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4화 (194/501)

* * *

“……뭐여, 이건.”

 상호는 눈앞에 선 로봇을 올려다보았다.

키는 사람 두 배가 조금 덜 되었다. 한 3m 정도. 전체적으로 사각형을 많이 쓴 디자인이었다. 몸통은 물론이고 상박도, 하박도, 윗다리와 아랫다리도.

로봇의 양옆에는 나로와 미래가 서 있었다. 미래가 로봇의 허벅지를 두드리며 소리쳤다.

“드디어 완성!”

 드디어란 말보다는 갑자기란 말이 더 어울릴 것이다.

뭐하는 회사이기에 지하에서 이런 것도 만드나. 상호는 설명을 구하는 눈빛으로 나로를 바라보았다.

나로는 어깨를 으쓱이며 미래 쪽을 눈짓했다.

“그렇게 봐도 소용없어. 만든 사람한테 물어봐야지.”

“……미래야? 그래서 이게 뭐야?”

“보면 모르세요? 로봇! 파워드 슈트! 웨어러블 웨펀의 끝판왕!”

 상호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영어는 잘 모르지만, 웨펀이 무기라는 건 안다.

아는데.

“……이걸 타고 싸우겠다고?”

“네!”

“학교에서?”

“네!”

“와…….”

 상호의 입에서 순수한 감탄성이 튀어나왔다.

‘……제정신이 아니구나.’

 이걸 학교에 가져가는 것도 문제고, 보관하는 것도 문제고. 그냥 모든 게 문제였다.

 그래도 상호는 미래에게 뭔가 생각이 있을까 싶었다.

“어떻게 가져가게?”

“트럭에 실어서요!”

“트럭은 누가 운전해?”

“사장님이요!”

“그럼…… 보관은 어디다 해?”

“트럭에요!”

“트럭은 어디다 놔?”

“주차장이요!”

 척척 대답하니까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감이 오지 않았다.

 어쨌든 그래서 이걸 학교에 가져가서, 탑승해서, 애들과 싸우겠다는 소리.

상호의 시선이 나로를 향했다.

“테스트는 해 봤어? 안전해?”

“탑승해서 조종까진 해 봤는데, 전투는 아직.”

“내가 테스트해 봐도 돼?”

“얼마든지.”

 그 말에 상호는 미래를 바라보며 로봇을 턱짓했다.

“미래야. 타 봐.”

“넵.”

 미래가 로봇의 뒤로 가서 등에 있는 무언가를 눌렀다.

 그러자 로봇의 몸통 뒤쪽이 열리며 기계장치가 촉수처럼 뻗어 나왔다. 금속으로 이뤄진 촉수는 미래를 휘감아 몸통 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곧 로봇의 눈에 불빛이 들어왔다.

쿠르르……

시동이 걸린 로봇은 덜덜 떨며 묵직한 기계음을 쏟아내더니, 이내 상호를 향해 격투 자세를 취했다.

상호는 그 모습을 보고 물었다.

“주먹으로 싸우는 거야?”

[무기는 아직 만들고 있어요.]

로봇 어딘가에 달린 스피커에서 미래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히트 블레이드, 레이저 블래스트. 매직 개틀링…… 다 만들어서 달 거예요. 좀 오래 걸리겠지만.]

“흠.”

 지금은 화력을 확인하려는 게 아니었다. 상호는 로봇을 향해 손을 까딱였다.

“그럼 주먹으로 하자. 미래야, 한 방 날려 봐.”

[갈게요.]

미래는 사양하지 않고 바로 그에게 주먹을 날렸다. 로봇의 거대한 금속 주먹을.

사람 머리통만한 주먹이 상호에게 날아들었다.

‘빠르네.’

 의외로 움직임이 날렵했다.

상호는 검지를 들어 주먹을 막았다. 일반적인 주먹보다 훨씬 빠르고 무거웠지만, 그에게는 손가락 하나로 충분했다.

‘이 정도면 1학년 무예가 애들한테는 힘들겠는데.’

