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주말의 체력단련실에서는 운동에 미친 아이들의 괴성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1kg라도 늘리기 위한, 한 번이라도 더 하기 위한 기합.
그 괴성들은 상호가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잦아들었다. 상호는 멋쩍게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신경쓰지 말고 계속해.”
그러나 그 말대로 하는 아이는 없었다. 딱 한 명 빼고.
“으랏차!”
누가 온 줄도 모르고 거울 속 자세에 집중하는 아이. 상호는 그 피부가 까무잡잡한 소녀에게 다가가 물었다.
“잘 되고 있어?”
“아, 쌤.”
지윤이 바벨을 던지고 그를 바라보았다. 민소매에서 뻗어 나온 팔에는 올록볼록하게 근육이 솟아 있었다.
“약골이지예. 봉도 못 드는 건 곤란허지 않습니꺼.”
“그래?”
상호는 지윤의 옆을 쳐다보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곳에는 나디아가 축 늘어진 채로 널브러져 있었다.
하얀 면 티가 땀으로 푹 젖었다.
“그 정도야? 봉도 못 들어?”
“천생 약골입니더. 천생 약골. 진지허게 성직자 쪽으로 트는 기 나을 것 같은디…….”
“뭐, 운동은 하면서 느는 거니까. 지윤이 너도 어릴 때는 못 들었을 거 아냐.”
“지는 공깃밥 추가보다 원판 추가를 더 먼저 배웠어예.”
“…….”
상호는 가져온 수건으로 나디아의 땀을 닦았다.
“덤벨은 얼마나 드는데?”
“한 손에 6키로예. 그 이상은 굽히질 못합니더.”
“6키로…….”
6kg 덤벨 두 개가 상호의 손으로 날아들었다.
상호는 나디아를 일으켜 세우고 손에 덤벨을 쥐여주었다. 나디아의 입에서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 줄줄 새어 나왔다.
“므으으으니에에에찌즐로…….”
“한 번만 더 하자. 응?”
그러자 나디아가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을 들어 올렸다.
-점심을 못 먹어서 힘이 없어요…….
“점심? ……아.”
나빛의 괴식을 받아들이지 못한 모양이었다.
“뭐 다른 거라도 좀 먹지 그랬어.”
나디아는 대답하지 못하고 다시 축 늘어졌다.
그래도 땀 흘릴 정도로 했으면 뭔가 소득이 있을 것이다. 내일은 하나라도 더 할 수 있을 것이고.
상호는 나디아를 내버려두고 지윤을 쳐다보았다.
“지윤이. 대련 한 번 하자.”
“좋지예.”
둘은 체력단련실 한편에 놓인 링으로 걸어갔다.
링 위에 올라서자 아이들의 이목이 집중되는 것이 느껴졌다. 상호는 그 시선들을 무시하고 한쪽 손을 들어 올렸다.
“지윤이 내공은 많이 늘었나?”
“운기는 틈날 때마다 허고 있지예.”
“손바닥에 기 좀 만들어 볼래?”
지윤이 손바닥을 내밀었다.
안개 같은 기운이 짙게 서려 있었다. 상호는 그 손바닥에 주먹을 가볍게 내질렀다.
터엉
묵직한 반탄력.
아직 날붙이를 막을 정도는 아니지만, 둔기를 상대로는 충분히 쓸 만한 위력이 나오고 있었다.
이제 반탄강권만의 전투 방식을 익힐 때가 되었다.
“그게 최대인가? 계속 유지할 수 있어?”
“예. 30분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습니더.”
“좋아.”
상호는 뒤로 물러나서 자세를 잡았다.
“이제 날 쓰러트려 봐.”
“갑니더.”
지윤이 주먹을 내질렀다.
반탄강기. 그냥 받아쳤다가는 오히려 반격한 사람이 당하고 만다. 대성하면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공방일체가 되는 강력한 무공.
하지만 명백한 파훼법이 있으니. 상호는 지윤이 내뻗은 주먹의 팔목을 덥석 잡았다.
“읏……!”
지윤은 그 팔을 거두고 다른 주먹으로 공격하려 했지만, 상호는 잡아낸 팔목을 당기고 살짝 비트는 것만으로 지윤의 자세를 무너트렸다.
결국 지윤은 쪽도 못 쓰고 상호에게 딱밤을 얻어맞았다.
“끄악!”
“운기조식만 하고 유술 공부는 안 했구나.”
“다시, 다시 해예.”
지윤이 다시 주먹을 날렸다.
