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8화 (178/501)

* * *

저녁 시간.

기숙사 앞을 지나가던 상호의 앞에 차 하나가 섰다. 상호가 눈을 끔뻑이자 창문이 열리고 건흠이 얼굴을 내밀었다.

“강 선생. 밥 먹었나?”

“아뇨. 아직 안 먹었습니다.”

“그럼 다혜랑 셋이 먹을까?”

 건흠이 엄지로 뒤를 가리켰다.

뒷자리에서 다혜가 차창에 얼굴을 바싹 붙이려다가 입마개를 박았다.

“악! 아우으…….”

“그러죠.”

 상호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고 조수석에 앉았다.

 그가 벨트를 매자 다혜가 운전석과 조수석 사이로 얼굴을 쏙 들이밀었다.

“다혜는 뭐 좋아해요?”

“그냥 다 잘 먹는 걸로 알고 있는데……. 다혜야, 한식?”

“아으…….”

“양식?”

“아으…….”

“중식? 일식?”

“아으, 우아…….”

 좋다는 건지 싫다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상호는 난색을 지으며 다혜를 돌아보았다.

“그냥 아무거나 다 좋아?”

“으아.”

 다혜가 고개를 끄덕였다.

상호는 피식 웃고는 건흠에게 말했다.

“그래. 그럼 고기나 먹으러 가죠.”

 * * *

“잘 먹네요.”

 상호는 곤히 자는 다혜를 돌아보았다.

혼자서 고기 3인분을 흡입하고 찌개와 밥에 냉면까지 해치웠다. 병원에서 밥도 잘 안 먹던 때와는 딴판이었다.

“다혜랑 자주 같이 드셨어요?”

“방학에 많이 먹었지.”

“늘 저렇게 먹어요?”

“어느 순간부터 저렇더라고.”

 건흠은 웃는 기색으로 말했지만, 상호는 가라앉은 목소리를 내었다.

“좋은 증세는 아닌 것 같습니다.”

 건흠의 안색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그래?”

“채워지지 않는 허기가 있는 것 같아요.”

 아마도 용으로만 채울 수 있는 허기.

상호는 다혜의 몸속에 있던 용의 마나를 떠올렸다.

“용혈 중독……이라고 할까요. 몸이 용의 마나를 계속 원하게 되는 겁니다. 다혜는 아마 용을 먹어서 용의 마나를 얻었을 테니…… 그 중독 증상이 폭식으로 나타나는 거죠.”

“……그럼 어떻게 하지?”

“치료해야지요. 마약이나 담배를 끊듯이.”

 상호의 시선이 창밖을 향했다.

“저도 그쪽으로 공부를 좀 해 보겠습니다.”

“나야 고맙지.”

 건흠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쉽지 않겠네. 이성을 잃을 정도의 중독이라…….”

“그렇겠죠. 그래도 다행히…… 제 주변에 중독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있어서.”

“아, 정말? 뭐…… 의사나 상담사, 그런 쪽?”

“아뇨.”

 상호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수녀요.”

 156. 치료가 필요해

목소리 들어본 지도 참 오래됐다. 상호는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생각에 잠겼다.

‘전화해서 내 할 말만 하면 또 X나 화내겠지?’

 무언가 핑계가 있어야 한다. 오랜만에 목소리를 듣고 싶었다든가. 언제 한번 보자든가.

상호는 그런 말들을 준비하며 효은에게 전화를 걸었다. 짧은 연결음이 끝나고 통화가 연결되었다.

“야, 효은.”

[…….]

“효은?”

[…….]

“여보세요?”

 아무리 불러 봐도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상호는 전화가 제대로 걸렸는지 확인하고 다시 효은을 불렀다.

“효은?”

 쌔근거리는 숨소리만 들렸다.

삐친 걸까. 상호는 진땀을 흘리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목소리 듣고 싶어서 전화했어.”

[……흐꺽!]

“응?”

 딸꾹질 소리.

“뭐야, 너 울어?”

[……끅!]