 굳이 무기를 들지 않아도 1학년 정도는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터. 그렇다면 2학년을 상대로는 어떨까.

상호는 검을 뽑아 로봇의 손을 베었다. 일부러 2학년 수준의 검기만 써서.

촤악

로봇의 손에 흠집이 났다. 도색이 조금 벗겨진 정도였다.

‘충분히 튼튼해 보이지만…….’

 로봇의 몸에는 마나가 흘렀다.

안 그래도 거대한 몸인데, 무예가처럼 체내에 마나를 쌓아 사용하는 게 아니라 자연에서 마나를 끌어오는 편법을 쓰다 보니 전체적인 마나의 총량이 부족했고, 그 마나는 대부분 주먹에 몰려 있었다.

‘안전하진 않은 것 같네.’

 상호는 로봇의 몸통에 자신의 내공을 쏟아 붓고, 미래가 있는 위치를 파악한 후 그 부분을 피해 검을 찔러 넣었다.

콰직

검이 로봇을 꿰뚫었다.

[으엑!]

 미래가 당황하며 뒤로 물러났다.

[선생님! 부수면 어떡해요!]

“테스트인데 이 정도는 해야지.”

[선생님이 마음먹고 하면 당연히 부서지죠! 이건 학생 수준에 맞춘 시제품이라구요!]

“학생 수준을 너무 낮게 잡았네.”

 상호는 검을 칼집에 집어넣었다.

“방금 찌른 건 2학년 평균만큼의 검기야. 세희나 은율이는 그것보다 훨씬 더 강하고. 또 하솔이처럼 집에서 조기교육 받은 애들도 방금 것만큼은 만들 수 있어.”

[끄응…….]

로봇이 고개를 푹 숙였다.

[최대한 강화시켰는데…….]

“우리 수업할 때 쓰는 목걸이만큼만 강해지면 좋을 것 같은데.”

 초강기도 딱 한 번은 막는 물건이다. 그만큼의 강도만 보장되면 평범한 헌터만큼의 전투력은 충분히 나올 터였다.

상호의 말에 로봇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 목걸이는 학교에서 만드는 거예요?]

“아니, 학회. 학회에 있는 선생님 친구가.”

[친구분이요? 그럼 그 친구분 좀 소개시켜 주세요!]

“안 그래도 한번 데려가려고 했었어.”

 상호는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켰다.

“이따 갈 때 같이 가보자. ……어쨌든, 이 로봇은 아직 좀 부족한 것 같다. 전투를 하기에는.”

[쩝…….]

미래가 입맛을 다시며 로봇에서 빠져나왔다.

조금 떨어진 곳에는 나로가 물러나 있었다. 나로는 작동을 멈추는 로봇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몸통의 상처를 흘끗하고는 상호를 불렀다.

“야, 상호야.”

“응?”

“너 S급 딸 생각 없어? 헌터 등급.”

“없어.”

“끄응……. 그래, 어쩔 수 없지.”

“뭐 때문에 그래?”

“투자자들한테 보고해야 해서…….”

 상호는 머리를 긁적이는 나로를 보며 눈을 끔뻑였다.

“이게 얼만데? 많이 비싸?”

 부서지면 곤란할 정도의 물건일까.

비싸 보이긴 했다. 제대로 된 마법공학 장비들은 대부분 억대를 호가하는데, 이런 듣도 보도 못한 물건을 만들었다면 필시 말도 안 되는 가격이 나올 터였다.

나로가 씩 웃었다.

“비싸.”

 나로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는 것만으로도 상호는 짐작할 수가 있었다. 개인이 감당할 수 있는 가격이 아니란 것을.

“……미안.”

“농담이야. 원가는 30억밖에 안 해.”

 그게 농담보다 더 지독하다는 걸 모를까. 나로는 태연한 표정으로 로봇을 바라보았다.

