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들어올래요?”
“아뇨.”
“에이, 따뜻한데.”
해련이 발장구를 치며 웃었다.
상호는 소매를 걷은 채로 욕조에 팔을 걸치고 있었다. 그가 한숨을 쉬며 팔에 얼굴을 묻자 머리 위로 물이 쏟아졌다.
“……물 뿌리지 마요.”
“또 화내려구?”
그 말에 상호의 눈이 샤워기 줄을 향해 번득였다. 또 손발을 묶어버릴까 싶어서.
하지만 욕실에서 그런 짓을 하기에는 양심이 찔렸다.
“알아서 하세요, 어차피 씻을 거니까.”
“어차피 씻을 거면 지금 같이 씻는 게 낫지 않을까?”
“진짜…… 간통죄만 남아 있었어도…….”
“진짜 간통이 뭔지 보여줘?”
상호는 대답하지 않고 손으로 물을 튀겼다.
그러자 해련이 발을 확 굴려 물을 높이 치솟게 했다. 떨어지는 물방울들이 상호의 옷을 흠뻑 젖게 했다.
“……푸우.”
되로 주면 말로 돌려받으니 처신을 잘해야겠다. 상호는 한숨을 쉬며 손으로 얼굴을 문질렀다.
그때 욕실 밖에서 해련의 핸드폰이 울렸다.
“뭐 왔나 본데요.”
“문자인가 보다. 가서 답장 좀 해줘요.”
“네? 제가 봐도 돼요?”
“별거 없어.”
상호는 뒤통수를 긁적이며 밖으로 나왔다.
핸드폰은 침대 위에 놓여 있었다. 화면을 켜 보니 메세지가 하나 와 있었다.
-큰손녀♡: 할머니
큰손녀라. 작은손녀도 있는 걸까. 상호는 그 메세지를 가만히 보다가 욕실을 향해 소리쳤다.
“손녀분이 부르는데요.”
“손녀? 가져와 줄래요?”
그는 욕실로 돌아와 해련에게 핸드폰을 건네주었다.
해련은 씩 웃으며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더니.
“……어라?”
순식간에 안색이 핼쑥해졌다.
상호는 그 모습을 보고 눈을 끔뻑였다.
“왜 그러세요?”
“강 선생, 미안해, 빨리 창문으로……. 아이고, 늦었다.”
그 순간 현관문 쪽에서 문고리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해련이 당황하며 몸을 일으켰다.
“빨리 내 밑으로 들어와요.”
“네? 밑이요? 밑이 어디…….”
“잔말 말고 빨리!”
해련의 손이 상호의 머리채를 덥석 붙잡았다. 상호는 그 손에 끌려가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프다면서 잘만 움직이네, 염병…….’
풍덩
그렇게 온몸을 물속에 처박혔다.
귀와 목에 부드러운 살결이 스쳤다. 해련이 그의 머리를 깔고 앉은 것이었다.
상호는 입에서 공기 방울을 뽀글거리며 얼굴을 욕조 바닥에 바싹 붙였다.
‘……숨을 못 쉬겠네.’
그때 욕실 문 쪽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할머니, 괜찮으세요? 뭔가 큰 소리가 났는데…….”
‘응?’ 상호의 눈이 번쩍 뜨였다.
‘어디서 들어본 목소리인데…….’
하지만 누구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분명 들어본 적은 있는데, 여러 번 듣지는 못했다. 상호는 눈살을 찌푸리며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누구지? 설미 선생님 반 앤가? ……켁.’
해련이 그의 머리를 내리누르며 웃었다.
“으응, 별거 아니야. 우리 손녀 무슨 일로 왔을까?”
“아빠가 할머니한테 인사도 드리고 그러라고 하셔서……, 어? 할머니, 어깨가…….”
“아, 이거는…… 운기조식을 하다가 실수를 해 가지구.”
“네? 할머니께서요?”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지는 법이야. 너도 항상 주화입마 조심하렴. 알았지?”
“네. 조심할게요.”
숨이 가쁘다. 상호의 얼굴이 점점 붉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하필이면 급하게 처박혀 가지고는 폐에 남은 숨이 별로 없었다. 당장 숨을 쉬지 않으면 사달이 날 것 같았다.
‘……안 되겠다.’
