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1화 (181/501)

* * *

“아.”

 상호는 핸드폰을 보고 깜짝 놀랐다.

“세희야, 열한 시다.”

“벌써요?”

 세희가 뺨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조금 더 하면 될 것 같은데…….”

“내일 또 하면 되지. 마침 주말이잖아.”

“아, 그러게요.”

 세희는 상호에게 다가와 손을 잡았다.

상호가 세희에게 주었던 내공이 도로 흘러들어 오기 시작했다. 상호는 세희에게 잡히지 않은 다른 손으로 세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단둘만 있는 시간이 없었네. 밥도 같이 못 먹고. 그치?”

“……네.”

 세희가 그의 가슴팍에 이마를 박았다.

“그래도 괜찮아요. 바쁘시니까…….”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지 말해. 아무리 바빠도 너희가 제일 먼저니까.”

“네.”

 둘은 말없이 손을 잡은 채로 서로에게 기대었다.

곧 내공의 이동이 끝났다. 상호는 세희의 손을 놓고 어깨를 토닥였다.

“가자.”

“네.”

 상호와 세희는 꼭 붙어 걸었다.

이화관까지는 꽤 거리가 있다. 세희는 한참을 걷기만 하다가, 문득 궁금한 것이 생겼는지 고개를 들어 상호를 올려다보았다.

“선생님. 검강발출보다 내공이 많이 들어가는 기술은 뭐가 있어요?”

“음…… 호신강기 정도? 이기어검도 있고. 근데 뭐, 경우에 따라 다르지. 호신강기는 두껍게 만들면 내공이 많이 드는 거고. 이기어검은 여러 개를 쓰면 내공이 많이 드는 거고. 검강발출도 검강을 크고 단단하게 하면 내공이 많이 드는 거고. 다 그런 거지. 다만…….”

 상호는 손을 앞으로 뻗었다.

“명확하게 내공이 많이 드는 기술이 따로 있지. 검강발출이나, 호신강기나, 이기어검보다. 훨씬 내공이 많이 드는 기술.”

 길을 걷는 둘의 앞 허공에 검푸른 불꽃으로 이뤄진 검이 떠올랐다.

세희는 그 검을 이미 본 적이 있었다. 저번 주말에. 친구들과 함께.

“이건 뭐라고 불러요?”

“나는 강검이라고 불러. 이거를 무형검이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있는데…… 딱 보면 형태가 있잖아? 만지면 또 만져지고. 그래서 나는 이건 무형검이 아니라고 봐.”

“강검……은 어떤 경우에 쓰는 거예요?”

“어떤 경우라기보다는 그냥 이게 검의 극의지. 생각해 봐. 움직임도 자유롭고 크기 조절도 자유로워. 거기다 나와 연결되어 있는 강기니까 검강발출처럼 약해지지도 않아. 이것보다 완벽한 검이 있을 것 같아?”

 만능. 모든 경우에 쓸 수 있는 검. 세희는 그 검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근데 있어.”

“네?”

 상호는 혼란에 빠진 세희를 내려다보며 씩 웃었다.

“그게 무형검이지. 보이지 않는 검.”

“그런데 그게 가능해요? 보이지 않는 강기라는 게…….”

“나도 그 경지에는 못 가봐서 몰라. 그치만…… 상상은 하지.”

 상호는 허공섭물로 돌멩이를 들어 올렸다.

“이 돌멩이 속에 저 강검을 만들면 어떻게 될까?”

“부서져요.”

“그런 다음에 바로 강검을 없애면?”

“……부서진 돌만 남아요.”

“그래. 검은 없고 베었다는 결과만 남는 거야.”

 그는 돌멩이를 던져 버리고 말을 이었다.

“그걸 찰나에 할 수 있다면, 강검을 만들었다가 없애는 과정이 참격보다 빨라진다면, 그제서야 비로소 형태가 없는 검, 무형검이 되는 거지.”

“선생님께도 어려워요?”

“어렵지. 누나도 그건 못했어.”

 강검을 맨손에 만드는 것조차도 평범한 무예가들에겐 하늘의 별 따기.

허공에 만드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고.

찰나에, 끊임없이 움직이는 적을 상대로 쓰는 것은 공상의 영역이었다.

“아직은…… 상상의 무공이지.”

 그 말에 세희가 눈을 반짝였다.

“그럼 제가 해낼게요.”

“……네가?”

