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1화 (191/501)

* * *

다음 날.

상호는 교탁에 상자 두 개를 올려놓았다.

“오늘부터 재밌는 거 시킬 거야.”

 그 말에 아이들의 의문 가득한 시선이 상자로 몰려들었다.

태화가 제일 먼저 물었다.

“뭔데?”

“보면 알아. 자, 여기는 1학년 이름이 들었고.”

 상호의 손이 각각의 상자 위에 차례로 올라갔다.

“여기는 2학년 이름이 들었어.”

“아~ 뭐야~.”

 태화가 김빠진 표정으로 책상에 축 늘어지자 나빛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야? 태화 너는 알아?”

“뻔하잖아, 둔팅아. 너 말고 다 알걸?”

“응? 그럼 세희랑 지윤이도 알아?”

“알제.”

 지윤이 뚱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나빛이 지윤의 팔을 붙잡고 마구 흔들었다.

“뭔데? 뭔데? 뭔데? 뭔데?”

 대답은 은율이 했다.

“마니또.”

“앗!”

 나빛의 눈이 반짝였다.

“나 그거 해본 적 없어!”

“아~, 유치하게 뭔 마니또야~, 이 나이 먹고~.”

 태화가 발을 구르며 찡찡거렸다. 상호는 피식 웃으며 아이들을 둘러보았다.

“어때? 너희도 마니또일 것 같아?”

“네~.”

“근데 아냐.”

“네? 그럼 뭐예요?”

 나빛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다른 아이들의 반응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상호는 씩 웃으며 짤막하게 대답했다.

“전우조.”

 171. 친해지길 바래

“자.”

 상호는 물백묵을 내려놓았다.

칠판에는 아이들의 이름이 두 명씩 나란히 적혀 있었다. 표면상으로는 제비뽑기로 공정하게 짝을 지었지만, 사실은 상호가 미리 손을 써 뒀다.

“나빛이랑 이서.”

 딱 두 명한테만.

“그리고…… 세희랑 아리, 사카시타랑 단비……. 뭐, 글자 볼 수 있지? 이렇게가 전우조야.”

 나빛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전우조가 뭐예요?”

“뭐든지 다 같이 하는 거야. 물 마시는 것도. 밥 먹는 것도. 화장실 가는 것도.”

“네? 같은 칸에 들어가서요?”

“……아니, 그러면 잡혀가고.”

 상호는 당황하며 손을 내젓고 아이들을 가리켰다.

“책상 배치도 바꿀 거야. 두 쌍씩 네 줄. 자리는 내가 정해 줄게. 맨 앞에 세희랑 아리, 은율이랑 하솔이. 둘째 줄에 이츠키랑 단비, 나디아랑 초란이.”

 조용한 아이들을 앞에 앉히고.

“셋째 줄에 태화랑 미래, 지윤이랑 가은이. 마지막 줄에 나빛이랑 이서.”

 뒤쪽에 기가 센 아이들을 앉혔다. 좀 자기들끼리 떠들어 보라고. 나빛과 미래를 제외하면 다들 한 성깔 하는 아이들이었다.

“이렇게 일주일 보낼 거야. 만약 전우조인데 따로 떨어져 다니는 모습이 보였다간…….”

 상호의 외눈이 형형하게 번득였다.

“섭섭해진다. 정말로.”

“네!”

 나빛이 웃었다.

태화는 영 맘에 안 드는지 입을 삐죽 내밀고 투덜거렸다.

“우씨, 귀찮은데…….”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 힘들어하냐. 시작은 해 보고 그런 말을 해야지. 자.”

 상호는 손뼉을 쳤다.

“자리 바꾸고, 수업 준비하자.”

 * * *

“이서야~.”

 나긋나긋한 목소리가 귀에 닿았다. 이서는 그 목소리를 듣자마자 핸드폰에서 눈을 떼고 고개를 들었다.

나빛이 빙긋 웃고 있었다.

