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도둑년아아아!”
“아, 결국 뗐네.”
세희는 빵을 한 아름 들고 교실로 들어섰다. 아리와 미래의 품에도 빵이 가득했다.
“덕분에 빵으로 파티하겠어. 자, 빵 먹어, 빵. 이거 다 태화가 쏘는 거야.”
“웬일이고? 점마가 이런 걸 다 사고.”
“야, 지갑 내놔! 왜 니 맘대로 남의 돈 쓰는데!”
태화가 입에서 테이프를 땐 채로 길길이 날뛰었다. 세희는 그 모습을 보고 눈을 치켜떴다.
“너 작년에 맨날 나한테 얻어먹었잖아.”
“내가? 언제?”
“나빛이랑 지윤이한테 물어볼까? 은율이, 심지어 이츠키도 알고 있을걸? 나랑 매점 갈 때 맨날 지갑 놓고 왔다고 했던 인간이 누구더라?”
“……끄응.”
태화는 꿍얼거리며 세희가 던진 지갑을 받았다.
“알았어. 그럼 빵 쏘는 대신…… 테이프 뗐다고 쌤한테 꼰지르지 마. 너희들도. 오케이?”
“그랴.”
“멍!”
세희는 빵을 몇 개 골라 태화에게 던졌다. 태화는 그 빵들을 받아들고 눈을 끔뻑였다.
“뭐야. 나 팥빵 안 먹어.”
“선생님 갖다드려. 어쨌든 네가 산 거니까.”
“……흠.”
태화는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뭐. 갔다 오지. 야, 오지윤. 돼지처럼 다 먹지 말고 내꺼 남겨 놔.”
“별걱정을 다하네, 임마. 퍼뜩 갔다 온나.”
펑 소리와 함께 검은 연기가 흩어졌다.
방금 나눈 대화가 무색하게도, 지윤은 태화가 사라지자마자 먹는 속도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마, 야들아. 팍팍 묵어 해치우라. 근디 점마 테이프 안 하고 가지 않았나?”
“안 했지.”
세희가 빙긋 웃었다.
“그래서 보낸 거야.”
* * *
“쌤! 빵 먹어!”
교무실에 들이닥친 태화가 코앞에 다짜고짜 빵을 들이밀었다. 상호는 그 빵을 받으며 눈을 끔뻑였다.
“누가 산 거야?”
“내가!”
“그래? 고마워. 잘 먹을게. 근데 너.”
“응?”
“전우조랑 테이프는?”
“……앗.”
태화가 입을 천천히 벌렸다. 얼빠진 표정을 지으며.
상호는 빵을 한 입 물고 무심하게 말했다.
“이틀 더 하자. 알았지?”
“크아아악!”
173. 비가 오면 드는 생각
목요일 저녁, 방과 후의 교실.
상호는 태화의 입에서 테이프를 떼며 말했다.
“이제 애들 울리지 마. 또 울리면 사흘부터야.”
“치.”
태화는 다리 사이 의자를 양손으로 짚고 고개를 팩 돌렸다.
“맨날 나만 갖고 그래.”
“니가 제일 애처럼 구니까 그렇지.”
“나만 미워해!”
“그건 아냐.”
“잠도 같이 자놓고서!”
“소리치지 마.”
상호는 태화의 코끝을 톡 건드렸다.
“자꾸 그러면 벚꽃 안 보러 간다.”
그 말에 태화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뭐야, 약속해 놓구선.”
붉은 눈동자에 물기가 비쳤다.
당연히 가는 줄 알고 기대 많이 했는데, 안 갈 수도 있다고 하니 상처를 받은 듯했다. 상호는 아차 싶어서 양손으로 태화의 볼을 장난스레 문질렀다.
“당연히 농담이지. 그걸 믿냐.”
“쌤은 나한텐 그러잖아.”
“내가 너한테 뭘? 야, 밥 사주고, 옷 사주고, 아플 때 돌봐주고 다 했는데, 다른 애들보다 좀 더 뭐라 할 수도 있는 거 아냐?”
