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교무실에 들어가니 건흠과 다혜가 건흠의 자리 주변에 앉은 게 보였다.
다혜는 혼이 난 강아지처럼 축 처진 채로 고개를 숙였고, 건흠 또한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이마를 짚고 있었다.
상호는 문을 닫으며 건흠을 불렀다.
“주 선생님.”
건흠의 시선이 상호를 향했다.
“강 선생…….”
상호는 고개를 꾸벅 숙이고 둘에게 다가갔다.
검이 땅을 짚는 소리에 다혜가 고개를 들었다.
“아으…….”
큰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어쩌다가 이렇게 됐을까. 상호는 그 모습을 보고 한숨을 푹 쉬었다.
“왜 그런 거야…….”
다혜는 대답하지 못했다. 애초에 말을 못 하지만.
상호는 다른 자리에서 의자를 가져와 건흠의 곁에 앉았다.
“학폭위를 열 것 같다……고 하시던데요.”
“그렇겠지.”
둘은 다혜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게 대화를 나눴다.
건흠이 손으로 얼굴을 문질렀다.
“어찌 되었든 칼 들고 달려들었으니까. 교장선생님이 덮어줄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거야. 하아…….”
“아마 어떻게 될 것 같으세요?”
“우선은 격리하고, 조사하고, 그다음에 처분을 내리겠지.”
조사. 상호는 그 말을 되뇌었다.
다혜는 말을 할 수 없으니, 아마 건흠이 대신하게 될 터.
“사실대로 말할 거예요?”
“어떡하지?”
오히려 건흠이 되물었다.
건흠의 눈동자 또한 흔들리고 있었다.
“다혜는 갈 데가 없잖아. 편들어줄 사람도 나랑 자네밖에 없고…… 불리한 말을 했다가는 무조건 다혜한테 안 좋게 돌아올 거란 말이야.”
“그렇다고 이대로 둘 수도 없고요.”
“그도…… 그렇지.”
뭐가 어찌 됐든 사람 목숨이 달린 일이니 말이다. 다혜가 또 참지 못하고 달려들면, 그리고 그 주변에 교사가 없다면.
돌이킬 수 없는 사고가 일어날 터였다.
“지금 계속 고민하는 중이야. 뭔가 방법이 없을까? 다혜랑 자네 반 아이가 언제 어디서 마주치든 안전할 수 있는 방법…….”
“……그러게요.”
상호는 눈을 내리깔고 중얼거렸다.
맘 같아서는 다혜 곁에 24시간 붙어서라도 학교를 다니게 하고 싶지만, 맡은 반이 있으니 그래서는 안 되었다.
‘방법, 방법…….’
고민하는 와중에 핸드폰이 울렸다. 누구에게 왔는지는 안 봐도 뻔했다.
상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학부모님 오셨나 봅니다.”
“잘 좀 말해줘.”
건흠이 간절한 눈빛을 보냈다.
상호도 그러기를 바랐다. 그렇게 할 것이라고는 확언하지 못했지만.
“……노력해 보겠습니다.”
상호는 돌아서서 교무실을 나섰다.
* * *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교장실에 도착해 보니 해련이 설명을 하고 있었다.
아리를 사이에 두고 소파에 앉은 부부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짓다가, 방금 교장실에 들어온 상호를 발견하고 떠듬떠듬 물었다.
“강 선생님? 이게…… 무슨 일…….”
오늘 처음 만나는 사이지만, 피차 통성명은 필요 없었다. 상호는 고개를 푹 숙였다.
“죄송합니다.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이런 일이…….”
“아니, 교장선생님이 안 계셨으면 어쩔 뻔…….”
아리의 아버지가 잠시 숨을 고르고 말을 이었다.
“어쨌든 막으셨다니 그건 넘어가고. 그, 왜 그랬답니까?”
“……그게.”
상호는 오면서 생각해둔 변명을 꺼냈다.
“그 아이가 용에 대해 안 좋은 기억이 있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대요?”
“용과 싸운 적이 있습니다. 그 아이가 좀 특별한 아이라서요.”
해련이 말없이 상호를 바라보았다.