“화장실 가고 싶지 않아?”

“화장실요? 저는 딱히…….”

“아, 그래. 그럼 됐어. 헤헤…….”

 나빛의 안색이 어두워지자 이서는 황급히 꼬았던 다리를 풀고 일어났다.

“……물, 물 먹는 김에 같이 가죠.”

“그래도 돼? 고마워~.”

 나빛이 이서의 손을 잡아끌며 경쾌한 걸음으로 교실을 나갔다. 그런 둘의 뒷모습을 교실의 모두가 지켜보았다.

태화가 먼저 한마디 했다.

“쟤는 왜 나빛이한테 쫄았냐?”

“뭐 약점이라도 잡힜는갑지.”

“약점? 뭐 웃기는 사진이라도 찍혔나?”

“……윽.”

 은율이 갑자기 몸을 움찔했다. 태화가 사진이라는 말을 하는 순간에.

태화는 은율을 돌아보며 눈을 끔뻑였다.

“얜 또 왜 이래? ……어쨌든. 야, 미래야. 우리도 매점이나 가자.”

“네.”

“또 갈 사람?”

 입으로는 누구라고 콕 집어 말하지 않았지만, 붉은 눈동자는 세희를 향하고 있었다.

세희가 아리를 돌아보며 물었다.

“갈래?”

“네.”

“그래. 가자.”

 넷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단비가 꼬리를 마구 흔들며 이츠키의 팔을 흔들었다.

“언니! 우리도 가자!”

“다이어트 중입니다.”

“가즈아아아!”

“갈 거면 밥 먹고 갑니다. 후식으로 조금만 먹는 겁니다.”

“으잉……. 나 혼자라도 갈 거야!”

 단비는 그렇게 소리치고는 교실 밖으로 뛰쳐나갔다.

저래도 괜찮을까. 이츠키는 멍하니 눈을 끔뻑이다가, 바닥에서 팔굽혀펴기를 하고 있는 지윤을 내려다보았다.

“어떻게 생각합니까?”

“으잉? 뭔 일 있드나? 백삼십일, 백삼십이…….”

“단비가 절 버리고 가버렸습니다.”

“그거 단비 아이다.”

“네?”

“보신탕이다, 이제.”

“…….”

 이츠키는 할 말을 잃고 핸드폰만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 * *

“기다렸지?”

“아니요.”

“에이, 기다렸잖아~.”

 이서는 환하게 웃는 나빛을 피해 고개를 돌렸다.

맹해 보이지만 사실은 제일 노는 사람. 다른 사람들은 모르는 모양이지만, 이서는 똑똑히 보았다. 나빛의 가방에서 버스 바닥으로 굴러떨어진 담배를.

 그 후로 이서는 나빛이 제일 어려웠다.

“물 다 마셨어?”

“네.”

“돌아갈까?”

“네.”

“아, 참. 이서야. 잠깐만 이리 와봐.”

 시간이 조금 늦어서 복도엔 사람이 없었다. 화장실 문 앞에 서 있던 나빛이 이서에게 가까이 오라고 손짓했다.

무슨 할 말이라도 있는 걸까. 이서는 조금 긴장한 표정으로 나빛에게 다가갔다.

“이서야.”

 나빛이 블레이저를 살짝 젖혀 안주머니를 내보였다.

“한 대 필래?”

“네?”

 이서는 당황하며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어디 으슥한 곳도 아니고 이런 곳에서 대뜸 권하다니.

“아니요, 저는 아직…….”

“아직 필 때가 아니야? 그럼 이따 밥 먹고?”

“아뇨……, 저는 안 피워요.”

 그 말에 나빛이 웃었다.

“그치? 이서는 이런 거 안 피우지?”

“……네.”

“사실은 나도 안 피워. 헤헤.”

 이서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듣지 않았다.

 나는 안 피운다. 너는 그렇게 알고 있어라. 남들한테 말하면 죽여버린다. 대충 그런 뜻으로 알아들었다.