“마법공학 장비가 비싼 건 다 마법 특허 가격 때문이니까. 특허야 뭐 한번 사면 계약 기간 동안은 맘대로 쓰는 거고, 저 정도 부서진 거야 고치면 되는데…….”

“되는데?”

“투자자들한테 설명하는 게 문제네. B급도 못 이길 거면 뭣하러 만들었냐고 따질 게 뻔해서.”

“아아.”

 그런 이유였구나. 상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등급을 올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병자인데 S급인 것보다는 병자라서 B급인 게 눈에 훨씬 덜 띄니까.

“어쩔 수 없지, 뭐. B급은 B급이지.”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나로는 로봇의 몸통을 두드렸다.

“어쨌든 알았어. 내가 알아서 할게. 미래 양, 이건 다음 주말까지 고쳐 놓으면 되죠?”

“아, 네!”

 미래가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선생님이랑 학회 가보고, 개조할 거 있으면 주중에 연락드릴게요.”

“그래요. 그럼 다음 주말에 보죠.”

“넵!”

 미래는 나로가 내민 손을 잡고 흔들었다.

상호는 둘의 모습을 지켜보다가 엘리베이터를 향해 걸었다.

“나로. 갈게. 가자, 미래야.”

“넵!”

 미래는 잰걸음으로 그의 뒤를 따랐다.

* * *

“그래서 얘도 데려왔어.”

 상호는 태화와 아리의 옆에 선 미래를 가리켰다.

“한미래. 마법공학 계열이야. 그쪽으로 좀 가르쳐 줘.”

“안녕하세요~.”

 미래가 허리를 90도로 꾸벅 숙였다.

소파에 앉은 민정이 눈을 끔뻑였다.

“아이가…… 또 늘었네.”

“미안해.”

“누나를 짬통으로 보는 건 아니지?”

“그럴 리가 있나.”

 상호는 민정의 어깨를 가볍게 안마했다.

“애들 가르치는 것도 어찌 보면 우리 의무잖아. 헌터로서. 그러니까 좀만 더 도와줘.”

“상호 넌 갈수록 능글맞아지는 것 같아.”

“미안해.”

“에휴, 네가 말하면 내가 들어야지 어쩌겠니…….”

 민정은 쓴웃음을 짓고 미래를 돌아보았다.

“그래서, 미래는 뭘 배우고 싶은데?”

 미래는 그 말만 기다렸다는 듯 속사포처럼 질문을 날렸다.

“언니는 누구세요? 우리 선생님 언제부터 알았어요? 우리 선생님 뭐하는 사람이에요? 우리 선생님 다리랑 눈 왜 안 고쳐요? ……읍.”

 상호는 당황해서 미래의 입을 막았다.

“미래야, 그런 거 묻지 말고……, 그리고 아무리 궁금해도 당사자 앞에서는 그러지 말고…….”

“저 궁금하면 잠 못잔다니까요!”

“지금껏 잘 잤잖아.”

“끙…….”

 미래는 꿍얼거리다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기계를 단단하게 만드는 방법이요.”

“기계를? 얼마나 단단하게?”

“몬스터랑 싸울 정도로요. 단단할수록 좋지만…… 일단은 학생 수준의 공격을 막을 정도면 돼요.”

 민정은 그 말을 듣고 상호를 흘끗했다.

“보호 마법을 가르쳐 달라는 말이니?”

“그것도 그거지만…… 기계에 끌어다 쓸 수 있는 마나가 너무 부족해요. 기계가 약간 크거든요? 높이는 3150미리에 노출 면적은 14675제곱미리인데…….”

“……으음.”

 민정의 눈빛이 흔들렸다. 아무래도 잘못 걸린 것 같다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지금 미래를 도울 수 있는 건 민정밖에 없으니.

상호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슬그머니 자리를 빠져나왔다.

* * *

상호는 안방으로 들어오는 민정과 눈을 마주쳤다.

“끝났어?”

“아니, 쉬는 시간. 태화가 힘들어해서.”

“애들은 괜찮아?”

“아리는 잘 참고, 미래는…… 내가 지칠 것 같아.”

