요. 준비 안 하세요?”

“교장은 늦어도 돼~.”

 그때 누군가가 문을 똑똑 두드렸다. 어째 다급한 분위기였다.

종이를 갈아 끼웠으니 방 앞 종이에는 해련의 이름밖에 없을 것이고, 찾아온 사람도 해련을 찾아왔을 터였다.

“교장선생님. 손님 오셨는데요.”

 상호의 말에 해련이 이불 속으로 꾸물꾸물 들어갔다.

“좀 기다리라고 전해 줘요.”

“네? 아니 누가 온 줄 알고 제가 나가요.”

“옷은 입어야지~.”

 이불 덩어리가 꿈틀거리며 잠옷을 토해냈다.

상호는 한숨을 푹 쉬고 현관을 향했다. 입에 칫솔을 문 채로.

찾아온 누군가가 다시 문을 두드렸다.

똑똑똑

“예~, 갑니다~. ……어라?”

 상호는 눈앞에 서 있는 하솔을 보고 당황했다.

“하솔이…… 무슨 일로 왔어?”

 놀라기는 하솔도 마찬가지였다. 하솔은 상호를 보자마자 몸을 흠칫했다.

“선생님? 여기…… 교장선생님 방 아니에요?”

 상호는 자신의 옷차림을 내려다보았다. 면 티, 트레이닝복 바지, 그리고 칫솔.

변명해도 소용없을 것 같았다.

“……맞는데, 사정이 있어서 같이 쓰고 있어.”

“같이……요?”

“응.”

 그 말에 하솔이 조금씩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다. 상호는 그 모습을 보고 황급히 덧붙였다.

“이상한 거 아냐. 어르신이잖아. 선생님도 이상한 생각 딱히 안 하고……. 애인도 있고…….”

“아……, 네.”

 납득을 했을까. 하솔은 한결 밝아진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상호는 하솔의 표정이 점차 굳어가는 것을 보며 당황했다.

“하솔아?”

 하솔의 시선은 상호의 어깨너머 어딘가를 향하고 있었다. 상호도 그 방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아.’

 이불에서 뻗어 나온 하얗고 가느다란 팔이, 가방에서 속옷을 주섬주섬 챙겨서 돌아가고 있었다.

저 팔의 주인이 지금 어떤 상태인지 여실히 보여 주는 동작이었다.

상호는 황급히 몸을 기울여 하솔의 시선을 막아섰다.

“하솔아, 그게 아니고…….”

 하솔은 이제 사시나무처럼 덜덜 떨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응? 뭐, 뭐가?”

“죄송합니다.”

 하솔은 고장난 기계처럼 같은 말만 되풀이하고는 뒤돌아서 도망쳐 버렸다.

멍하게 서 있는 상호의 입에서 양칫물이 뚝뚝 떨어졌다.

‘또 오해를 사 버렸구나…….’

 그가 문을 닫고 돌아서자 이불 속에서 해련이 쏙 튀어나왔다. 속옷만 대충 걸친 채로.

“누구였어?”

“저희 반 학생이요.”

“학생? 왜 왔는데?”

“……어?”

 상호는 눈을 끔뻑였다. 하솔이가 여길 왜 왔을까.

“그걸 안 물어봤네요. 그냥 저 있는 것만 보고 가던데…….”

“그래? 그럼 뭐 별일 아니려나.”

 해련은 셔츠를 입으며 고개를 기웃했다.

“밥이나 먹으러 갈까요? 근데 왜 양치를 했대?”

“누구 만나서 이야기할지 모르니까……. 먹고 또 하면 되죠.”

“흐음. 강 선생도 은근히 그런 걸 신경쓰는구나.”

“네?”

“항상 사람을 꾈 준비가 되어 있달까, 그런 느낌이 있어~.”

“마음대로 생각하세요.”

 둘은 준비를 마치고 함께 방을 나섰다.

* * *

둘째 날은 활동적인 일정이 많았다. 레크리에이션도 있고, 반 대항전도 있고. 상호의 반은 이제 사람이 늘어서 작년처럼 무력하게 당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아침이 지나고, 점심이 지나고, 저녁이 지나고.

“불 예쁘지?”

“응.”

“나 예쁘지?”

“아니.”

“왜!”

 태화의 몸에서 불꽃이 확 타올랐다.

상호는 혀를 쯧 차고는 내공으로 주변의 마나를 휩쓸어 태화의 불꽃을 꺼뜨렸다.

“철없는 애는 안 예뻐.”

“철? 철이 문제야? 한미래! 얘 어디 갔어. 미래야! 나 로봇 좀…….”