“근데 이서야.”

“네.”

“왜 존댓말해?”

 그거야 무서우니까. 이서는 나빛의 눈길을 피했다.

“그냥……요.”

“하지 마. 반말해. 응?”

“……응.”

 괜히 어색하다면서 뺐다가는 아가리에 성창이 박힐 것 같았다. 그래서 이서는 거절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빛은 뭔가를 더 바라는 듯한 눈빛이었다.

“응만 하지 말고, 응 언니~ 해줄 수 있어?”

“……언니.”

“응 언니~.”

“……응, 언니.”

 이서는 고개를 살짝 돌리고 기어드는 목소리로 말했다. 쪽팔리지만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나빛이 헤벌쭉 웃었다.

“고마워~. 헤헤…….”

 웃는 모습은 꼭 천사 같았다.

“나 주변에 동생이 없어서, 언니란 말 들으면 신기해. 그니까 말 많이 걸어 줘.”

“응…….”

“언니.”

“언니…….”

“헤헤.”

 나빛은 실없이 계속 웃더니 눈을 동그랗게 뜨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근데 복도에 사람이 왜 이렇게 없지?”

“곧 수업시간…….”

“앗!”

 나빛이 당황하며 이서의 손을 잡아끌었다.

“빨리 가자!”

 이서는 그 손에 이끌려 가며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담배는 피지만 수업시간은 꼭 지킨다니.

자신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세계관이었다.

‘모르겠다. 그래도 날 싫어하는 것 같지는 않으니…….’

 이상한 사람 같지만 나쁜 사람 같지는 않다. 이서는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나빛을 따라 교실로 향했다.

* * *

“이모! 늘 먹던 걸로!”

“다 팔렸어~.”

“크아아악!”

 태화가 눈과 입에서 검은 불꽃을 내뿜으며 절규했다.

세희는 그런 태화를 무시하고 미래와 아리를 빵 가판대로 데려갔다. 점심시간 직전 쉬는 시간이라 그런지 이미 상당한 양이 팔려 있었다.

“미래랑 아리랑 뭐 사줄까?”

“아, 아뇨. 괜찮아요.”

“저도 지갑 가져와서…….”

“사줄게. 골라 봐.”

 눈빛이 꼭 레이저 같았다. 미래와 아리는 그 날카로운 눈빛에 결국 항복하고 말았다.

“네…….”

 그때 매점 문이 열리고 개 짖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멍!”

 단비가 왔구나. 그럼 이츠키도 왔을 것이다. 세희는 돈을 더 써야겠구나 생각하며 문가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문가에 서 있는 건 단비뿐이었다.

“단비야, 이츠키는?”

“안 온대요!”

“그럼 너도 오지 말았어야지. 선생님이 전우조 시키셨잖아.”

“빵 냄새가 나서…… 참을 수가 없어서…….”

“……이미 온 건 어쩔 수 없지. 너도 와서 골라.”

“네? 사주는 거예요?”

“응.”

“우왓!”

 세 아이가 빵을 고르기 시작했다.

세희는 그런 아이들을 쳐다보다가 옆을 흘끗했다. 그곳에는 한 무리의 학생들이 세희를 쳐다보며 수군거리는 중이었다.

학생들의 시선은 세희의 왼팔에 차인 완장에 고정되어 있었다.

“저게 전교에서 제일 강한 사람한테 주는 거래.”

“교장쌤이 인정한 열 명만 받았다고…….”

“열 명이서 전교생을 상대할 수 있대.”

 대체 무슨 해괴한 소문이 퍼진 걸까. 세희의 귀가 살짝 붉어졌다.

학생들의 수군거림은 끊이질 않았다.

“뭐라고 그랬지? 십대천왕?”

“응. 십대천왕. 저 언니는 삼좌고…….”

“교칙 어긴 학생을 보면 그 자리에서 처형한대…….”

