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꼭 다시 돌려주셔야 해요.”
미래가 간절한 눈빛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상호는 미래가 건넨 상자를 조수석에 얹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만약 잃어버리면 선생님 통장 너 줄게.”
“네…….”
그래도 불안한 눈빛은 여전했다.
상호는 운전석에 올라 핸들을 잡고 미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내일 돌려줄게. 들어가.”
“네에…….”
미래는 터덜터덜 걸어 목련관으로 들어갔다.
설계도들과 헤어지는 게 그리도 슬플까. 뒷모습이 꼭 자식 잃은 부모처럼 처연하기 그지없었다.
‘잃어버리면 큰일 나겠네.’
상호는 차를 몰아 교문으로 향했다.
* * *
“사람 많네.”
상호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중국집 안으로 들어섰다.
이름난 맛집이라도 되는지 손님이 바글바글했다. 벽에는 연예인 사인과 방송 화면을 캡쳐한 사진이 걸려 있었다.
“자주 오는 곳이야?”
“아니. 나는 이런 곳을 못 와봐서.”
나로가 어깨를 들썩였다.
“사업 때문에 사람 만나면 조용한 곳만 가니까. 오히려 이런 덴 못 오지.”
“그런가.”
상호는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 앉아 메뉴판을 폈다.
“여기 뭐가 유명해?”
“깐풍기. 일단 깐풍기 하나 시키고 하나씩 시키자고.”
“그래. 여기 주문이요. 깐풍기랑, 짬뽕이랑…….”
주문을 마치자 나로가 컵에 물을 따르며 물었다.
“나빛이는 잘 지내?”
“잘 지내지.”
빈말이 아니라 사실이었다. 상호는 물을 홀짝이고 말을 이었다.
“친구들이랑 노니까. 표정도 좋고 상태도 멀쩡해. 걱정 안 해도 돼.”
“그런가. 내가 걱정해 봤자 쓸데없는 거야?”
“그런 셈이지.”
“다행이네.”
나로는 그제서야 웃었다.
“그럼 너는 잘 지내냐?”
“나야 뭐…….”
상호의 입에서 한숨이 쏟아져 나왔다.
“……잘 지내지.”
“못 지내는가 보구만.”
나로가 킬킬거리며 수저를 건넸다.
“너는 좀 도사처럼 초연한 느낌이었는데. 그래도 일이 힘든 건 어쩔 수 없는가봐?”
“애들 가르치는 일이 쉬울 리가 있나. 그런데 내가 그런 이미지야? 도사 같다고?”
“처음에 봤을 때 그랬잖아. 바위 위에서 칼 던지고…….”
“……하긴, 그래 보이긴 했겠네.”
상호는 쩝 하고 입맛을 다셨다.
음식이 나오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장사가 잘 되는 이유는 따로 있는 게 아닌 모양이었다.
나로가 탕수육 소스 그릇을 들었다.
“상호, 너 그거 알아?”
“뭐를?”
“탕수육은 원래 소스랑 볶아서 나오는 거래.”
“들어본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원래 이렇게 배달이 아니라 요리로 파는 곳은 탕수육을 소스랑 볶아서 내왔는데, 자꾸 사람들이 소스가 왜 부어져 있냐고 하니까. 어쩔 수 없이 이런 정통 중국집도 소스를 따로 내게 됐다더라.”
“그렇구만.”
“그래서 너는 어느 쪽이야? 부먹이야 찍먹이야?”
“나는 처먹이지.”
“상관없어? 그럼 붓는다.”
탕수육 위로 걸쭉한 소스가 뿌려졌다. 상호는 그 모습을 보며 물었다.
“나빛이는 어느 쪽이야?”
“나빛이? 나빛이도 부먹.”
“어머님은?”
“어머니는 찍먹. 근데 별로 신경 안 쓰셔.”
괴식남매는 부먹이고 요리 잘하는 사모님은 찍먹. 상호는 오늘부터 찍먹으로 살기로 결심했다.
나로가 탕수육을 하나 들며 말을 이었다.
“내가 왜 부먹이 됐는지 알아?”
“뭐 따로 이유가 있어? 맛 때문이 아니라?”
“따로 있지.”
나로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찍먹을 하면 소스에 찍고 먹고, 찍고 먹고, 그렇게 되잖아?”
“그렇겠지.”
“그러면 먹던 걸 소스에 찍게 되잖아?”
