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4화 (174/501)

 * * *

다음 날.

결국은 수업이 모두 끝나고 가은과 마주 면담하는 시간이 되었다.

“저어…….”

 상호는 가은의 앞에 앉은 채로 떠듬떠듬 입을 열었다. 눈은 마주치지 못했다.

일단은 오해부터 풀어야 했다.

“가은……아.”

“네.”

“선생님 이상한 사람 아니야.”

 가은이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범죄자는 자기가 이상한 사람인 줄 모른대요.”

“아니, 선생님은…….”

“물론 농담이죠.”

 하지만 전혀 가벼운 말투가 아니었다.

“선생님.”

“응.”

“선생님 범죄자 아니죠?”

“당연히 아니지. 범죄자면 여기 있겠니…….”

“그렇죠?”

 가은의 눈에 살기가 깃들었다.

“언니들이 그러더라고요. 선생님이 제자 건드려서 체포당했었다고.”

“제자 건드렸다는 건 농담이야……. 그리고 체포는 내 친구들이 장난친 거였어.”

“정말이죠?”

 정말이 아니면 칼로 찔러버릴 기세였다.

상호는 진땀을 흘리면서도 궁금했다. 가은이 왜 이런 반응을 보이는지.

“가은아, 뭐 좀 물어봐도 돼?”

“네.”

“어…… 범죄자를 싫어하는 건 당연한 거겠지만…… 약간 남을 쉽게 의심하는 느낌이 들어서. 혹시 무슨 일이 있었니?”

 가은은 대답하지 않았다.

쉽게 알려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상호는 살짝 웃어 보였다.

“그 이야기는 앞으로 하지 말까?”

“……네.”

 가은이 눈썹을 내리깔며 말했다.

“하지 말아 주세요.”

“그러면…… 면담, 할게.”

 상호는 기록부를 폈다.

그곳에는 가은에 대한 정보가 나와 있었다. 편부 가정. 무예 지망. 장래희망은 경찰.

편부 가정.

상호가 가은을 선택한 이유.

민감한 질문이지만,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가은아.”

“네.”

“선생님도 고아거든?”

“……네.”

“그러니까 오해하지 말고 들었으면 좋겠어. 어머님께서는 어떻게 되셨어?”

 그 말에 가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묻지 마요.”

“응?”

“묻지…… 말아 주세요.”

 뭔가 사정이 있는 듯했다.

상호는 점점 거칠어지는 가은의 숨소리를 들으며 생각했다. 아마 안 좋은 기억이 있는 것 같다고.

그것도 절대 평범하지 않은. 단순히 모친이 죽어서가 아닌.

“알았다. 그건 더 이상 안 물을게. 그러면…….”

 상호는 기록부를 흘끗했다.

아무래도 장래희망에 대해 묻는 것 또한 가은에게는 달갑지 않을 것 같았다. 꺼낼 만한 이야기는 오직 무예와 수업에 관한 것뿐.

‘그거면 됐지 뭐. 가정사를 꼭 알아야 하는 것도 아니고…….’

 그는 기록부를 덮어버리고 잠시 고민하다가,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아마 안 될 것 같지만. 그래도.

“가은아.”

“네.”

“혹시 손 좀 잠깐 내어줄 수 있을까? 내공을 확인해 보고 싶어서 그래.”

 가은의 눈이 어두워졌다.

“아니요.”

“……그래.”

 예상한 일이었다. 상호는 고개를 끄덕이고 팔짱을 끼었다.

“필요한 일은 아니니까. 그런데 하나 궁금한 게…… 가은이는 왜 선생님 반으로 왔어?”

 여선생 반으로 가면 편할 텐데 말이다. 아마 남선생은 믿음이 가지 않는 듯한데.

가은은 그 말에는 대답해 주었다.

“확인하고 싶은 게 있어서요.”

 상호는 돌아올 대답을 뻔히 알면서도 물었다.

“그게 뭔지 물어봐도 될까?”

“아뇨. 비밀이에요.”

 역시나. 대답을 모호하게 했을 때부터 알아봤다.

 이렇게 되면 면담할 내용이 많지 않았다. 상호는 머리를 긁적이다가 자신의 눈과 다리에 생각이 미쳤다.

