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0화 (180/501)

* * *

“이열~.”

 태화가 팔꿈치로 세희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학교짭새~.”

“시끄러.”

 세희는 옆에 앉은 태화의 허벅지를 찰싹 쳤다. 아직 추운데도 3월이라고 벌써부터 맨다리를 드러내고 있었다.

“치마나 늘려. 속옷 다 보이잖아.”

“우와~ 이제부터 시작이야?”

 태화는 오히려 치마를 허리 위로 끌어올려 입고는 다리를 쫙 벌리며 코웃음을 쳤다.

“난 쌤한테 허락받아서 상관없는뒈에에~.”

 그 말에 이서가 반응했다.

“선생님이 그런 거 허락해줘요?”

“응? 아아, 울 쌤 실은 변태라서. 치마 줄이면 말로는 뭐라해도 속으로는 엄청 좋아해.”

 그 말을 들은 1학년 아이들이 어안이 벙벙해했다. 세희는 그 표정들을 보고 눈을 치켜떴다.

“진짠 줄 알잖아!”

“진짠데? 니가 모른다고 없는 게 되냐?”

 나빛이 방글방글 웃었다.

“치마 줄이니까 갑자기 잘 대해주긴 하시더라, 헤헤…….”

“아니, 나빛이 너까지 왜…….”

 세희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알아서 해. 근데 그러다 선생님 언제 한번 진짜로 화냈다간…… 아무도 감당 못할걸. 그건 알아둬.”

 단비가 개 귀를 쫑긋거리며 물었다.

“쌤 화내는 거 본 적 있어요?”

“아니. 없으니까 무서운 거지.”

“아, 내는 봤디. 나빛이랑.”

 지윤이 피식 웃었다.

“애인이고 뭐고 없다 아이가. 코피 트지뿔고 의자 뿌수고…… 난리도 아니었제.”

 그 말에 이번에는 가은이 반응했다.

가은은 눈을 희번덕거리며 스산한 목소리로 물었다.

“애인을 때려요?”

“응?”

 그 진지한 반응에 지윤이 당황했다.

“아, 아이제. 그때는 애인이 아니었을기라. 10년 묵은 친구라 켔던가, 그랬을 거데이. 서로 장난쳤던 거제. 고거이를 고대~로 믿어뿔면 곤란혀.”

“……그래요?”

 가은은 눈을 내리깔고 고개를 앞으로 돌렸다. 하지만 스산한 목소리는 그대로였다.

“저희 선생님. 여자를 좀 밝히는 것 같던데…… 진짜 그래요?”

“아니야.”

“진짜야.”

 세희는 딱 잘라 부정했고, 태화는 빙글 웃으며 농을 치듯 말했다.

“주변에 남자가 없어. 싹 다 여자야. 아, 한 명 있나? 근데 그것도 나빛이네 오빠고.”

“맞제. 친구도 다 여자고. 쩌어~그 설쌤하고도 사이 좋고. 오는 교생쌤마다 스캔덜 터지고. 교장쌤하고도 분위기 좋다 아이가.”

 그 말에 하솔이 소스라치게 놀랐다. 나빛이 하솔을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하솔이 왜?”

“아, 아니요. 그냥…….”

 하지만 불안해하는 눈빛은 숨기지 못했다.

그때 복도에서 검 짚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들은 재빠르게 눈빛을 교환하고 자세를 바로 했다.

곧 앞문이 열리고 상호가 들어왔다.

“얘들아, 선생님 왔…… 너희 싸웠니?”

“아니요?”

“근데 표정들이…….”

 상호는 진땀을 흘리며 1학년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가은이 노려보는 것이야 예사로 치더라도, 이서의 한심하다는 듯한 눈빛과 하솔의 두려워하는 눈빛은 생소하기 그지없었다. 다른 네 명도 그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했다.

또 무슨 장난을 친 걸까.

“수업해도…… 괜찮지?”

“선생님.”

“응?”

“저 치마 좀 줄일게요.”

 이서가 다리를 꼬고 팔짱을 낀 채로 말했다.

