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쌤!]
핸드폰 너머에서 태화가 소리쳤다.
[어딨어? 왜 안 들어와? 뭐해? 물소리 뭐야?]
“……계곡.”
[계곡에서 뭐 하는데?]
“빨래.”
상호는 해련의 머리를 감기며 한숨을 푹 쉬었다.
“너 또 숨어들어왔냐? 나가. 방에 막 들어오지 말라고 했잖아.”
[있으면 안 되는 곳에 있어야 기습이 되지! 그래서 언제 오는데. 나 밥도 안 먹었단 말이야.]
“오늘 늦게 들어가. 냉장고에 있는 거 알아서 꺼내 먹어.”
[아라쏭~. 빨랑 들어왕~.]
“……에휴.”
상호는 한숨을 쉬고는 허공섭물로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욕조에 앉은 해련이 장난기 어린 웃음을 지었다.
“계곡을 빤다는 줄 알았네.”
“네?”
“아니야. 그래서, 학생이랑 살림 차렸나 보네?”
“살림은 무슨…… 애가 맘대로 들어오는 거예요.”
그가 손가락 끝으로 두피를 꾹꾹 누르자 해련이 눈을 감으며 입을 살짝 벌렸다.
“아이고~ 좋다~.”
“의외로 머리숱 많으시네요. 별로 없을 줄 알았는데…….”
“뭐?”
“아니, 교장 일이 힘드니까. 스트레스 때문에요. 늙었다고 뭐라 하는 게 아니고…….”
상호는 대충 얼버무리며 계속 해련의 머리를 감겼다.
가만히 앉아 있던 해련이 고개를 살짝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언제까지 머리만 감으려고?”
“머리가 길어서. 꼼꼼히 하다 보니까…….”
“슬슬 시작해야지?”
“교장선생님.”
“응?”
“제가 잘 생각해 봤는데…… 저희는 일주일씩 못 씻을 때도 많았거든요. 저희 부대원들은.”
“그래서?”
“며칠 정도는 그냥 물 뿌리는 정도로만 씻어도 충분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강 선생.”
“네?”
“X랄 말고 시작해요.”
“……넵.”
상호는 반항을 포기하고 샤워볼을 집었다.
164. 끝없는 오해
“하아…….”
상호는 터덜터덜 걷다가 침대에 기대어 앉았다. 손에는 뜨뜻미지근하게 젖은 수건을 들고 있었다.
방금 막 해련의 몸을 닦은 수건.
‘……돌겠네.’
그는 수건을 던져 욕실 앞 바구니에 넣었다.
욕실에서 해련이 잠옷 차림으로 걸어 나왔다. 팔과 어깨를 움직이지 않는 로봇 같은 모습으로.
그녀가 침대에 걸터앉으며 말했다.
“머리도 좀 말려 줘요.”
“조금만…… 조금만 쉴게요.”
“뭐 한 것도 없으면서 왜 이렇게 엄살일까? 빨리 말려요. 나 누울 거야.”
“하…….”
상호는 허공섭물로 헤어드라이기를 가져와서 해련의 옆에 앉았다. 그러자 해련이 몸을 돌려 그에게 등을 보였다.
천사화의 백발과는 다른 느낌의 빛깔.
색소를 전부 잃어버린 무채색의 백발과는 다르게, 약간은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는. 그런 하얀색이 상호의 거친 손가락 사이에 흘렀다.
“교장선생님.”
“응?”
“왜 이렇게 머리가 하얘요?”
“싸우자는 건가?”
“아니, 이상하잖아요. 몸은 젊은데 머리만…….”
“나도 몰라요. 강 선생이 알아내서 알려줘요. 에휴, 안 그래도 염색할까 고민하는 중이야…….”
해련이 한숨을 푹 쉬자 상호는 그녀의 머리를 털며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염색은 안 하는 게 나을 것 같은데요.”
“왜?”
“학생들이 야라고 부르겠어요.”
“어머, 깔깔깔…… 끄응.”