“가은아.”

“네.”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상호는 안대를 살짝 들어 올렸다.

그곳에 난 흉터와 혼탁한 눈동자를 본 가은이 눈을 크게 떴다.

“나중에, 네가 준비가 되면 선생님한테 네 비밀들 좀 알려줘. 선생님도 비밀 하나씩 알려줄 테니까.”

“……비밀.”

 가은이 중얼거렸다.

“되게 범죄스럽게 말하시네요.”

“응?”

“비밀을 하나씩 알려준다니.”

“……뭐가?”

“아니에요.”

 상호는 고개를 젓는 가은을 보며 혼란에 빠졌다. 자신이 또 뭔 말실수를 했는지.

하여튼 오늘은 더 할 말이 없어 보였다.

“그러면,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일어날까?”

“네.”

“그래, 그러자.”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의자를 정리했다.

가은도 따라 일어나서 의자를 책상 아래 집어넣고는, 상호에게 고개를 꾸벅 숙이고 교실 문을 향했다.

“안녕히 계세요.”

“응, 그래. 쉬어.”

 상호는 최대한 밝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가은이 교실을 나가서 문을 닫을 때까지.

문이 닫히자 그의 손이 천천히 아래로 내려갔다.

‘1학년 면담은 끝났네.’

 미래, 이서, 단비, 아리, 하솔, 초란, 가은.

제일 신경 써야 할 아이가 제일 마지막에 면담을 했다. 상호는 턱을 만지작거리며 가은과의 대화를 곱씹었다.

‘가은이 앞에서는…… 함부로 애들한테 손대면 안 되겠다.’

 싫어하는 것 같으니까. 다만 태화나 지윤처럼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는 아이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었다.

‘……뭐, 당장 고민한다고 답이 딱 나올 문제는 아니니까.’

 앞으로 같이 지내보면서 다 함께 맞춰봐야 할 일이다. 상호는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교무실로 향했다.

 151. 짐승과 벌레

“아따~ 동물원이 따로 없구마잉.”

 지윤이 책상에 몸을 기대어 머리 옆을 괸 채로 키득거렸다.

 그 옆에 앉은 나빛이 눈을 깜작였다.

“동물원?”

“저 바라. 배얌 하나. 강지 하나.”

 지윤이 턱짓으로 아리와 단비를 가리켰다.

“말고도 기린 하나. 꼬내이 하나.”

 이어서 은율, 이츠키.

이야기를 듣던 태화가 한마디를 보탰다.

“젖소 하나.”

“젖소는 머꼬?”

“쟤.”

 태화의 눈동자가 초란을 향했다. 초란은 고개를 푹 숙이고 책을 읽는 중이었다.

굽은 허리 안쪽으로 흉부가 툭 튀어나와 있었다.

“못봤냐? 개커. 니꺼 떼서 나랑 합쳐도 쟤 못 이길걸?”

“미친년…….”

 지윤은 혀를 내두르며 질색을 했다.

“니는 언젠가 쌤헌티 크게 혼날 기다.”

“헹.”

 세희는 코웃음을 치는 태화에게 눈을 흘기고 앞을 보았다.

1학년 아이들은 2학년의 기에 눌려 크게 떠들지 못하고 있었다. 그저 옆 친구하고만 작게 이야기를 나눌 뿐.

 특히 이서와 가은은 아예 아무와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다만 딱 한 명. 단비만은.

“단비야, 손.”

“멍!”

“옳지.”

 태화와 지윤의 귀여움을 잔뜩 받고 있었다. 귀여움이 맞긴 한지 의문이지만.

당사자가 기분이 나쁘지 않으면 별문제 없겠다만, 선생님이 저 모습을 보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가 의문이었다.

‘모르겠다, 혼나면 알아서 그만하겠지.’

 세희는 신경을 끄기로 했다.

그때 교실 뒷문에서 누군가 서성이는 게 보였다.

‘……아.’

 다혜라는 사람.

다혜는 고개만 빼꼼히 들이민 채로 무언가를 찾는 듯이 교실 안을 두리번거렸다. 아마 선생님을 찾는 것이리라.