느낌이 조금 다르다. 상호는 그 소리를 듣고 알아차렸다.

“취했냐?”

[……으으으으으어어허헝헝헝…….]

그라데이션 울음소리.

효은이 목놓아 울기 시작했다.

[야이개X버랄새기야……!]

 혀가 꼬여서는 욕도 제대로 못 한다.

담배 어떻게 끊었냐고 물어보려 했는데, 중증 알코올 중독이란 것만 다시금 확인하게 되었다. 상호는 한숨을 푹 쉬었다.

“그래. 욕해서 풀리면 맘껏 해. 니가 뭐 때문에 화가 났는지는 모르겠지만…….”

[찌발럼아아아!]

효은이 목이 찢어져라 소리를 쳤다.

[머 때무네 하가 낫는지 몬나? 이래서야 안 사길 때랑 또깟자나! 보고 시플 때 얼굴도 못 뽀고, 나한태는 간심도 업꼬, 으헝헝헝…….]

“주말…… 주말에 갈게. 이번 주말에. 응?”

[머가 주마리야! 당장 띠어와!]

“평일에 어떻게 가! 맨날 일곱시 여덟시 출근인데. 나도 바쁘단 말이야.”

[몰라 나쁜 새끼야! 마시고 대질꺼야. 흐헝엉엉…….]

 무언가를 꼴깍꼴깍 마시는 소리가 들렸다. 술의 종류는 모르겠지만 병나발을 불고 있는 모양이었다.

[나도 여내다운 여내 좀 해보자! 개새끼야. 어흐흑……. 이 나이 처머꼬 대이뜨다운 대이뜨 한벙 해 본 저기 업서!]

“어쩌겠냐. 내가 학교 선생인데. 그것도 목숨 거는 직업에 종사할 애들을 대충 가르칠 수도 없고…….”

 상호도 효은을 버려두고 싶어서 이러는 게 아니었다.

“수녀원을 나와, 그냥. 여기 주변에 살면 되잖아.”

[종교가 줫으로 보이냐?!]

“아니 니가 언제 그런 걸…….”

 술 취한 사람하고 무슨 이야기를 더 하랴. 상호의 입에서 한숨이 쏟아져 나왔다.

“됐어. 내일은 못 가. 주말에 갈게.”

[지금 오라고!]

“나도 힘들어…….”

 나빛, 태화, 1학년들, 다혜.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지경인데 절름발이이기까지 하다.

“힘들어. 힘들어 죽겠어, 그냥. 니가 안 그래도 너무 힘들다고…….”

[힘드러?]

효은의 말투가 표독스러워졌다.

[내가 힘드러? 나 만나는게 힘드러? 아아, 그래써?]

 뭔가 단단히 착각한 듯했다. 상호는 황급히 소리쳤다.

“야, 뭔 소리야! 당연히 너 말고 학교 일이…….”

[댓써! 나 주그꺼야! 우어헝헝…….]

 그 절규를 끝으로 통화가 끊겼다.

상호는 핸드폰을 부여잡고 고개를 푹 숙였다.

‘내일 출근해야 된다고, 이 인간아…….’

 그래도 죽겠다는데 가야지 뭐 어쩌랴. 방금 벗은 양말과 양복이 그의 손으로 날아들었다.

* * *

“내가? 언제? 그래써?”

 효은이 눈을 똥그랗게 뜨고 끔뻑였다.

“내가 왜 주거? 나 너랑 통하한적 업는대?”

“……술 끊어.”

 상호는 핸들에 머리를 박았다.

신나게 달려왔더니 이젠 알코올성 기억장애.

“내가 전화 거니까 그랬잖아. 사귀는 거 같지가 않다고……, 죽겠다고.”

“그래써? 신기하다. 내가 맨날 생각하는 건데.”

“니가 한 말이라고…….”

“난 그렁말 한 적 업는대?”

 효은은 코와 귀가 붉었다. 이미 얼큰하게 취한 모습이었다.

술기운 때문일까.

