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0화 (190/501)

 * * *

아리의 이마에 진땀이 흘렀다.

아리는 눈앞에 선 상대를 흘끗하고는 불안한 눈빛으로 상호를 돌아보았다.

“선생님……?”

“너희도 이제 대련 시작해야지.”

 상호는 스탠드에 서서 뒷짐을 진 채로 대꾸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중간평가는 사람 대 사람이야. 언제까지고 인형하고 싸울 순 없잖아.”

“하지만…….”

 아리는 다시 한번 붉은 눈동자를 마주쳤다.

“상대가…… 안 될 텐데요…….”

“그래야 실력이 팍팍 늘지.”

 아리의 상대는 태화였다.

상호는 어깨를 들썩이며 아리를 향해 씩 웃었다.

“1학년끼리만 싸우라는 법은 없잖아? 그리고 너희는 같은 마법사니까. 서로 배울 게 더 많을 거야.”

“그치만…….”

“야, 주아리. 걱정 마.”

 태화가 손가락을 까딱였다.

“살살 할게. 드루와, 드루와.”

 아리는 체념한 표정으로 손을 들어올렸다.

“시작……할게요.”

“어허~ 인사하고 싸우는 몬스터가 어디 있나. 바로바로 시작해야지! 어린것들이 빠져가지고 말이야, 앙?!”

“그, 그럼…….”

 아리가 자리에서 사라졌다.

태화는 주변을 쓱 훑더니 손에 검은 불꽃을 피웠다. 그러고는 돌아보지도 않고서 등 뒤로 불덩이를 던졌다.

 펑

“악!”

 아리가 황급히 불꽃을 털어내자 태화가 실쭉 웃었다.

“뻔해.”

 아리는 침착하게 다시 순간이동을 했다.

 하지만 마법을 써볼 틈도 없이 태화가 던진 결정창에 허리를 얻어맞고 말았다.

“윽……!”

“느려.”

 결정창은 부드럽게 구부러지며 아리의 발목을 휘감더니.

“꺄아악!”

 아리를 거꾸로 들어 올려서, 치마를 뒤집어 속바지를 드러나게 했다.

태화가 상호와 눈을 마주치며 마술사처럼 양팔로 아리를 가리켰다.

“야해!”

“……쓸데없는 짓은 하지 마라.”

 상호는 혀를 차고 전투의 양상을 지켜보았다.

아리의 주변에는 검은 불덩이와 검은 결정들이 날아다녔다. 아리가 마법을 쓰는 것보다 태화의 마법이 아리를 덮치는 속도가 훨씬 빠를 터.

승패는 당연히 정해져 있었지만, 예상보다 빠르게 끝이 났다.

“아리 한 번만 더 해보자. 상대는…….”

 상호는 2학년들을 둘러보다가 나디아와 눈을 마주쳤다.

“나디아. 아리랑 대련해.”

“네.”

 나디아가 양손검을 들고 일어났다.

 170. 만우절이잖아

“으으으…….”

 나디아의 입에서 신음이 새어 나왔다.

땅바닥에 엎어진 그녀의 주변에는 푸르고 동그란 기운이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구체의 사이에서 연신 푸른 전기가 흘렀다.

“어…….”

 그 앞에 선 아리가 당황한 표정으로 같은 반 아이들을 돌아보았다. 이래도 되는지 모르겠다는 듯이.

나디아가 간신히 쥐고 있는 양손검에서 황금빛 기운이 차츰 사라져 갔다. 그러자 태화가 순간이동으로 다가가 나디아의 맥을 짚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푹 숙였다.

“4월 1일 10시 37분. 나디아 뭐시기, 사망.”

“비켜.”

 상호는 짤막하게 말하고 아리를 향해 지탄을 날렸다. 전투를 마치고 한숨 돌리던 아리가 퍼뜩 고개를 들었다.

“히익!”

 깜짝 놀랐지만, 그래도 순간이동으로 어떻게든 피할 수는 있었다. 상호는 그 모습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잘했어. 잘했는데, 조금만 더 판단이 빨랐으면 좋겠다. 너무 신중해서 머뭇거리는 게 보여. 훨씬 빨리 끝낼 수 있었는데도.”

“네.”

“나디아는 마법사를 상대하는 법부터 배워야겠다. 순간이동하는 애들을 따라갈 수가 없네.”

“네…….”

 나디아와 아리 둘 다 힘없이 스탠드로 걸어왔다.

다음은 누구끼리 붙여야 할까. 상호는 아이들을 둘러보았다.

“다음, 미래랑 나빛이.”

“네.”