태화도 다혜를 본 모양이었다.

“저거 누구야?”

 그 말에 다른 아이들도 뒷문을 돌아보았다. 순간 시선이 집중되자 다혜가 움찔했다.

세희는 시선을 거두고 태화에게 작게 대답했다.

“선생님 첫 제자.”

“뭐야, 선배야? 우리 학교였어?”

“그렇더라.”

“죽었다며.”

“살아있었대.”

“쒯.”

 지윤이 다혜를 향해 소리쳤다.

“누구 찾능교?”

“……아으.”

 다혜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세희는 그 소리를 듣고 다혜를 돌아보았다.

무언가 이상하다.

“으…….”

 다혜가 비틀거리며 교실로 들어섰다.

눈빛이 약을 한 듯이 몽롱했다. 초점이 풀려 있어서 정확히 어디를 보는지는 알 수 없었다.

벌린 입에서 침이 한 줄기 흘러내렸다.

“으……, 으으…….”

 태화가 눈을 끔뻑였다.

“뭐여, 왜 좀비가 됐어.”

 농담을 할 분위기가 아니었다. 세희는 벌떡 일어나 다혜를 주시했다.

방금 전까지는 멀쩡했는데. 어딘가 아픈 걸까. 아니, 아파 보이지는 않았다. 어떤 느낌인지 굳이 따지자면.

……굶주린 느낌.

“으…… 으…….”

 신음하던 다혜가 돌연 눈동자를 번득였다. 시선의 방향은 1학년 쪽을 향하고 있었다.

“크르…….”

 다혜의 목에서 짐승의 울음소리가 흘러나온 바로 그때.

“다혜야?”

 교실 밖에서 상호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

 다혜의 표정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천진하고 맑은 눈빛으로.

곧 상호가 절룩거리며 교실 문에 모습을 보였다.

“다혜 왜 왔어?”

 상호의 물음에 다혜는 살짝 당황하더니, 고개를 저으며 교실 밖으로 도망치듯 뛰쳐나갔다.

상호는 그런 다혜의 뒷모습을 멀거니 쳐다보다가 아이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무슨 일 있었니?”

“아입니더.”

 지윤이 어리둥절해하며 머리를 긁적였다.

“걍 들어와서 오도카~니 있더니 나가던디예.”

“그래? 그럼 뭐……. 어쨌든 별일 없었지?”

“예.”

“그럼 됐어.”

 상호가 교탁으로 걸어갔다.

세희는 자신이 본 것을 그에게 알려줘야 할지 고민했다.

‘조금 위험해 보였는데…….’

 하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이라 콕 집어 말할 수는 없고. 일단은 좀 더 지켜보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칠판 앞에서 상호가 말했다.

“자, 수업하자.”

“네.”

 세희는 교과서를 꺼내며 방금 있었던 일을 마음 한구석으로 치워놓았다.

* * *

종례 후.

상호는 교무실 자리에 앉아 면담 기록을 훑어보았다.

‘1학년은 끝났고.’

 이제 2학년 차례.

먼저 이츠키와 나디아, 두 외국 아이부터 하고, 그다음에 나머지 다섯 명.

작년부터 가르친 네 명은 길게 면담할 필요가 없을 테니, 사실상 세 명이 남은 것과 다름없었다.

‘그래도 어떻게든 다 해내고는 있네.’

 학생이 너무 많아져서 걱정이었는데. 지금까지는 별 탈 없이 잘 지내고 있었다.

 그래도 살짝 힘들긴 했다. 부담임인 미진이 도와주긴 한다지만.

‘2학년 면담은 다음 주부터 하고, 반장을 좀 뽑을까. 이번 달 말쯤에…….’

 고민하던 차에 별안간 그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상호 씨~.”

“아.”

 퍼뜩 고개를 들어 보니 설미가 종종걸음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부르셨어요?”

“응. 우리 월요일에 차 같이 타는 거 말해 주려구.”

“……아, 견학이요?”

 잊고 있었다. 월요일은 계전추모관 견학일.

상호는 머리를 긁적였다.

“자리 안 모자라요? 선생님 반 인원이…….”

