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2화 (182/501)

 * * *

패스트푸드점에 도착하니 손님들 사이로 빨간 뿔이 하나 솟아 있었다.

“쌤!”

“쌤예~.”

 태화와 지윤이 손을 흔들었다.

퇴짜 놓고 왔더니 이렇게 마주칠 줄이야. 상호는 어색하게 웃으며 다혜를 등 뒤로 숨겼다.

“응, 안녕…….”

“쌤도 빨리 시켜서 와!”

 한숨이 나왔다.

‘아주 명령을 하는구나…….’

 그래도 마주쳤으니 도망칠 수도 없다. 상호는 다혜를 데리고 카운터로 향했다.

“뭐 먹을래?”

 그가 묻자 다혜가 직원의 뒤에 있는 메뉴판을 가리켰다. 거리가 멀어서 정확히 뭘 가리키는지 알 수가 없었다.

“치즈버거? 명태버거?”

“아으.”

“아니야? 그럼 징어버거?”

“아으!”

 다혜의 검지가 원을 그렸다.

“……다?”

“느아~.”

 다혜가 활짝 웃었다.

상호는 진땀을 흘리며 지갑을 꺼냈다.

“저기 있는 거 다 주세요.”

 알바생도 당황한 표정을 지었지만, 금방 영업용 미소로 돌아가 카드를 받아들었다.

주문을 마친 둘은 태화와 지윤의 자리로 가 앉았다. 상호는 태화와 지윤을 번갈아 쳐다보며 물었다.

“왜 너희 둘만 왔어? 다른 애들은?”

“나빛이가 요리한대서 도망쳤어.”

“지는 상관없는디 이년이 끌고 왔심더.”

 세희와 은율은 성격상 못 도망쳤고, 이츠키와 나디아는 나빛의 요리를 몰라서 그대로 희생양이 되어버린 모양이었다.

 그래도 유연이 준 요리 수첩이 있을 텐데.

“나빛이 요리 이제 잘해. 어머님한테 배웠어.”

“된장찌개에 치즈 넣고 있던데.”

“…….”

 왜 도망쳤는지 알 법했다.

지윤이 햄버거를 한 입 베어 물고는 중얼거렸다.

“나빛이 가는 먹을 걸로 장난친다니까예. 울 집에서 그카면 흠씬 두들겨 맞을 턴디.”

“나름대로 진지할 수도 있지.”

“그럼 더 문제입니더.”

“원래 발명이고 혁신이고 하는 건 엉뚱한 실패에서 시작되는 거야. 누가 알겠어. 백년 뒤엔 치즈 된장찌개가 유행할 수도 있지.”

“그 말은 쌤도 묵기 싫다는 거네예.”

“……난 된장찌개는 간단한 게 좋아.”

 한창 그와 지윤이 이야기를 하는데, 다혜가 태화의 앞에 있던 감자튀김을 집어 들었다.

태화의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우씨, 뭐야! 왜 남의 걸 훔쳐먹어!”

“아으.”

“아으는 뭘 아으야! 니 꺼 먹으면 되잖아!”

 보다 못한 상호는 태화에게 핀잔을 날렸다. 차마 다혜에게 뭐라고 할 수가 없어서.

“야, 감자튀김 하나 가지고 뭘 그러냐. 또 사 줄게. 그리고 태화 너보다 언니야.”

“알아. 쌤 첫 제자라매.”

 태화의 눈이 샐쭉해졌다.

“이젠 이 언니야만 편애하겠네. 혼자 밥도 사주고.”

“아니 임마. 내가 너한테 해준 게 훨씬 많은데…….”

“그럼 나랑도 둘이서만 먹어! 왜 저 언니만 따로 사주는데!”

“나랑 둘이서 밥 먹은 거 니가 제일 많아! 에휴…….”

 해줘도 해줘도 의미가 없구나. 상호는 한숨을 쉬었다.

다혜와 둘이서 먹으며 세희에 대해 물어보려고 했는데. 이래서는 이야기를 꺼낼 수조차 없었다.