말은 그렇게 하지만 상호의 손은 이미 태화의 머리를 어루만지고 있었다.
“토요일에 갈 거니까, 준비해 놔.”
그 말에 태화가 실쭉 웃었다.
“웅. 이~쁘게 입고 나올게. 쌤이 좋아하는 스타일로.”
“네가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을 어떻게 알아?”
“뻔하지 뭐. 세희처럼 입으면 되잖아?”
“아니야, 임마……. 무슨 소리야.”
상호는 한숨을 쉬었다.
“아홉 시. 괜찮지? 일찍 일어나서 준비할 수 있지?”
“응.”
“애들 몰래 나와. 놀러가는 티 내지 말고.”
“시른데~. 놀러가는 티 팍! 팍! 내면서 꾸미고 나올 건데~.”
“그래, 니 맘대로 해 봐.”
“이히히.”
태화가 싱글벙글 웃었다.
* * *
그래서 토요일.
상호는 조수석에 앉은 태화를 돌아보며 중얼거렸다.
“진짜 예쁘게 입었는데.”
“…….”
태화는 대꾸하지 않고 창밖만 바라보았다.
“비가 오네.”
비가 오고 있었다.
부슬부슬 내리는 봄비. 하지만 금방 멈출지는 모를 일이었다.
“일단 출발할까? 가보면 그칠지도 모르니까.”
“……응.”
태화가 힘없이 대답했다.
품이 넓은 적갈색 반팔. 멜빵처럼 어깨끈이 달린 베이지색 치마. 굽이 달린 하얀 힐까지. 아주 한껏 차려입고 나온 모양새였다.
언제 튀었는지 모를 빗방울이 군데군데 얼룩을 지어 놓았다.
‘속상하겠네.’
어떻게 달래 줄까. 상호는 일단 라디오를 틀었다.
차창을 두드리는 빗소리를 지우기 위해서.
[아, 오늘은 또 봄비가 주룩주룩 내리는데요, 성원 씨는 비가 오면 뭐가 먼저 떠오르세요?]
[아무래도 전이죠, 전. 전 하면 또 파전에 빈대떡에…… 또 소주나 막걸리도 빠지면 섭하고.]
[에헤이, 또 술 이야기야?]
[또 나만 갖고 이러네. 그럼 기종 씨는 뭐가 생각나는데요?]
[비가 오면 노래죠, 노래. 얼마나 많은 명곡이 있어요. 비가 내리면, 비가 그치면, 비가 되어, 비처럼 당신처럼, 비와 음악. 얼마나 많아요. 자, 그래서 오늘 들을 노래는요. 깡통의 비가 오면!]
라디오에서 익숙한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상호가 아는 노래였다. 상호보다 약간 위 세대의 노래, 아마 태화는 모를, 아는 사람만 아는 옛날 노래.
그는 검지로 핸들을 두드리며 나직이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쌤도 이 노래 알아?”
“……응?”
“나도 이거 아는데.”
태화가 노래의 후렴구 부분을 불분명하게 웅얼거렸다.
분명 같은 노래. 상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태화가 알 만한 노래는 아닌데.
“네가 이걸 어떻게 알아?”
“몰라. 그냥 들어 본 것 같은데.”
태화는 창밖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집에서 들었나 보지.”
그렇게 말꼬리를 흐리며.
“그렇구나.”
상호는 그렇게 대답하며 생각에 잠겼다. 집에서 들었다면 가족이 불렀다는 걸까.
‘남자 노래인데…….’
어머니 쪽은 아마 아니리라.
그는 차마 노래를 더 부르지 못하고 주파수를 돌렸다. 그러자 태화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돌아보았다.
“어, 왜?”
“응? 더 들으려고?”
“응. 노래 좋은데.”
“그래……?”
안 좋은 기억이 있지는 않은 모양이다. 상호는 주파수를 다시 돌려놓고 차를 몰았다.