“우와…….”

“쉿, 이쪽 본다.”

 소문이 미쳐 돌아간다. 푹 숙인 세희의 얼굴이 점점 새빨갛게 물들어갔다.

옆에서 태화가 팔꿈치로 팔을 툭 쳤다.

“어이, 삼좌.”

“시끄러.”

“삼좌 싫어? 세희라서 삼으로 했는데. 일좌라고 할 걸 그랬나?”

 태화의 능청에 세희는 눈을 질끈 감았다.

‘……너였구나!’

 이미 퍼진 소문을 주워 담을 수도 없고.

 하지만 말도 안 되는 소문이니 시간이 흐르면 자연히 사라질 것이다. 세희는 주변의 말소리에 신경을 끄고 미래와 아리와 단비를 쳐다보았다.

셋은 곧 빵을 골라 세희에게 왔다.

“저 이거요.”

“이거요……, 감사합니다.”

“아니, 됐어. 계산이요.”

 세희는 지갑을 꺼내 계산을 마쳤다.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가 아리의 옆으로 고개를 쑥 들이밀었다. 아리가 그 누군가를 확인하고 기겁하며 뒷걸음질을 쳤다.

“흐윽……!”

 다혜였다.

다혜는 아리의 목에 코를 박고 킁킁거리다가 푸른 비늘을 향해 혀를 내밀었다. 하지만 입마개 때문에 닿지는 못했다.

살짝 벌린 입 사이로 침이 조금 흘러내렸다.

“아으, 아으…….”

“으……!”

 칼을 맞을 뻔했던 기억이 되살아났을까. 아리가 소름이 돋은 듯 몸을 움츠렸다.

보다 못한 세희는 들고 있던 빵을 다혜의 품에 밀어붙였다.

“정신 차리고 빵이나 먹어요.”

“아으?”

 다혜가 고개를 퍼뜩 들어 세희와 눈을 마주쳤다.

 그리고는 자신의 품에 든 빵을 내려다보다가, 화난 표정으로 세희에게 빵을 돌려주었다.

“느아으으아!”

“뭐라는지 모르겠고, 빵 가지고 저리 가세요. 애가 무서워하잖아요.”

 세희는 눈을 치켜떴다.

“그리고 이거, 저번에 못 먹었던 빵이잖아요.”

“으아……?”

 다혜가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그걸 네가 어떻게 아냐는 듯이.

세희는 다혜가 저번에 3학년들에게 빵을 빼앗겼던 것을 떠올렸다.

“먹어요. 이번 주엔 더 이상 그 빵 안 들어온댔으니까.”

 다혜의 눈이 초롱초롱해졌다.

“으아으으~.”

 다혜는 그렇게 알 수 없는 옹알이를 하며 세희를 꼭 끌어안았다.

너무 빨라서 반응할 새도 없었다. 세희는 다혜와 자신의 실력차를 다시 한번 통감하며 혀를 찼다.

“빨리 가라고요.”

“느으응.”

 다혜는 세희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고 매점을 나갔다.

슬슬 돌아가야 할 시간이었다. 세희는 미래와 아리와 단비를 돌아보며 어색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미안해, 저 사람이 좀 특이한 사람이라서……. 빵은 내일 사 줄게.”

“괜찮아요. 내일 같이 오죠 그럼.”

 미래가 별일 아니라는 듯 씩 웃었다. 아리도 다혜를 봐서 잠시 놀랐을 뿐 크게 신경 쓰지 않는 표정이었다. 단비는 별생각 없는 표정으로 꼬리만 흔들고 있었고.

세희는 다행이라 생각하며 태화를 찾아 주변을 둘러보았다. 늦기 전에 빨리 교실로 가야 했다.

태화는 계산대 앞에 서 있었다.

“야, 이태화. 빨리 와.”

“이모! 이 빵 언제 다시 들어와요?”

“이번 주까지만 팔고 단종이래.”

“크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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