“3학년은 안 가니까. 애들 빼면 20명 안 되고…… 어차피 상호 씨 반은 적잖아.”

“그건 그렇죠.”

 딱히 문제 될 것은 없다.

상호가 고개를 끄덕이는데, 갑자기 설미가 그의 양어깨에 손을 올리고 주무르기 시작했다.

상호는 당황한 눈으로 설미를 올려다보았다.

“……선생님?”

“어때, 뭉친 게 좀 풀려?”

“아니, 뭉쳐 있진 않았는데요.”

 그러자 설미가 뚱한 표정을 지었다.

“안 시원해?”

“……시원해요.”

“그치?”

 작은 손이 더욱 기운차게 어깨를 주물렀다. 하지만 설미의 손보다 상호의 어깨가 훨씬 단단한 탓에 별 느낌이 들지 않았다.

시선들이 느껴져서 오히려 불편하다. 상호는 진땀을 흘리며 물었다.

“저 뭐 잘못했어요?”

“응? 아니.”

“그러면 이제 그만해도 돼요. 다른 선생님들이 보잖아요…….”

“선배가 후배 어깨 주무르는데 뭐 어때.”

 설미가 피식 웃었다.

이러다 미진에게 들키면 또 그 차가운 눈빛으로 난도질당할 것이 뻔했다. 상호는 설미를 말리기 위해 손을 들려 했다.

그때 설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요즘 어때?”

“네?”

“아이들 확 많아졌잖아. 적응 돼?”

“……아, 그거요.”

 상호는 머쓱히 눈동자만 이리저리 굴렸다.

“그냥…… 할만해요. 애들이 사고치는 것도 아니고.”

“다행이네.”

 설미의 손이 상호의 볼을 장난스럽게 잡아당겼다.

“난 엄청 힘들었었거든. 10명이 20명이 되고…… 올해는 30명이 되고. 솔직히 지금도 빠듯한데, 상호 씨는 할 만한가 보네. 교사가 천직인가 봐.”

“하하…….”

“근데 그거 알아?”

“네?”

 상호는 그녀를 올려다보며 눈을 끔뻑였다.

설미가 그에게 머리카락을 드리우며 빙그레 웃어 보였다.

“교직은 적응되는 게 아니라 갈수록 힘들어지는 거야.”

“네? 아니, 저랑 고작 1년 차이면서…….”

“두고 봐.”

 상호의 귀에 설미의 속삭임이 들렸다.

“앞으로 지옥이 펼쳐질걸.”

“콜록, 콜록…….”

 사레가 들릴 지경이다. 상호는 헛기침을 하며 어깨에서 설미의 손을 떼어냈다.

“별수 없죠, 일 때려칠 것도 아니고…… 그러려니 해야죠.”

“그게 그리 쉽게 될 것 같아?”

“해봐야 아는 거죠. 근데 되게 즐거워 보이시네요.”

“그런가? 아냐, 상호 씨 착각일걸.”

“됐고, 앉아 봐요. 나도 주물러 줄 테니까.”

 상호는 설미를 자리에 앉히고 어깨를 살살 주물렀다. 설미가 키득거리며 어깨를 움츠렸다.

“아잇! 아파!”

“뭐가 아파요. 손가락으로 찔끔거리고 있구만.”

“꺄하하!”

 안마가 익숙지 않은지, 힘을 전혀 주지 않고 주무르는데도 설미는 몸을 배배 꼬며 웃음을 터트렸다. 상호는 장난기가 동해 어깨를 더 열심히 주물렀다.

그때 멀리서 싸늘한 기운이 느껴졌다.

 아주 익숙한 감각.

‘……으음.’

 그는 미진과 눈을 마주치고 설미의 어깨에서 손을 뗐다.

“응? 벌써 끝이야? 좀 더 해줘.”

“부러질 것 같아서…….”

“우와, 은근슬쩍 칭찬하기야? 걱정 마, 내가 날씬해도 뼈는 튼튼하다구.”

“아뇨, 제 손모가지가.”

“……응? 왜?”

 설미가 그를 올려다보며 눈을 끔뻑였지만, 상호는 대답해주지 못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