 민정이 한숨을 쉬었다.

하긴 보통의 교사도 학구열 넘치는 아이를 힘들어하는데, 교사도 아닌 민정에게는 버거운 일이 될 성싶었다.

상호는 일어나서 민정의 어깨를 주물렀다.

“고생하네. 우리 누나.”

 그 말에 민정이 그를 돌아보며 눈웃음 지었다.

“1학년 애들은 내가 네 애인인 줄 알더라.”

“대충 맞지 않나? 좀 꼬이기야 했지만…….”

“근데 네가 날 때리는 줄 알더라? 애인을 팬다고 소문이 났다던데. 그래서 막, 선생님한테 진짜 맞았어요? 이러드라구.”

“……대체 왜 그런 소문이 났는지 모르겠네.”

 상호는 모르는 척 얼굴에 철판을 깔았다.

“그래서, 대답은 뭐라고 했는데?”

“낮에는 안 때리는데 밤에는 때린다고 했어.”

“응? 뭐?”

“아냐, 몰라도 돼.”

 민정이 키득거리며 그에게 몸을 기댔다.

문득 상호의 머릿속에 어떤 생각이 떠올랐다.

“누나.”

“응?”

“우리 학교로 오는 게 낫지 않나?”

 가르칠 학생도 늘었고, 이런 곳에 혼자서 외롭게 지내는 것보단 학교에서 사람들과 함께 지내는 게 낫지 않을까.

상호는 재작년을 떠올리며 말을 이었다.

“일이 힘들어도…… 혼자서 지내는 것보단 훨씬 좋더라. 바쁘니까 힘든 기억들도 금방금방 잊게 되고…… 성격도 좀 밝아진 게 느껴져. 스스로도.”

 그는 민정의 몸을 돌려 얼굴을 맞댔다.

“누나도 와. 적어도 외롭진 않을 거야. 나한테 항상 외롭다고 그랬잖아.”

 민정은 눈을 내리깔고 생각에 잠겼다. 진지하게 고민하는 눈빛이었다.

한참이 지난 후에야 그녀의 입이 열렸다.

“……아니.”

“왜?”

“난 여기 있는 게 좋을 것 같아.”

 상호는 눈을 끔뻑였다. 그게 무슨 뜻인지 확실히 알아들을 수가 없어서.

“뭐…… 교사 일이 힘들까봐 그래? 그렇게 안 힘들걸. 누나는 나랑은 다르게 학회에서의 지위가 있잖아. 학교로 오면 이사들이 알아서 받들어 모실 거고…….”

“아니, 그게 아니라.”

“그럼 예전에 그 귀찮게 한다는 인간들 때문에? 누나 마법 훔친다고?”

“아니, 그것도 아니고.”

 민정은 문가를 흘끗했다.

“협회 때문에.”

 상호는 그제서야 민정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차렸다.

“지금 내가 움직이면 협회의 이목을 끌 거야. 그러면 네 학교를 조사해서 너랑 태화가 있다는 걸 알아내겠지.”

“……대체 형은 뭐 하고 있대?”

 상호의 눈썹이 꿈틀했다.

“연락을 안 받던데. 그냥 한마디 하면 끝날 일이잖아. 태화 노리지 말라고. 협회는 다 형 부하 아냐? 그 66부란 놈들은 명령을 안 들어?”

“……나도 요즘 연락이 안 되더라. 많이 바쁜가 봐. 근데 상호야.”

 민정이 그의 팔뚝을 잡았다.

“아마…… 오빠는 아직 모를 거야. 만약 안다고 해도…… 66부가 노리는 게 네 제자라는 건 확실히 모를 거야.”

“그럼 알려줘야지. 모르게 둘 거야?”

“그런데…… 상호야.”

 민정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나는…… 무서워서 그래. 오빠가 그 사실을 알게 됐을 때…… 어떤 생각을 할지가…… 너무 무서워. 오빠는 그것 때문에 많이 힘들어하잖아…….”