진실을 숨기고 다혜를 옹호하기로 했느냐, 그렇게 묻는 듯했다. 상호는 눈을 마주쳐 뜻을 전했다.
다혜는 그가 이 학교에 온 이유였다.
“그 트라우마가 있어서 그런 일이 생긴 거지…… 평소에도 폭력적이거나 한 아이는 아닙니다. 물론 이번 일은 그 아이가 전적으로 잘못했습니다만…….”
단어 하나하나를 고르고 골라야 했다. 그는 아리의 담임이고, 잘못은 다혜가 했기에.
다혜를 옹호한다는 느낌을 풍겼다가는 일이 대차게 꼬일 터였다.
“다행히 아리가 무사하니까, 이제 다시는 그런 사고가 벌어지지 않을 겁니다. 저희가 모든 수단을 써서 아리가 정상적으로 학교를 다닐 수 있게 하겠습니다.”
“그 아이는 어디 있습니까?”
“지금 교무실에 담임하고 같이 있습니다.”
“그 아이 부모님은 왔나요?”
상호의 말문이 턱 막혔다.
“……안 계십니다.”
“아……, 그렇습니까.”
아리의 아버지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상호는 그 모습을 보고 의외로 일이 쉽게 풀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리의 부모는 놀라긴 했어도 화는 나지 않은 것 같았다.
해련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들에게 걸어왔다.
“많이 놀라셨을 텐데, 오늘은 따님과 같이 지내시는 게 좋겠습니다. 가해 학생에 대한 조치는 오늘 바로 취할 테니, 내일부터 바로 정상적으로 등교하셔도 됩니다.”
“……예.”
아리의 부모가 아리를 데리고 소파에서 일어났다.
계속 수그리고 있던 아리가 고개를 들어 상호와 눈을 마주쳤다. 상호는 그 노란 눈, 세로로 찢어진 눈을 보며 입을 달싹였다.
‘아리야, 다혜는…… 이상한 애 아니야.’
하지만 그렇게 말해서는 안 되었다.
결국 그는 짤막한 한 마디밖에 말해주지 못했다.
“내일 보자, 아리야.”
아리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곧 아리의 부모가 인사를 남기고 교장실을 나갔다. 상호는 문이 닫히자마자 해련을 돌아보았다.
“조치는 어떻게 하실 생각이세요?”
해련이 손으로 입을 짚으며 생각에 잠겼다.
“지금 다혜가 아리를 공격한 이유가 백 퍼센트 확실한 건 아니잖아요.”
“그……렇죠.”
“그럼 다혜가 다른 아이를 공격하지 않을 거란 보장이 없잖아요.”
“그렇겠죠…….”
책임자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생각해야 한다.
해련이 말을 이었다.
“그럼 다혜를 24시간 감시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오는데……, 그 아이, 실력이 보통이 아니라서. 감시와 제압을 제대로 해낼 수 있는 사람은…….”
상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돌봐야겠죠.”
“내가 돌봐야……?”
둘의 말이 겹쳤다.
상호는 의아한 표정으로 눈을 끔뻑이는 해련을 향해 손사래를 쳤다.
“아, 아니. 당연히 저는 안 되죠. 큰일나죠.”
“……하여튼 그래서 내 곁에 두고 있으려고. 오늘도, 내일도. 특히 내일은 조사를 받아야 하니까 어차피 수업은 못 할 거고. 교장실에 나랑 같이 있게 되겠죠.”
해련이 한숨을 쉬었다.
“강 선생.”
“예.”
“이사회는…… 옳고 그름보다는 이득과 안전을 중시할 거예요.”
한쪽은 천애고아.
한쪽은 양친이 멀쩡한 아이.
이사회가 어느 편을 들지는 뻔했다.
“그것도 확실한 안전을요. 그러니까…… 마음의 준비를 해 두는 게 좋겠어요.”
“퇴학이요?”
상호는 힘이 쭉 빠진 목소리로 물었다.
“다혜는 갈 데가 없는데…….”
“이사회는 그런 건 신경 안 써요.”
해련이 돌아섰다.
