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됐어. 그만 뛰어.”
상호의 말에 아이들이 뜀박질을 멈췄다.
겨우 다섯 바퀴였다. 평범한 학교 운동장보다 몇 배는 컸지만, 그래도 상호에게는 겨우 다섯 바퀴일 뿐이었다.
2학년들은 대체로 쌩쌩했지만, 1학년 아이들은 무릎을 짚고 가쁘게 숨을 골랐다.
“맘 같아선 더 뛰게 하고 싶은데…… 그랬다가는 이서가 날 아동학대로 신고할 것 같네.”
상호가 말하자 이서가 허리를 수그린 채로 그를 째려보았다. 머쓱해진 상호는 앞머리를 쓸어 올리고 머리를 긁적이며 씩 웃었다.
그러자 이서가 고개를 푹 숙이고 중얼거렸다.
“X발, 쓸데없이 잘생겨 가지고…….”
안 들릴 줄 알았겠지만 상호의 귀에는 다 들렸다. 당황한 상호는 고개를 돌리고 헛기침을 쏟아냈다.
“크흠……. 일단 스탠드에서 좀 쉬어. 태화랑 아리가 불 피우고. 좀 있다가 다시 수업하고 대련할 거야.”
“끄응…….”
아이들이 침음하며 스탠드로 걸어갔다.
아리와 태화가 돌바닥에 불을 피웠고, 그 불 주변에 아이들이 옹기종기 앉았다. 아리의 주홍색 불에는 1학년들이, 태화의 검은색 불에는 2학년들이 모여서.
“아, 따뜻해.”
“추워 죽는 줄 알았어…….”
“저짝 불이 더 따땃해 뵈는디. 내는 절로 갈란다.”
“아, 나도.”
지윤과 나빛이 일어나서 아리의 불 곁으로 자리를 옮겼다.
나디아도 슬금슬금 눈치를 보더니 나빛을 따라갔다. 태화는 일어나는 아이들을 보면서 흙 씹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곤 세희를 돌아보았다.
“넌 안 가냐?”
“눈 안 시리고 좋은데 뭐.”
그 말에 태화의 뺨이 살짝 붉어졌다.
태화는 이어서 은율과 이츠키를 향해 물었다.
“너희는?”
“그냥…….”
“일어나기 귀찮습니다.”
“솔직히 말해. 내 불이 더 따뜻하지?”
“그건 아닙니다.”
“우씨, 꺼져!”
태화가 불을 꺼뜨리고 벌떡 일어나 아리의 불로 향했다. 세희와 이츠키와 은율은 서로를 바라보며 눈을 깜작였다.
세희가 혀를 찼다.
“참나, 심보 하고는…….”
결국은 셋도 아리의 불 주변에 동석했다.
둥그렇게 붙어 앉은 열네 명의 아이들. 상호는 아이들을 곁눈질하다가 눈길을 돌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오후에도 오려나…….’
오후에도 오면 그때는 안에서 쉬게 해야겠다.
그런 생각을 하는데 불가에서 나빛의 목소리가 들렸다.
“선생님.”
“응?”
“선생님도 와서 불 쬐세요.”
“난 됐어.”
끼어들 틈도 없다. 상호는 뒷짐을 진 채로 고개를 저었다.
이서가 툭 내뱉듯이 말했다.
“가운데로 오세요.”
선생을 구워 먹으려는 심산인가.
상호의 머리는 비에 푹 젖어 있었다. 그는 자꾸 앞으로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을 연신 쓸어 넘겼다.
아이들이 그를 흘끗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뭐 말할 게 있나?’
열네 명이 다 할 말이 있는 걸까. 그건 아닐 것 같았다. 상호는 몸을 내려다보며 뭐 묻은 게 있는지 확인했다.
그런 건 없었다.
‘그냥 물에 빠진 생쥐꼴이라 안쓰러워서 그런가?’
그는 그렇게 여기고 아이들을 돌아보았다.
“쉬면서 들어. 특히 2학년들. 보법 가르쳐 줄 거니까.”
그 말에 세희와 지윤의 눈이 반짝였다.
둘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물었다.
“선생님이 쓰던 거예요?”
“쌤꺼예?”
“응, 내가 쓰던 것도 있고. 새로 가져온 것도 있고.”
상호는 아이들의 곁에 다가섰다.
“보법의 목적이 뭐야.”
“거리조절이요.”
“또.”
“뒤치기예?”
“……뭐 그런 거지.”