줄여도 돼요, 가 아니라 줄일게요. 허락을 구하는 것이 아니고 통보.

멍하니 있던 상호는 정신을 차리고 눈을 부라렸다.

“안 돼.”

“왜요? 태화 언니는 짧잖아요.”

“태화는 꼬리 때문에…….”

 말하는 와중에 단비와 아리의 치마가 눈에 들어왔다.

둘 다 태화보다 두 배는 길었다.

“……이태화. 너 내일 당장 치마 늘려와.”

“아, 아! 왜! 왜! 왜! 왜아아아악!”

 태화가 바닥에 냅다 드러누워 풍차처럼 뱅글뱅글 돌기 시작했다.

“된대매! 된대매! 작년에 허락 받았자나아악!”

“임마, 동생들은 꼬리 있어도 저렇게 잘 지키잖아!”

“쌤도 즐겼잖아! 다 봐놓고 이제 와서 그러기야? 내 다리는 질렸어?!”

“내가 언제 니 다리를 봤어! 빨리 안 일어나? 수업 안 들을 거야?!”

“아 싫어, 싫어! 위에는 줄였는데 치마만 길면 븅신같아 보인단 말이야!”

“위도 늘려!”

“몰라! 다 짤라냈어! 못 늘려!”

“내가 새로 사온다. 그거 입어. 그거까지 줄이면 니 옷 싹 다 찢어버릴 거야. 알았어?!”

“찢어봐! 찢어봐! 지금 찢어보라고!”

“하…….”

 상호는 교탁에 얼굴을 박았다.

* * *

상호는 교탁을 양손으로 짚고 아이들을 둘러보았다.

“주말 잘 쉬고.”

“네~.”

“치마…… 늘리라고는 안 할 테니까, 제발 줄이지만 마라. 태화도, 이서도.”

“…….”

 둘 다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상호는 지끈거리는 이마를 손으로 꾹꾹 누르며 말했다.

“잘 가.”

“안녕히 계세요~.”

 아이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뒷문으로 뛰쳐나갔다.

모두가 교실을 나가자 혼자 남은 나디아가 벌떡 일어나 경례를 했다. 상호도 피식 웃으며 경례를 받았다.

둘만의 인사법.

오늘의 면담 차례가 바로 나디아였다.

“면담 옥상에서 할 거야. 괜찮지?”

“네.”

 둘은 함께 교실을 나섰다.

복도를 걷는 나디아의 등에서 양손검이 흔들거렸다. 상호는 그 두께와 길이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힘도 약한데…….’

 다른 아이들이 쓰는 검보다 두세 배 무거운 검. 단순하게 생각해도 두 배 느리게 움직이고, 두 배 빠르게 지친다. 종합적으로 생각하면 단점들이 시너지를 일으켜 세 배, 네 배의 효율 차이가 나게 될 터.

무기를 바꾸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상호는 그런 생각을 하며 옥상 문을 열었다.

‘어제보단 따뜻하네.’

 하루가 다르게 따뜻해지는 날씨. 그래도 조금 쌀쌀했다. 상호는 재킷을 벗으려다가 나디아를 보고 멈칫했다.

나디아는 오히려 덥다는 듯 교복 재킷을 벗어 손에 들고 있었다.

‘하긴, 추운 곳에서 왔지.’

 상호는 멋쩍게 매무새를 가다듬고 담벼락으로 가 등을 기댔다. 나디아도 그의 옆으로 다가왔다.

“나디아.”

“네.”

“한국말은 좀 늘었어?”

“아니오!”

 말이 늘었다. 단어 하나만큼.

 그래도 다혜에 비하면 양반이다. 상호는 쓴웃음을 지으며 나디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손가락 사이에 금색 머리카락이 굽이쳤다.

나디아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

“아, 미안…….”

 아이들 머리 쓰다듬는 게 습관이 되어 버렸다. 상호는 급히 손을 거뒀다.

다행히 나디아는 별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웃었고, 그는 손이 쉽게 나가지 않도록 팔짱을 끼고 입을 열었다.