그때 카운터에서 알바생이 소리쳤다.

“64번 나왔습니다~.”

 상호는 영수증을 확인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다혜가 벌떡 일어나 상호의 어깨를 눌렀다. 자기가 다녀오겠다는 듯이.

 하지만 상호는 고개를 젓고 다혜를 자리에 앉혔다.

“내가 갔다 올게.”

 다혜를 위해서가 아니라 주문을 너무 많이 했기 때문이었다. 가져오다가 사고라도 날 것 같아서.

카운터에 가보니 역시나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쟁반만 네 개. 그는 오른손에 쟁반을 전부 올리고 검을 짚으며 자리로 돌아왔다.

“으아~.”

 그가 테이블에 쟁반을 내려놓자마자 다혜가 신나게 포장을 벗기기 시작했다.

상호는 세상 행복한 표정으로 입을 우물거리는 다혜를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맛있어?”

 다혜는 볼이 미어터지게 햄버거를 문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순식간에 하나를 다 해치운 참이었다.

 그 모습을 본 태화가 질렸다는 듯한 표정으로 혀를 내둘렀다.

“와, 씨, 뱃속에 오지윤이 들었나.”

“이 미친 가스나가……. 마, 죽고 싶나?”

“뭐가? 너 많이 먹는 건 팩트잖아. 뭘로 알아들은 거야? 돼지? 거지?”

“이 쌍간나 주디를 칵……!”

 상호는 티격태격하는 태화와 지윤을 외면하고 다혜만 바라보았다.

먹을 때는 이렇게 행복해 보이는데. 반에서는 겉돈다고 하고. 평소에는 답답한 수갑에 입마개까지.

먹는 것 말고는 행복이 없을까.

‘……아니.’

 어쩌면 하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상호는 검을 만지작거리며 저번 주말에 아이들과 수업했을 때를 떠올렸다.

그때 다혜는 나무에 앉아 그의 수업을 구경하고 있었다.

개학식에 수업을 했을 때도 교실 창문으로 엿보고 있었고.

마침 주말이다.

‘오늘은 셋이서 수업해 볼까.’

 그는 핸드폰을 꺼냈다.

 161. 말하면 안 돼

“자. 하나씩 받아.”

 세희와 다혜는 상호가 내민 목걸이를 하나씩 집어들었다.

“목에 걸고. 서로 마주보고.”

 둘은 그 말대로 했다.

“인사.”

 세희는 고개를 꾸벅 숙였고, 다혜는 빙긋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한쪽은 기억하지 못하고, 한쪽은 기억하는데 말하지 못한다. 상호는 그런 아이들을 바라보며 엷은 한숨을 쉬었다.

“시작.”

 세희가 먼저 검을 뽑았다.

시퍼런 검광이 직선을 그렸다. 시작점은 세희가 서 있던 곳.

종착점은, 다혜가 서 있던 곳.

“윽……!”

 분명 똑바로 노리고 달려들었는데. 눈 깜짝할 사이에 시야에서 사라졌다. 세희는 속도를 줄이지 않은 채로 땅을 짚고 앞구르기를 했다.

신발에 검이 스치는 게 느껴졌다.

“우아~.”

 다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세희는 그 표정을 보고는 입술을 깨물었다. 꼭 약자를 대하는 강자의 여유로움 같아서.

‘무시하지 마.’

 하늘색 강기가 세희의 검을 감쌌다.

세희가 달려들자 다혜도 득달같이 땅을 박찼다. 치켜든 검에는 붉은 강기가 두텁게 씌워져 있었다.

피차 허초는 필요 없을 터.

둘은 정확히 서로의 검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강기는…….’

 세희는 이를 악물었다.

‘내가 더 강해!’

 검과 검이 부딪혔다.

째앵

접시를 깨는 듯한 날카로운 소리.

명멸하는 하늘빛.

 그 사이로, 세희의 손은 익숙한 감각을 기억해냈다.

‘……아.’

 검이 가볍다.

쨍그랑……

부러진 칼날이 바닥을 때렸고, 세희는 검을 휘두른 자세 그대로 얼이 빠져 버렸다.