“조용히 하고 불구경이나 해.”

 상호의 손이 태화의 볼을 잡아당겼다.

너른 마당에 높게 쌓은 나무. 그 사이사이로 작은 사람의 모습을 한 불의 정령이 뛰놀고 있었다.

상호의 옆에선 나빛이 또 작년처럼 훌쩍이는 중이었다. 태화가 그 모습을 보고 핀잔을 날렸다.

“넌 또 왜 울어?”

“집에 갈래…….”

“집? 가! 기숙사 방 빼고 가. 우린 쌤이랑 놀 거니까.”

“싫어……. 나도 선생님이랑 놀 거야…….”

“그럼 질질 짜지를 마! 어차피 가지도 않을 거면서…….”

“선생님이랑 집 갈 거야…….”

 상호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주말에 또 데려다주러 가야겠구나…….’

 환하게 타오르던 불꽃이 서서히 잦아들었다.

이윽고 잿더미 속에 불씨만 점점이 남았을 때. 수련원 직원들이 메가폰을 잡았다.

“반마다 모여서 들어가세요~.”

“1학년 친구들~ 내년에 또 보고~. 2학년 친구들은 등급 잘 따고~.”

 그 말에 나빛이 또 울상을 지었다.

“내년엔 안 와요?”

“안 오지. 3학년들 없잖아, 여기.”

“그럼 내년엔 아무것도 안 가요? 현장체험학습도, 수학여행도…….”

 태화가 코웃음을 쳤다.

“내년엔 해외여행 가야지. 쌤이랑.”

“얌마, 누가 간대?”

“쌤 월급으로 해외여행 적금 들어 놨는데?”

“참나, 그래……. 많이 들어 놔라.”

“쌤 통장이랑 카드로 들어 놨는데?”

“……진짜냐?”

“구라지, 당연히.”

 태화가 혀를 쏙 내밀며 꼬리를 파닥거렸다. 상호는 한숨을 푹 쉬고 태화와 나빛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내년에 등급 잘 따면 너희끼리 보내 줄게.”

“엥? 진짜?”

“등급 잘 따면.”

“근데 우리끼리? 쌤은 안 가게?”

“응.”

 나빛이 또다시 울상을 지었다.

“네? 같이 가요, 돈은 안 내셔도 돼요…….”

“그때도 1학년 애들 가르치고 있을 테니까. 선생님은 어쩔 수 없지.”

 상호는 곁에 앉은 둘의 머리를 끌어안았다.

“그러니까…… 계속 건강하게 있어 줘. 둘 다.”

“네.”

“난 건강한데?”

 나빛이 웃고 태화가 뚱한 표정을 지었다.

상호의 입술이 부드러운 곡선을 그렸다.

“더 건강하라고.”

 그는 둘을 양옆에 안은 채로 몸을 조금씩 기우뚱거렸다.

셋이 껴안고 있자 옆에서 따가운 시선이 쏟아졌다. 대부분은 질투, 간간이 멸시.

상호는 등이 축축이 젖어오는 것을 느끼며 속삭였다.

“……방으로 가자.”

“앗, 말투가 야해.”

“야이씨……, 자꾸 그럼 안 간다.”

“가자~.”

 그와 반 아이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향했다.

* * *

“잘 놀고 왔어요?”

“예.”

 상호는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섰다.

해련은 방금 막 씻었는지 수건으로 머리를 닦고 있었다.

“1학년들이랑은 좀 친해졌어요?”

“글쎄요.”

“보니까 2학년들보다는 덜 친한 거 같던데.”

“그렇죠, 아무래도. 한 명 한 명 이야기할 기회가 없어서 그런 거 같아요.”

 사람이 적을 때는 서로 말도 많이 하고 밥도 많이 먹었지만, 사람이 늘고 나니 대화의 지분도 줄고 밥도 먹는 사람하고만 먹었다.

상호는 한숨을 쉬며 가방에서 갈아입을 옷을 꺼냈다.

“그래도 3년 내내 볼 애들이니까…… 급하게 생각할 필욘 없죠. 겨우 두 달 지났을 뿐이고.”

“나랑은 몇 년 보려나? 10년? 20년? 어머, 강 선생은 20년 후에도 44살밖에 안 되네. 우와…… 어리구나.”

“교장선생님 기준으로는 당연히 그렇겠죠.”

“에이, 이럴 땐 백년은 볼 거라고 대답해야지!”

 해련이 이불 위를 굴러다니며 키득거렸다.

“곧 연휴인데. 1학년들이랑 여행이라도 가보지 그래요?”