“조사는 내일 아침, 주 선생님하고 교장실에서 할 거고, 학폭위는 오후에 열릴 거예요. 뭔가 할 말이 있다면 그때 오도록 해요.”
“네.”
상호는 고개를 숙인 채로 고민에 잠겼다.
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이사회도 반박하지 못할 정도로 아리를 안전하게 보호하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교장실을 나서는 순간까지도 답은 떠오르지 않았다.
‘……내일은 힘들겠구나.’
상호는 문을 닫고 복도를 터덜터덜 걸어갔다.
* * *
다음 날.
다행히 아리는 제때 등교를 했다. 상호는 자리에 앉은 아리를 흘끗하고 아이들을 둘러보았다.
“어제 너희도 있었니?”
세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윤도 이미 이야기를 들었는지 아리와 상호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다른 아이들도 반응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리가 그 눈길을 받고 몸을 움츠렸다.
상호는 교탁을 두드려 아이들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잘 해결될 거니까 너희는 걱정하지 말고. 2학년 면담은 당분간 뒤로 미뤄야겠다. 그렇게 알고 있어.”
“네.”
이제는 일을 해야 했다.
“……수업하자.”
상호는 그렇게 말하며 시계를 보았다.
오후 아홉 시. 다혜는 교장실에 있을 것이다. 아침에 교무실에서 들은 바로는 건흠 또한 부담임에게 반을 맡기고 교장실로 불려갔다는 모양이었다.
말 한마디 못 하는 아이가 조사를 받는다. 그게 상호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도 이럴진대 다혜는 얼마나 더 답답할지.
방법. 방법. 방법이 없을까.
“멍!”
단비의 강아지 소리에 상호의 몸이 멈칫했다.
평소와 다른 반응에 단비가 당황했다.
“아, 죄, 죄송…… 멍! 읍…….”
“아니.”
상호는 스스로 입을 막는 단비를 향해 손을 내저었다. 핑핑 돌아가는 머리를 따라 눈동자가 이리저리 움직였다.
방법이 보인 것 같았다.
‘강아지…….’
맘에는 안 들지만. 선택은 다혜가 할 것이다.
상호는 교실 문으로 걸어가며 아이들에게 말했다.
“얘들아, 미안. 오늘 수업은 미진 선생님이 할 거야.”
“엑, 쌤 또 어디 가?”
“급한 볼일이 생각나서 그래. 정말 급한 일이야. 미안해.”
“다녀오이소~.”
“응, 금방 올게.”
그는 아이들의 배웅을 받으며 교실을 나섰다.
155. 살룡자
상호가 학교에 돌아왔을 때는 오후 한 시가 조금 넘어 있었다.
그는 고개를 돌려 조수석에 놓인 물건들을 쳐다보았다. 민정이 꼬박 몇 시간씩 들여 만들어준 물건들.
‘다혜는 싫어하겠지만…… 어쩔 수 없지.’
최우선은 아리의 안전이니까.
상호는 물건들을 챙겨 차에서 내렸다. 학폭위는 오후에 연다고 했으니, 곧 시작하거나 이미 하고 있거나.
‘아직 시작 안 했으면 교장선생님한테 맡기고 수업 들어가면 되고, 하는 중이면…… 내가 직접 설명해야겠지.’
교장실로 향하는 그의 걸음에 속도가 붙었다.
* * *
날카로운 눈빛이 건흠을 꿰뚫었다.
“주 선생.”
“예, 이사장님.”
건흠은 살짝 고개를 숙였다.
별관의 이사장실. 널찍하게 긴 책상에 학교폭력대책위원들이 둘러앉아 있었다. 이사, 교직원, 학부모, 공무원.
그리고 앞쪽의 상석에는 두 사람. 해련과 류혁.
그 맞은편에도 두 사람. 건흠과 다혜.
혁이 건흠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송다혜 학생의 학비를 주 선생이 냈다고…… 확인이 됐는데.”
“맞습니다.”
“그럼 주 선생은 송다혜 학생이 학교에 남기를 바랍니까?”
