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절대로 내 옆에서 떨어지지 마.”
상호는 아이들의 앞에 검지를 세웠다.
나빛과 이츠키가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에 걸어가다가 세희를 보더라도 나보다 먼저 가지 마. 특히 태화. 알았어?”
태화가 보닛에 기대며 눈살을 찌푸렸다.
“굳이 그럴 필요 있어? 흩어져서 찾으면 더 빠른 거 아냐?”
“놀러 온 거 아니라고 했지?”
화물을 호송하는 헌터들이 단체로 몰살당하기도 하는 곳.
아무리 태화와 나빛이 평범한 학생들보다 강하다고는 하지만, 절대로 이곳을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
“그냥 사카시타가 실만 따라가면 찾을 수 있으니까, 괜히 허튼짓하지 마. 분명히 말했어. 지금 장난치면 화내는 걸로 안 끝낼 거야. 알았어?”
“웅.”
“가자, 사카시타.”
“네.”
사카시타는 숲속으로 들어섰고, 상호는 검을 짚으며 그 뒤를 따랐다.
다리를 저느라 속도가 나지 않았다.
“사카시타. 조금만 천천히 가자.”
“알겠습니다.”
평범한 사람들보다 훨씬 느렸다. 그렇게 한참을 굼벵이 기어가듯이 걷다 보니 태화가 분통을 터트렸다.
“아오! 이게 뭐야! 이래가지고 어느 세월에 찾아! 그냥 지윤이 데려오지 그랬어! 그러면 업혀서라도 가잖아!”
“생각을 못 했어…….”
상호는 눈을 질끈 감았다. 위험한 곳이라 최대한 적게 데려온 건데.
그때 누군가가 그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선생님. 이거 타세요.”
“응?”
그가 뒤를 돌아보자 나빛이 그릇 모양의 방어막을 만들었다.
딱히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한시라도 빨리 세희를 찾아야 하니까. 상호는 방어막 위에 올라탔다.
“다들 타. 위로 올라가서 찾자.”
아이들이 올라와 앉자 방어막이 둥실 떠올라 나뭇가지를 헤치고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태화가 흙 씹은 표정을 지었다.
“이것도 느리네. 야, 나빛. 더 빠르게는 못 해?”
“그래두…… 선생님보다 백배는 빠르잖아, 헤헤.”
나빛이 웃는 얼굴로 상호의 가슴에 비수를 박았다.
“근데 태화 너도 걱정이 되긴 하는가봐. 보채는 걸 보니까……, 헤헤.”
“흥.”
태화가 고개를 픽 돌렸다.
위쪽으로 올라오고 나니 발밑에 푸른 숲이 펼쳐졌다. 곳곳에서 어렴풋하게 들려오는 몬스터들의 괴성이 상호의 가슴을 졸였다.
문득 어떤 생각이 들었다.
“사카시타.”
“네.”
“실이 보인다는 거는 아직 무사하다는 거지?”
이츠키는 그를 빤히 바라보다가 대답했다.
“꼭 그런 건 아닙니다.”
그 말에 상호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래도 실이 계속 움직이는 걸 보면…… 멀쩡히 돌아다니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
“확실하진 않습니다만.”
나빛이 주변을 둘러보다가 이츠키에게 물었다.
“어디로 가면 돼?”
“저쪽.”
이츠키의 손이 동쪽을 가리켰다.
* * *
“거의 다 왔습니다.”
이츠키에 말에 상호는 고개를 들었다.
추적 세 시간 째. 점심을 먹을 시간이 지났지만 다들 밥을 먹지 않아서 배를 곯고 있었다.
엎어져 있던 태화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찾았어? 어딘데?”
“저 아래입니다.”
이츠키가 숲속을 가리켰다.
“그런데…… 아까부터 움직이질 않습니다.”
상호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설마 무슨 일이 있는 걸까.
어쨌든 찾긴 찾았다.
그는 조바심이 나서 나빛의 팔을 잡았다.