“그렇겠지.”
“그것 때문에 아버지께 혼났었거든. 어릴 때……. 사업을 하는 사람은 그러면 안 된대. 밥상머리 예의도 아니고, 특히 외국인들이 그런 걸 싫어하니까. 그래서 그때부터 부먹이 됐지.”
나로가 그렇게 말을 맺고 탕수육을 입에 넣었다. 상호는 고개를 끄덕이고 탕수육을 집으며 물었다.
“나빛이도 혼났어?”
“걔는 몰라. 나 혼날 때 걔는 네 살이었거든. 걔한텐 철들고 나서 보니까 항상 부먹으로 먹어왔던 거지. 그래서 그렇게 쭉 먹는 거고.”
나로는 상호와 눈을 마주치며 물었다.
“상호 너는 탕수육은 그저 그래? 딱히 싫지는 않지만 좋지도 않고?”
“그런 편이지. 모든 음식이 그래.”
“어릴 때부터 그랬어?”
상호는 그 말을 듣고 생각에 잠겼다.
‘내가 뭘 좋아했더라?’
전쟁 전의 기억은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부모에 대한 기억 조금과 죽은 친구에 대한 기억 조금. 그리고 예경과 저승부대에 대한 기억이 전부.
“……뭔가를 좋아하긴 했겠지? 근데 그래도 전쟁에서 구르고 나니까…… 뭐든 먹게 되더라고. 벌레 먹고. 흙탕물 마시고. 그러고 나니까 뇌가 맛이 간 거지.”
상호는 혀를 찼다.
“맛은 느낄 수 있어. 오히려 다른 사람들보다 감각이 예민하고…… 쓴맛, 떫은맛, 그런 건 훨씬 잘 느껴. 그런데 맛없어서 안 먹는다는 선택을 못 하는 거야. 대가리가. 그런 거지.”
“그럼 맛있는 음식이 있긴 있는 거야?”
“너희 집 집밥은 맛있더라고.”
“야, 우리 엄마는 안 돼!”
“…….”
너까지 나를 벌레 짐승 쓰레기로 만드는구나, 상호는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리며 말없이 음식을 입에 우겨넣었다.
나로의 시선이 상호의 옆을 향했다.
“그래서, 그거는 뭐야?”
그곳에는 미래가 줬던 상자가 놓여 있었다.
상호는 상자를 열어 두꺼운 파일들을 꺼냈다.
“이거, 내 제자가 만든 건데, 네 회사에 입사…… 입사인가 거래인가. 암튼 네 회사랑 같이 일하는 게 꿈이래. 한번 보고 평가 좀 해줘.”
“밥 먹으면서 일을 하라고?”
“내가 살게.”
“야이……, 이럴 줄 알았으면 비싼 거 먹었지.”
나로는 피식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그래. 까짓거 뭐 해 주지. 줘봐.”
상호는 그의 손에 파일들을 넘겨주었다.
설계도를 넘기는 나로의 눈빛이 점점 날카로워졌다.
“되게 본격적이네. 나는 뭐 학생이 간단하게 그린 건 줄 알았는데.”
“똑똑한 애야.”
“그렇겠지. 필요한 특허까지 적어 놓은 걸 보니까……. 확실히.”
“어때. 괜찮아 보여?”
상호의 목소리에는 기대감이 묻어나고 있었다. 미래의 발명품들을 직접 봐 왔기에. 분명 학생 수준을 한참 벗어난 물건들이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나로는 고개를 저었다.
“이것만 봐서는 몰라. 겉보기에는 괜찮아 보이지만…… 물건을 평가할 땐 목적을 알아야 하잖아? 네 손에 그 칼이랑 식칼의 쓰임새가 다르듯이.”
“그렇……지.”
“설계한 사람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만들었나, 그걸 알아야 평가를 하는 거지. 모르면 평가를 못 하지.”
상호는 김이 빠져 의자에 축 늘어졌다. 미래에게 전문가의 조언을 좀 해주려고 했는데.
“……그런가.”
“그리고 난 공학은 알아도 마법 쪽은 잘 몰라. 직원들이 말해줘야 알지.”
나로가 눈을 반짝였다.
“그래도 한번 만나보고 싶긴 하네. 다음에 우리 회사로 같이 올래?”
상호의 눈이 커졌다.
“그래도 돼?”