“여행이요? 갈 애들은 가족들이랑 가겠죠, 뭐…….”

“안 가는 애들도 있을 거 아냐. 혼자 데려가는 게 부담스러우면 나랑 같이 가죠? 작년에 놀았던 애들은 빼고.”

“괜찮을 것 같긴 한데…….”

 후환이 두렵다. 그 빼놓은 아이들이 무슨 짓을 벌일지.

 그래도 나쁜 제안은 아니었다. 무언가 꿍꿍이가 있는 것 같기도 했지만.

“연휴가 언제죠? 일요일이 어린이날이니까…….”

“토일월이지. 같이 가는 거예요?”

“그러죠 뭐. 선약은 없으니까…….”

“그럼 오늘부터 계획 짜는 거야~.”

“애들한테 일단 물어보고요. 인원부터 알아야죠. 전 씻을 테니까 어디로 갈지 한번 생각해 보세요.”

 상호는 그렇게 대답하고 욕실로 들어갔다.

샤워기를 틀고 물을 맞는데 현관문 쪽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학생은 다 잘 시간이고…… 누구 선생님이 왔나?’

 그는 머리를 감으며 귀를 기울였다.

해련이 현관으로 걷는 소리와 문 여는 소리가 들렸다.

“할머니, 오늘은…….”

“……구나, 어서 자야지.”

“걱정돼서요. 선생님이…….”

 아마 손녀가 온 모양이었다.

조용한 성격인지 목소리가 크지 않았다. 그래도 해련의 말로 대화의 내용을 유추할 순 있었다.

“괜찮아, 할미가 당할 실력은 아니잖니.”

“그치만…… 사이에 그런 소문도…….”

“에이, 그런 사람 아니야. 어서 돌아가. 할미 걱정하지 말구.”

“……하세요.”

“그럼, 그럼.”

 현관문 닫히는 소리가 났다.

샤워를 마친 상호는 옷을 입은 후 목에 수건을 두르고 밖으로 나왔다. 해련은 다시 이불 위에 누워 있었다.

“누구 왔다 갔어요?”

 그가 묻자 해련이 살짝 당황한 듯 웃었다.

“으응, 손녀가.”

“올해 입학했다고 했었나요?”

“응.”

“이름이 뭐예요?”

“몰라도 돼.”

“예?”

 상호는 눈을 끔뻑였다.

“아니, 당연히 몰라도 살아가는 덴 지장 없겠지만……. 그냥 궁금하잖아요.”

“아는 게 병이고 모르는 게 약이야~.”

“그럼 이름은 됐고, 이 시간에 왜 왔대요?”

“강 선생이 여기로 들어오는 걸 봤나 봐. 내가 걱정돼서 보러 왔다 그러데.”

“그러게 같은 방 쓰지 말자 그랬잖아요.”

“에이, 혼자 쓰면 외롭잖아~.”

 해련이 그를 향해 팔을 활짝 벌렸다.

“빨리 자죠. 강 선생은 내일 운전해야 하잖아.”

“머리는 말려야죠.”

“이리 와 봐. 내가 말려 줄게요.”

“됐어요. 그냥 빨리 주무세요. 불 끌 거니까…….”

 상호는 스위치를 향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아무리 힘을 주어도 눌러지지가 않았다.

내공이 스위치의 반대편을 누르고 있었다.

“곱게 이리 와요~.”

 해련이 방긋 웃으며 내공으로 상호의 몸을 잡아끌었다.

“이불도 따뜻하게 데워 놨어~. 옛날이야기도 많~이 해줄게요~.”

“제가 무슨 애예요?”

“스물넷이면 애지. 강 선생도 애고, 나도 애고. 젊게 살면 좋은 거야~.”

“하아…….”

 상호는 한숨을 쉬고 내공에 몸을 내맡겼다.

 183. 가족일까

“그래서 우리 버리구 간다구예.”

 토요일 아침의 급식소 식탁.

마주 앉은 지윤이 눈을 흘겼다.

“우리 버리삐고 쪼만~한 어린애들이랑 놀겠다구예.”

“응.”

 상호는 고개를 푹 숙였다.

이럴 줄 알고 있었다. 어린이날 연휴에 1학년 아이들과 여행을 가겠다고 하면.

 다만 지윤이 화난 이유는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그런데 태화는 데리고 가시겠다구예.”

“……응.”

 66부 때문에 떨어져 있을 수가 없어서. 심지어 해련이 같이 가기 때문에 학교에 놔두는 것이 평소보다 더 불안했다.