“나빛아, 빨리 가자, 빨리…….”
방어막의 속도가 조금 빨라졌다.
넷은 이윽고 이츠키가 가리킨 곳에 도착했다. 이츠키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굵은 나무를 가리켰다.
“저기.”
그 나무의 줄기 옆에는 한 소녀가 앉아 있었다.
몸에는 피칠갑. 검을 어깨에 기대고. 고개를 푹 숙인 채로 얕은 숨을 따라 등을 오르내리며.
멍한 눈으로 땅을 바라보는 중이었다.
“야! 빨랑 일어나. 밥 먹으러…… 읍.”
상호는 태화의 입을 막고 세희에게 다가갔다.
피가 묻은 것을 보니 이미 거하게 한판 한 모양이었다. 다행히 다친 곳은 없어 보였다. 옷이 조금 찢어졌을 뿐.
그는 쪼그려 앉으며 속삭였다.
“천세희.”
성을 붙여 부르자 세희의 몸이 흠칫했다.
“내가 이런 거 싫어하는 거 알아, 몰라.”
“……알아요.”
세희도 작게 중얼거렸다. 무릎에 얼굴을 묻고.
상호의 손이 세희의 어깨를 잡았다.
“내가 화내는 거 보고 싶어?”
“그럴 각오로 왔어요.”
“이번 일은 화를 내야겠는데.”
상호는 세희를 나무에 밀어붙이고 턱을 잡아 얼굴을 들게 했다. 젖은 눈동자에 상호의 화난 얼굴이 비쳤다.
“네가 잘못되면 누가 제일 슬퍼할 것 같아?”
“선생님이요.”
“그치? 나랑 저기 있는 애들, 그리고 교실에 있는 네 친구들이 제일 슬퍼하겠지? 그걸 알면서도 그래? 네가 그러고도 내 제자야?”
“아니요.”
세희는 눈을 감았다.
“저는 자격 없어요.”
분위기가 평소와 달랐다. 상호는 그 힘없는 목소리를 듣고 무언가 다른 일이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무슨 일 있었어?”
“……저는.”
세희가 초연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생사경이니, 죽음의 문턱이니…… 그런 걸 밟아볼 자격조차 없는 인간이에요.”
상호는 그 말을 듣고 세희가 왜 이러고 있는지 깨달았다. 어째서 몬스터들을 사냥하러 돌아다니지 않고 이곳에 앉아 있었는지.
“헌터란 게…… 무슨 뜻인지 몰랐어요.”
세희의 손이 떨렸다.
“내 눈앞에 있는 목숨을 끊어야 한다는 게…… 무슨 뜻인지 몰랐어요.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어요. 당연히 할 수 있다고…… 그런데 아니었어요.”
상호는 잠자코 들었다.
“그 언니가, 계속 해왔다는 일들을, 도저히 할 수가 없었어요. 그러니까…… 당연히 못 이겼던 거예요. 이겨서는 안 되는 거예요. 저는 헌터가 아니고, 그 언니는 헌터니까…….”
세희는 다시 다리를 끌어안고 무릎에 얼굴을 묻었다.
몬스터를 만났다. 싸웠다. 이겼다. 하지만 죽이지는 못했다. 그 일련의 과정 속에서 세희는 깨달았다.
생사경을 겪는다는 것은 누군가를 죽여야 한다는 뜻.
그리고 검을 들어 살생을 하는 일은, 생각보다 많이, 아주 많이 어렵다는 것까지.
상호는 세희의 정수리를 보며 입을 열었다.
“세희야.”
세희는 대답하지 않았다.
“살기 위해 죽이는 거. 그리고 죽이기 위해 죽이는 거. 둘은 엄연히 다른 거야.”
다혜는 살기 위해 죽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세희는.
그저 강해지기 위해서 죽이려 했다.
“죽이기 위해서 죽이는 사람들은…… 자기보다 약한 놈만 찾아서 죽이게 돼. 진짜로 강한 놈한테는 무서워서 못 덤비지. 그런 살생에는 의미가 없어. 강해지긴커녕 자만에 취해서 감각이 무뎌질 뿐이야.”