“시간만 맞추면 안 될 거 없지.”
나로는 그렇게 말하고는 고개를 약간 기웃했다.
“그리고 이거…… 지금 보니까 약간 이상한 게 있어.”
“이상해? 뭐가?”
“웨어러블 웨펀…… 그러니까 이런 물건. 몸에 착용하는 무기 있잖아. 이쪽에서 엄청 유명한 특허들이 있거든. 근데 그 특허를 안 썼네. 적용은 되어 있는데, 필요한 특허 목록에 안 써 놨어.”
“……뭐라는지 모르겠는데 간단히 말해 봐봐.”
“네 제자, 내가 아는 사람인 것 같아.”
상호는 미래가 전에 했던 말을 떠올렸다. 특허를 이미 여럿 등록해서 돈을 벌고 있다는 말을.
나로의 회사에서도 그 특허를 쓰는 모양이었다.
“그래? 그럼…… 나중에 데려가 볼게.”
“그래. 연락해. 그때 시간 비워놓을 테…….”
그때.
“아이쿠!”
나로의 뒤를 지나가던 직원이 무언가에 발을 걸려 넘어졌다.
직원이 들고 있던 쟁반이 엎어지며 그 위에 있던 것들이 나로에게 쏟아졌다.
“어잇!”
나로가 화들짝 놀라 몸을 수그렸다.
다행히 뜨거운 것은 없었다. 단무지나 김치 같은 밑반찬들.
하지만 상호에게는 전혀 다행이 아니었다.
‘……아.’
붉고 누렇게 물든 설계도.
새하얘지는 머릿속.
‘조졌다.’
X됐다.
168. 같이 일해 볼까요
살려야 한다.
“하아…….”
하지만 이미 그른 것 같았다.
뻘건 고춧가루가 들러붙고, 누른 국물이 말라붙고. 수분을 머금었다가 빼앗긴 설계도들이 쭈글쭈글하게 울고 있었다.
상호도 울고 싶었다.
‘……죽었다.’
옆에서는 식당 직원이 연신 허리를 굽히고, 나로가 괜찮다며 손사래를 치고 있었지만, 상호의 눈에는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의 안중에는 오직 설계도뿐이었다.
“상호야, 괜찮냐?”
나로가 물수건으로 얼굴을 닦으며 물었다.
“미안하다, 내가 막았어야 했는데…….”
“……네 잘못은 아니지.”
상호는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근데…… 하아, 아니…… 끙…….”
“그래도 혹시 몰라. 이렇게 꼼꼼한 애면 복사본이 있겠지.”
“아니, 없을 거야. 가져올 때 엄청 불안해했어…….”
“에이, 설계도가 알아볼 수만 있으면 됐지.”
나로가 씩 웃었다.
“그리고 그만큼 똑똑한 애면 기억력도 좋을 거고, 또 약간 안 보이는 건 역산해서 알아낼 수도 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그런 거야……?”
똑똑한 놈이 말하는 것이니 맞으리라. 상호는 한시름 놓고 설계도를 상자에 챙겼다.
일단 내일 아침 미래에게 말해봐야 할 것 같았다.
* * *
“으아아아앙!”
미래의 눈에서 눈물이 펑펑 터져 나왔다.
그 모습을 보는 상호의 가슴도 펑펑 터져 나갔다. 검댕 묻은 뺨에 흐르는 눈물만큼 상호의 등도 축축하게 젖어 들었다.
“미래야, 미안해, 진짜 미안해…….”
“이게 뭐예요! 다 더러워졌잖아! 흐어엉엉…….”
상호의 앞에 선 미래가 서럽게 흐느꼈다.
자리에 앉은 다른 아이들이 서로의 귀에 속닥거렸다.
“그렇게 안 봤는데…….”
“저기에 김칫국물이 묻을 일이 있나? 뭐 라면 받침대로 썼나 본데…….”
“우와, 쓰레기…….”
상호는 눈을 질끈 감았다.
“미안야 미래해…… 아니, 미래야 미안해…….”
“좋은 거 준다면서요! 그게 김칫국물이에요?! 다 번졌잖아요! 으어허허헝…….”
“방법…… 같이…… 찾아보자. 응? 선생님이 도와줄게…….”
“쌤이 해놓고 뭘 도와준다 그래요! 다 책임져요! 으아아아앙!”
“미안해…….”