피했다면 납득할 수 있다. 실수였다면 수긍할 수 있다. 하지만 분명 정확한 순간에 정확하게 초강기를 만들었는데.

 왜 다혜의 강기를 뚫지 못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설마, 저 사람도 초강기를…….’

 한편, 다혜는 자신의 검에 난 흠집을 내려다보며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아으……?”

 상호는 그런 둘을 지켜보다가 손뼉을 짝 쳤다. 그 소리에 세희와 다혜가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자, 자. 그만하고 이리 와.”

 두 소녀가 그를 향해 걸어왔다. 다혜는 성큼성큼, 세희는 터덜터덜.

부러진 검이 중심을 잃고 힘없이 흔들거렸다.

“무기의 강도가 중요하다는 거. 확실히 알겠지?”

 물론 세희가 그걸 모를 리 없다.

 하지만 그 말 말고는 딱히 짚어줄 게 없을 정도로 둘의 실력 차이가 현저했다.

“운기조식 열심히 하고, 강기 집중 수련도 틈틈이 하고. 세희는 월요일에 검 받으러 가자.”

“선생님.”

 세희가 혼란스러워하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제가…… 실수한 거예요?”

 상호는 세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도 세희가 왜 그런 질문을 하는지 알고 있었지만, 다혜에게는 알려주지 않은 내용이었다. 초강기에 관한 이야기.

다혜한테는 나중에 알려줘야겠다. 그는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입을 열었다.

“네가 초강기를 뽑을 수 있는 시간이 너무 짧았어. 그래서 다혜 강기를 뚫기도 전에 초강기가 풀려 버린 거야.”

 세희가 초강기를 뽑을 수 있는 시간은 0.1초도 되지 않았다. 인식은 가능하지만, 반응은 할 수 없는 속도.

세희의 수준에서는 노리고 쓰기 힘든 기술이었다. 그저 될 대로 되란 식으로 질러야 할 뿐.

“수련이 답이야.”

 상호는 세희의 어깨를 토닥였다.

 그가 조언을 마치자 이번엔 다혜가 눈을 반짝이며 얼굴을 들이밀었다. 자기한테도 뭔가 말해 달라는 뜻인 듯했다.

“다혜는 뭐…… 딱히 흠잡을 게 없네. 아무래도 넌 이미 프로 헌터나 다름없으니까…….”

“으아으으아!”

 개소리 말고 조언해 달라는 뜻 같았다.

상호는 진땀을 흘리며 검을 살짝 들어 올렸다.

“알았어, 알았어. 그럼…… 나랑도 한 판 하자.”

“으앗!”

 다혜가 눈을 똥그랗게 뜨며 검을 들어 올렸다.

다혜와 직접 검을 나누는 건 처음이다. 상호는 검으로 다혜를 겨누며 생각에 잠겼다. 수준을 어느 정도로 맞춰줘야 하나.

 그의 손에서 검이 둥실 떠올랐다.

“아으?”

 다혜가 눈을 끔뻑이다가 입을 삐죽 내밀었다. 사기 치지 말라는 듯이.

 그래도 다리 한쪽 없는 상호로서는 이 방법밖에 없었다.

“마음대로 공격해 봐. 난 여기 서 있을 테니까.”

“으아.”

 다혜가 그를 향해 서서히 다가왔다.

상호는 마음만 먹으면 이기어검으로 공격을 시작할 수 있었지만, 하수에게 선공을 양보하기 위해 가만히 서 있었다.

얼마 안 가 다혜가 짓쳐 들어왔다.

‘빠르고.’

 상호의 검이 다혜의 검을 튕겨냈다.

‘강기도 단단하고.’

 몸을 움직이는 데에도 군더더기가 없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하나.

상호는 기습적으로 지탄을 날렸다.

퍼억

“으익!”

 다혜가 어깨를 부여잡고 바닥을 굴렀다.

너무 완벽한 타이밍에 공격했을까. 상호는 뻘쭘해서 지탄을 날린 자세 그대로 굳어 버렸다.

