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천세희 걔 미쳤다니까!”
“그래, 그래.”
상호는 운전대를 돌리며 건성으로 대답했다.
조수석에 앉은 태화가 신경질적으로 발을 굴렀다.
“쌤도 조심해. 걔 언제 쌤한테 입술 박을지 몰라.”
“…….”
진실은 알려주지 못했다.
뒷좌석에는 아리가 노란 뱀눈으로 창밖을 쳐다보고 있었다. 몸을 살짝 움츠린 채로.
상호는 어색함을 풀어주려고 말을 붙였다.
“아리는 학회 가본 적 있어?”
“아……, 아니요.”
아리가 흠칫하며 고개를 들었다. 갑자기 말을 걸어서 놀란 모양이었다.
상호는 고개를 기웃했다.
‘잘 놀라는 성격인가?’
어쩌면 중학교 때 받은 괴롭힘 때문일지도.
그는 아리의 푸른 뿔을 흘끗했다. 태화의 것보다는 좀 더 크고, 더 여러 번 구부러진 모양이었다.
딱 봐도 몇 배는 불편해 보였다.
‘뿔 이야기를 하면 싫어하려나.’
그래서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아리 점심에 뭐 먹을래?”
“저는 괜찮아요.”
상호는 아리의 대답에 눈을 끔뻑였다.
“괜찮다는 건 아예 안 먹겠다는 거야?”
“네. 아침을 늦게 먹어서…….”
“그럼 점심도 늦게 먹으면 되잖아. 사 줄게.”
“괜찮아요…….”
아리가 난색을 짓는데, 태화가 갑자기 뒷자리를 홱 돌아보았다.
“야, 아리야! 우리 랍스터 한번 조져볼까?”
“네? 아, 아니요…….”
“빼지 말고. 우리 쌤 돈 많아.”
귀신같이 꿀 냄새를 맡았구나. 상호는 혀를 찼다.
“생각해두고 있어. 이따 선생님 친구랑 넷이서 먹을 거니까.”
“웅.”
“너 말고 임마. 너는 1년 넘게 잘 먹어 놓고는…….”
“랍스터는 한 번도 안 사줬잖아아아!”
“하…….”
그는 한숨을 쉬며 학회를 향해 차를 몰았다.
* * *
종이새를 찢자 주변의 풍경이 바뀌었다. 1층의 로비에서 탁 트인 펜트하우스로.
상호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디 갔지?’
민정이 보이지 않았다.
안방 문이 닫힌 것을 보니 그 안에 있는 듯했다. 상호는 태화와 아리에게 거실에 놓인 소파를 가리켜 보였다.
“앉아 있어.”
둘은 그의 말대로 했다.
방에서 민정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누군가와 통화를 하는 것 같았다. 평소와는 달리 살짝 성이 난 분위기였다.
상호는 안방 앞에 다가가 귀를 기울였다.
“……상호 왔어. 끊어.”
들켰다. 좀 엿들어 보려고 했는데.
곧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리더니 민정이 문을 열고 나왔다. 상호는 그녀를 맞닥뜨리고는 민망해서 뒤통수를 긁적였다.
“나 왔어.”
“으응.”
어째 안색이 좋지 않았다.
왜 그러는지는 짐작이 갔다. 상호는 거실 쪽을 흘끗하고 민정의 뺨에 손을 얹었다.
“애들 데려왔는데, 좀 안 좋아 보이네. 오늘은 힘들까?”
“아니야, 괜찮아.”
민정은 애써 웃으며 밖으로 나오려 했지만, 상호가 몸으로 막아서서 그러지 못했다.
상호는 그대로 그녀를 살살 밀며 방에 들어가서, 문을 닫고 눈을 마주쳤다.
“형이 또 뭐라고 했어?”
“……아니, 그런 거 아니야.”
태평한 척하지만, 당황한 기색.
상호는 그 표정을 보고 확신했다.
“근데 왜 이렇게 표정이 안 좋아. 뭐 나쁜 일 있었어?”
“으응, 아니래도.”
“누나.”
상호의 손이 민정의 허리를 감쌌다.
그는 민정을 벽으로 살살 밀어붙이며 속삭였다. 아이들이 듣지 못하도록.