 상호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세희를 내려다보았다.

웃음이 입술을 비집고 나왔다. 어이가 없다기보다는 귀여워서. 그리고 기특해서.

 다만 허무맹랑하다고는 생각했다.

“나를 넘겠다는 뜻이네.”

“네.”

 세희도 씩 웃었다. 농담이라는 듯이. 스스로도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는 듯이.

 하지만 절대로 포기하지는 않겠다는 결심이 눈빛에 깃들어 있었다.

“……그래.”

 상호는 세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넌 충분히 할 수 있어.”

 둘의 앞에는 아직 강검이 떠 있었다. 상호는 그 강기를 거두지 않았다. 세희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가야 할 길을 알려주기 위해서.

세희도 그 검에서 눈을 떼지 않았고.

둘은 검을 향해 걸었다.

 160. 겉도는 아이들

토요일, 이른 아침.

웬일로 급식소에 2학년 아이들이 보이지 않았다. 다들 늦잠을 좋아해서 이 시간에는 보기 힘들긴 했지만, 일찍 일어나는 편인 세희와 은율도 오늘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에 푸른 머리와 푸른 뿔을 가진 소녀가 보였다.

‘아리도 일찍 일어나는 편인가 보네.’

 상호는 자신의 바로 앞에 선 아리의 뒤통수를 내려다보았다. 아리가 든 식판에는 사과와 식빵 한 조각, 시리얼이 담겨 있었다.

뒤에 담임이 서 있다는 것은 눈치채지 못한 듯싶었다.

‘좀 놀래켜 줄까.’

 일단은 가만히 있기로 했다.

음식을 다 고른 아리는 식탁을 향해 걸어갔다. 상호도 검 짚는 소리를 죽이고 뒤를 따라 걸었다.

아리가 고른 자리는 아무도 없는 구석이었다.

‘혼자 먹는 걸 좋아하나? 이런…….’

 아침을 일찍 먹는 것도 부지런해서라기보다는 한적한 시간대를 골랐을 뿐인 듯했다.

같이 먹자고 하면 싫어할까. 상호는 노심초사한 마음으로 아리의 옆에 식판을 내려놓았다.

“꺄악!”

 곁에 누가 와 있는 줄 몰랐는지, 아리가 경기를 일으키며 펄쩍 뛰었다.

“으, 으……!”

“미안. 같이 먹어도 돼?”

“으으……. 네에…….”

“고마워.”

 상호는 아리의 옆에 앉았다.

아리가 그의 눈치를 보며 빵을 깨작였다. 시원스레 먹지 못하는 것을 보니 역시 그의 존재가 부담이 된 모양이었다.

‘애들이랑 빨리 친해져야 할 텐데…….’

 작년 이맘때에는 넷밖에 없어서 금방 친해졌는데. 애들이 늘어나니까 진득하게 이야기할 기회도, 시간도 없었다.

 이렇게 같이 밥을 먹을 수 있는 시간 1분 1초가 귀했다.

“아리야.”

“우뭅…….”

“아, 다 먹고 나서 대답해도 돼. 요즘 괜찮아? 그 후로 무슨 일 없었어?”

 아리는 입에 든 빵을 꿀떡 삼키고 대답했다.

“네, 괜찮아요. 가끔 저희 반으로 찾아오긴 하는데…… 그것도 요즘은 잘 안 보여요.”

“다혜 말이지? 반에 자주 왔었어? 그런데 요즘은 안 온다고?”

“네. 아마 세희 언니가 뭐라고 한 것 같아요. 그 후로 안 오는 걸 보면…….”

“……으음.”

 상호는 사과를 베어 물며 생각에 잠겼다.

다혜가 외롭고 힘들어 보이는데. 세희에게 진실을 알려주는 것이 좋지 않을까.

‘아냐, 그건 다혜한테 물어본 후에…….’

 그는 그 생각을 잠시 마음 한구석에 치워 놓았다.

“그거 말고는 괜찮아? 친구들하고는 잘 지내?”

“네. 잘 지내고 있어요.”

“누구랑 제일 친해?”

“아직은…… 잘…….”

“그럼 누구랑 제일 친해지고 싶은데?”

“그것도 잘…….”

“말하기 좀 부끄러운 부분인가?”

 상호가 피식 웃자 아리가 뺨을 붉히며 말을 더듬었다.