“나디아.”

“네.”

“부모님이랑은 연락 잘 해?”

 그 말에 나디아의 눈빛이 흔들렸다.

가볍게 물어본 말이었는데 반응이 유난스럽다. 상호는 나디아의 얼굴을 주시하며 되물었다.

“여기 올 때 부모님이 반대 안 하셨어? 러시아에서 여기로 오기는 많이 힘들었을 것 같은데.”

“……아니오.”

 나디아가 웃었다.

 그 아니오의 의미가 부모님이 반대를 하지 않았다는 뜻인지, 한국으로 오는 게 힘들지 않았다는 뜻인지. 알 수가 없었다.

상호는 더 깊게 캐묻기로 했다. 쉬이 넘길 수 있는 내용이 아니라서.

“나디아. 솔직히 말해줘. 네가 여기로 온 걸 부모님이 알고 계셔?”

“네.”

 목소리가 뚜렷하다. 그것만은 진실인 듯했다.

 다만 대답을 정확히 하고 싶다면 핸드폰을 꺼내 번역기를 켰을 텐데, 그러지 않는 것을 보니 아마 상세하게 말하고 싶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나디아.”

 상호는 나디아의 푸른 눈을 바라보았다.

“선생님은 네가 러시아에서 어떻게 지냈는지, 부모님이랑 잘 지내는지, 네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 하지만 그걸 모른다고 해서 널 못 가르치는 건 아니야. 그러니까…… 만약 네가 말하고 싶지 않다면, 그냥 대답을 아예 안 해도 돼. 네나 아니오도 할 필요 없어. 알았지?”

“……네.”

 나디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다는 듯이 따뜻한 눈빛을 보내며.

“나디아는 왜 여기로 왔어?”

 그 말에 나디아가 핸드폰을 꺼내서 자판을 두드렸다.

 -강해지고 싶어서요.

“내가 잘 가르쳐줄 것 같아서?”

 -여기로 와야지만 강해질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여기가 아니면 강해질 수 없다. 글에서부터 결의가 가득했다.

외국에 나와서 홀로 서고 싶었던 걸까. 상호는 그쪽으로는 더 묻지 않았다.

“나디아.”

“네.”

“검 한번 들어 볼래?”

 나디아가 등에 멘 검을 뽑아 들고 자세를 취했다.

“그 검에 대해서 설명할 수 있어?”

“네?”

“그 양손검의 장점과 단점, 네 체형에 그 길이의 검을 들어야 하는 이유, 네 근력에 그 무게의 검을 들어야 하는 이유. 설명할 수 있어? 있다면 그냥 네라고만 대답해도 괜찮아.”

“어…….”

 나디아는 대답하지 못했다.

“무기를 바꾸는 것도 고민해 봤으면 좋겠어. 그 양손검으로 평범한 몬스터는 잡을 수 있을지 몰라도…… 강하고 빠른 몬스터나, 다른 학생들을 이길 순 없을 거야.”

 상호는 나직하게 물었다.

“그 검을 고른 이유가 있어?”

“……네.”

 나디아의 시선은 계속 검에 붙박여 있었다.

“그렇다면 좀 더 노력해야 할 거야. 네 상상보다 훨씬 더.”

“네.”

“자신 있어?”

“네.”

 그렇다면 어쩔 수 없다. 그게 목표라면야.

상호는 고개를 끄덕이고 검을 뽑았다.

“그럼 그렇게 해. 나도 최대한 도와줄게.”

 나디아의 목에서 마른침을 삼키는 소리가 났다. 상호의 귀까지 들려올 정도로 크게.

진검을 마주한 푸른 눈동자 속에 두려움이 스쳐 지나갔다.

 그러나 아주 잠시였을 뿐. 나디아는 곧 검을 힘차게 움켜쥐며 소리쳤다.

“……네!”

 눈빛에는 결의뿐. 더 이상 두려움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상호는 씩 웃으며 검을 까딱였다.

“와 봐.”

“네!”

 나디아가 땅을 박차고 그에게 달려들었다.