건흠은 위원들의 분위기를 한 번 쓱 훑고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그러면 주 선생은 송다혜 학생의 처분에 사적인 감정을 배제하기 힘들겠네요?”
“…….”
그 질문에는 대답하지 못했다.
혁은 대답을 기대하지 않았다는 듯이 말을 계속 이어갔다.
“본교의 교육기관으로서의 첫 번째 가치는 학생의 안전입니다. 아무리 잘 가르쳐도 학생이 다치면 아무 의미 없어요. 학생의 안전에 해가 되는 요소는…… 전부. 빠짐없이. 예외 없이. 배제해야 합니다.”
이사 몇 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정은 딱하지만 안전이 최우선입니다.”
혁은 그렇게 말을 맺고 해련을 돌아보았다.
해련은 착잡한 눈빛으로 건흠과 다혜를 바라보다가, 나직하지만 또박또박한 목소리로 말했다.
“같은 생각이에요. 스스로를 제어하지 못하는 이상…… 학교에 있기는 위험하지요. 심지어 기숙사에, 밤에, 주말까지 학교에 있는 아이들이니까요.”
건흠의 머릿속이 멍해졌다. 시야에 초점이 잡히지 않았다.
이 아이가 어떤 아이인데. 어떤 삶을 살아온 아이인데. 집도 가족도 없이 벙어리가 된 아이를 학교에서 내쫓으면 어디로 가란 말인가.
소매에 손길이 느껴졌다.
건흠은 흔들리는 눈으로 옆을 돌아보았다.
“아으…….”
다혜가 울먹이며 그의 소매를 붙잡고 있었다.
죄송하다는 듯, 처량한 눈빛으로.
‘이 애 잘못이 아닌데.’
부모가 없는 것. 돈을 벌러 간 것. 말을 잊은 것. 용을 먹은 것.
전부 어쩔 수 없었는데.
“한 번만…….”
건흠은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숙였다.
깨문 입술 사이로 억눌린 소리가 새어 나왔다.
“한 번만 기회를 주시면…….”
“목숨에는 두 번째 기회가 없잖아요.”
해련이 고개를 저었다.
“미안해요.”
방법은 없을까.
절망한 건흠의 머리 위로 혁의 단호한 목소리가 떨어져 내렸다.
“결정했습니다. 송다혜 학생은…….”
쾅
누군가 문을 부서져라 열고 들어왔다. 모두의 시선이 문가로 향했다.
안대를 쓴 청년이 절룩거리며 들어서고 있었다.
“어우, 한참 찾았네.”
상호는 머리를 긁적이며 좌중을 쓱 둘러보다가, 고개를 한 번 까딱이고 다혜의 옆으로 가 앉았다.
그 당당한 모습에 해련을 제외한 모두가 벙벙해했고, 혁은 눈살을 찌푸렸다.
“강 선생? 여긴 웬일로…….”
“저도 피해 학생의 담임이잖습니까. 남 일은 아니니까요.”
상호는 능청스럽게 어깨를 들썩이고 챙겨온 물건을 탁자에 올려놓았다.
“어떻게든 안전하기만 하면 되는 거 아닐까요?”
그 물건을 본 사람들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개한테나 채울 법한 입마개.
작은 고리가 여럿 달린 가죽수갑.
“……그게 다 뭐죠?”
위원들 중 한 명이 물었다.
상호는 입마개를 집었다.
“마법학회에서 특수제작한 물건입니다. 어지간한 강기는 다 막아낼 수 있죠.”
“그걸로 송다혜 학생을…… 구속하겠다구요?”
“네.”
그 말에 다른 위원이 화를 냈다.
“사람은 개가 아니에요.”
“물건을 목적에 맞게 쓰는 것뿐입니다.”
상호는 그렇게 말하고 혁을 쳐다보았다.
“일단 테스트부터 해 보실까요?”
작년에 민정에게서 받아온 목걸이를 테스트했을 때처럼.
하지만 혁은 직접 할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교장선생님.”
혁의 말에 해련이 손을 뻗었다. 그러자 상호가 든 입마개와 탁자에 놓인 수갑이 해련의 손으로 날아들었다.