해련이 끅끅대며 웃다가 얼굴을 찡그렸다.
“아흐…… 웃는 것도 맘대로 못하네.”
“빨리 누워서 주무세요. 저도 가서 자게.”
“응? 어딜 가?”
“……네?”
상호는 당황해서 침대에서 일어나 뒷걸음질을 쳤다.
“여기서 자라고요?”
“그럼. 자다가 볼일 마려우면 어떻게 하라고.”
“그 정도는 어떻게…… 안 될까요?”
“되겠어?”
해련이 코웃음을 쳤다.
상호도 그녀가 어떻게 나올지는 알고 있었다.
“……안 되겠죠.”
“취침이 퇴근이고 기상이 출근이야. 자, 눕히고 같이 누워요.”
“저 그럼…… 옷 좀 가져올게요.”
그가 해련을 침대에 눕히자 해련이 눈을 마주치며 빙긋 웃었다.
“빨리 와요.”
“네.”
“아, 잠깐. 열쇠 가져가야지.”
“……네.”
상호는 해련의 양복에서 열쇠를 챙겼다.
문가로 향하는 그에게 해련이 알랑거리는 목소리로 아양을 떨었다.
“얼른 와요~.”
“넵.”
상호는 짤막하게 대답하고 해련의 방을 나왔다.
싫다기보다는 민망하다. 따지고 보면 민망해서 싫은 거긴 한데.
이대로 도망쳐 버리고 싶지만, 후환이 두렵다. 도망을 친다손 하더라도 내일 아침에는 다시 와야 할 것이고.
도망치지 않는 것이 현명한 길이다.
‘에휴…….’
그는 숙소를 향해 터덜터덜 걸어갔다.
* * *
문을 열자 새근거리는 숨소리가 들렸다.
‘……뭐야.’
상호는 어리둥절해하며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서다가, 침대에 누워 있는 태화를 발견하고 혀를 찼다.
‘그럼 그렇지…….’
밥 먹고 가라고 했더니 퍼질러 자고 있다.
입은 옷도 상호의 옷이었다. 위에는 하얀 긴팔옷, 아래는 트렁크. 심지어 아래는 거꾸로 입어서 틈 사이로 꼬리가 쏙 나와 있었다.
‘저걸 저렇게 입네.’
밥을 먹긴 했을까. 상호는 싱크대의 상태를 확인했다. 무언가를 먹은 흔적도, 설거지를 한 흔적도 없었다.
‘밥도 안 먹고…….’
시간은 밤 열한 시.
통금 시간은 진작에 넘었고, 깨워서 돌려보내기엔 너무 늦었다.
상호는 냉장고 문을 열며 한숨을 쉬었다.
‘어른은 씻기고, 아이는 먹이고……. 아이고, 내 팔자야…….’
그리고 계란과 파 등등을 찾아서 꺼내기 시작했다.
* * *
“야.”
“우웅……?”
“밥먹어.”
상호가 꼬리를 당기자 태화가 고개를 부스스 들었다.
“치킨이야?”
“아니. 계란볶음밥.”
상호는 태화의 코앞에 볶음밥이 담긴 접시를 들이밀었다.
태화는 코를 몇 번 킁킁거리더니 벌떡 일어나 접시를 받아들었다.
“사랑은 얼마나 넣었어?”
“조미료를 넣었지. 빨리 먹기나 해.”
“웅.”
태화가 한입 가득 볶음밥을 털어 넣고는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우움!”
“맛있어?”
“계란 맛이 나!”
“……다행이네.”
상호는 식탁 앞에 턱을 괴고 앉아서 태화를 바라보았다. 건드리기만 해도 터질 듯 빵빵해진 볼이 꼭 다람쥐 같았다.
“배고프면 챙겨 먹지, 왜 굶어.”
“응? 뭐하러 챙겨 먹어. 여기 누워 있으면 쌤이 알아서 맛있게 해 주는데.”
“다음엔 김치만 줄 거야.”
“굶긴단 말은 못 하지?”
태화가 실쭉 웃었다.