상호는 내공을 뽑아 강기를 만들었다. 빨대 모양으로.
‘이걸 이딴 데 쓰고 앉았네.’
누구는 강기를 뽑기 위해 몇 년을 바치는데. 자신은 겨우 빨대 따위나 만들고 있다니.
그래도 숨은 쉬어야 했다.
‘쓰읍…… 후우, 이제야 살겠네.’
상호는 다시 죽은 듯이 몸을 축 늘어트렸다.
“많이 편찮으세요?”
“응……, 할미가 몸이 좀 안 좋네. 오늘은 오래 이야기 못할 것 같아. 아범한테 할미가 잘 말할게. 일찍 들어가 자렴.”
“네. 안녕히 계세요.”
“응~.”
문 닫는 소리가 들렸다.
이윽고 현관문 닫는 소리도 들렸다. 상호는 곧바로 몸을 일으켜 해련을 마주했다.
그리곤 얼굴에 달라붙은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물었다.
“손녀분이 여기 다니세요?”
그 말에 해련이 허탈한 듯 웃었다.
“강 선생은 참……. 하긴, 그래서 놀리는 맛이 있는 거니까.”
“네? 저 뭐 잘못했어요?”
“아니, 아니. 언젠간 알게 되겠지.”
상호는 눈살을 찌푸리며 속으로 꿍얼거렸다. 말하는 걸 보면 분명 자신과 관련된 사람인 것 같은데. 시원히 알려주질 않으니.
해련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끄응…….”
“또 왜 그러세요.”
“아프니까 그러지. 강 선생 숨긴다고 움직여서…… 아이구야…….”
“원래 그런 건 다 업보예요, 업보. 하늘이 내려준 업보.”
그는 그렇게 핀잔을 날리며 욕조를 빠져나가려 했다.
하지만 해련이 그의 다리를 옭아매어 나가지 못하도록 했다. 상호의 눈이 다시 한번 샤워기 줄을 향해 번득였다.
“……왜 이래요, 진짜!”
“어차피 젖었잖아. 방바닥 물바다 만들지 말고 벗고 들어와요.”
“그러다 진짜 큰일나면 어쩌려고 그래요? 손녀가 자기보다 어린 삼촌 고모 보면 기분이 어떻겠어요?!”
“강 선생은 그런 거 못 하잖아?”
그 말이 맞았지만 상호는 짐짓 강하게 밀어붙였다. 자신보다 어른이고 약자도 아니니 딱히 꿇릴 게 없었다.
“저 눈 돌아가면 큰일나요, 진짜.”
“그래?”
해련이 빙긋 웃었다.
“강 선생. 뭔가 착각하는 게 있는데 말이야.”
“네?”
“강 선생이 날 목욕시켰을 때부터 이미 큰일은 난 거야.”
상호는 눈을 끔뻑였다. 뭐 따지자면 큰일이 나긴 했지만. 그래도 진짜 큰일은 아니었다.
그런데 해련이 갑자기 힘겹게 핸드폰을 들어올렸다.
“끄응……, 자. 이거 봐요.”
“네?”
상호는 핸드폰을 들여다보았다. 해련과 가까이 앉아서.
화면에는 그와 해련이 비쳐지고 있었다.
“……엥?”
찰칵
얼빠진 소리와 함께 셔터 소리가 울렸다.
* * *
“지워주세요…….”
“안 돼~.”
“제발…….”
상호는 침대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박았다. 그런 그의 앞에는 해련이 정자세로 누워서 키득거리고 있었다.
“이거 전우들한테 보여줘도 돼?”
“아니, 안 돼요. 제발 좀 지워주세요…….”
“아니면 임 선생? 미진 양?”
상호의 눈에 눈물이 핑 돌았다.
아니, 따지고 보면 별 문제가 아니었다. 사진 찍힌 게 대수랴. 그는 B급이고, 해련은 S급 최상위니. 세상은 그의 편을 들어줄 터였다.
그는 몸을 벌떡 일으켜서 손을 내저었다.
“아오, 몰라요. 알아서 하세요. 그거 뭐 별것도 아닌 거 가지고…….”
“프린트해서 교실에 붙여줄까?”
“대체 원하는 게 뭔데요…….”
상호가 다시 무릎을 꿇자 해련이 빙긋 웃었다.