이번에도 비슷한 양상이었다. 상호는 지윤의 주먹을 손바닥으로 받아냈다. 팔을 뒤로 살짝 당겨서 반탄력을 흡수하며.
그가 주먹을 잡자 지윤이 이번에는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흐읍!”
“흠.”
상호는 지윤의 주먹을 놓고 검지로 지윤의 명치를 눌렀다. 그 간단한 손짓만으로도 지윤의 돌진은 무위로 돌아갔다.
대신에 주먹이 자유로워졌고, 지윤은 다시금 주먹을 날렸다. 하지만 이번에도 역시 상호의 손바닥에 막히고 말았다.
주먹을 날리면 막고. 달려들어도 막고. 발차기를 중간에 섞어도 검으로 가볍게 쳐낼 뿐이었다.
결국 지윤은 공격을 멈추고 뒤로 물러나 숨을 몰아쉬었다.
“……어렵네예.”
“딱히 빠르진 않잖아?”
“글킨 한디…….”
지금 상호는 지윤의 동체시력으로도 충분히 반응할 수 있도록 속도를 맞춰주는 중이었다.
지윤은 눈살을 찌푸리며 상호에게 장난스럽게 잽을 날렸다.
“우예 뚫습니꺼? 그로코롬 다 막아뿔며는.”
“잡아야지.”
그가 그 말을 하자마자 지윤이 기습적으로 손을 뻗었다. 하지만 상호는 재빠르게 손을 거뒀다가 다시 뻗어 지윤의 코를 톡 쳤다.
“그렇게 뻔하면 누가 잡혀 주냐. 머리를 써야지.”
“끄응…….”
지윤은 꿍얼거리며 다시 주먹을 날렸다.
주먹에 손바닥. 명치에 검지. 정강이에 칼집. 아무리 공격해도 상호의 몸에 닿지를 않았다.
더욱 짜증 나는 것은, 그 속도가 눈에 다 보일 정도로 느리다는 것. 그런데도 도저히 뚫리지가 않고, 잡으려 하면 정확히 같은 속도로 멀어지곤 했다.
“이익……!”
지윤은 약이 올라서 상호의 멱살을 향해 오른손을 뻗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상호는 간단하게 손등으로 쳐내 버렸다.
그때 지윤의 눈이 번득였다.
턱
지윤의 왼손이 상호의 손목을 잡았다.
검을 짚느라 한쪽 손밖에 못 쓰는 상호였기에 손이 어느 방향에서 들어올지 예측하기 쉬웠다.
몸의 속도가 같다면, 생각이 빨라야 한다.
“흡!”
지윤은 재빠르게 상호의 품으로 파고들어가 업어치기를 시도했다. 상호의 가슴팍에 어깨를 박고 축으로 삼아서.
상호는 지윤의 발을 걸어 넘어뜨리거나 목을 졸라 기술을 끊을 수 있었지만, 굳이 그렇게 하지는 않았다.
‘아프던데, 이거.’
상호는 작년에 지윤이 자신에게 수플렉스를 먹였던 것을 떠올리며 충격에 대비했다.
두 발이 땅에서 떨어지고.
“이야압!”
꽈앙
충격이 등과 다리를 덮쳤다.
등보다는 다리가 문제였다. 상호는 눈을 질끈 감으며 다리에서 올라오는 아릿한 고통을 견뎠다.
“……그래. 그렇게 하는 거야. 뻔하게 싸우지 말고…….”
“소원권 주십니꺼?”
“그건 이제 발행 안 해…….”
“에이, 잘했으면 주셔야지예.”
지윤이 키득거리며 그를 일으켜 세웠다.
상호는 일어서서 몸을 툭툭 털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때까지 대련을 지켜보던 아이들이 그의 시선을 피해 슬그머니 운동을 시작했다.
링 아래에서는 나디아가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내오고 있었다. 상호는 피식 웃으며 나디아에게 다가갔다.
“재밌었어?”
“소……원권?”
“응?”
상호는 당황해서 눈을 끔뻑였다. 그걸 들어 버렸나.
나디아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되물었다.
“소원권? 소원권?”
“그…… 소원권이라는 거는 말야, 권법의 일종인데…….”
“소원권!”
나디아의 눈에서 푸른 불꽃이 타올랐다.
상호는 차마 그 뜨거움을 마주하지 못해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소원권 이야기가 아이들한테 퍼지면 안 되는데.
그의 입에서 깊은 한숨이 폭포처럼 쏟아져 나왔다.
‘큰일 났다…….’
162. 너무 깊이
“쌤.”
한창 침대에 누워 중독에 관한 책을 읽고 있는데, 창문에서 태화의 얼굴이 쏙 올라왔다.