“숨기지 말고.”
그러자 민정이 어색하게 웃었다.
“내가 너한테 숨기는 게 어딨니?”
“없어?”
“없지. 다 알려줬잖아.”
“그런가?”
상호는 민정의 등허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가족끼리 숨기지 말자, 누나.”
“뭘 알고 싶은 거니?”
민정이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다 알려줬는걸. 뭘 더 알려줘야 하니? 이젠 아주 누나 속까지 꺼내 보려고 하는구나.”
“맞아.”
부정할 생각 없다.
상호는 민정의 머리카락을 하염없이 쓸어 넘기다가, 얼굴을 맞댄 채로 나직하게 속삭였다.
“알려줘. 누나가 뭐 때문에 그렇게 힘든지.”
민정은 상호를 바라보다가 씩 웃었다.
“생리 때문에 그래.”
“생리?”
시종일관 진지하던 상호의 눈빛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는 당황하며 민정의 시선을 피했다.
“아……, 미안. 나는 다른 일이 있는 줄 알고…….”
“풉!”
민정이 허리를 숙이며 키득거렸다.
“농담이야, 상호야. 킥킥…….”
“……그런 거야?”
“그럼, 그걸 믿니. 너는 참…… 푸훗!”
상호는 머쓱해서 머리만 긁적였다. 민정은 평소에 이런 장난을 치지 않았었는데.
민정의 눈빛이 아련해졌다. 옛 기억을 떠올리는 것처럼.
“아직 동생이라니까.”
“나야 누나한텐 늘 동생이지.”
상호는 그렇게 말하며 민정을 벽에 살짝 짓눌렀다.
“동생이 좋은 거 해 줄 테니까, 무슨 일인지 말해 줘.”
“으응, 근데…….”
민정이 불안한 듯이 문가를 흘끗했다.
“애들 데려왔다고 하지 않았어?”
“밤에 다시 와야지 뭐.”
애들이야 학교에 데려다주면 되는 일이다. 상호는 천연덕스럽게 어깨를 들썩였다.
그제서야 민정의 눈에 기대감이 가득 찼다.
“그럼 그때 이야기할까?”
“약속이야.”
둘은 짧게 입을 맞추고 방을 나섰다.
148. 우리끼리는
“용과 악마의 차이가 뭔지 아니?”
소파 쪽에서 민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상호는 외따로 떨어진 흔들의자에 앉아 한가로이 창밖을 내려다보았다. 대답할 필요는 없었다. 그에게 물은 것이 아니었으므로.
대답은 태화가 했다.
“생긴 게 달라요.”
“그것도 그렇지만.”
민정은 이제 태화의 얼빠진 대답에 많이 익숙해진 듯했다.
“용은 마법의 생물이야. 우리가 발견한 모든 마법은 용의 마법의 열화판에 불과해. 물론 옛날에 말했다시피 마법은 위력이 다가 아니지만…… 어쨌든 인간보다는 용이 마법의 원조에 가깝지.”
아이들도, 상호도 잠자코 들었다.
“반면에 악마는 마법에 주술이 섞여 있어. 태화 너도 알고 있지?”
“네.”
“그 이유가 뭔지 알아?”
“……이유요?”
태화가 어리둥절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상호도 모르는 내용이었다. 넋을 놓고 있던 그는 자세를 바로 하고 민정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주술은 영혼이 세상에 행사하는 힘이지?”
그건 알고 있다.
“영혼이 강할수록 주술의 힘도 세져. 그런데 용은 주술을 거의 못 쓰고, 악마는 주술의 생물이라고 불릴 정도로 주술에 능해. 이게 무슨 뜻일까? 상상이라도 좋으니까 대답해 봐.”
아리가 기어드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악마의…… 영혼이 더 강하다?”
“그렇지. 방금 한 말이 그 말이지. 그러니까 왜 그럴까?”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결국 민정이 답을 일러주었다.
“용은 피조물이고, 악마는 피조물이 아니기 때문이야.”
“피조물이요? 누군가가 만들어서요?”
“응. 용은 저쪽 세상의 무언가가 만들어 냈어.”
“신이요?”
“신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그거는 모르는 일이지.”
“그럼 악마는요?”