“……흠.”
해련이 입마개를 양손으로 잡고 상호와 눈을 마주쳤다. 진짜로 해도 되겠냐는 듯이.
상호는 눈짓으로 다혜를 가리키고 해련을 향해 눈을 깜빡였다. 다혜의 수준에 맞게 알아서 조절하란 뜻이었다.
꾸드득……
해련의 손에 황금빛 강기가 일렁였다.
그 모습을 옆에 앉은 혁이 가만히 주시했다. 허투루 검사하면 교장이라도 가만두지 않을 기세였다.
하지만 입마개는 멀쩡하기만 했다.
“튼튼해요.”
해련은 수갑까지 확인하고 그 말을 남겼다.
입마개와 수갑이 다시 상호에게 날아왔다. 상호는 그것들을 받아들고 다혜를 돌아보았다.
다혜는 그와 입마개, 수갑을 차례로 쳐다보며 눈을 끔뻑이고 있었다.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다혜야.”
상호는 다혜와 눈을 마주쳤다.
“네가 선택해.”
이렇게라도 학교를 다닐 것인지. 아니면 퇴학당할 것인지. 그 외의 선택지는 없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아, 으.”
다혜는 빙긋 웃고는 눈을 감고 얼굴과 손목을 내밀었다.
상호는 다혜의 입에 입마개를 채웠다. 질긴 벨트를 목에 두르고, 길이를 조절하고.
다음으로 손가락 하나하나에 고리를 끼워 검을 쥘 수 없게 하고, 손목에 수갑을 채웠다.
……찰칵
그렇게 구속구가 모두 채워졌다.
“이런 식입니다.”
모두의 시선이 다혜에게 몰려들었다.
위원들 중 한 명이 물었다.
“그렇게 하면 안전한 게 확실한가요?”
“그건 아리…… 피해 학생의 능력에 달려 있습니다만.”
상호는 당당하게 대답했다.
“이 정도면 아리가 충분히 대응할 수 있을 거라고 자신합니다.”
“관리는? 생활은 어떻게 하느냔 뜻이에요. 밥을 먹거나, 씻거나 할 땐…….”
“교사들이 그때그때 풀어줘야죠. 밥 먹을 땐 담임이, 씻을 땐 사감이. 좀 불편해도 그 정도는 해야지요.”
“강 선생은 피해 학생의 담임인데. 가해 학생을 감싸는 이유가 있나요?”
“다 같은 학생인데 누구 편들 게 있습니까? 저는 안전만 생각해서 이 물건들 가져온 겁니다. 잘잘못은 송다혜 학생에게 따지더라도, 안전을 보장할 방법에는 이런 것도 있다, 그걸 여러분께 알려주려고 온 겁니다.”
“……으음.”
일이 이렇게 되니 다혜를 퇴학시킬 이유가 없었다. 위원들의 시선이 이번에는 혁을 향했다.
“……흐음.”
혁은 손깍지를 낀 채로 고민하다가 좌중을 둘러보았다.
“시간이 너무 길어졌네요. 오늘 회의는 여기서 끝내죠. 곧 결정해서 통보해 드리겠습니다.”
그 말에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상호도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혁이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강 선생은 잠깐 남지. 주 선생은 학생 데리고 가시고. 교장선생님도 가서 일 보세요.”
건흠과 해련은 의아한 눈빛을 지었지만, 혁에게 묻지는 않고 다혜와 함께 조용히 방을 나갔다.
곧 모두가 나가고 둘만 남았다. 엉거주춤하게 일어서 있는 상호, 자리에 앉은 혁.
‘무슨 말을 하려고…….’
불안에 빠진 상호에게 혁이 날카로운 눈빛을 보냈다.
“강 선생.”
“예.”
“귀한 물건들을 신기할 정도로 잘 가져오는군.”
“학회에 친구가 있어서요.”
상호는 대수롭지 않은 듯 대답했다.
혁도 그와 비슷하게, 지나가는 말투로 물었다.
“그 친구도 저승부대인가?”
상호의 숨이 턱 막혔다.
“……아니요.”
“그래?”
혁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다가왔다.