상호가 고개를 푹 숙이자 미래는 홱 뒤돌아섰다.
그러고는 자리로 돌아가 양팔에 얼굴을 묻고 엎드렸다. 상호는 미래의 정수리를 보며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어떡하지, 진짜…….’
* * *
미래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실내 수업 시간에는 책상에 엎드려서, 실외 수업 시간에는 무릎을 끌어안고 웅크려서.
그래서 상호는 다시 뒤뜰에 나와 있었다.
[오늘 온다고?]
“응. 애 데리고 가려고. 시간 돼?”
[오늘은 약속 있는데……, 쓰읍……. 어제 그 일 때문이야?]
“그거 말고 뭐겠냐? 보니까 울더라. 큰일이 났어, 큰일이…….”
그 말에 나로가 난처한 목소리를 냈다.
[주말에 안 될까? 오늘은 중요한 약속이라서.]
“그래……? 그럼 내일은?”
[내일도 점심부터 쭉 바빠서…….]
상호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그럼 아침은 시간이 돼?”
[아침? 뭐 나는 있지만. 네가 올 수가 없잖아. 아니 잠깐, 나보고 거기로 가라는 거야?]
“부탁 좀 하자.”
[부탁……하면 갈 수는 있는데, 내가 가서 뭘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어제도 말했지만 나 혼자서는 설계도 못 읽어.]
“알아, 알아. 그냥 와서 명함 하나 꽂아줘, 응?”
[명함?]
“응, 명함 한번 주고, 관심 있게 봤다, 특허 잘 쓰고 있다, 내가 담임선생님 친구다……라고 한번 해 줘.”
[……친구 얘기는 좀 뜬금없어서 쪽팔리지 않아?]
“뭐 어때. 한번 해 줘. 내가 너희 회사 뭐 하나 도와줄게.”
[음…….]
나로는 고민하며 입맛을 다시다가 흔쾌히 수락했다.
[그래, 내일 갈게. 아무 때나 가면 되나?]
“응, 상관없어. 편할 때 와.”
[그럼 내일 보자.]
상호는 전화를 끊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나로를 만나고 나면 미래의 마음도 조금은 풀리지 않을까.
부디 그래주기를 간절히 바라며, 그는 본관 안으로 들어갔다.
* * *
다음날 아침.
교실로 들어오는 미래는 아직도 코를 훌쩍이며 입술을 삐죽 내밀고 있었다.
상호는 인사 한 마디 없이 자리에 앉는 미래를 보며 헛기침을 했다.
“미래야.”
“…….”
“선생님이 할 말이 있어서…… 점심시간에 시간 좀 내줄 수 있어?”
미래는 입을 씰룩이다가 퉁명스럽게 쏘아붙였다.
“무슨 이야기요?”
“어제, 그 설계도 때문에…… 선생님이 줄 게 있어서.”
“김치요?”
“아니…….”
단단히 미운털이 박혔구나. 상호의 이마에 진땀이 흘렀다.
“이번에는 진짜, 진짜로 좋은 거 줄 거야.”
“단무지요?”
“아니야……. 오면 알아. 점심시간에 교무실에서 보자. 응? 괜찮지?”
“……네.”
미래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 * *
“……누구세요?”
미래는 눈앞에 선 청년을 보며 눈을 깜작였다.
비싼 양복과 단정한 매무새. 돈깨나 있을 법한 차림이었다. 서글서글한 인상과 훤한 인물이 어째 누군가를 닮은 것 같기도 했다.
상호는 자리에서 일어나 둘 사이에 섰다.
“선생님 친구. 여기는 우리 반, 한미래.”
“아, 한미래. 맞아, 생각났다.”
나로가 씩 웃으며 미래를 바라보았다.
“마법공학특허 37번. 맞죠?”
“……어?”
미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누구세요?”
아직은 말해줄 생각이 없다. 상호와 나로는 장난기 섞인 눈빛을 나눴다.
“그냥 작은 사업 하나 하고 있어요. 미래 양이 만드는 거랑 관련된 건데…… 그저께 선생님이랑 이야기하다가 설계도를 봐 가지고.”
그 말에 미래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그걸 남한테 보여주셨어요?”
화가 난 목소리였다.
자기 아이디어를 뺏길까 봐 그런 모양이었다. 상호는 당황하며 미래에게 양 손바닥을 들어 보였다.
“어차피 얘는 마법 몰라. 그냥 느낌만 보라고 보여준 거야.”