“악마는 홀로, 스스로 존재하는 생물이야.”
민정은 차를 홀짝이고 말을 이었다.
“누군가가 만들지도 않았고, 번식도 안 해. 심지어 영혼만 떼어서 다른 세상에 다녀올 수도 있어. 그런 식으로 악마의 영혼은 이질적이고 특별해. 그래서 주술의 생물인 거야. 때로는 이쪽 세상의 법칙을 무시하기도 해.”
“오옹…….”
태화가 감탄과 아리송함이 섞인 소리를 내었다.
“근데 그걸 알아서 어따 써요?”
“알아 둬야지. 모든 헌터는 언젠간 악마와 싸우게 되어 있어.”
민정의 말에 상호의 다리가 욱신거렸다.
“그때를 대비해야 해. 악마가 어떤 존재인지, 어떻게 해야 쓰러트릴 수 있는지…… 헌터라면 알아야 하고, 고민해야 하는 법이야.”
“으음…….”
태화가 머리를 긁적이는 소리가 들렸다.
“알았어요.”
“그리고 아리도 잘 몰랐을 수 있으니까, 설명해 준 거야. 아리야, 태화하고 마법이 다르다고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
“네.”
“그럼 슬슬 진짜 마법 수업할까?”
“네.”
“그래. 그럼 일단 원소론부터 짚고 넘어가자.”
유리창에 형형색색의 불꽃이 비쳤다.
* * *
수업은 늦은 점심때가 되어서야 끝났다.
상호는 태화의 생떼를 못 이기고 비싼 식당으로 향했다. 가격표를 본 아리가 한사코 거절하긴 했지만, 태화의 등쌀과 상호의 고집 때문에 결국은 같이 식사를 하게 되었다.
그렇게 둘에게 밥을 먹이고, 학교로 돌아가고. 저녁때까지 2학년 아이들에게 보충수업을 해준 뒤, 늦은 저녁에 다시 학회로 돌아왔다.
상호는 외투를 소파에 걸치며 외쳤다.
“누나, 나 왔어.”
“응.”
민정이 씩 웃었다. 옷차림이 아침보다 약간 얇았다.
“저녁은 먹었니?”
“아니.”
“차려 줄까?”
“누나는?”
“나도 아직.”
“그럼 같이 해.”
상호는 넥타이를 풀고 소매를 걷었다.
자주 와서 어디에 뭐가 있는지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는 식칼과 도마를 꺼내며 종일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그래서, 아침에 그 전화는 뭐였어?”
“……아아.”
민정은 그를 돌아보지 않은 채로 답했다.
“오빠가, 푸념을 좀 했어.”
어떤 푸념인지는 속 시원히 알려주지를 않는다. 상호는 냄비에 물을 올리며 허공섭물로 냉장고에서 재료를 꺼냈다.
그리고 무덤덤하게 물었다.
“푸념이었어?”
“……푸념보다는 더 세긴 했지.”
민정이 쓰게 웃었다.
“많이 힘들어하더라. 그래도 어쩔 수 없지. 익숙해져야 하는 일인걸…….”
사람을 죽여가는 일.
멀쩡한 사람이 맨정신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세상을 구하려고 스스로를 희생하던 호인들이라면 더더욱.
그래도 어쩔 수 없는 건 사실이다. 상호는 혀를 찼다.
“점점 더 빨라진다며. 들어보니까 감당이 안 되는 것 같더만.”
밥솥을 향하던 민정의 손이 우뚝 멈췄다.
“……오빠가 말해줬니?”
목소리가 떨린다. 상호는 심상찮음을 느끼고 민정을 돌아보았다. 그녀는 그를 돌아보지 않은 채로 고개를 살짝 숙이고 있었다.
그래도 대답은 해야 했다.
“응.”
“네가 물어본 거니?”
“아니.”
그러자 민정이 고개를 확 쳐들며 그를 노려보았다.
“오빠가 먼저 말했다고?”
“……응.”
상호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민정이 성큼성큼 걸어와 가까이에서 그를 올려다보았다. 노여운 시선은 상호가 아닌 그 너머를 향하고 있었다.
“그걸 왜 너한테 말했어?”
“그럴 만했어.”
그는 민정의 손을 잡았다.