 미래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빛이 뒤이어 일어나서 운동장으로 나오려 할 때, 상호의 목소리가 나빛을 붙잡았다.

“잠깐만, 나빛아.”

“네?”

“가까이 와봐.”

 나빛이 다가가자 상호는 나빛의 귀에 두어 마디를 속삭였다. 나빛은 그 말을 듣고 잠시 고민하더니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해볼게요.”

“응.”

 그 모습을 본 미래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뭐예요! 반칙이잖아요!”

“에이, 별말 안 했어. 자, 시작해.”

“치…….”

 미래는 눈살을 찌푸리며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기계 장갑이 전신으로 전개되었다. 군데군데 몸이 노출되어 엉성해 보이긴 했지만, 전개되기 전 처음 장갑의 부피를 생각하면 놀라울 정도로 기상천외한 물건이었다.

 하지만 외견이 어떤지는 전투에선 의미 없다.

나빛이 여린 손을 앞으로 뻗었다.

“얍.”

 장난스러운 목소리.

그와 동시에 미래의 주변을 두터운 방어막이 둘러쌌다.

“……이익!”

 미래는 당황하며 사방으로 총알이나 화염 따위를 쏘아댔지만, 겨우 그 정도로 뚫릴 방어막이 아니었다.

방어막이 점차 조여들자 미래는 체념하고 고개를 푹 떨궜다.

“으으…….”

“미래는 좀 더 확실한 공격 수단을 연구해 보자. 알았지?”

“네…….”

“나빛아, 풀어줘. 다음, 이츠키랑 초란이.”

 상호는 그렇게 계속 대련을 시켰다.

* * *

곧 종례 시간.

그럭저럭 만족스러운 수업이었다. 딱 한 명만 빼고.

상호는 골똘히 생각에 잠긴 채로 교실을 향해 걸었다.

‘이서를 어떻게 하지?’

 의욕도 없고, 재능도 보이지 않는다.

아까 지윤과 대련을 시켰을 때도 하는 둥 마는 둥이었다. 검을 휘두르는 것도 대충이고, 심지어는 맞기도 전에 뒤로 벌렁 나자빠지고.

‘정신 교육을 해야 할 텐데…….’

 그는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리며 교실 문을 열었다.

“얘들아, 종례 준비하자……, 응?”

 안으로 들어서던 상호의 발걸음이 우뚝 멈췄다.

뭔가 휑했다.

 아주 많이.

“……애들 다 어디 갔어?”

“네?”

 세희가 눈을 깜작였다.

“다 있잖아요.”

“아니, 1학년 애들 말이야…….”

“저희가 1학년인데요?”

 세희와 태화와 나빛과 지윤이 그를 멀뚱히 바라보았다.

교실에는 그 넷밖에 없었다. 책상도 넷. 의자도 넷.

기시감이랄 것도 없이 명백히 경험해 본 일이었다. 딱 1년 전의 모습.

“아니, 종례해야 되잖아…….”

“하세요.”

“애들이 있어야 하지……. 어디 있어? 내가 가서 불러올게.”

“아까부터 무슨 소리세요? 그리고 다리도 아프시면서 어딜 가세요.”

“어…….”

 어질어질하다. 상호의 이마에 진땀이 흘렀다.

“……설마 애들 다 갔어? 기숙사로?”

“네!”

 나빛이 방긋 웃으며 소리쳤다. 그러자 옆에 앉은 지윤이 팔꿈치로 나빛의 옆구리를 찔렀다.

“마! 그걸 말해뿟노.”

“아차, 헤헤…….”

“아~이, 하나빛!”

“헤헤헤…….”

 상호는 쓰게 웃었다.

“그래, 종례하자.”

 교탁에 가서 아이들을 바라보니 살짝 그리운 느낌이 들었다. 단란하게, 정겹게 다섯이서 웃고 떠들던 시절.

 그가 출석부를 펴자 태화가 소리쳤다.

“쌤!”

“응?”

“안아조!”

 그 말이 신호였을까. 네 명의 아이들이 동시에 일어나 상호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상호는 당황하며 뒷걸음질을 치다가, 어차피 도망도 못 치고, 넷뿐이면 상관없겠다 싶어서 어정쩡하게 양팔을 들었다.

“알아서 해라, 그래.”

“아싸! 팔 벌려! 뿔 들어간다!”

 익숙한 격통이 가슴팍에 느껴졌다.

‘컥!’

 깜빡 잊고 있었다. 하마터면 한 방에 골로 갈 뻔했지만, 상호는 애써 태연하게 웃으며 아이들을 끌어안고 등을 토닥였다.