상호는 고개를 살짝 들어 태화와 눈을 마주쳤다.
“응.”
“쌤쌤쌤.”
“뭐, 왜.”
“나 치킨사죠.”
“치킨?”
시계를 보니 밤 아홉 시였다.
야식이 먹고 싶었던 걸까. 상호는 심드렁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시켜서 먹어.”
“사감쌤이 안 된대.”
“왜? 배달은 되지 않았나?”
“울 기숙사, 어떤 빡대가리가 피자 먹고 뒤처리 안 해 가지구, 저번 주부터 배달 금지됐어.”
“그럼 못 먹는 거지.”
“아앙~, 사죵~.”
태화가 창틀에 널브러져서는 팔다리와 꼬리를 마구 흔들었다.
상호도 딱히 사주기 싫은 것은 아니었다. 다만 선생으로서 공동체 생활에서의 규칙을 지켜야 할 뿐.
그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안 돼. 다른 애들 못 먹으면 너도 못 먹는 거야.”
“쌤 여장 매드무비 애들한테 뿌린다!”
“……요즘 어디 게 맛있냐?”
상호가 핸드폰을 꺼내자 태화가 실쭉 웃었다.
“진작 그럴 것이지, 헹.”
“너는 진짜……. 에휴, 고르기나 해.”
상호는 핸드폰을 건네다가 다른 아이들에게 생각이 미쳤다.
“맞다, 참. 다른 애들은 뭐 하고 있어?”
“운기조식.”
“언제 시작했는데?”
“저녁 먹고 바로.”
그럼 슬슬 깨워도 될 듯싶었다.
“가서 살살 깨워.”
“데려와?”
“아니, 여기는 좀 그렇고…….”
남교사 숙소에 애들을 데려올 순 없으니까. 상호는 고민하다가 본관 쪽을 가리켰다.
“교실로 가자. 1학년 애들도 데려와.”
* * *
밤에 홀로 불이 켜진 교실. 치킨 냄새가 안을 가득 채웠다.
붙인 책상 앞에 옹기종기 모인 아이들이 한목소리로 말했다.
“잘먹겠슴다~.”
“많이 먹어.”
상호는 약간 떨어진 곳에 서서 아이들을 지켜보았다.
총 일곱 마리. 두당 반 마리씩. 그보다 덜 먹는 아이들도 있겠지만, 남는 건 지윤과 그가 처리하면 될 터였다.
“태화가 얻어온 돈이야. 태화한테 고마워해.”
그 말에 태화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내 돈?”
“작년에 1등 한 거. 그걸로 지원금 좀 받았어.”
“우씨, 그럼 나한테 줘야지!”
“공금이지 임마. 학교에서 반에 준 건데…….”
그 말을 들은 미래가 눈을 반짝였다.
“작년 1등이 태화 언니였어요?”
대답은 상호가 했다.
“응.”
“우와…….”
“뭐야, 너. 완전 의외라는 투로 말한다?”
태화가 눈살을 찌푸리자 미래는 씩 웃어넘겼다.
“그게 언니였을 줄은 몰라서. 근데 그럼 태화 언니가 평균 1등인 거예요?”
“아니. 연말에만.”
“그럼 평균 1등은 누구예요?”
그 말에 태화는 은율을 흘끗했다.
“너지?”
은율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1학기 중간평가 1등. 1학기 기말평가 2등. 2학기 중간평가 1등. 연말평가 2등.
평균 1.5등. 평범한 학생들은 범접할 수 없는 등수였다.
“그럼 통계적으로 은율이 언니가 제일 센 거네요?”
“글쎄…….”
은율은 세희를 곁눈질하고는 헛기침을 했다.
“통계는 의미 없지 않나 싶어. 강하고 약하고는 항상 변하는 거니까…… 마지막 말고는 의미 없다고 생각해.”
“으흠.”
미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연구대상은 태화 언니로 결정.”
“무슨 연구?”
“전투 패턴? 이라고 할까요. 나중에 알려 드릴게요.”
“연구비 줄 거야?”
그렇게 저마다 수다를 떨며 치킨을 먹었다. 상호도 가만히 있기가 뭐해서 닭날개 하나를 우물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츠키가 그를 돌아보았다.
“선생님.”
“응?”
“소원권은 뭐 하면 주는 겁니까?”
올 것이 왔구나.
그래도 상호는 일단 최대한 뻗대기로 했다. 태연한 척, 별것 아닌 척.
“아아, 그거. 그냥 작년에 장난으로. 애들이 수업 잘 따라오면 준다고 했었어.”