“물어볼 만했어. 사람들 버티는 시간이 점점 줄어든다면서…… 다리는 괜찮냐고, 그렇게 물어본 것뿐이야.”
“……그래?”
민정이 천천히 고개를 떨궜다.
“그런 거야?”
“응.”
상호는 민정을 살짝 안고 등을 토닥였다.
그녀가 왜 그러는지는 알고 있었다. 이미 다리에 악마의 몸을 부담하고 있는 그에게 짐을 더 지우기 싫어서. 누나로서, 어른으로서 책임을 지고 싶어서.
하지만 이대로 가다가는 민정과 도현이 책임질 수 있는 한계를 넘어버릴 터였다. 어쩌면 이미 넘었을 수도 있고.
“그러니까 말해도 돼, 누나. 나도 대강은 알고 있어.”
“그러니……?”
민정이 그의 품에 머리를 기댔다.
그녀는 그렇게 이마를 댄 채로 한참을 서 있다가, 고요히 입을 열었다.
“자원자가 없어.”
“그렇겠지.”
상호는 입맛을 다셨다.
죽고 싶은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있다고. 세상을 위해 희생한다는 때깔 좋은 명분이 있다 해도, 언젠가는 사람이 동날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언젠간 그렇게 될 줄 알았잖아.”
“그렇긴 하지만…… 벌써 그렇게 될 줄은 몰랐지.”
“계획은 없어? 지금은 어떻게 하고 있는데.”
“지금은 사형수들 쓰고 있어. 그런데…… 그거 아니? 우리나라 사형수는 100명도 안 돼. 한참 안 돼.”
민정이 한숨을 쉬었다.
“특히 그런 사람들은 영혼이 강하질 않아서…… 오래 견디지도 못해. 대부분 사흘이면 끝나. 이대로 가면…… 반년도 못 버텨.”
“반년…….”
상호는 그 말을 되뇌었다. 사흘에 한 명꼴이면 1년에 100명 이상.
“그럼……그 뒤의 계획은 있어?”
“있겠니.”
민정은 고개를 저었다.
“그때부턴 죽이면 안 되는 사람을 죽이게 되겠지.”
“외국에서 사형수를 데려오면 안 되나?”
“그 생각도 해봤지만…… 쉽지가 않아. 그 나라에 악마에 대한 이야기를 알려줘야 하니까. 그런데 그런다고 믿을 것 같지도 않고……, 바깥에 알려지는 것도 좋지 않을 것 같았어. 그건 나랑 오빠가 같은 생각이야.”
“애초에 숨기면 안 됐어.”
상호는 민정을 안은 채로 중얼거렸다.
“세상이 직접 부담하게 했어야 했어.”
“그러면 통제하기 더 힘들어져.”
민정이 힘겨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변인은 적을수록 좋아. 만약 그걸 온 세상이 알았다가는…… 어떤 방식으로든 이용하려고 들 게 뻔해.”
“누가 미쳤다고 그걸 이용해?”
“단순하게 생각해도, 그냥 봉인된 사람을 납치하기만 해도…… 뭘 요구하든 다 들어줄 수밖에 없게 돼버리잖니.”
“협회에서 똑바로 지키면 그럴 일이 없지.”
“세상일은 생각처럼 돌아가지 않아, 상호야. 너도 알잖아.”
상호는 그녀의 말에 반박하지 못했다.
“아무리 간절하게 원해도…… 그렇게 안 되는 일이 허다해.”
민정의 슬픈 눈빛이 상호의 검에 닿았다.
같은 사람을 떠올리고 있으리라. 상호는 민정을 더 깊숙이 끌어안았다.
“어쩔 수 없지.”
떠난 사람을 데려올 순 없으니까.
“그저 최선을 다할 뿐이니까. 누나도, 나도, 형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면, 그때부턴 누굴 책망할 일이 아닌 거지.”
“……그렇지?”
민정은 상호의 품에 얼굴을 폭 묻었다.
“우리끼리는…… 원망하거나, 미워하지 말아야 해…….”
“그럼. 당연하지. 내가 누나를 얼마나 좋아하는데.”
상호는 살짝 웃으며 민정을 한 손으로 안아 들었다.
“밥은 이따가 먹자. 괜찮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