상호는 차마 반박하지 못하고 못마땅한 듯 혀를 차다가, 이내 쓴웃음을 지었다.
“그럼 굶기겠냐.”
“다음엔 김치볶음밥 해줘.”
“나중에 와, 나중에. 요즘 쌤 바빠 죽겠어.”
“그러니까 나 보고 기운 내야지.”
밥을 다 먹은 태화가 침대에서 일어나 그릇을 던졌다. 그릇은 상호가 뻗은 내공에 붙들려 천천히 싱크대에 안착했다.
태화는 팔을 파닥거리며 물었다.
“이제 자겠네? 같이 잘 거지?”
“쌤 다시 나가야 돼.”
“또? 또 어디 가는데?”
“교장선생님 심부름.”
“안 가면 안 돼?”
상호는 주머니 속 해련의 방 열쇠를 만지작거렸다.
‘분명히 대판 깨질 텐데…….’
하지만 거기 가서 해련의 옆에 누워 봤자 선잠만 잘 것이다. 차라리 태화 옆에서 자는 게 훨씬 편할 것 같았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씻고 올게. 졸리면 먼저 자. 괜히 기다리지 말고.”
“웅~.”
태화는 콧소리를 섞어 대답하며 침대에 몸을 던졌다.
* * *
“얌마, 좀 옆으로 가.”
“시른뒈~.”
태화가 그의 옆구리에 찰싹 달라붙었다.
뿔의 끝이 겨드랑이를 찔러서 심히 고통스러웠다. 상호는 신음을 삼키며 태화의 볼을 밀어냈다.
“그럼 차라리 위로 좀 올라와. 뿔로 찌르지 말고…….”
“뿔? 어! 이거 기습! 기습 성공!”
“이건 아니지, 임마.”
“응 소원권~, 개꿀~.”
태화가 키득거리며 위로 슬금슬금 올라왔다.
상호의 팔에 태화의 머리가 놓였다. 상호는 팔에 쏟아지는 구불구불한 머리카락을 느끼며 붉은 눈동자와 눈을 마주쳤다.
태화도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무언가가 생각난 듯 눈을 반짝였다.
“올해도 벚꽃 볼 거야?”
“굳이……? 좀 걷다보면 학교 근처에도 있겠지.”
“보러 가자. 둘이서만.”
상호는 손을 뻗어 태화의 뺨을 집었다.
“다른 애들은 어쩌고.”
“몰라. 버려. 좀 걷다보면 학교 근처에도 있겠지.”
태화가 비뚤게 웃었다.
상호는 난처한 얼굴로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그런 짓을 했다가 들키기라도 하면 다른 아이들을 한 명씩 데리고 벚꽃 축제에 왔다 갔다 해야 하는 불상사가 일어날 터였다.
부담이 너무 컸다.
그러니까.
“몰래 갈까?”
그렇게 물으며 눈을 마주치니, 태화가 깜짝 놀라서 눈을 똥그랗게 떴다.
정말로 그럴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을까.
그래도 곧 배시시 웃으며 능청을 떨었다.
“진짜? 가는 거야? 개꿀~.”
“대신 애들한테 자랑하지 마. 근데…… 넌 그런 데 가면 대체 뭐 하냐? 난 할 게 없던데.”
“뭐, 쌤이랑 사진 찍고, 그러는 거지.”
“사진 찍어서 어따 쓰는데?”
“자랑하지.”
“……하지 마.”
상호는 검지를 들어 태화의 코끝을 톡 쳤다.
“자꾸 그러면 내년엔 같이 안 갈 거야.”
“그 말은 내년에도 같이 간다는 거지?”
태화가 의기양양한 웃음을 지었다.
상호는 반박하지 못하고 못마땅한 듯 혀를 차다가.
“……당연하지.”
다시금 쓰게 웃었다.
* * *
행복에는 대가가 따른다. 그것이 주술의 철칙.
상호는 뒷짐을 진 채로 염주를 굴리며 그 말을 곱씹었다.