 하지만 그 이유를 아이들에게 설명할 수도 없으니. 상호는 그저 죄인처럼 고개를 푹 숙이고 용서를 빌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빵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를 지경이었다.

지윤이 팔짱을 끼며 물었다.

“언제 가서 언제 오십니꺼?”

“오늘 점심에 가서 월요일 아침에.”

“2박3일이네예.”

“응.”

“지는 쌤이랑 2박3일로 여행을 가본 적이 읎는디예.”

“……으응.”

 당황한 상호의 손이 빵을 놓쳤다. 지윤은 그 모습을 한심하다는 듯 꼬나보다가 다시 물었다.

“세희랑 나빛이헌티는 말했습니꺼?”

“아니. 아직.”

 상호는 눈을 질끈 감았다.

“지윤아, 네가 걔들한테 말 좀 전해 줘. 선생님 애들이랑 여행 갔다 온다고…….”

“왜 직접 안하시구예?”

“무서워서…….”

 그 둘에게 말했다가는 어떤 욕을 들어먹을지, 어떤 표정을 마주하게 될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지윤이 혀를 차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심더. 지가 전할 텡게 잘 다녀오이소.”

“고마워…….”

“대신 지랑도 나중에 같이 가는 겁니더.”

“으응, 그럼.”

 살면서 한 번쯤은 같이 갈 것이다. 아마도. 상호는 그렇게 생각하며 환하게 웃었다.

“잘 말해 줘. 부탁해.”

 * * *

“앙~ 버러지들~ 패배자들~.”

[뒈져.]

“응~, 쌤이랑 2박3일~. 쌤이랑 자다가 뻑가서 죽을 듯~.”

[선생님 좀 바꿔봐.]

“아~ 쌤~ 나 죽어~!”

[바꾸라고, 미친년아!]

뒷자리에 앉은 태화가 운전석 쪽으로 핸드폰을 내밀었다. 상호는 앞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손만 뻗어 그 핸드폰을 받았다.

 그리고 일부러 태연한 목소리를 지어냈다.

“응, 세희야.”

[선생님? 왜 태화만 데려가요?]

“그게…… 어쩌다 보니까 그렇게 됐어.”

 그때 전화 너머에서 나빛의 목소리가 들렸다.

[선생님…….]

“어, 응. 나빛아.”

[저 아파요…….]

 상호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아파? 어디, 어디가?”

[머리가 띵하고, 눈물이 핑 돌구…….]

나빛이 코를 훌쩍였다.

[손발이 덜덜 떨려요…….]

“어떡하지…… 병원은 가 봤어? 성력은 자기한텐 안 듣나?”

[선생님이 배신해서…… 너무 슬퍼요…….]

“아.”

 상호는 헛기침을 하고 옆을 흘끗했다. 조수석에서는 해련이 사과를 깎고 있었다.

“미안해…… 다음에 같이 가자.”

[다음이 있을까요……?]

“다음…… 다음에 꼭…….”

[기다리고 있을게요…….]

나빛의 목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이윽고 세희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선생님.]

“응.”

[조심하세요.]

“응……, 근데 뭐를?”

[저도 제가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까.]

“……응.”

[월요일에 뵈어요.]

“응…….”

 상호는 한숨을 쉬고 통화를 끊었다.

옆에서 해련이 사과 조각을 내밀었다.

“고생이 많네.”

“누구 때문인데요…….”

“어머? 나 때문인가? 강 선생이 누굴 꼭 데려가야겠다고 해서 이렇게 된 거 아니야?”

 해련은 눈썹을 치켜들었다.

“꼭 데려와야 했어요?”

“다 사정이 있어요. 나중에 말씀드릴게요.”

 상호는 그렇게 대답하고 태화에게 핸드폰을 돌려주었다.

백미러에 아이들이 비쳤다. 초란, 단비, 하솔, 이서.

미래는 뭔가 만들 게 있다면서 오지 않았고, 아리는 가족을 보러 집으로 돌아갔다.

가은은 이야기를 듣고는 그냥 오지 않았다.

‘여행이 싫은 건지, 내가 싫은 건지…….’

 이서도 사실 처음에는 따라오지 않으려 했지만, 상호가 재미있을 거라고 사정사정을 한 끝에 마지못해 승낙을 했다.

 하지만 정작 상호도 여행 동안 뭘 할지는 몰랐다.

 사실은, 지금 가고 있는 곳이 뭐 하는 곳인지도 몰랐다.

알고 있는 것은 해련뿐.

‘뭐 이상한 곳은 아니겠지…….’

 그는 해련이 입에 넣어준 사과를 우물거리며, 불안한 마음으로 차를 몰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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