“별거 없어요. 그냥 내 말만 잘 들으면 돼.”
“지금도 잘 듣고 있잖아요…….”
“요즘 좀 기어오르는 것 같아서.”
벌레도 아니고 기어오른다니. 상호는 아까 미진이 벌레라고 했던 것을 떠올리며 침대에 풀썩 쓰러졌다.
“……잠이나 자요.”
“강 선생.”
“네?”
“거기 서랍 좀 열어 볼래?”
그는 침대 옆에 놓인 서랍을 열어 보았다.
안에는 안대가 하나 들어 있었다. 귀여운 캐릭터가 수놓인 수면안대.
“그거 써.”
“……안 써요, 이런 거.”
상호는 자신의 외눈 안대를 벗고 내공을 뻗어 방의 불을 껐다.
내일도 평일. 일찍부터 해련을 준비시키고 출근해야 한다. 빨리 잠에 드는 것이 좋을 터였다. 아니, 들어야만 했다.
그런데 해련의 발이 자꾸 그의 종아리를 건드렸다.
‘하아…….’
상호는 한 소리 하기 위해 뒤를 돌아보았다가 화들짝 놀랐다. 어느새 해련이 등 뒤에 바싹 붙어 웃고 있었다.
“……뒤로 좀 돌으세요.”
“그럴까?”
해련은 키득거리며 다시 정자세로 누웠다.
오늘따라 유난히 자주 웃는다. 상호는 그녀에게서 등을 돌리며 중얼거렸다.
“기분 좋아 보이시네요.”
“좋지, 그럼. 강 선생이 이렇게 놀아주는데.”
해련의 발이 상호의 다리를 쓸었다.
“항상 곁에 누가 있었는데…… 없어지고 나니까 훨씬 외롭더라고.”
상호는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게다가 몸이라도 늙었으면 좀 내려놓고 살 텐데…… 젊으니까 마음이 예민해지더라. 아픈 것도 그래. 외로워서 아픈 게…… 점점 더 힘들어져.”
해련이 코를 훌쩍였다.
상호도 외로움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가슴에 사무치도록 잘 알았다. 작별하는 순간도, 영원한 헤어짐도.
남겨진 사람들끼리 보듬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그는 몸을 일으켜 해련을 등이 보이도록 뒤집었다.
그리고 등에 난 멍을 살살 쓰다듬었다.
“아파요?”
“조금……, 아.”
하지만 빨리 나으려면 이렇게 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어쩔 수 없으니까. 계속할게요.”
“끄응…….”
꽤 색이 연해졌다. 머지않아 일상생활 정도는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완전히 다 나으려면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상호는 멍을 문지르며 해련의 핸드폰을 흘끗했다.
“이거 하고 나면 지우세요.”
“생각해 볼게~. 아으…….”
“에휴…….”
“아으…… 킥킥.”
해련은 키득거리다가 눈을 감고 평온한 표정을 지었다.
* * *
미진은 벽 너머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내일 제때 출근하려면 슬슬 자야 했지만, 지금은 해련의 방을 엿듣는 것이 더 중요했다. 해련과 상호의 목소리가 함께 들려오고 있었기에.
아직도 방을 나가지 않았다니. 둘이서 대체 무슨 일을 하는 건지.
“강 선생. 거기 서랍 좀 열어 볼래? 그거 써.”
“네? 안 써요, 이런 거.”
뭘 쓴다는 걸까.
침대 옆 서랍에 들어있을 만한 게 무엇일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하나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미진의 이마에 진땀이 흘렀다.
‘교장선생님…… 젊으시구나.’
벽 너머에서 말소리가 이어졌다.
“뒤로 좀 돌으세요.”
“그럴까?”
“기분 좋아 보이시네요.”
“좋지, 그럼. 강 선생이 이렇게 놀아주는데.”
뭘 하면서 놀고 있는 걸까.
혼란에 빠진 미진의 귀에 해련의 푸념이 들렸다.
“항상 곁에 누가 있었는데…… 없어지고 나니까 훨씬 외롭더라고. 게다가 몸이라도 늙었으면 좀 내려놓고 살 텐데…… 젊으니까 감각이 예민해지더라. 아픈 것도 그래. 외로워서 아픈 게…… 점점 더 힘들어져.”
미진은 그 말을 듣고 깨달았다.