“그게……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2주째잖아. 마음에 드는 친구 정도는 있을 수도 있는 거 아니야? 아 얘는 좀 말이 통하는구나, 아 얘는 조금 안 맞는다, 그런 거 있잖아.”

“조금 더 지내봐야 안다고 생각해요…….”

“선생님부터 말해 볼까?”

 상호는 주변을 쓱 둘러보고 목소리를 낮췄다.

“선생님은 가은이가 제일 어려워.”

“가은이요?”

“응. 눈도 무섭고, 말투도 무섭고……. 날 별로 안 믿는 것 같아서. 그런데 왜 선생님 반으로 왔는지가 조금…… 의문이야. 너희들 사이에서는 어때? 가은이는 어떤 이미지야?”

“말을 잘 안 해요. 저는 목소리도 잘 몰라요.”

“……그 정도야?”

 상호의 얼굴에 진땀이 삐질삐질 배어났다.

“그럼…… 단비는 어때?”

 아리의 안색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단비는…… 다 잘 지내요. 저희하고도, 언니들하고도…….”

“너하고도?”

“약간은…….”

“같은 융합체잖아. 뭔가 통하는 게 있지 않아?”

“……단비는 귀엽잖아요.”

 아리가 고개를 푹 숙이자 푸른 머리카락이 커튼처럼 얼굴을 가렸다.

“저랑은…… 많이 달라요.”

 상호는 가만히 아리를 바라보다가 무심하게 말했다.

“다르긴 해.”

“……그렇죠.”

“아리 네가 더 귀엽지.”

 아리의 입에서 우유와 시리얼이 뿜어져 나왔다.

“푸우웁! ……네? 네?”

“눈이 예쁘잖아. 뿔도 멋지고.”

“네?”

 아리가 당황한 눈으로 상호를 바라보았다. 입술 아래로 우유가 한 줄기 흘러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아리는 곧 풀죽은 표정으로 눈을 내리깔며 입가를 닦았다.

“저도 제가 못생긴 건 알아요.”

“네가? 아니야. 뭔가 착각하는 모양인데.”

 상호는 아리의 머리카락을 귀 뒤로 쓸어넘겨 얼굴이 더 잘 드러나게 했다.

“눈이 좀 다르다고 못생겨지는 게 아니야. 오히려 좋아하는 사람도 훨씬 많을걸.”

“저는 살면서 그런 사람을 본 적이 없어요…….”

“지금 보고 있잖아.”

“……네?”

 아리의 얼굴이 터질 듯 달아올랐다.

“선생님……?”

“아, 물론 내가 너한테 특별한 감정이 있다는 건 아니고, 그냥 남자로서…… 말이 이상해지네. 어쨌든 객관적으로 그렇다고. 아리 너 하나도 안 못생겼어.”

 솔직한 심경이었다. 상호는 어깨를 들썩였다.

“네가 여자니까 여자 기준으로 생각하는 거지, 남자 기준으로는 충분히 예뻐. 네가 뭐 애인을 여자 중에서 고르겠다면야 내가 이러쿵저러쿵 할 말이 없다만…… 남자한테도 못생겨 보일 거라는 건 착각이야.”

“거짓말하지 마요.”

 아리가 입술을 깨물며 울먹였다.

“이런 눈을 누가 좋아해요…….”

“네 눈이 어떤데? 네가 말해 봐. 네 눈을 사람들이 왜 싫어해?”

“못생겼잖아요……!”

“못생기면 사람들이 싫어해? 그럼 그런 사람들이 잘못된 거 아니야? 그런 사람들하고 가까이 지낼 이유가 있어?”

“제가 좋아하고 싶은 사람들도 그러니까 문제죠……! 못생기고, 무섭잖아요! 다들 절 보면 깜짝깜짝 놀라고, 눈도 안 마주치려고 하고…… 그런단 말이에요……!”

“무서우면 사람들이 싫어해?”

“당연하죠!”

“그래?”

 상호는 안대를 벗었다.

험악한 흉터가 드러나자 아리가 몸을 움찔했다.

“아…….”

 본능적인 두려움. 그런 반응이 나오는 게 정상이었다.

“학교 선생님답지 않은 얼굴이지?”

 상호는 쓴웃음을 지었다.

“동의해. 맞아. 무섭지. 그런데 난 학교 선생님이고, 제자들이랑 장난도 치고, 애인도 있어. 그게 내 외모랑 상관이 있을 것 같아?”