그때 교실 문이 열리더니.

“……우와.”

 아이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하교했다던 아이들이 왜 여기 있나. 상호의 머릿속이 폭탄을 터트린 듯 산산조각이 났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이들은 상호를 보며 각양각색의 표정을 지었다. 경멸, 실망, 한심함.

대체로 어두운 표정이었다.

“선생님…….”

 은율이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돌아섰다.

미래와 단비가 후속타를 날렸다.

“그렇게 안 봤는데, 언니들만 편애하시네요.”

“좀 친하다고 막 껴안고…… 멍.”

 상호의 눈앞이 캄캄해졌다.

“아니, 얘들아……. 만우절, 만우절이니까 나도 장난친 거야…….”

“장난으로 학생 몸을 만져요? 그래도 돼요?”

“아니야……. 내가 뭘 만졌다고 그래…….”

“막 껴안고 등도 쓰다듬고 그러셨잖아요.”

“그거는, 그러니까…… 오래 봤잖아, 그래서, 딸 같아서…….”

“추해요.”

“쓰레기.”

 이번에는 만우절 거짓말이 아닌 것 같았다.

상호는 자신을 째려보는 아이들의 시선을 피해 고개를 푹 숙였다. 그곳에서는 지금 껴안고 있는 아이들의 웃는 얼굴이 기다리고 있었다.

“추합니더.”

“헤헤헤…….”

 거하게 한판 당했다.

 그는 힘없이 키득거리며 그 사이에 얼굴을 묻었다. 다른 아이들이 뭐라 하던 신경 쓰지 않고.

희고 검은 머리카락들이 뺨과 코를 간질였다.

* * *

“그래서 저는 왜요?”

 이서가 주머니에 손을 넣고 건들거렸다.

“저도 안아 보려고요?”

“……아니.”

 상호는 엷게 한숨을 쉬었다.

종례를 마치고 둘만 남은 참이었다. 휑했던 교실에는 다시 책상과 의자들이 원래대로 돌아와 있었다.

책상에 걸터앉은 이서가 눈썹을 들썩였다.

“그럼 나머지 수업이에요?”

“아니. 지금은 아냐.”

 상호는 이서에게 다가가 옆 책상에 걸터앉았다.

“이서야.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이서는 그를 멀거니 바라보기만 할 뿐 대꾸하지 않았다.

“왜 헌터가 되려는 거야?”

 여전히.

“네가 뜻이 없다는 건 알겠는데…… 그래도 기왕 들어온 김에 헌터가 되면 좋잖아. 이 학교 졸업해서. 그러면 수업을 좀 따라와 줘야 할 것 같아.”

 묵묵부답이었다.

“이제 4월이잖아. 지금부터 시작해도 안 늦어.”

“전 딱히 헌터 못 돼도 상관없는데요.”

 이서가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였다.

“선생님도 신경쓰지 마세요. 선생님은 그냥 나 졸업만 시켜주면 돼요.”

 상호는 살짝 울컥했지만 티를 내진 않았다.

“졸업만 하면 돼? 그럼 여기서 네가 뭘 배워 가?”

“안 배워도 돼요. 헌터 될 것도 아닌데.”

“이서야.”

 상호의 검지가 책상을 두드렸다.

“여기 학교 되게 좋은 곳이야. 여기서 성적 잘 받아 나가면 할 수 있는 게 엄청 많아져.”

“뭘 할 수 있는데요?”

“날로먹는 거 좋아하지?”

 직설적인 상호의 말에 이서가 뚱한 표정으로 시선을 피했다.

“쉽게 생각하면 뭐, 초등학생 중학생 상대로 도장을 열 수도 있을 거고. 또 뭐, 몬스터 볼 일 없는 안전한 곳. 공항이나 공연장이나. 그런 곳에서 경호원 일을 할 수도 있고.”

 상호는 고개를 살짝 움직여 이서의 시선을 따라갔다.

“공부하기 싫어서 여기 온 거잖아? 그런 일 하면 좋지 않아? 성적 잘 뽑으면 그런 일들을 훨씬 편하게 할 수 있어.”

 이서는 얼른 대답하지 못하고 눈살을 찌푸리다가, 약간 언짢은 목소리로 투덜거리듯이 말했다.

“재미가 없잖아요.”

“그건 어쩔 수 없어. 수련이 힘들지 재밌겠냐.”

 수련을 재밌어하는 아이는 살면서 단 한 명밖에 보지 못했다.

“공부보단 낫잖아. 그 생각으로 참아야지 뭐.”