상호의 목소리는 낮고 부드러웠다.
세희가 고개를 들어 그와 눈을 마주쳤다. 맑은 눈에서 눈물이 뚝뚝 흐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강한 놈들한테 걸렸을 때. 도망칠 수 없을 때. 죽이지 않으면 죽을 때…… 사람은 그때서야 전력을 다해 싸우게 되고, 그 경험으로 증폭된 감각은 전투가 끝나도 몸에 남게 돼. 그게 쌓이고 쌓이면…… 다혜처럼 강해지는 거야.”
상호의 손이 세희의 뺨을 쓸었다.
“너는 그런 식으로는 강해지지 못했지만…… 선생님은 오늘 네가 훨씬 귀한 경험을 했다고 생각해.”
살생의 무게를 명확하게 느끼는 것.
그 어떤 수업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경험이었다.
“나는 네가 내 제자라서 자랑스럽다.”
세희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정말요?”
“그럼.”
상호는 세희의 귀에 속삭였다.
“내 모든 걸 아는 유일한 제자인걸.”
첫 제자보다도 훨씬 많은 걸 알고 있는. 단순한 교사와 학생의 관계를 넘어선.
“네가 어떤 일을 하든 간에 내 제자지. 당연히.”
그 말에 세희는 가만히 그를 바라보다가, 눈을 깜빡이며 눈물을 떨궈냈다.
“……죄송해요.”
“또 뭐가.”
“이런 데까지 오시게 해서…….”
“별거 아냐. 자, 이제 돌아가자.”
상호가 번쩍 안아 들자 세희가 발을 버둥거리며 당황했다.
“앗, 거, 걸을 수 있어요…….”
“안 돼. 또 도망칠라.”
상호는 키득거리며 세희를 꼭 끌어안았다. 절대로 놓아주지 않겠다는 듯이.
뒤에서 태화가 볼멘소리를 냈다.
“우리 밥 언제 먹어?”
“밥이 중요하냐 임마. 친구 걱정은 못할망정…….”
“멀쩡하면 됐지! 야, 세희. 뭐 먹을 거 안 들고 왔냐?”
“양갱 있는데.”
“뭐? 양갱? 초콜릿 같은 건 없어? 아줌마야? 아니 고딩이 뭔 양갱이야!”
“시끄러 임마. 양갱이 뭐 어때서 그래.”
“양갱 맛없잖아! 야, 이츠키. 너 양갱 좋아하냐? 맛없지? 그치? 고딩이 양갱을 좋아하는 게 말이 돼? 어?”
“좋아합니다. 일본에선 다과로 많이 먹어서.”
“뭐? 야, 하나빛. 너는?”
“좋아해~.”
“끄아아악!”
넷은 소란을 피우며 나빛의 방어막에 올랐다.
178. 두 번째 1학기 중간평가
“내일 중간평가지?”
상호는 아이들을 둘러보았다.
“몸조리 잘하고, 푹 쉬고, 일찍 자. 그렇다고 마냥 넋놓고 있으란 소리가 아니라, 자기 전까진 계속 머릿속으로라도 대련 생각 해. 이미지 트레이닝 말이야. 푹 쉬라고 했다고 머리까지 쉬란 게 아니라, 몸에게 준비할 시간을 주라는…….”
“아이, 알았어! 언제까지 잔소리할 거야!”
“얌마, 내일이 시험인데 당연히……”
“에베베베베베~.”
“……하아.”
오늘도 저 깐죽거림은 변함이 없었다. 아마 내일도 그럴 것이다. 평가 도중에 상대 학생에게까지 그럴지도 모른다.
상호는 한숨을 푹 쉬고 손을 흔들었다.
“고생했다. 들어가.”
“네.”
아이들이 꾸벅 인사하고 교실을 나갔다.
텅 빈 교실에서 상호는 생각에 잠겼다.