상호는 가져온 목각인형을 일으켜 세웠다.
“보법을 쓰다 보면 자주 나오는 구도가 뒤치기지. 상대의 뒤를 잡으려면 뒤로 돌아가야겠지?”
“예.”
“돌아 가야겠지?”
그는 ‘돌아’ 부분을 강조했다.
“지금부터 보법이 왜 보법인지 가르쳐 줄 거야. 자, 이게 적이라고 쳐.”
상호의 검이 둥실 날아 운동장 위에 섰다.
“그리고 이 목각인형이 저 검의 뒤를 잡을 거야. 잘 봐. 발을 어떻게 밟는지.”
목각인형이 검을 향해 똑바로 달려갔다.
검의 정면. 이대로 달리는 것은 뒤를 잡는 것이 아니라 대놓고 앞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아이들이 눈을 끔뻑이며 의문을 표했다.
하지만 세희와 지윤은, 그의 정체를 아는 아이들은 단 한 순간도 눈을 깜빡이지 않았다.
그렇게 인형이 검의 코앞에 다가섰을 때.
탓 탓 탓
발소리 세 번이 들리더니, 어느새 검의 뒤편에 목각인형이 서 있었다.
분명 검을 향해 똑바로 달려가고 있었는데.
“……어?”
“보법을 보법답게 만드는 건 회전이야.”
상호는 방금 목각인형으로 펼쳤던 보법을 다시 한번 느리게 시연했다.
상대의 뒤로 달려서 돌아가지 않고, 발을 중심으로 몸만 돌려 뒤를 잡는 방법.
“이렇게 상대의 옆에 발을 놓고, 외회전으로 180도. 그 다음에 내회전으로 180도에서 270도 사이. 그러면 이렇게 자연스럽게 뒤가 잡히는 거지.”
목각인형이 순식간에 검의 뒤로 갔다가 앞으로 가기를 반복했다.
“이게 빠르게 되려면 경공도 경공이지만…… 발을 놓는 방법을 제대로 익혀야 해. 그래서 보법인 거야. 자, 연습해 봐.”
“네.”
세희와 지윤이 제일 먼저 일어났다.
둘을 필두로 다른 2학년 무예가들도 일어나서 비가 오는 운동장으로 걸어 나갔다.
상호도 다시 스탠드 밖으로 나가서 비를 맞으며 말했다.
“될 때까지 해 봐. 계속 봐줄 테니까.”
스탠드에는 나빛과 아리, 태화, 미래가 앉아 있었다. 경공도 보법도 배우지 않는 아이들.
나빛이 상호를 향해 말했다.
“선생님, 비 맞지 말고 스탠드로 들어오세요.”
“아냐, 괜찮아.”
다리가 이 모양이라 같이 뛰어주지 못한 게 미안해서. 보법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는 게 미안해서.
그는 비를 피하지 않았다.
“선생님은 설탕 아니야. 비 좀 맞는다고 안 녹아.”
상호는 나빛에게 씩 웃어주고 다시 무예가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세희, 좀 더 빠르게. 은율이도. 지윤이는 발 정확히 짚고. 셋 말고 다른 애들은 천천히 해. 너희는 아직 경공 덜 배웠으니까…….”
* * *
그 외에도 여러 기초적인 보법들을 아이들에게 가르쳐 주었다.
그렇게 오전 수업이 끝날 때까지도 비는 멈추지 않았고, 상호는 아이들에게 점심 먹고 씻고 옷 갈아입고 교실에 있으라 했다.
그리고 점심시간이 끝나가는 때.
상호는 물건을 바리바리 싸들고 복도를 걸어가고 있었다.
‘좀 쉬게 하고 실내수업 시켜야지.’
그의 품에는 담요 열네 장과 커피포트, 물병과 코코아, 같이 먹을 과자들이 한 아름 들려 있었다.
아이들이 좋아할까. 걱정 반 기대 반으로 교실에 다가가는데, 안에서 아이들이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상호는 늘 그렇듯 검 짚는 소리를 죽였다.
“……에는 밖에 안 나가겠지? 멍.”
단비 목소리였다.
“전투복 갈아입으란 거는 안 나간다는 거 아니야? 언니?”
“모른디. 근디 니 말을 쌤이 들으면 씻고 옷 갈아입어뿌렀다고 못 싸우는 기 아이라 할 기다.”
“엑…… 진짜 나갈 수도 있어?”
단비의 물음에 세희가 답했다.