효은이 평소답지 않게 헤실헤실 웃었다.

“그래두 오랜만에 너 보니까 조타.”

“…….”

 상호의 뺨이 붉어졌다.

밖은 밤이다. 시간은 새벽 한 시. 여섯 시간 뒤에는 출근해야 했지만, 그는 서두르지 않았다.

“나도.”

 그 말에 효은은 상호의 어깨에 기대어 왔다.

상호는 효은의 어깨를 감싸고 잠시 몸을 기우뚱거리다가, 약간이라도 제정신일 때 물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효은.”

“응?”

“너 담배 어떻게 끊었어?”

 효은이 씩 웃었다.

“보여주까?”

“……응?”

 보여주긴 뭘 보여준다는 걸까. 상호는 멀뚱히 효은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기웃하며 대답했다.

“응.”

“바바~.”

 효은이 수녀복 어딘가에서 담배를 꺼냈다.

끊었다더니 왜 가지고 있는 걸까. 상호는 효은이 담배 한 개비를 꺼내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효은은 그 담배의 가운데를 양손의 검지와 엄지로 집더니.

빠작

끊어버렸다.

“…….”

“짠~. 끄너따. 낄낄낄…….”

 상호의 정신이 아득해졌다.

* * *

 그렇게, 술담배는 못 끊는다는 것만 다시 확인하게 되었다.

상호는 교무실 자리에 앉아 퀭한 눈으로 두꺼운 책의 페이지를 넘겼다.

옆자리에 앉은 설미가 고개를 들이밀었다.

“무슨 공부를 그렇게 해?”

“중독치료요.”

“중독? 무슨 일인데?”

“몰라도 돼요. 그냥 그런 게 있어요.”

“으음, 궁금한데…….”

 설미는 출석부를 챙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먼저 갈게. 이따 봐.”

“네…….”

 상호는 고개를 꾸벅였다.

인사를 한 게 아니라 졸려서였다. 밤에 효은을 만나러 갔던 것 때문에 한숨도 못 잤다.

‘냉수나 한 잔 마셔야겠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다가 건흠과 눈이 마주쳤다.

건흠은 그의 퀭한 몰골을 보고 무언가 오해를 했는지, 무한한 신뢰가 담긴 눈빛을 부담스러울 정도로 보내고 있었다. 아마 밤새워 중독치료에 대한 공부를 했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상호는 그대로 다시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시바, 솔직히 책 봐도 뭔 소린지 모르겠는데…….’

 그렇다고 다혜에게 계속 입마개와 수갑을 채워 놓을 순 없는 노릇이니.

어떻게든 해야 하는 일이었다.

‘하루아침에 되지는 않겠다만…….’

 상호는 시계를 확인하고 책을 계속 읽어나갔다.

* * *

“쟤 또 왔네.”

 태화가 다리를 꼰 채로 발을 건들거렸다.

“쉬는 시간마다 오네. 단비야. 너도 저런 거 사 줄까?”

“멍? 아, 아니요.”

“농담이야, 농담.”

 복도 쪽 창문에 다혜가 달라붙어 있었다.

두더지 게임의 두더지처럼 얼굴을 쏙쏙 올리고 내리며. 안쪽에 누가 있는지를 살피는 중이었다. 세희는 그 모습을 곁눈질로 흘겨보았다.

옆에서 태화가 낄낄거렸다.

“완전 개야, 개. 단비보다 더 개같애. 어제 보니까 코도 킁킁거리더만. 야, 단비야, 귀꼬리 떼서 쟤 주라.”

“멍…….”

“농담이라고.”

 단비가 귀를 축 늘어뜨리자 태화가 핀잔을 주었다. 세희는 그 모습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선생님 귀에 들어가면 너 죽을걸.”

“몰라~, 몰라~.”

“쟤가 아니라 언니야. 선생님 첫 번째 제자라고 했잖아.”

“아, 그랬나?”

 태화는 그 말을 듣고 다혜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3학년이야? 근데 작년엔 학교 안 다녔잖아. 그럼 어떻게 되는 거야?”