1학년과 2학년의 평가는 내일, 3학년 평가는 모레. 준 프로 헌터급의 실력을 가진 3학년은 사고가 날 위험도 컸기 때문에 따로 날을 잡는 것이었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안전한 1학년과 2학년은 같은 날. 1학년은 본관 앞 운동장, 2학년은 좀 떨어진 곳의 예비 운동장에서 치른다.
하지만 상호의 몸은 두 개가 아니었다.
‘눈깔만 떼어서 보낸다 해도 한쪽밖에 못 보는구나.’
아무래도 미진에게 부탁해서 녹화를 해야 될 듯싶었다. 그러려면 상대적으로 움직임이 느린 1학년을 녹화하는 게 좋을 것이다. 빠를수록 기계로는 분석이 힘들어지니까.
그는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교무실로 향했다.
* * *
“저 내일 2학년 애들 보러 가야 되니까, 미진 씨가 1학년 애들 평가하는 것 좀 찍어줘요. 이거 버튼 누르면 녹화되니까…….”
상호는 캠코더를 들어 올리며 설명하려 했다. 그러자 미진의 표정이 썩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제가 그거 하나 못 할 것 같아 보여요?”
“아, 그, 그니까 그냥…… 혹시나 해서…….”
“그리고 신입생들을 더 챙겨야지, 왜 또 2학년들 보러 가는 거예요? 걔들은 이제 알아서 잘 하는데.”
“그게…… 2학년 애들 중에 더 챙겨야 할 애들이 있잖아요. 미진 씨도 알면서…….”
“1학기 중간평가만이라도 신입생들 챙기시죠.”
구구절절이 옳은 말이었다. 하지만 상호도 할 말은 있었다.
“2학년 애들이 훨씬 더 다양하고 복잡하잖아요.”
무예가에게는 내공이 많아져서 무공의 특징이 살아나는 시기. 그 외의 유형도 1학년과는 비교도 안 되게 강해지는 시기.
“1학년 애들은 아직 영상만 봐도 충분해요. 특히 다른 반 2학년들이 얼마나 강한지 봐야…….”
“담임이 안 보러 오면 1학년 애들이 뭐라고 생각하겠어요?”
미진이 눈을 치켜떴다.
“아, 선생님은 우리보다 2학년이 중요하구나.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어요? 그 기억이 1년, 아니 고등학교 3년 내내 남지 않겠어요? 2학년 애들은 이미 작년에 봐줬는데, 올해 또 보러 가는 거네요? 그걸 애들이 모를까요? 1학년 애들이?”
“그것도 맞는데…….”
상호는 머리를 긁적이다 한숨을 쉬었다.
“알았어요. 그럼 오전에 1학년 보고 오후에 2학년 보러 갈게요. 나 없는 곳 미진 씨가 찍어 줘요.”
“그렇게 하죠.”
미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 * *
그래서 다음 날 아침.
“오전엔 1학년 보고, 오후엔 2학년 볼 거야. 나 없을 때는 미진 선생님이 봐줄 거니까 그렇게 알고.”
상호는 교탁 앞에 서서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1학년한텐 첫 시험이네. 그치? 사카시타랑 나디아도.”
“네.”
“처음이라고 대충 해도 되는 건 아니야. 알지? 물론 제일 중요한 건 연말평가지만, 그래도 항상 최선을 다해야 나중에 강한 몬스터를 만나더라도…….”
“잔소리 멈춰!”
“끄응…….”
태화가 벌떡 일어났다.
“어차피 열심히 해라, 방심하지 마라 다 그런 거잖아! 그럴 시간에 파이팅이나 한 번 더 해.”
2학년 아이들이 일어나자 1학년 아이들도 그 뒤를 따라 슬금슬금 일어났다.
상호는 쓰게 웃으며 교실 중앙으로 걸어갔다.
“그래. 어쨌든 힘내. 후회 안 하게.”
“마, 퍼뜩 모이라.”
“앗, 1등이다. 헤헤…….”