“어제 보니까 저승부대 묘 쪽으로 가던데.”
상호는 당황해서 헛기침을 했다. 혁도 추모관에 왔었을 줄은 몰랐는데.
그래도 아직은 변명거리가 남아 있었다.
“제자 아버지가 그쪽에 묻혀 있어서 갔을 뿐입니다.”
“그런가.”
혁의 눈빛에는 한 치의 의심도 없었다.
“자네 주변에는 유난히 저승부대와 관련된 사람이 많군.”
의심이 아니라 확신.
“자네가 저승부대라고 해도 놀랍지 않을 것 같아.”
혁의 눈빛은 이제 상호의 속을 꿰뚫을 것 같았다.
이쯤 되니 계속 모르쇠로 일관할 수가 없었다. 상호는 능청을 떨어보기로 했다.
“제가 저승부대면 월급이라도 올려주십니까?”
“아니.”
혁이 무심하게 대답했다.
“저승부대씩이나 되는 인간이 여기 왔다는 건, 다른 곳에서 얻을 수 없는 게 여기 있기 때문이겠지. 그래서 난 딱히 꿀릴 게 없어. 저승부대든 뭐든 간에 내게는 교직원일 뿐이고, 자를지 말지는 전적으로 내게 달려 있으니까.”
“……그래서 무슨 말을 하고 싶으신 겁니까?”
“거래를 하나 하지.”
거래라니. 상호는 눈을 끔뻑였다.
“무슨 거래요?”
“여름에, 정부에서 주최하는 전국 학생 평가가 있을 거야.”
혁이 혀를 찼다.
“부협회장님은 쓸데없이 평가를 늘리는 게 싫은 모양이지만…… 어쨌든 정부에서 하는 일이니, 예비 학부모들에게 우리 학교 위신을 세우는 데에는 제격이란 말이지.”
상호는 이어질 혁의 말이 짐작이 갔다.
“1등…… 해오라고요?”
“그렇지.”
아니면 뭐겠냐. 혁이 그런 뜻이 담긴 눈빛을 보냈다.
“그 약속을 하면 저 학생이 퇴학당하지 않게 해주지.”
말을 하는 걸 보니 이미 다혜와 상호가 어떤 사이인지 감을 잡은 듯했다. 적어도 상호가 다혜를 아끼고 있다는 것까지는.
“안 그러면 짤리고요?”
“그렇지.”
전국 1등이라. 힘들 수도 있을 것 같다.
상호는 뒤통수를 벅벅 긁으며 난색을 표했다.
“학년은요?”
“상관없어. 1학년이든 2학년이든. 왜, 학년별 1등으로 할까?”
“아니, 그 말이 아니라……, 어쨌든 1학년도 나가고 2학년도 나간다는 거죠? 학년별로 나뉘어서?”
“그렇겠지. 아직 제대로 정해진 건 없지만.”
혁이 뒷짐을 지고 탁자 주변을 서성였다.
“기왕이면 2학년이 좋겠군. 기껏해야 반년 가르친 1학년보다는 2학년 쪽이 학교 평가에 도움이 될 테니까.”
“그러면…….”
상호는 한숨을 쉬었다. 다혜의 퇴학 여부가 걸려 있다면.
“……하겠습니다. 그 약속.”
“좋아. 교사로서도 X급인지 한 번 증명해 보라고.”
“……아닙니다.”
“이제 와서 변명하기엔 늦었지.”
혁이 손가락을 튕겼다.
“가 봐.”
저승부대원이라는 걸 아는데도 전혀 주눅 들지 않은 모습.
상호도 그렇게 대해주는 게 차라리 편했다.
“그 대회인지 평가인지 뭔지 확정되면 알려주세요.”
혁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상호는 그 모습을 확인하고 이사장실을 나왔다.
이로써 다혜의 퇴학 문제는 대충 정리가 된 듯싶었다. 새로운 문제들이 더 생기겠지만.
그래도 방법은 달리 없다. 다혜도 그도 노력하는 수밖에.
‘이제 애들 수업해야지.’
상호의 발걸음이 그의 반을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