‘외로우셨구나……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하필 골라도 저런 남자를.
너무 외로워서 눈에 뵈는 게 없었던 걸까. 그 벌레 같은 남자의 목소리가 미진의 귀를 기분 나쁘게 파고들었다.
“아파요?”
“조금……, 아.”
“그래도 어쩔 수 없으니까. 계속할게요.”
“끄응…….”
순간 미진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옆방까지 서서히 퍼지는 저 힘겨운 신음의 원인은 뭘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밖에 없었다. 미진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벽을 짚으며 들려오는 소리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이거 하고 나면 지우세요.”
“생각해 볼게~. 아으…….”
미진의 입이 충격으로 떡 벌어졌다.
‘……지우라고?’
철거용 쇠공이 뒤통수를 강타하는 듯한 충격의 연속.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미진은 더 듣기를 포기하고 비틀거리다가 침대 위로 쓰러졌다.
그 청초하고 기품 있는 교장이 그 벌레 같은 짐승과 저러고 있다니.
심지어 자의로.
자신이 알던 세상이 무너지자 회의감이 폭풍처럼 몰아쳤다.
‘퇴사할까…….’
벽 너머로 희미한 신음이 끊임없이 들려왔다.
그녀는 그 소리를 들으며 세상이 미친 건지 자신이 미친 건지 끊임없이 의심하다가, 이 너무도 잘못된 세상의 추위에 몸을 떨고는 까무러치듯이 잠에 빠져들었다.
그 순간까지도 멈추지 않는 신음이 한없이 지긋지긋하기만 했다.
167. 피할 수가 없는
“멍!”
“응?”
상호는 아이들을 돌아보았다.
“멍? 누구 멍들었어?”
그 말에 단비가 귀를 쫑긋 세웠다가 축 늘어뜨렸다.
“아니요, 죄송…… 멍!”
“아, 단비구나.”
상호의 입가에 멋쩍은 웃음이 걸렸다.
“미안, 선생님이 요즘 멍이란 단어에 노이로제가 생겨서…….”
“노이로제? 그게 뭐야? 먹는 거야?”
그는 태화의 얼빠진 소리를 무시하고 다시 칠판에 글씨를 적었다.
해련의 멍은 슬슬 차도가 보여서, 이제는 그의 간호를 필요로 하지 않게 되었다.
다만 요즘 들어 자꾸 주변 사람들이 멀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설미도 그를 은근슬쩍 피하고, 미진은 대놓고 피하고. 하솔도 그를 볼 때마다 흠칫하고, 가은은 대놓고 째려보고.
심지어 가까운 아이들도 틈만 나면 칼을 휘두르고, 창으로 찌르고, 불덩이를 날리니.
‘세상에 나 혼자인 것 같네…….’
그런 느낌이 들었다.
오랜만에 도현과 저녁이나 먹어 볼까. 상호는 그런 생각을 하며 물백묵으로 지윤이 던진 짱돌을 튕겨냈다.
* * *
본관 뒤뜰.
상호는 핸드폰을 귀에 댄 채로 거닐고 있었다.
[연결이 되지 않아 삐 소리 후 소리샘으로…….]
전화를 안 받는다. 아무래도 무슨 바쁜 일이 있는 모양이었다.
‘점심시간인데도 바쁜가. 뭐 어쩔 수 없지.’
도현이 안 받으면 후보가 한 명밖에 없다. 상호는 입맛을 다시며 연락처를 뒤적였다.
‘얘는 더 바쁠 것 같은데…….’
그래도 그나마 편하게 만날 수 있는 인물이라서, 주저하지 않고 번호를 눌렀다.
‘받긴 하려나?’
걱정이 무색하게 바로 통화가 연결되었다.
[어, 상호! 웬일이야?]
“그냥. 저녁에 시간 되냐?”
[밥 먹자고? 뭐, 시간이야 만들면 되지.]
나로가 웃었다.
[근데 정말 웬일이야? 학교에서 바쁜 거 아냐?]
“……바빠서 잠깐 쉬려는 거지.”
상호는 한숨을 쉬었다.
“회사야? 어디냐? 태궐그룹이면 서울인가?”
[서울이지. 여기로 오게? 언제쯤 볼까?]
“거기 가면 일곱 시쯤 될 것 같다. 가면 다시 연락할게.”