“수업을 좀 재미있게 해주세요.”

 오히려 요구를 한다.

상호는 쓰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노력해 볼게. 대신 이서도 조금만 노력해 줘.”

“생각해 볼게요.”

 생각만 해보겠다는 소리다.

이서는 그 말을 끝으로 책상에서 일어나 교실을 나갔다. 상호는 그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문이 닫힌 후에야 한숨을 내쉬었다.

‘재밌는 수업이라…….’

 그런 건 생각해 본 적 없는데.

어떻게 해야 의욕 없는 아이의 열정을 이끌어 낼 수 있을까. 답이 도통 보이지 않았다.

‘모르겠네. 생각 좀 해 봐야겠다.’

 상호도 곧 교실을 나섰다.

* * *

재밌는 수업이라는 단어는 보통 모순이다. 그게 상호가 내린 결론이었다.

수업을 재밌게 만들기보다는 학교생활을 재밌게 만드는 것이 옳으리라. 그래서 그는 물었다.

“얘들아.”

“네.”

“이서랑 친한 애가 누구누구 있어?”

 마주 앉은 1학년들이 눈을 깜작였다.

미래, 아리, 초란. 이서와는 성격상 거리가 좀 있는 아이들이었다. 아리와 초란은 늘 그렇듯 우물쭈물해하며 입을 열지 못했고, 미래만 숟가락을 빙글빙글 돌리며 대답했다.

“음……, 글쎄요. 거의 말을 안 해서. 가은이 정도만 가끔 이야기하는 것 같고.”

“가은이랑도 친하지는 않은 거야?”

“그럴걸요. 교실에서 심심할 때만 말 걸고 같이 다니지는 않고. 보통은 폰만 봐요, 이서는.”

 그러니까 학교생활이 재미가 없지. 상호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밥을 우물거렸다.

“너희도 이서한테는 별로 말 안 걸어?”

“으음, 그게…… 조용한 걸 좋아하는 것 같아서요.”

“그런가? 아리 네 생각은 어때?”

“콜록!”

 아리가 사레에 걸린 듯 연신 기침을 했다. 상호는 당황해서 내공을 뻗어 아리의 등을 두드렸다.

“미안해, 미안해……. 갑자기 말 걸어서 놀랐구나.”

“아니요, 괜찮아요, 케흑……. 뭐, 뭐 물어보셨어요?”

“이서가 친해지기 힘들어 보여? 말 걸면 막 귀찮아하고 그래?”

“아뇨, 그건 아니고…….”

“그러면?”

“저는 아예 말을 걸어 본 적이 없어서요…….”

“……으음.”

 상호의 이마에 진땀이 흘렀다.

‘지금 4월 아닌가?’

 한 달씩이나 됐는데 말 한 번 못 붙여 봤다니. 이 정도면 이서만 문제가 아니라 아리도 문제였다.

상호는 이번엔 초란을 돌아보았다.

“초란이는? 이서랑 말해 본 적 있어?”

“저도…….”

“……그래. 없구나.”

“근데…….”

“응?”

 무언가 말할 게 있는 모양이었다.

초란이 상호를 바라보며 쭈뼛쭈뼛 말했다.

“나빛이 언니 말은…… 잘 듣는 것 같았어요.”

“이서가?”

“네. 다른 언니들 말은 듣는 둥 마는 둥 하는데…… 나빛이 언니가 말하면 바로 그렇게 해요.”

“그래?”

 그때 그 담배 때문인가. 상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그냥 이서가 요즘 학교생활이 재미없는 모양이라서. 친한 친구는 없나, 궁금해서 물어봤어. 너희는 어때? 학교 다닐 만은 해?”

 대답은 미래가 도맡아 했다.

“네.”

“좀 친해졌어?”

“그럭저럭이요.”

“언니들이랑은?”

“아직…….”

“그렇구만.”

 모두가 친하게 지내야 할 이유는 없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그래도 선생으로서는 아무래도 그런 쪽으로 욕심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언니들한테도 말 걸기가 어려워?”

“네. 아무래도…… 언니들은 언니들끼리 말을 많이 하니까요.”

“그러네. 그렇겠네.”

 이미 끼리끼리 친한 무리 사이에는 들어가기 힘드니까.

상호는 그 말을 듣고 생각에 잠겼다. 애들끼리 좀 섞을 방법이 없을까.

떠오르는 방법이 하나 있었다.

마침 1학년도 7명, 2학년도 7명.

‘하긴, 이런 것도 한 번쯤 해 봐야겠지.’

 상호는 속으로 계획을 짜며 식사를 계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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