“강 선생.”
“예.”
아침 햇살이 쏟아지는 침대 위.
해련이 시뻘겋게 충혈된 눈으로 웃었다.
“배짱도 좋아.”
“죄송합니다…….”
“강 선생이 나보다 강한 걸 다행으로 생각해. 아니었으면 강 선생이 아니라 요강 선생이 되었을 테니까.”
이게 뭔 끔찍한 소리인가. 염주를 굴리던 상호의 손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어떻게 해드려요? 변기까지 앉혀드려요?”
“일단 일으켜 봐요.”
상호는 해련의 허리를 잡고 일으켜 세웠다.
피부는 여전히 푸르뎅뎅하게 멍이 들어 있었다. 겨우 하루밖에 안 지났으니 낫기를 바라긴 힘들 것이다.
해련이 팔을 살짝 움직여 보더니 눈살을 찌푸렸다.
“어제보다 더 아프네.”
“좀 볼게요.”
상호는 해련의 잠옷 어깨끈을 내렸다.
멍이 넓어지긴 했지만, 고여 있던 피가 흩어지며 생기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낫고 있는 것 같긴 해요.”
“다행이네. 근데 강 선생.”
“네?”
“옷 벗기는 게 자연스러워졌네.”
“…….”
“영감도 이렇게 거침없이 벗기진 않았는데…….”
그는 그 말을 무시하고 해련의 허리를 떠밀어 화장실로 가게 했다.
* * *
“이렇게 조이면 돼요?”
상호는 해련의 뒤에 서서 그녀의 넥타이를 매듭지으며 물었다. 곧 출근 시간이라 해련에게 옷을 입히는 중이었다.
거울을 보던 해련이 고개를 살짝 들어 옆으로 조금씩 까딱였다.
“응. 그대로 해줘요.”
상호가 넥타이를 조이자 해련이 빙긋 웃었다.
“남이 넥타이 매주는 건 또 처음이네.”
“아직도 그런 거에 의미를 두세요?”
“마음만은 소녀인걸. 아니, 이젠 몸도 소녀지. 안 그래?”
“뭐…… 젊게 살면 좋죠. 팔 조금만 들어 봐요.”
그는 해련에게 재킷을 입히고 매무새를 다듬어 주었다.
그런 다음 해련의 차림을 살피는데, 거울에 비친 책상에 누군가의 사진이 놓여 있는 게 보였다.
젊은 남자 사진이었다. 상호보다 약간 더 나이가 들어 보이는.
“저기 저 사진이 부군이세요?”
“아니, 저건 아들.”
해련이 빙긋 웃었다.
“잘생겼지?”
“그러네요. 근데 그럼…… 몇 년 전이에요?”
“20년.”
그럼 상호에게도 아버지뻘이나 다름없다. 상호는 진땀을 흘리며 해련과 자신의 세대 차를 다시 한번 실감했다.
문득 궁금해지는 것이 있었다.
“아드님 성함은 어떻게 돼요?”
“그건 왜?”
“아뇨, 그냥 궁금해서…… 말씀하기 싫으시면 안 말해주셔도 돼요.”
해련은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었다.
“강 선생은 이미 알고 있어.”
“네?”
상호는 눈을 끔뻑였다. 이게 당최 무슨 소리인지.
“제가요? 아드님 성함을요?”
“일을 똑바로 했으면 한 번쯤은 봤을 수밖에 없어. ……흠, 하긴 강 선생은 미진 양한테 다 떠넘기니 모를 수도 있으려나.”
“……크흠.”
부정하기 힘들었다.
그런데 일 때문에 알 수밖에 없다는 건 무슨 뜻인지. 상호는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다가 시계를 보고 화들짝 놀랐다.
“아이고, 빨리 가야겠는데요.”
그는 해련의 발에 서둘러 양말을 신기고 현관으로 데려갔다.
“구두는 뭘로 신어요?”
“하얀 거.”
“하얀 거요? 다 하얀데?”
“아무거나 꺼내도 돼요.”