라디오에서 후렴구가 흘러나오자 태화가 콧노래로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그 소리가 꽤나 아련해서, 빗소리와 제법 잘 어울려서.
“태화야.”
“응?”
“가수할래?”
“가수? 됐어, 무슨 가수야.”
“예현제 때 한번 나가 봐. 해볼 만 한 것 같은데.”
“……됐어.”
태화가 뽀로통히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차창에 웃는 얼굴이 비치고 있다는 것은 모르는 듯했다. 상호는 그 모습을 보고 흐뭇한 얼굴이 되어 차를 몰았다.
구름 사이로 햇살이 내리쬐고 있었다.
* * *
그래도 비는 그치지 않았다.
여우비와 여우볕이 차례로 찾아오는 하늘. 벚꽃이 핀 공원에는 거니는 사람들은 있어도 자리를 잡은 사람은 없었다.
만개한 벚꽃이 비에 젖어 나무에, 바닥에 들러붙었다.
“사진빨 안 나겠네.”
태화가 벚꽃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내일 다시 와야겠는데.”
“안 돼. 내일은 수업 있어.”
상호는 내공으로 태화를 가까이 끌어당겼다. 둘은 상호의 손에 들린 우산을 함께 쓰고 있었다.
“안으로 들어와. 비 다 맞는다.”
“더 들어가도 돼?”
“맘대로 해.”
“히힛.”
태화가 그의 품에 등을 기댔다.
웃던 것도 잠시뿐, 하늘을 바라보는 태화의 눈빛이 조금 어두워졌다.
“올해는 글렀나 봐.”
“내년도 있잖아. 내년에 보면 되지.”
“아니, 뭔가…… 올해는 잘 안 될 것 같아서.”
운수를 말하는 건가. 상호는 우산을 내공으로 잡고 손으로 태화의 볼을 문질렀다.
“비가 왔으니까 뭔가 좋은 일이 있겠지.”
“좋은 일이 있어서 비가 왔을지도.”
태화는 한숨을 쉬며 몸을 돌리더니 상호의 품에 얼굴을 폭 묻었다.
“쌤.”
“응.”
“나 파전이랑 막걸리 먹어볼래.”
“내후년에.”
“우씨, 그럼 뭐 먹어?”
봄비에 꽃샘추위가 겹쳤는지 날이 많이 쌀쌀했다. 상호는 잠시 고민하다가 핸드폰을 꺼냈다.
“뜨끈한 국물은 어때?”
“나쁘지 않지.”
“그래. 그럼 우동 먹자.”
그는 핸드폰으로 가게를 찾았다.
* * *
태화가 그릇을 들고 국물을 홀짝였다.
밖을 쳐다보는 태화의 얼굴에 푸르고 하얀 빛이 비쳤다. 상호는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그릇을 들고 국물을 쫙 비운 후 입을 열었다.
“아쉬워서 그래?”
“아니, 그냥. 아까 들은 노래 생각하고 있었어.”
태화의 꼬리가 느리게 까딱였다. 노래의 박자와 같은 속도로.
“누가 불렀나. 어디서 들었나. 한두 번 들은 건 아닌데. 그게 신경쓰여서…… 생각해보면 답은 하나밖에 없는데 말이야.”
상호는 창밖의 먼 곳을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지.”
“그러고 보면 1년 내내 조용하네. 그동안 한 번쯤은 귀찮게 굴었을 만도 한데.”
태화가 웃었다.
“쌤이 한 거야?”
“그럴걸.”
“뭐 했는데?”
“비밀.”
상호는 차마 네 아빠를 팼다고는 말 못 하고 그렇게 얼버무렸다.
면은 이미 다 먹고 국물만 남겨두었는데도, 태화는 식사를 마칠 기색이 없이 국물만 홀짝이고 있었다. 왜인지는 상호도 알았다. 조금이라도 더 같이 있고 싶어서.
그래서 상호는 점심 후에는 아이들을 가르치러 가야 했지만, 재촉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때.