“비켜!”
“으잉…….”
또 손 가지고 싸운다.
열다섯 명의 손이 한데 모였다. 상호는 그 손을 하나하나 구별할 수 있었다.
굳은살이 없고 손톱 아래가 창백한 게 나빛.
손톱에 뭘 발랐는지 번들거리는 게 태화. 똑같이 번들거리지만 굳은살이 박인 게 이서.
검댕이 묻은 건 미래. 푸른 비늘이 드문드문 돋은 게 아리.
갈색 피부에 잔근육이 도드라진 게 지윤.
제일 많이 보고 만져서 익숙해진 게 세희.
그 외의 아이들도 주의 깊게 살피면 다 구별해낼 수 있었다.
“자, 셋 세면 파이팅 하는 거야. 하나, 둘…….”
“파이팅 말고, 딴 거 하자.”
“응?”
상호는 태화의 말에 눈을 끔뻑였다.
“그럼 뭘로 하게?”
“강상호로 운 띄워 봐.”
“강.”
“강하고!”
“상.”
“상냥한!”
“호.”
“호색한!”
“……야!”
* * *
오전은 예선 평가. 열 번의 경기를 거쳐 오후 본선에 나갈 64명을 추려낸다.
운동장에는 예년처럼 흙으로 만든 경기장이 여섯 개 올라와 있었다. 상호는 스탠드에 앉아서 경기장을 바라보며 진지한 고민에 빠졌다.
‘……도망칠까?’
그 이유는.
[아니 이것도 무기라구요!]
“그건 무기가 아니라…….”
[무기예요! 웨어러블 웨펀! 파워드 아머! 인간이 전투에 사용하는 엄연한 마법공학의 무기라구요! 꼭 총칼만 무기라는 생각을 버리세요! 그런 고리타분한 고정관념 때문에 우리나라 과학이 발전을 못 하는 거라구요!]
경기장 중 하나에 올라온 거대한 강철 로봇 때문에.
로봇 앞에 선 진행교사가 진땀을 흘렸다.
“미래 학생, 그러니까 이거는…… 일단 담임선생님 좀 모셔올래?”
[저기 계셔요! 선생님!]
로봇의 스피커에서 미래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상호는 차마 대답하지 못하고 외면해 버렸다.
[선생니이이임!]
하지만 강철 로봇이 대지를 뒤흔들며 달려오는 것은 무시할 수 없었다.
코앞까지 다가온 미래, 아니 로봇이 대뜸 엎드리며 상호와 눈높이를 맞췄다.
[선생님! 선생님! 이것도 무기죠, 그쵸?]
상호는 마지못해 로봇을 바라보며 씩 웃었다.
“무기지.”
[그쵸?!]
“근데 시험에는 쓰면 안 된다고 봐.”
[왜요?!]
“그 로봇은 네 힘으로만 만든 게 아니잖아.”
나로가 없었다면 이렇게 큰 로봇은 만들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로봇을 여러 대 만드는 게 네 사업 목표지? 만약에 네가 그 로봇으로 학교 시험에서 1등을 하면, 그걸 보고 다른 사람들이 네 로봇을 사서 시험을 치면, 그게 공정한 경쟁일까?”
[무기를 자기가 만드는 학생도 없잖아요.]
“그래서 학교에서 규격을 만들어 주잖아.”
상호는 손을 뻗어 로봇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넌 성적 좀 잘 안 나와도 돼. 네가 물건 만들 때 최선을 다하는 거 모두가 알고 있으니까. 너무 학교 평가에 연연하지 마.”
그러자 로봇의 등에서 미래가 쏙 튀어나오며 한숨을 푹 쉬었다.
“네…….”
“로봇은 치우고 와야지.”
“네…….”
미래는 다시 로봇으로 들어가 터덜터덜 기숙사 쪽으로 향했다.
대체 보관을 어디에 하고 있는 건지 의문이었지만, 상호는 궁금증을 접어두고 다른 아이들의 경기를 살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