“그래도요! 자기 거 아니라고 그렇게 함부로 하셔도 되는 거예요?”
미래가 낙심한 표정을 지었다. 상호에게 크게 실망한 듯이.
더 놔뒀다간 또 울겠다. 상호가 눈빛을 보내자 나로가 입을 열었다.
“저기, 미래 양 설계도를 좀 봤는데요.”
“……네.”
“좀 괜찮아 보여서. 이야기를 좀 나눠보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으신데요.”
“그 웨어러블 웨펀이란 건, 뭐 분류를 하자면 끝이 없겠지만 가장 중요한 기준 중에 하나가 휴대형이냐, 배치형이냐잖아요?”
미래의 눈에 살짝 생기가 돌았다.
“네.”
“미래 양이 만드는 건 어느 쪽이에요?”
“저는 지금은 휴대형인데, 만들고 싶은 건 배치형이요. 화력이 강한 걸 만들어보고 싶어서.”
“그럼 만들 때 있잖아요, 화력이라든가 하는 스펙을 먼저 생각해요, 아니면 단가를 먼저 생각해요?”
“전 스펙이 먼저요. 단가는 나중이요. 자재의 가격은 항상 변하니까, 정답이 항상 변하는 셈이 되어 버리잖아요. 그러면 제대로 된 설계를 할 수가 없어요.”
“그래도 대략적인 단가는 생각할 수 있잖아요?”
“전 정답이 있는 게 좋아요.”
“……기업 입장에선 곤란하네.”
나로가 쓰게 웃었다.
“그래도 뭐, 대기업에 들어가는 게 목적이라면 그럴 수도 있지. 제품의 스펙을 올리는 신기술도 분명 필요하니까. 물론 단가를 낮추는 신기술도 만만찮게 중요하지만…….”
미래가 눈을 끔뻑였다.
“아저씨……는 어느 회사 다니시는데요?”
“나?”
나로는 안주머니에서 명함을 꺼내 미래에게 내밀었다. 명함을 읽은 미래의 눈이 튀어나올 듯 툭 불거졌다.
“어?”
“TG 메이커스 사장이에요. 하나로라고 합니다.”
“……어어어?”
상호는 뒷걸음질 치는 미래를 보며 흐뭇한 웃음을 지었다. 예상대로 깜짝 놀란 얼굴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으흠!”
미래는 헛기침을 하고는.
“에~. 지금부터 제품 시연 및 기타 설계도면 소개 프레젠테이션이 있겠습니다~.”
장갑에 달린 빔 프로젝터로 교무실 벽에 프레젠테이션을 띄웠다.
교무실에서 이게 뭔 난리인가. 다른 사람들도 많은데. 상호는 당황해서 미래를 말리려 했다.
“미래야, 곧 수업 시간이니까 이건 나중에…….”
“아냐, 아냐. 잠깐만. 한번 들어 볼래.”
“응?”
옆을 돌아보니 나로가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미래의 파멸적인 준비성에 깊은 감명을 받은 듯했다.
미래는 평소의 당당한 모습으로 돌아와 벽의 화면을 가리켰다.
“먼저! 마법공학특허 29번! 위상계산식을 스캔해서 데이터로 다룰 수 있게 하는 기술! 37번! 초소형 마법진을 피부에 잠깐 새겨서 일시적 기억장치로 사용하는 기술! 그 외에도 수많은! 특허들이! 이렇게나!”
“우와~.”
나로가 빙긋 웃으며 박수를 짝짝 쳤다. 그 모습이 여동생과 퍽 닮아 있었다.
“그 외에도! 개인적으로 취득해둔 라이선스가 수십 개! 동업 시 이 모든 라이선스를 함께 이용 가능!”
“이야~.”
“다음! 제품 소개!”
미래가 프레젠테이션을 휙휙 넘겼다.
상호는 아무 말도 못하고 진땀만 줄줄 흘리고 있다가 슬그머니 자리를 빠져나왔다.
“미래야, 끝나면 교실로 와.”
“네! 배틀피스트 HMR! 지금 제 손에 있는 이 물건이 바로…….”
닫히는 교무실 문 사이로 미래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열정 하나는 참 대단하다. 하긴 그러니 저렇게 성공할 수 있었으리라.
혀를 내두르던 상호의 입가에 차츰 흐뭇한 미소가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