[그래, 그 때 보자.]
시원스럽게 할 말만 하고 끊을 수 있어서 참 편했다.
상호가 핸드폰을 집어넣고 본관으로 들어가려는데, 어디선가 날카로운 기운이 느껴졌다. 작고 뾰족한 물건이 바람을 가르는 소리.
그는 손을 들어 그 물건을 집었다. 나무에 핀 꽃을 꺾듯이 간단하게.
검은 고무 총알이었다.
“쌤! 손이 너무 빨라요!”
고개를 들어 보니 본관 2층 창문에서 머리를 뒤로 싹 넘긴 소녀가 손을 흔들고 있었다. 뺨에는 늘 그렇듯 검댕이 묻어 있었다.
상호는 쓴웃음을 지으며 총알을 주머니에 넣었다.
“소리가 안 나더라? 소음기라도 달았어?”
“네!”
미래가 주먹을 들어 보였다. 안 그래도 복잡하게 생겼던 기계 장갑이 더욱 복잡하게 개조되어 있었다.
“이것저것 개조했어요. 소음기 말고도 많은데. 한번 보실래요?”
“뭔데?”
“이거!”
장갑에서 붉은 불빛이 반짝였다.
상호는 얼른 알아보지 못하고 눈을 끔뻑이다가, 그게 레이저라는 것을 깨닫고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붉은 점이 자신의 가슴팍에 박혀 있었다.
“이게 뭐야?”
치직……
옷에서 연기가 나기 시작했다.
‘켁!’
상호는 식겁하며 강기를 짙게 펼쳐 빛을 분산시켰다. 다행히 강기가 검푸른 색이라 효과가 좋았다.
아무래도 다리가 멀쩡하질 못하다보니 레이저는 피할 수가 없었다. 그의 이마에 진땀이 줄줄 흘렀다.
“미래…… 기습, 성공했네.”
“나이쓰~.”
미래가 주먹을 치켜들며 웃었다.
“그럼 소원권 주시는 거예요!”
“응, 줘야지.”
“앗싸~!”
상호는 환호하는 미래를 보며 그래도 다행이란 생각을 했다. 예상할 수 없을 정도로 천방지축이지는 않은 아이라서. 좀 다른 쪽으로 독특하긴 했지만.
본관으로 향하는 그에게 미래가 손을 흔들었다.
“학교 끝나고 소원 말할게요!”
벌써 쓰는 걸까. 상호는 고개를 끄덕이고 손을 마주 흔들어 주었다.
‘……그런데 굳이 방과 후에? 지금 말 못할 이유가 있나?’
그래도 이상한 소원은 아닐 것이다. 그는 고개를 기웃거리다가 태평한 걸음으로 본관에 들어갔다.
* * *
“선생님 다리는 왜 아프신 거예요?”
미래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상호는 얼른 대답하지 못하고 쩔쩔매며 교탁만 만지작거렸다.
“으음…….”
소원권으로 그걸 물어볼 줄이야.
다른 아이들은 다 하교했고, 교실에는 상호와 미래 둘뿐이었다. 상호는 코앞에 서 있는 미래를 바라보며 진땀을 흘렸다.
“저번에 말했잖아. 그건 비밀이야……. 다른 소원은 없을까?”
그러자 기대에 가득 차 있던 미래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저 궁금하면 잠 못 자는데…….”
“그래……?”
상호의 낯빛도 밝지는 않았다.
아무리 소원권이라도 비밀을 알려줄 수는 없다. 살짝 보여주는 것 정도는 가능하겠지만, 그러면 더더욱 궁금해질 터.
사람 마음이란 게 그럴 수밖에 없었다.
“미래야, 선생님 다리에는 너무 많은 비밀이 있어서…… 처음부터 설명하지 않으면 어차피 네 궁금증은 해결되지 않을 거야. 그런데 그걸 말해줄 수는 없어. 그건 정말로 어쩔 수 없어. 이해해 줘.”
“네…….”
미래가 풀죽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상호는 그런 미래를 착잡한 눈빛으로 바라보다가, 문득 예전에 미래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대신에 훨씬 더 좋은 거 줄게.”
“네? 뭔데요?”
“네 발명품 설계도 좀 빌려줄래?”
“네?”
미래가 멍하니 눈을 끔뻑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