 상호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아니. 형은 안 그럴 거야.”

“네가 몰라서 그래. 오빠는 그 이야기를 하면 다른 사람이 돼. 그래서 자주 싸웠고…….”

 민정은 말하다가 말꼬리를 흐렸다. 상호에게 그런 이야기들을 들려주고 싶지 않아하는 그녀였기에.

 하지만 지금은 필요하다고 생각했는지, 곧 말을 이었다.

“오빠를 믿지 마, 상호야. 물론 우리 중에서도 제일 착한 사람이지만…… 오빠는 세상을 위해 싸울 사람이지, 널 위해 싸워줄 사람은 아니야.”

 상호는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며 흥분을 삭였다.

“……알았어. 형한텐 말 안 할게.”

“그래 줄래……?”

“누나가 이러는데 뭐 어쩌겠어. 형은 모르게 두고, 66부는 내가 알아서 막을게.”

 맘 같아서는 협회로 쳐들어가서 66부를 싸그리 쓸어버리고 싶었지만, 그 악마의 봉인을 전담하는 부서라니 어떻게 없애버릴 수도 없었다.

 이렇게 조용히 막는 것이 최선이리라.

“어쨌든 알았어. 우리 학교는 안 오는 게 좋겠네.”

“응……, 미안해.”

“뭐가 미안해? 누나가 뭘 잘못했다고.”

 하지만 민정은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전우들의 사이가 멀어지는 게 그토록 싫은 모양이었다.

상호는 민정의 등을 토닥였다.

“울지 마. 누나가 걱정하는 일은 안 생길 거야.”

“나는…….”

 민정이 그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너랑 오빠가 싸우는 게…… 세상에서 제일 무서워…….”

“나도 그래.”

 상호는 민정의 눈물을 닦으며 중얼거렸다.

정확히는 무섭지는 않지만, 제일 피하고 싶은 일임은 틀림없었다. 둘이 싸우면 한쪽은 절대로 무사하지 못할 테니.

“그런 일은 없을 거야. 그러니까 쓸데없는 걱정은 하지 마.”

“……응.”

 민정은 조금 더 그를 안고 있다가, 고개를 들어 엷은 미소를 지었다.

“애들이 걱정하겠다. 이만 나가 볼게.”

“응.”

 상호는 민정을 놓아주었다.

민정이 안방을 나가자 문틈으로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어왔다.

“어? 선생님 눈이 왜…….”

“앗! 쌤이 민정쌤 울렸어! 때렸어! 아리야, 경찰 불러!”

“아, 네……!”

“야야야, 진짜 부르진 말고! 농담을 못 알아듣냐!”

 유언비어가 더 부풀게 되었다.

 하지만 상호는 그쪽으로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의 머릿속은 온통 민정과 도현, 태화와 66부에 대한 생각뿐이었다.

태화는 최고의 봉인체.

 만약 그 사실을 도현이 알게 된다면.

 그리고 도현이 태화를 봉인체로 쓰려 한다면.

‘그때는…….’

 상호는 예경의 검을 만지작거렸다.

 175. 사람은 녹는다

월요일 아침.

꽃샘추위와 비가 오는 환절기라 그런지, 아니면 꽃가루가 날리기 시작해서 그런지. 자리에 앉은 아이들은 자꾸 재채기를 하거나 콧물을 훌쩍였다.

반면에 상호는 아주 멀쩡했다.

“오늘부터 실내수업 없어. 다 실외수업이야.”

“비오는데?”

 태화의 말대로 창밖에는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빗줄기가 굵지는 않았지만, 나가면 당연히 금방 젖을 것이다. 하지만 상호의 뜻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그는 지윤을 쳐다보았다.

“지윤아.”

“예.”

“내가 뭐라고 할 것 같아?”

“비 온다고 안 싸우는 기 아니라구예.”

“들었지?”

 그 말에 1학년 아이들이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상호는 씩 웃으며 엄지로 창밖을 가리켰다.

“옷 갈아입고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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