“충분히 그럴 수 있지. 우리 선생님이면.”
“으…….”
털푸덕 소리가 들렸다. 아마 단비가 책상에 엎어진 모양이었다.
“불안해……. 힘들어……. 쉬고 싶어…….”
“야, 나 때는 진짜 쉬지도 못했어.”
태화가 혀를 찼다.
“너희는 운 좋은 줄 알아. 우린 혼나고 구르고 맞고…… 별거 다 했어 그냥. 사람도 적어서 농땡이도 못 피우고.”
“누가…… 누가 맞았어?”
은율이 기어드는 목소리로 묻자 나빛이 밝게 대답했다.
“나!”
그 말에 교실이 침묵에 빠졌다.
“……나빛이 네가? 태화가 아니라?”
“응!”
“왜?”
“공격이 날아오는데 안 피한다고…… 헤헤.”
다시 조금의 침묵이 흘렀다.
상호는 1년 전의 자신을 떠올리며 벽에 이마를 박았다.
‘독한 새끼……. 어디에 때릴 데가 있다고…….’
이윽고 아리가 입을 열었다.
“그래도 때리는 건…… 조금…….”
“응? 그렇게 세게 맞진 않았어. 아프긴 했지만…….”
“어떻게 맞았습니까?”
“손바닥으로 머리.”
그 대답에 미래가 탄식했다.
“우와…… 그건 좀 심한데.”
“언니.”
이서가 나직한 목소리로 물었다.
“언니는 그런데도 선생님이 좋아?”
“응.”
나빛이 헤헤 웃었다.
“선생님 착해. 겉으론 엄한 것처럼 보여도…… 내가 가끔 삐지면, 절대 화 안 내고 다 받아주셔.”
“언니들은 선생님이 왜 좋은 거예요?”
이서가 퉁명스럽게, 툭 내뱉듯 물었다.
“다른 반은 놀 때 우리는 나가고, 비가 와도 이렇게 진흙탕에서 구르는데, 솔직히 다른 반 가고 싶지 않아요?”
“으음……. 나는 잘 모르겠어. 다른 반에 다녀보질 않아서…….”
나빛이 당황한 듯 웃었다.
“굳이 다른 반하고 비교를 할 거라면…… 지윤이랑 은율이한테 물어봐. 둘은 다른 반에서 지내 봤으니까.”
“내 말이가? 내는 모른다. 내는 니들하고 다른 이유로 와 가지고.”
“나도…….”
둘의 대답에 미래가 득달같이 달려들듯 물었다.
“다른 이유가 뭔데? 뭔데? 알려주면 안 돼?”
“말 못한디. 머…… 반끼리 비교를 한다믄야. 귤쌤도 착하시고 좋제. 근디 말헌 대로 내는 여기로 온 이유가 따로 있어가…… 다른 반이랑 비교해서 좋은 기 머냐 하믄, 해줄 말이 별로 읎다.”
“은율이 언니는?”
은율이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나는 있던 반보다 여기가 천 배 만 배 좋아.”
“그 정도야?”
“응. 만약에 선생님이 날 싫어하시거나 때리더라도…… 난 여기가 훨씬 더 좋아.”
“그 정도야?”
더 알 수 없게 되었다는 말투였다.
밖에 서 있던 상호는 은율의 말을 듣고 고개를 살짝 숙였다.
‘……너는 그럴 수밖에 없겠구나.’
경한에게 당한 게 있으니까.
같은 짓을 하지만 않는다면 은율은 당연히 상호의 반에 온 것을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는데 안에서 가은의 목소리가 들렸다.
“우리 선생님 착한 거 맞아?”
나빛이 어리둥절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응, 다정하신데. 왜?”
“소문이 이상한 게 많던데. 다른 반에서 들어보니까 누구는 따뜻하고 다정하고 자상하다고 그러는데, 누구는 여친을 패네 다른 선생님을 건드리네 교생을 건드리네 학생을 건드리네 그러던데. 심지어 교장선생님까지 건드렸다는 말도 있고.”
그 말에 갑자기 하솔이 콜록콜록 기침을 했지만, 아무도 이상하게 여기지는 않았다.
대답은 세희가 했다.
“대부분은 얘가 퍼트린 거야.”
“끄응…….”
꼬리를 잡혔는지 태화의 목소리가 축 늘어졌다. 이어서 나빛이 웃었다.
“지내보면 알 거야. 선생님이 어떤 사람인지……. 너희 생각보다 훨씬, 훨씬 더 정이 많은 분이셔.”