태화가 몸을 움찔했다.
“……아, 뭐야. 깜짝이야.”
“왜 그래?”
“아니, 저기 저 사람이 이쪽만 보고 있길래.”
상호는 태화가 가리킨 곳을 흘끗했다. 한 사내가 우두커니 서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중선은 아니었다. 착각할 건덕지도 없었다. 선글라스를 낀 30대 초반 정도의 사내. 상호가 모르는 자였다.
아마 태화도 그냥 누가 보고 있다는 것만 알아차리고 잠깐 놀란 듯했다.
‘……분위기가 좀 이상하긴 하네.’
상호가 가만히 바라보자 사내는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상호는 그 손의 근육을 보고 사내가 무예 계열 헌터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뇌리를 스치는 한 가지 생각이 있었다.
‘설마.’
상호는 그 즉시 내공을 뻗었다.
귀를 향해 다가가던 사내의 핸드폰이 과자처럼 부스러졌다. 사내는 바닥에 쏟아지는 핸드폰 부품들을 당황한 표정으로 내려다보더니, 상호를 일견하고는 어딘가로 뛰기 시작했다.
가만히 놔뒀다가는 미행이 붙을 것이다. 상호는 다시 내공을 움직여 사내의 전신을 붙잡았다.
“가자, 태화야.”
“응.”
태화는 옴짝달싹도 못하는 사내를 바라보다가 상호를 돌아보았다.
“쌤이 한 거야? 저 사람 알아?”
“그냥 조금 일이 있었어. 가자. 빨리 가자.”
“응.”
둘은 자리에서 일어나 차로 향했다.
* * *
학교로 돌아가는 차에서, 태화가 그를 불렀다.
“쌤.”
“응.”
“결혼은 사랑하니까 하는 거지?”
“대체로 그렇겠지.”
인생을 적극적으로 조지거나, 사랑이 뭔지도 모르는 게 아닌 이상, 결혼이란 것은 사랑하거나 사랑할 수 있을 만한 사람과 하기 마련이었다. 후자에서 정말 많은 문제가 생기지만.
태화가 다시금 물었다.
“우리 엄마아빠도 사랑했을까?”
상호는 함부로 대답하지 못하고 오랫동안 고민에 빠졌다. 괜히 상처를 줄까봐.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대답은.
이미 정해져 있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사랑했겠지.”
“그래?”
“그러니까 네가 여기 있는 거지.”
“그런가?”
태화는 피식 웃었다.
“사랑했다면 언니오빠나 동생쯤은 있어야 되는 게 아닌가…… 싶어.”
“왜?”
“한 번은 실수같잖아.”
“얌마, 나도 외동인데…….”
“나는 그렇다고.”
상호는 태화의 아기 때 사진을 떠올렸다.
“글쎄. 실수였더라도 널 낳고 나서는 실수라고 생각 안 했을걸.”
“왜?”
“예뻤으니까.”
태화가 눈을 끔뻑이다가 피식 웃었다.
“쌤이 어떻게 알아. 내 어릴 때 본 적도 없으면서.”
“다 아는 방법이 있지.”
“뭔데?”
“보면 알지. 얼굴 보면. 그 왜 아기 때는 다 예쁘다고 하잖아. 그럼 너처럼 예쁜 애가 아기 때는 얼마나 더 예뻤겠냐.”
“흐음……, 그래?”
태화는 흐뭇한 웃음을 지으며 그를 돌아보았다.
“그래도 난 하나는 실수같아.”
“응?”
“그러니까 우리는 최소 둘부터야. 오케이?”
당황한 상호의 손에 진땀에 배어났다. 이걸 어떻게 대답해야 하나.
이런 분위기에 뭔 헛소리냐고 혼낼 수도 없고, 알았다고 하자니 선생으로서 할 말이 아니고.
그런데 태화가 손가락을 하나씩 펴기 시작했다.
“둘. 셋.”
“……뭔데.”