“올해는 안 주십니까?”
“안 해, 올해는. 작년에는 나도 선생 일 처음이고 하니까 이것저것 해본 거지. 막상 해보니까 별로더라.”
“왜요? 왜 올해는 안 해요?”
단비가 닭뼈를 씹으며 눈을 부릅떴다.
“저희도 할래요!”
1학년 아이들의 시선이 상호에게 몰려들었다.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부담스러운 무게감이 느껴졌다.
상호는 세희와 눈을 마주쳤다. 제발 도와달라는 뜻으로 애처로운 눈빛을 보내며.
세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올해도 해요.”
……결정당했다.
처음부터 선택지는 없었는지도 모른다. 상호는 고개를 푹 숙이고 기어드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래…….”
* * *
그러한 연유로, 월요일 아침 교실로 들어서는 상호의 안색은 도살장의 소처럼 어두컴컴했다.
그는 교탁 앞에 서서 아이들을 둘러보고는 한숨을 푹 쉬었다.
“기습…… 수련. 시킬 거야.”
“기습이요?”
작년에 없었던 아이들이 어리둥절해했다.
반면 작년에 있었던 아이들, 세희와 태화와 나빛과 지윤은 눈을 번득이거나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었다.
상호는 팔짱을 끼었다.
“기습의 이점에 대해 설명할 수 있는 사람?”
은율이 손을 들었다.
“상대보다 한 수 앞서 생각할 수 있어요.”
“그래. 그것도 있지.”
팔짱을 낀 상호의 손에서 지탄이 쏘아져 나갔다.
준비 동작이 없었고, 지탄을 날릴 것 같은 자세가 아니었기에 아무도 예상을 하지 못했다.
지탄이 도착한 곳은 나빛의 이마였다.
퐁
“흐긱!”
작은 폭발이 일자 나빛이 눈을 질끈 감았다.
작년엔 잘 막았는데 왜 퇴보했을까. 선생을 너무 믿게 된 모양이다. 상호는 입맛을 다시고 말을 이었다.
“한 수 앞서서 생각한다는 게 뭔 뜻이냐. 선공권이야. 기습은 선공권을 아주 손쉽게 가져올 수 있는 전법이지. 그리고 내가 선공권을 가졌다는 것은, 상대의 방해를 받지 않고 내 전력을 100퍼센트, 온전히 발휘할 수 있다는 뜻이야.”
뒤에서 기습할 때는 주먹을 뒤로 한껏 당겼다가 풀스윙으로 날릴 수 있지만, 싸우는 도중에 그랬다가는 당기기도 전에 처맞거나 날렸을 때 카운터를 당하기 십상이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기습에서 제일 중요한 건 은신이야. 내 공격이 닿을 때까지 기척을 죽이는 거. 거기서 또 중요해지는 게 상대가 날 알아차렸는지 못 알아차렸는지를 구별하는 눈썰미인데……. 뭐, 그런 잡다한 건 실전으로 배우면 되겠지.”
“성공하믄 소원권 주시는 거지예?”
“응.”
“지금부터 합니꺼?”
“응.”
그 말과 동시에 상호의 이마로 성창이 날아들었다.
상호는 반사적으로 손을 들어 창날을 집었지만, 그 기세에는 깜짝 놀라 식겁을 했다. 나빛의 공격이 이렇게 매서워졌을 줄이야.
지난 1년간 가르쳐온 게 헛일은 아닌 셈이었다.
“그러니까 이렇게 대놓고 공격하라는 뜻이 아니고…….”
“헤헤.”
지탄에 대한 복수였을까. 나빛이 이마를 문지르며 방긋 웃었다.
상호는 검지로 아이들을 삿대질했다. 특히 세희, 태화, 나빛, 지윤을.
“떼거지로 달려들지 마. 그건 기습도 뭣도 아니니까. 옆 사람 눈치 봐가면서 해. 그리고 물건 부수지 마. 공격을 크게 할 필요가 없어. 공격이기만 하면 손가락 끝만 닿아도 인정해 줄 테니까 막 의자 뿌수고 벽 뿌수고 그러지 말란 말이야. 알겠어?”
“네.”
“네~.”
은율과 이츠키, 하솔, 초란처럼 소심한 아이들은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고, 이서와 가은은 아예 대답을 하지 않았다. 나머지 아이들은 한껏 밝은 목소리였다.
상호에겐 그 밝은 목소리가 가장 무서웠다.
‘그래도…… 필요한 수업이니까.’
그는 속으로 한숨을 삼키고 수업을 준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