“선생님이 2학년이라고 하시던데.”

“아, 1년 꿇었구만. 그럼 저 언니는 3학년에 술 먹겠네.”

“머리가 그런 쪽으로밖에 안 돌아가?”

 세희는 혀를 차고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조심해. 너 저 언니 뒷담하다 걸리면 박살날지도 몰라.”

“개같은걸 개같다고 하지 그럼 뭐라 그래?”

“니 알아서 해.”

“뉘예~ 뉘예~.”

 태화는 꼬리로 세희의 뺨을 꾹 누르고는 단비와 수다를 떨었다.

단비의 옆에서는 아리가 몸을 움츠리고 있었다. 푸른 머리카락 사이로 두려움에 떠는 노란 눈동자가 보였다.

세희는 검을 챙겨 벌떡 일어났다.

“세희야?”

 나빛이 불렀지만, 세희는 반응하지 않고 성큼성큼 걸어가 뒷문을 사납게 열어젖혔다.

 그리고 다혜를 노려보았다.

“오지 마요.”

“아으……?”

 다혜가 고개를 기웃했다.

세희는 힘을 주어 다시 한번 말했다.

“오지 말라고요. 아리가 무서워하잖아요. 대체 왜 자꾸 찾아오는 거예요?”

“으…….”

“선생님은 교무실에 계세요. 선생님 찾는 거면 교무실로 가세요. 여기서 괜히 아리 겁주지 말고.”

“으아…….”

 다혜는 고개를 저으며 세희에게 다가왔다.

그리곤 수갑이 차인 양손을 세희의 얼굴을 향해 들어 올렸다. 세희는 흠칫하며 뒤로 물러났다.

“뭔…….”

 다혜의 손이 세희의 땋은 머리카락을 잡았다.

“으흐……아.”

 다혜가 빙긋 웃었다.

살짝 모자란 듯 얼빠진 목소리와는 달리, 이상하게 어른스러운 웃음이었다. 적어도 세희의 눈에는 그렇게 느껴졌다.

“아, 으.”

 세희는 다혜가 자신의 머리카락을 풀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몸을 확 뺐다.

긴 생머리가 허공에 흐트러졌다.

“뭐하는 거예요?”

“으…….”

 다혜는 굽어지지 않는 손으로 다시 세희의 머리카락을 땋기 시작했다.

 그 서투른 손길에 세희는 화를 내려 했지만.

‘어……?’

 어째서인지, 익숙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아무리 떠올리려 해도 기억은 나지 않고. 우두커니, 멍하니 다혜가 머리를 땋는 것을 지켜볼 뿐이었다.

‘뭐지?’

 이런 일이 있었던 기분.

누군가가 머리를 땋아주고.

“아으…….”

 저렇게 웃어주던 기억이 떠오를 것만 같은 기분.

‘……아니야.’

 세희는 눈살을 찌푸렸다.

머리를 땋은 것은 검을 쥐고 난 후. 긴 머리가 거추장스러워서 정리했을 뿐이다. 그것도 직접.

……그전에는 땋은 적이 없었을까.

‘아닌데…….’

 기억에 혼선이 오는 것 같았다.

세희는 혼란스러운 얼굴로 다혜에게서 머리카락을 뺏어 들었다. 한참 집중하던 다혜는 머리카락이 손에서 빠져나가자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으으…….”

“남의 머리로 장난치지 마요.”

 세희는 그렇게 말하고 뒤돌아섰다.

“반에도 찾아오지 마요. 또 오면 선생님께 이를 거니까.”

 다혜가 고개를 푹 숙였다. 수갑을 찬 손을 모아쥔 채로.

“으응…….”

 그러고는 복도를 터덜터덜 걸어갔다.

세희는 문가에 멈추어 서서 그 뒷모습을 쳐다보다가, 자신의 땋은 머리카락을 내려다보았다.

땋는 방식이 꼭 같았다. 방법도, 두께도.

‘우연이겠지.’

 세희는 교실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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