“대답 늦어지는 만큼 한 명씩 추가야. 넷, 다섯, 여섯.”
그래도 대답은 얼른 나오지 않았다. 목구멍에 턱 막혀서는.
그가 입을 열지 않자 태화가 눈썹을 치켰다.
“아홉, 열. 어라? 축구팀 만들 거야? 아니면 부대를 만들어버릴까? 열, 스물, 서른…….”
“야, 그러다 죽겠다 임마. 둘이나 셋에서 끝내…….”
“여섯으로 하자. 딸 셋 아들 셋. 어때?”
“그래……. 여섯으로 해. 만~약에 결혼을 한다면…….”
“아싸~, 천세희한테 말해야징~.”
“하지 마라, 제발…….”
“헹.”
태화가 핸드폰을 흔들며 키득거렸다. 상호는 한숨을 푹 쉬고 창밖을 보았다.
비는 어느새 그쳐 있었다.
* * *
“봤다고?”
“예. 분명히…… 말씀하신 대로였습니다.”
리주는 의외의 소식에 어안이 벙벙했다. 그녀의 앞에는 한 사내가 열중쉬어 자세로 보고 중이었다.
도현에게 지원받은 헌터.
그는 오늘 근무가 아니라서, 따로 명령을 받지 않은 상태였다.
“봤다고요? 그럼 쫓았어요? 어디로 갔는데요? 그 남자 다리를 절 텐데. 차 번호는 봤어요?”
“아니요, 아무것도…….”
“아무것도?”
“움직일 수가 없었습니다.”
“……으음.”
리주는 조금 흥분한 목소리로 다그치다가, 저 혼자서 진실을 깨닫고 낮게 침음했다.
저승부대 출신이니 타인의 시선을 감지하는 데에는 이골이 났을 것이다. 무력은 말할 것도 없고.
그러한 사정을 모르는 사내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가만히 서 있었다.
리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계획된 상황이 아니었으니, 소득이 없어도 어쩔 수 없지.”
“……그렇습니까.”
사내가 고개를 푹 숙였다.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괜찮아요.”
리주는 그를 향해 손을 내저었다.
“가 봐요. 아니지, 흠. 기왕 출근한 김에 일하다 갈래요?”
“……필요한 일이시라면.”
“농담이야. 가서 쉬어요.”
사내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돌아서서 방을 나갔다.
리주의 얼굴에서 웃음이 점차 사라져 무표정이 되었다.
“……아깝네.”
두 달째 유의미한 소득이 없었다.
이태화가 남긴 주소를 조사해 봤지만, 알아낸 것은 세입자의 이름이 이중선이라는 것뿐. 이 이중선이라는 자가 이태화와 어떤 관계인지, 지금 어디에 있는지는 아직도 알아내지 못했다.
일단 현재로서는 중선을 찾아내는 것이 제일 현실적인 방법이었다. 오늘 같은 천운을 바라기는 힘든 일이니.
리주는 턱을 괴고 생각에 잠겼다.
‘대체 어디서 뭘 하고 있는 건지, 참…….’
174. 외강내유
한적한 일요일 아침의 급식소.
“선생님!”
“응?”
상호는 사과를 내려놓고 뒤를 돌아보았다. 식판을 든 미래가 그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선생님! 선생님!”
“듣고 있어.”
“저랑 하 사장님 회사 좀 같이 가주세요!”
“아, 오늘 가기로 했어?”
“네!”
상호의 옆에서는 나빛이 빵을 오물거리는 중이었다. 나빛은 하 사장이라는 말을 듣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미래랑 어디 가세요?”
“……있어.”
“이서네요?”
“아니, 있어. 있어.”
말하면 재미없다. 미래가 나빛을 어려워하게 될 수도 있고. 그럴 성격은 아닌 것 같긴 하지만.
상호는 서둘러 식사를 마치고 일어났다.
“준비되면 말해. 바로 갈게.”
“넵.”
미래도 자리에 앉아 식사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