 159. 검에 관하여

“성력으로는 근육을 강화하지 못해.”

 옥상 바닥에 엎어진 나디아가 숨을 몰아쉬었다. 먼지투성이 얼굴에 땀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상대에게 공격이 닿느냐. 상대를 벨 수 있느냐. 상대를 막을 수 있느냐. 그 모든 조건들보다 앞서는 한 가지 대전제가 있어.”

 상호는 검을 칼집에 집어넣으며 말을 맺었다.

“무기를 휘두를 수 있느냐야.”

 논할 가치도 없는 무예의 기초. 강도니 간격이니 하는 것들보다도 우선하는 근본 그 자체.

상호는 나디아에게 손을 내밀었다.

“너한테 필요한 건 힘이야.”

 나디아가 그 손을 잡고 몸을 일으켰다.

“네 양손검은 모든 면이 무기야. 두 면은 날붙이, 두 면은 둔기. 네 친구들이 쓰는 검은 빠른 대신 한번 휘두르고 나면 자세를 가다듬어야 해. 날을 상대한테 겨눠야 하니까. 그런데 너는 그 동작이 필요 없어. 느린 대신에 끊임없이 공격을 가할 수 있단 말이야. 이해했어?”

“네.”

“그걸 해내려면 훨씬 강한 힘과 지구력이 필요해.”

 상호의 손에 담긴 나디아의 손은 가냘프기 그지없었다.

“내일 주말이니까, 지윤이한테 운동 가르쳐달라고 해. 내가 지윤이한테 말해 놓을게. 알았지?”

“네.”

“고생했어.”

 상호는 나디아의 옷을 툭툭 털었다.

“가서 쉬어. 저녁 맛있게 먹고.”

“네?”

 나디아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그의 손을 힘주어 잡았다. 함께 가면 되는 거 아니냐, 그런 뜻 같았다.

 하지만 요즘은 눈치가 보여서 그러기 힘들었다.

“선생님은 좀 더 있다가 갈게. 먼저 가.”

“으음……, 네.”

 나디아는 아쉬운 듯 어물쩍거리다가, 상호의 손을 놓고 옥상 문으로 걸어갔다.

상호는 계단을 내려가다가 그를 돌아보는 나디아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나디아도 면담 끝났고. 은율이만 남았나. 뭐 은율이는 알아서 잘하는 아이니까……. 응?’

 갑자기 핸드폰이 울렸다. 꺼내어 화면을 보니 세희에게서 전화가 오고 있었다.

전화가 올 만한 일이 뭐가 있던가. 그는 잠시 고민하다가 옥상 문을 향하며 통화 버튼을 눌렀다.

“응, 세희야.”

[선생님, 혹시 밤에 시간 되세요?]

“……밤?”

 상호는 눈을 끔뻑였다.

* * *

“통금시간 아니야?”

 상호는 기숙사에서 나오는 세희를 보며 머리를 긁적였다. 분명 학생 기숙사 통금 시간은 밤 열 시였는데.

바로 지금이 열 시였다.

“사감선생님한테 혼나겠다. 할 말만 하고 얼른 들어가.”

“괜찮아요.”

 세희는 전투복 차림이었다.

“교장선생님이 선도부는 통금 열한 시까지라고 하셨어요.”

“정말?”

“네. 사감선생님도 알고 계세요.”

 그런데 왜 담임인 자신은 모를까. 상호의 낯이 살짝 화끈거렸다.

“그러면 뭐…… 열한 시에 들어갈 거야? 수련하게?”

“네.”

“매일?”

“네.”

 상호의 등에 진땀이 흘렀다.

일이 늘어나는 게 한도 끝도 없다. 이러다가는 한없이 쏟아지는 일에 파묻혀 죽을지도 몰랐다.

곤란해하는 기색이 얼굴에 드러났을까. 세희가 침울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떨궜다.

“피곤하시면 저 혼자 할게요.”

“응? 아냐, 아냐.”

 상호는 다급히 손사래를 쳤다.