이서가 부루퉁하게 말했다.
“한 달쯤 지냈는데 대충 견적 나오잖아.”
“그럼 네가 잘못 본 거야.”
“……그런가.”
나빛의 단호한 목소리에 이서가 꼬리를 내렸다. 그러자 태화가 코웃음을 쳤다.
“야, 웃긴다 너. 대체 왜 나빛이 말만 이렇게 잘 듣는 거야?”
“넌 몰라도 돼~. 나랑 이서만의 비밀이야.”
“참나. 야, 누구 나랑 비밀친구 할래? 나도 X바 꼬붕 하나 가져보…… 끄으응!”
“조용히 해. 선도해버리기 전에.”
슬슬 들어갈 타이밍인 듯싶었다. 상호는 가만히 벽에 기대어 있다가 등을 떼고 일어섰다.
그리고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얘들아, 담요 받아라.”
“어? 주는 거야?”
“가져. 한 장씩.”
“감사합니다~.”
상호는 아이들에게 담요를 던져주며 말했다.
“5교시는 쉬자. 영화 볼래?”
“진짜? 노트북 가져와?”
“가져와.”
“오케이!”
태화가 검은 연기를 남기고 사라졌다.
다시 나타난 태화의 손에는 상호의 노트북이 들려 있었다. 상호는 그 노트북을 받아 TV에 연결했다.
커피포트에 올린 물이 바글바글 끓기 시작했다.
“한 잔씩 받아.”
코코아가 담긴 종이컵이 둥실 떠올라 아이들의 책상에 놓였다.
“더 먹고 싶으면 말해. 과자도 먹어. 오전에 수고했으니까 푹 쉬고. 대신에 영화 다 보고 나면 실내에서라도 간단히 수업할 거야. 시험 얼마 안 남았으니까. 알았지?”
“에이, 앞으로 못 노니까 오늘 놀아야지!”
“야, 너 그런다고 쌤이 들어주는 거 봤…….”
“배째!”
상호는 바닥에서 풍차를 돌리는 태화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그래. 영화 두 개 보자. 대신 내일부턴 실내든 실외든 수업만 계속할 거야.”
“네~.”
코코아 묻은 입술에서 맑은 대답이 흘러나왔다.
상호는 자꾸 마음이 흐물흐물하게 녹아내리는 것을 느끼며, 사람은 어쩌면 설탕이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녹이고 나면, 눈앞에 이렇게 달콤한 향기를 피어올리는 코코아처럼 종이컵에 담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그런 생각을 했다.
“영화 골라. 뭐 볼래?”
“저거 보자! 스승의 뜨거운 은혜!”
“얌마……, 다른 거.”
“아니면 은밀한 보충수업? 지하실의 그녀? 옆집 아저씨는 늑대인간…….”
“야!”
176. 이기면 안 돼
“선생님!”
아침부터 미래가 잔뜩 들떠 있었다.
“발명대회 결과는요? 언제 나와요? 슬슬 상 줄 때 되지 않았어요?”
기대에 가득 찬 눈빛이 부담스러웠다. 교탁 앞에 선 상호는 미래를 피해 얼굴을 돌렸다.
“됐지.”
“제 상은요?”
“못 받았어.”
“어엇?!”
미래가 눈을 부릅떴다. 당연히 자기가 받아야 되지 않느냐는 듯이.
“왜요! 205번 특허 없이 위상을 계측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는데!”
“그렇게 말하면 내가 알겠니……. 원래 천재는 핍박받는 법이야. 너무 마음에 두지 마.”
“아이, 당연히 받을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학생 대회에서는 비정상적으로 수준이 높으면 오히려 상을 받기 힘들어지기 마련이었다. 학생 본인만의 힘이 아닐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상호는 쓰게 웃으며 미래를 달랬다.
“어차피 넌 그런 자잘한 상은 필요 없잖아. 필요한 사람한테 준 셈 쳐.”
“소원권 따야 되는데……, 쩝.”
그래도 납득을 했는지, 미래는 뾰로통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꼭 초를 치는 아이가 있었다.
“헹, 대회에서 상 받는 방법은 따로 있다고.”
태화의 콧대가 높아져 있었다.
“발명대회란 거는 말이야, 그 물건을 만들려는 마음이 중요한 거야. 눈이 안 좋은 사람들한테 안경을 주고! 깨끗한 물을 못 먹는 사람들한테 정수빨대를 주고! 뭐 그런 거지. 무조건 어려운 걸 해낸다고 좋은 게 아니란 말씀이야.”