“……괜찮아?”

“아우으…….”

 다혜는 눈물을 글썽이며 삐친 표정으로 그를 째려보았다.

‘그렇게 아프게 때리진 않았는데…….’

 상호는 헛기침을 하고 말을 이었다.

“으흠, 다혜는 돌발 상황에 반응하는 능력이 조금…….”

“느아아!”

“……조금, 쪼~금 부족한 것 같아. 그러니까 시야를 넓히고 반응속도를 빠르게 하는 훈련을…… 했으면 좋겠어. 뭐 네 담임선생님은 주 선생님이지만…….”

“느아아악!”

“미안…….”

 그는 결국 다혜를 일으켜 세우고 흙을 털어 주었다. 정당한 대련의 결과인데 왜 미안해해야 하는지.

그제야 다혜의 삐죽 내민 입이 조금씩 들어갔다.

“으아으.”

“알았어, 알았어. 다음엔 살살 할게.”

 상호는 쓴웃음을 지으며 다혜의 등을 토닥이고 세희를 돌아보았다.

“시간 많지? 좀 더 할까?”

 * * *

“들어갈게요.”

 이화관 입구에서 세희가 허리를 꾸벅 굽혔다. 그 옆에서는 다혜가 손을 흔들고 있었다.

상호는 잠시 고민하다가 둘을 불렀다.

“세희야, 다혜야.”

“네?”

“으아?”

“잠깐만 이야기 좀 하자. 따로따로.”

 세희와 다혜가 동시에 고개를 기웃했다. 그 모습이 꼭 자매 같아서 상호에게 묘한 기분을 들게 했다.

“세희부터.”

 그는 세희를 다혜에게서 살짝 떨어진 곳으로 데려와 속삭였다.

“세희야. 혹시 다혜랑 아는 사이야?”

“네?”

 세희는 흠칫하더니 골똘히 생각에 잠긴 표정을 지었다.

“아……니요. 여기서 처음 봤어요.”

“그래? 근데 다혜는 널 아는 것 같아서.”

“……그러게요.”

 세희가 중얼거렸다.

말하는 양을 보니 어렴풋이 느끼고는 있던 듯했다. 상호는 세희의 머리를 쓸어 넘기며 물었다.

“잘 생각해 봐. 기억 안 나?”

“모르겠어요. 저도 얼마 전부터 생각해 봤는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어디서 봤는지 모르겠어요.”

“그래……?”

 상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뭐, 우리 착각일 수도 있겠지. 그냥 그게 궁금했어. 들어가서 쉬어.”

“네. 고생하셨어요.”

 세희는 그 말을 남기고 허리 굽혀 인사한 후 이화관으로 들어갔다.

다음은 다혜에게 물어볼 차례.

상호는 다혜에게 다가가 눈을 마주쳤다.

“다혜야.”

“아으?”

“세희랑 같은 보육원 나왔지?”

 다혜가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그걸 어떻게 알았냐고 묻는 듯했다.

“생일이 같더라고. 세희하고 너하고……. 2월 17일. 맞지?”

“아으.”

“친했어?”

“아으.”

“세희한테 말해줄까?”

 그 말에 다혜가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상호는 어리둥절해서 눈을 끔뻑였다.

“말하지 마?”

“아으.”

“그치만 세희는 아예 기억을 못 하는 것 같은데…….”

“느아아아으으.”

 절대 하지 말라는 뜻 같았다.

무언가 생각이 있으리라. 더 왈가왈부할 문제는 아니었다. 선생이라고 해서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어도 되는 건 아니니까.

상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럼 나는 조용히 있을게.”

“으아~.”

 다혜가 빙긋 웃으며 양손을 내밀었다. 수갑을 채워 달라는 뜻이다.

상호는 착잡한 마음으로 다혜에게 수갑과 입마개를 채웠다.

언제쯤 이걸 완전히 풀어버리게 될 수 있을까.

이화관 안으로 다혜가 사라질 때까지도, 상호는 그 생각을 놓지 못해 속을 썩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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