“피곤하긴 뭘 피곤해. 옛날엔 한 달 동안 하루에 두 시간 자고도 멀쩡했어. 그리고 너희 가르치는데 피곤한 게 대수겠니…….”

“엄청 피곤해 보이세요.”

“내가? 아니야. 세희 네가 피곤해서 헛게 보이나 본데…….”

 말을 하는 와중에 하품이 나오려 했다. 상호는 간신히 목과 턱을 억눌러 위기를 넘겼다.

“……선생님 멀쩡하다. 겉모습으로만 사람을 판단하면 안 돼. 그거 아주 나쁜 습관…… 으아…… 흡!”

“피곤하시잖아요.”

 세희가 살짝 웃었다.

“저 혼자 수련할게요. 들어가 주무세요.”

“뭐? 안 돼, 안 돼. 자, 수련하러 가자, 수련.”

 상호는 세희의 손을 잡아끌었다.

밤에 시끄럽게 하면 아이들이 잠을 못 잘 테니, 기숙사에서 멀리 떨어져야 했다. 둘은 학교 부지의 으슥한 구석으로 향했다.

걷는데도 자꾸 하품이 나왔다.

‘체력이 떨어지긴 했구만. 운동을 따로 할까…….’

 외진 곳에 도착하자 세희가 그를 마주하고 섰다.

 아직 뭐라 하지도 않았는데 검까지 뽑는다. 상호는 당황해서 머리를 긁적였다.

“대련하고 싶어?”

“네.”

 세희의 검이 상호를 겨누었다.

“요즘 잘 안 가르쳐주시잖아요.”

 사실이긴 했다. 1학년과 유학생들을 신경 쓰느라 작년부터 봐 왔던 아이들은 뒷전으로 밀려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사장이랑 거래도 했지…….’

 전국 1등을 한 명 만들어야 한다. 그게 세희든, 태화든, 나빛이든.

셋 다 나름의 가능성이 있었지만, 가장 난이도가 쉬운 것을 따지면 아무래도 세희이긴 했다. 천색창염의 내공을 쏟아부어 주면 되니까.

 다만 세희는 그런 방식을 좋아하지 않을 것이고, 그래서 상호도 그 방법은 영 내키지 않았다.

 그는 검을 뽑으며 말했다.

“검강 한번 보여 줄래?”

 하늘색 강기가 세희의 검을 휘감았다.

“좋아, 그걸 이제 발출시켜 봐.”

 그의 말에 세희가 몸을 움찔했다.

“검강을요?”

“응. 아직 내공이 부족한가?”

“음…….”

 세희는 검을 움켜쥐고 집중하더니 허공에 세차게 휘둘렀다. 하늘색의 얇은 기운이 궤적을 따라 날아갔다.

기운은 바닥에 부딪히자 얇고 잘은 금을 남기고 사라졌다. 상호는 그 모습을 보고 검을 치켜들었다.

“자, 검기와 검강의 차이가 뭐지?”

“늘릴 수 있느냐 없느냐요.”

“그럼 검기발출과 검강발출의 차이는 뭐지?”

 세희가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다가 그의 시선을 피했다.

“……잘 모르겠어요.”

“부끄러워하지 마. 안 배웠으니까 모르는 게 당연하지.”

 상호의 검에 검푸른 불꽃이 피어올랐다.

“검기를 발출하는 이유가 뭐야?”

“거리의 우위를 점하고 상대의 행동을 제한하기 위해서…….”

“그렇지. 상대의 행동을 제한하는 거. 그 말은 검기발출로는 상대를 쓰러트리기 힘들다는 뜻이 담겨 있는 거지?”

“네.”

“왜일까?”

“검기든 검강이든…… 일단 발출되고 나면 그 순간부터 강도가 현저하게 낮아지니까요.”

“그렇지. 나와의 연결이 끊어지니까. 어쨌든 요점은 검기발출은 공격의 보조수단이라는 거야.”

 상호는 저 멀리 놓인 바위를 향해 검을 가볍게 휘둘렀다. 흐릿한 기운이 날아가더니 작은 폭발이 일어났다.