“오오…….”
미래가 눈을 반짝였다.
“그럼 언니는 상 받아 봤어?”
“나? 당연히 받았지.”
“우와…… 무슨 상? 뭘로?”
“무슨 상인지는 중요한 게 아냐. 상을 받았다는 게 중요한 거지. 어차피 너도 소원권이 중요했던 거잖아?”
“그건 그런데…… 그래서 뭘로 받았는데? 응?”
“나야 뭐, 당연히 엄청난 발명을 했지. 아주 많은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에이, 말해줘! 궁금하게 하지 말고!”
“안 돼.”
“왜!”
“말하면 네가 너무 좌절할 거거든. 내 천재성에 압도당해서.”
상호는 둘의 이야기를 듣다가 교탁을 두드렸다.
“자, 자. 헛소리 그만하고. 오늘 수업 해야지. 갈아입고 밖으로 나와.”
“넵.”
“네에~.”
* * *
“아뵤!”
태화가 한쪽 다리를 들고 학처럼 양팔을 펼쳤다.
“신기술! 삼연 순간이동!”
“끄응…….”
바닥에 엎어져 있던 은율이 검을 짚고 일어섰다.
그러고는 어깨에 묻은 불꽃을 털어내고 멍한 눈으로 상호를 바라보았다.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묻는 표정이었다.
상호는 은율을 향해 말했다.
“방심하지 마. 순간이동을 연속으로 못 쓸 거라고 생각했지?”
“……네.”
“예상해서 움직이는 건 어쩔 수 없지만, 그거랑은 상관없이 상대가 눈앞에서 사라지자마자 막든가 도망치든가 했어야 해. 돌발상황이 생겨도 몸이 바로 반응해야지, 마냥 넋 놓고 있으면 안 된다는 뜻이야. 예상을 했더라도. 알았지?”
“네.”
은율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상대가 안 쓰던 기술을 갑자기 쓴다는 거는, 그 기술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섣불리 쓰지 못하는 거야. 그 문제가 뭔지 파악하는 것도 중요해. 방금 태화 같은 경우는…….”
“우씨, 말하지 마!”
“……앞으로 은율이가 직접 알아보는 게 좋겠다. 대련하면서.”
“난 어때? 잘했지? 잘했지?”
태화가 꼬리를 살랑이며 능글맞게 웃었다.
하지만 칭찬할 상황이 아니었다. 상호는 눈살을 찌푸리며 검지로 태화를 가리켰다.
“넌 아직도 그 버릇 못 고쳤어.”
좀 전에 태화가 선보였던 삼연 순간이동은, 재시전까지의 시간이 줄어든 대신 이동하는 거리도 줄어드는 기술이었다.
“함부로 들이대지 말라고 했지. 도박수 걸지 말라고. 그러다 상대가 제대로 반응하면 어떡하려고 그래?”
그 말에 태화가 억울한 듯 발을 굴렀다.
“뭐 어때! 쟤가 반응 못 하면 되는 거 아냐? 쟤보다 강한 애가 몇 명이나 있다고.”
“몬스터들이 다 은율이보다 약하냐?”
상호는 눈을 부라렸다.
“기억해. 네 상대는 학생이 아니라 몬스터야. 학교에 다닐 때만 어쩔 수 없이 학생을 상대하는 거고. 수백, 수천 가지 몬스터들한테 똑같은 도박이 똑같이 통할 거라 생각하지 마.”
“……알았어.”
태화가 입을 삐죽 내밀었다.
“쌤은 몬스터 많이 잡아봤나 봐.”
“응?”
상호는 태화가 그의 출신을 모른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떠올렸다.
“그럼. 엄청 많이 잡아봤지.”
“가장 강한 놈은 누구였는데?”
“강한 놈?”
지금 다리에 봉인되어 있다.
물론 그걸 곧이곧대로 말할 수는 없으니. 그는 아이들의 눈치를 살피며 대충 둘러댔다.
“설명한다고 네가 알아? 그냥…… 강한 놈이었어. 나 혼자서는 못 이길 정도로 강한 놈.”
“흐응…….”
“빨리 와서 앉아. 다음 애들 대련해야지.”
아이들이 궁금해하기 전에 빨리 넘어가야 했다. 특히 미래를 피해서.
“자, 다음. 세희랑 나빛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