“선생님은 잘생겼잖아요!”

“내가?”

“네!”

 아리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따졌다.

“선생님은……! 저만큼 이상하게 생기지 않았잖아요……!”

“너만큼 다르게 생긴 건 아닐지도 몰라. 그런데 하나 확실한 건, 너보단 내가 훨씬 무섭게 생겼다는 거야. 그런데 내 주변 사람들은 날 무서워하지 않잖아. 그게 왜 그럴 것 같아?”

“몰라요…….”

“오래 지내다 보면 결국 내면을 보게 되어 있어.”

 상호는 아리의 노란 눈동자, 세로로 찢어진 동공을 들여다보았다.

“외모가 아무리 출중해도 성격이 개차반이면 주변에 사람이 없는 거야. 있다 해도 사람을 껍데기만 보는 얼간이들이겠지. 그런 사람들하고 친해지고 싶어?”

“……아니요.”

“그렇지?”

 상호의 손이 아리의 뺨에 난 비늘을 쓸었다.

“너한테 필요한 건 당당함이야. 사람들 시선에 신경 쓰지 마. 지금 너한테는 아무런 도움이 안 돼.”

“그게 잘 안 돼요…….”

“그건 그렇겠지. 뭐, 시간은 많으니까. 조급할 필요는 없지.”

 그 말에 아리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분위기가 너무 가라앉았다. 상호는 삶은 계란을 입에 던져넣으며 키득거렸다.

“그리고 아리 네 눈보다 가은이 눈이 백배는 더 무서워. 낄낄…….”

“그러세요?”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상호의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눈 무서워서 죄송합니다.”

 가은이 그의 옆에 식판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선생님도 만만찮으신데. 그런 선생님께서 그렇게 말할 정도면 제가 훨씬 더 무서운 거겠죠. 굳이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딱히 궁금하지도 않았지만.”

“…….”

 상호는 식판에 얼굴을 박다시피 한 채로 식사를 계속했다. 감히 가은과 눈을 마주칠 수가 없어서.

선생이 되어가지고 제자 뒷담을 까다가 걸리다니.

‘인생……, 하아…….’

 눈앞이 캄캄해져 왔다.

* * *

결국 상호는 가은의 눈총을 받으며 급식소를 도망쳐 나왔고, 시간이 지나 점심이 되었다.

태화가 밥 사달라며 한 시간째 조르고 있었지만, 이미 선약이 잡혀 있었다. 상호는 주머니에 손을 넣고 차에 기대어 기다렸다.

곧 이화관에서 다혜가 달려 나왔다.

“으으아~.”

 다혜는 그를 보자마자 손을 흔들었다. 수갑이 차인 양손을 통째로.

상호는 조수석 문을 열어주었다.

“타.”

 둘은 차에 올랐다.

 그가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자 다혜가 얼굴을 내밀었다.

“고생이 많다.”

 상호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다혜의 입마개와 수갑을 풀었다.

“옷도 마음대로 못 갈아입겠네. 간식도 못 먹고…….”

“아으.”

 다혜는 별것 아니라는 듯이 웃었다.

“오늘 뭐 먹을래? 한식, 양식, 중식, 일식. 아니면 다른 거 뭐.”

 상호가 차례대로 손가락을 펼치자 다혜가 검지를 골랐다. 양식이었다.

“양식? 스테이크? 파스타?”

“아으.”

“아니야? 그럼 뭐…… 피자? 치킨? 그런 쪽?”

“아으아으!”

 다혜가 고개를 세로로 가로로 흔들었다. 끄덕끄덕 도리도리.

이게 대체 무슨 뜻일까. 상호의 머릿속이 핑핑 돌았다.

“……비슷하다고?”

“느아!”

 이번엔 끄덕끄덕만.

비슷한 게 뭐가 있나. 상호는 고민하다가 학교 근처에 패스트푸드점이 있다는 것을 떠올렸다.

“햄버거?”

 이번에도 끄덕끄덕만 하는 것을 보니 정답인 모양이었다.

 하기야 학생이니 재작년엔 자주 먹었을 테고, 그런 만큼 제일 많이 생각나지 않았을까. 외식을 하러 나가는데 기껏 햄버거 하나 먹자는 게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비싼 건 나중에 사 주면 될 일이었다.

상호는 핸들을 잡았다.

“그래. 그거 먹으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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