둘은 신발을 신고 현관문을 열었다.
상호는 팔을 쓸 수 없는 해련을 위해 문을 열고 기다리다가, 복도에서 걸어오는 누군가와 맞닥뜨렸다.
설미가 그를 발견하고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상호 씨?”
재수가 없다. 하필 지금 마주칠 줄이야. 상호는 헛기침을 하고 억지로 밝게 웃어 보였다.
“좋은…… 아침이에요, 설미 선생님.”
“상호 씨가 왜 교장선생님 방에서 나와?”
“그게…….”
대체 뭐라고 변명을 지어내야 할까. 그의 머릿속이 핑핑 돌아가기 시작했다.
“……제가 교장선생님 팔을 부러트려서, 간호를 좀…… 하고 있어요.”
“상호 씨가?”
설미는 혼란에 빠진 표정이었다.
“상호 씨가 어떻게 교장선생님 팔을 부러트려? 상호 씨 교장선생님보다 훨씬 약하잖아.”
“그렇죠. 근데…… 그…… 특별한 상황이…….”
“특별한 상황……?”
설미의 뺨이 점차 발갛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또 무슨 오해를 샀나. 일단은 또 누가 오기 전에 자리를 뜨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상호는 서둘러 해련을 현관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
“빨리 가죠. 저도 교무실 가야 하니까…….”
“응, 알았어요. 아, 임 선생. 잘 잤어요?”
“네……. 교장선생님, 상호 씨가 왜 여기 있어요……?”
“아아.”
해련이 별것 아니라는 듯 씩 웃었다.
“안마하다가, 서로 실수를 좀 해 가지고.”
“안마……? 서로? 실수?”
설미가 멍하니 그 단어들을 되뇌었다.
오히려 오해가 커지는 것 같다. 상호는 해련의 허리를 붙들고 여교사 숙소의 출구를 향해 밀어붙였다.
“늦겠어요! 빨리 가요, 빨리…….”
“에이, 교장은 좀 늦어도 돼.”
“제가 늦는다고요! 교장실 가면 또 이거 해달라 저거 해달라 시키실 거잖아요!”
“맞지~.”
“아오…….”
상호는 한숨을 쉬며 해련과 함께 걸었다.
그런 둘의 등 뒤로 설미의 혼란스러운 눈빛이 달라붙고 있었다.
165. 참을 수가 없어
종례 시간.
“오늘도 고생했다.”
상호는 초췌한 몰골로 교탁 앞에 섰다.
하루 종일 굴렀더니 꼴이 말이 아니었다. 아침엔 교장실로 데려다주고, 점심엔 급식 챙겨서 교장실까지 가져가 먹이고, 쉬는 시간마다 연락해서 화장실 갈지 확인하고.
꼭 무거운 아기를 돌보는 것 같았다. 그것도 자신보다 상전인 아기.
“기숙사 가서 쉬어. 흙 잘 씻고. 전투복도 자주 빨고……. 내일 보자.”
“선생님.”
“응?”
나빛이 손을 들었다.
“오늘은 면담 안 하세요?”
“면담?”
상호는 눈을 끔뻑였다.
“너희는 1학년 때 했으니까, 특별한 일 없으면 넘어가려고 했는데……. 뭔가 이야기할 게 있어?”
“네!”
“그래. 그럼 나빛이 오늘 면담하자.”
교장실에 가지 않고 잠시 쉴 수 있다는 게 살짝 기뻤지만, 그래도 나빛을 걱정하는 마음이 훨씬 더 컸다. 대체 무슨 일이기에 면담을 하자고 하는지.
하지만 나빛의 표정은 의외로 밝았다.
“헤헤.”
상호는 그 천진한 웃음을 보며 한시름 덜어내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아이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잘 가.”
“쌤! 내일은 나!”
“너는 왜?”
“그냥~.”
“……빨리 가서 쉬어.”
“빠잉~.”
아이들은 그를 향해 손을 흔들거나 고개를 꾸벅 숙이고 교실을 빠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