산산이 부서진 바위 조각이 땅을 굴렀다.

“이건 검기발출이야. 다시 묻자. 검기와 검강의 차이가 뭐지?”

“늘릴 수 있느냐 없느냐…….”

“그걸 가능하게 하는 요인은?”

“기의 집중이 얼마나 강한가…….”

“그렇지.”

 상호가 다시 한번 검을 휘두르자 이번엔 뚜렷한 검강이 날아갔다.

검강은 바위와 나무를 수없이 가르고 지나가더니 마지막에 폭발해서 사라졌다.

“이게 검강이야. 차이가 보여? 아까 것보다 단단하지?”

“네.”

“지금부터가 본론이야. 재밌는 거 보여 줄게.”

 상호는 다시금 검을 휘둘렀다.

이번에도 역시 검강이었다. 세희는 눈에 힘을 주고 그 검강을 주시했다.

어째 먼젓번의 것보다 속도가 느렸다.

 아주 확연하게.

‘뭐지……?’

 세희가 그 속도에 의문을 품었을 때.

검강이 갑자기 빨라지더니 쏜살같이 나무들을 가르고 지나갔다.

‘어?’

 허공을 찢어버릴 듯이 가속한 검강은 궤적의 모든 것을 베어버리고는 폭발과 함께 사라졌다.

“어…….”

 어안이 벙벙한 세희의 귀에 상호의 목소리가 흘러들었다.

“검기발출의 목적은 상대의 움직임을 제한하기 위해서지? 상대의 움직임을 제한하기 위한 공격을 뭐라 그래?”

“허초……요?”

“맞아. 모든 검기발출은 허초야. 그리고 허초는 변화무쌍할수록 상대를 속이기 쉬워져.”

 상호는 방금 날려 보냈던 검강의 흔적들을 가리켰다. 잘린 나무, 쪼개진 바위.

“그리고 이게 바로 검기발출을 완벽한 허초로 만들어 주는 기술이야. 사실 검기가 아니라 검강이지만. 이 기술을 쓰려면 반드시 검강을 발출할 줄 알아야 해.”

 그가 손을 뻗자 바닥에 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구부러진 초승달 모양.

상호는 초승달의 바깥쪽을 가리켰다.

“이게 검강발출이라고 치자. 여기가 물건을 베는 곳이지?”

“네.”

“만약에 이 바깥쪽을 단단하게 하고.”

 그리고 안쪽을 가리켰다.

“이 안쪽을 느슨하게 풀어주면 어떻게 될까?”

“……가속해요?”

“가속하지. 로켓처럼.”

 세희의 입이 살짝 벌어졌다. 놀라운 사실을 깨달았다는 듯이.

“그럼 이거를 깔아두고, 상대가 방심할 때 가속시키면…….”

“깜짝 놀라지. 그럼 빈틈이 생기고. 또 응용하자면 검강 두 개의 속도를 맞춰서 동시에 들어가게 할 수도 있지. 각각 다른 방향일 수도 있고, 겹쳐서 강하게 만들 수도 있고.”

“아…….”

 세희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생각에 잠겨 있다가, 곧 흠칫하며 상호를 돌아보았다.

“이것도 내공이 많이 필요해요?”

“무시무시하게 많이 들어가지. 검강발출보다 내공이 많이 필요한 기술은 별로 없어. 너희 수준에서는.”

“그런가요…….”

 풀 죽은 목소리.

상호는 피식 웃고는 세희의 손을 잡았다.

“빌려줄 테니까 연습해봐.”

“네? 아…….”

 이미 뜨거운 내공이 흘러들고 있었다.

세희는 살짝 당황했지만 옛날처럼 거절을 하지는 않았다. 이제는 겸연쩍고 송구한 마음보다는 하나라도 더 배우겠다는 생각이 강했다.

내공을 받은 세희는 뒤로 물러나서 검을 들어 올렸다.

“시작할게요.”

“응. 보고 있을게.”

 검이 허공을 갈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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