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수업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실내 수업 내내 집중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어차피 배운 걸 또 배우는 것뿐이지만. 그래도 늘 좋아했던 선생님의 목소리가 오늘따라 잘 들리지 않았다.
실외 수업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세희야?”
세희는 흠칫하며 고개를 들었다.
“아, 죄송합니다…….”
상호의 걱정 어린 시선이 세희를 향했다.
하지만 무엇 때문인지는 알 만했는지, 굳이 묻지는 않고 다정한 목소리로 한 번 더 일러 주기만 했다.
“대련하자.”
“네.”
세희는 검을 들고 앞으로 나섰다.
친구들의 시선이 몰려드는 것이 느껴졌다. 평소보다 심했다. 아침에 울었던 것 때문이리라.
‘……집중해야지.’
심호흡을 하니 한결 나았다.
세희는 검을 뽑고 목각인형 앞에 섰다.
늘 하는 수련이지만 항상 어려운 수련이기도 했다. 목각인형은 언제나 그녀보다 강했기에.
늘 그렇듯, 시작 신호는 없었다.
파악
세희의 발이 땅을 박찼다.
칼끝이 인형의 허리를 향했다. 좌상단에서 우하단으로.
그러자 목각인형은 하체를 뒤로 쓱 빼서 피하더니.
퍼억
그 힘 그대로, 몸을 종방향으로 한 바퀴 돌려 발꿈치로 세희의 어깨를 내리쳤다.
“큭……!”
몸이 휘청했다.
세희는 무너진 자세를 추스르려 발을 내디뎠다.
침착하게.
“……어?”
발을, 헛디뎠다.
풀썩
세희가 넘어지자마자 목각인형의 움직임이 멈췄다.
세희는 눈을 질끈 감았다. 이런 어이없는 실수를 하다니. 분명 호되게 혼날 것이다. 이게 실전이었다면 죽었을 거라며.
하지만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상호의 호통은 들리지 않았다.
“오늘 컨디션이 별로인가 보네.”
목각인형이 그녀의 어깨를 잡고 일으켜 세웠다.
“앉아서 쉬어, 세희야.”
“……네.”
세희는 기어드는 목소리로 대답하고 스탠드로 터덜터덜 걸어갔다.
자리의 양옆에는 이츠키와 은율이 앉아 있었다.
“괜찮습니까?”
“응.”
세희는 이츠키의 물음에 짤막하게 답하고 고개를 푹 숙였다. 은율의 손이 등을 토닥이는 게 느껴졌다.
오늘따라 되는 게 없었다.
‘……방에 가면 운기조식이나 해야겠다.’
세희는 그렇게 생각하며 팔에 얼굴을 묻었다.
* * *
“면담, 하솔이 차례였지?”
상호가 교탁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1학년 줄에서 한 아이가 대답했다.
“네.”
“시간을 좀 바꿔야겠다. 다음주 월요일. 괜찮지?”
“네. 괜찮아요.”
“고맙다.”
상호는 씩 웃어 보이고 세희와 태화를 돌아보았다.
“세희, 태화. 끝나고 이야기 좀 하자.”
“……네.”
“응.”
오늘은 인사를 시킬 사람이 없었다.
“수고했다. 다들 들어가서 쉬어. 주말 잘 보내고.”
“네.”
상호의 말이 끝나자 아이들이 교실을 떠나기 시작했다. 세희와 태화만 빼고.
곧 셋만 교실에 남았다.
상호는 둘을 향해 다가가서 책상에 걸터앉았다.
“둘이 화해는 했어?”
“응.”
태화만 대답하고, 세희는 입을 열지 않았다. 상호는 태화를 향해 눈살을 찌푸렸다.
“세희는 아닌가 본데?”
“했어. 얘가 안 받은 거야.”
“그럼 화해가 아니잖아.”
“어쨌든 난 사과했어.”
상호의 손이 세희의 손을 부드럽게 그러쥐었다.
“세희는 아직 화 안 풀렸어?”
“……아니요.”
어린아이 취급받기는 싫었다.
“풀렸어요.”
세희는 일부러 밝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상호에게는 통하지 않는 성싶었다. 의심을 품은 외눈이 세희와 태화를 차례로 훑었다.
“둘이 손잡아 봐.”
세희의 몸이 움찔했다.
친구 사이에 손을 잡는 건 조금 이상하다. 머리나 꼬리는 서슴없더라도.
하지만 유난을 떠는 게 더 이상했다. 결국 세희는 손을 살짝 들며 태화를 돌아보았다.
태화는 세희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윽.’
세희는 그 눈길을 피하며 태화의 손을 살며시 잡았다.
가느다란 손가락들이 얽히며 뜨듯한 온기를 품었다.
그 느낌이 아주 이질적이었지만, 떨어지면 상호가 의심할 것 같아서, 어떻게 하지도 못하고 그저 굳어만 있었다.
태화의 손가락이 은근히 꿈지럭거리며 세희의 손을 주물렀다.
“눈도 마주쳐 봐.”
“……선생님.”
세희는 진짜로 당황해서 상호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상호는 엄한 표정으로 진지하게 말했다.
“어서.”
어쩔 수 없었다.
세희는 슬쩍 태화를 흘겨보았다. 고개를 바로 돌리지 않고 눈으로만.
태화는 아까부터 계속 세희를 바라보고 있었다.
‘얘 진짜 오늘 왜 이래……?’
세희의 입에서 한숨이 나왔다.
곧 세희도 고개를 돌려 태화와 눈을 제대로 마주쳤다. 어차피 자신이 잘못한 것은 없으니까. 꿀릴 게 없으니까.
‘진짜 어디 아픈 것 같네, 표정이…….’
태화는 입을 살짝 벌리고 있었다. 아주 살짝. 턱을 벌린 게 아니라, 위아래 입술에 작은 틈이 생길 정도로만.
도톰한 선홍빛이 눈에 띄었다.
‘화장빨이네.’
눈빛은 또 왜 이리 뜨거운지.
부담스러워서 슬슬 눈길을 떼고 손을 거두려는데, 갑자기 태화가 양손으로 손을 붙들어 빼지 못하게 했다.
그리고 손끝을 손목으로 이끌었다.
‘……뭐야.’
맥박이 빨랐다. 꼭 작은 동물의 심장처럼.
세희는 마른침을 삼키며 태화를 쳐다보았다. 태화는 여전히 흔들림 없는 눈동자로 세희를 응시하고 있었다.
뺨을 붉히며.
그건 화장이 아니었다.
‘진짜 미쳤나……!’
세희는 손을 억지로 잡아 뺐다. 그러자 상호가 당황한 표정으로 물었다.
“세희야? 왜, 왜 그래……?”
“죄송해요, 선생님. 저 이만 갈게요.”
“응? 어, 응. 그래…….”
세희는 거침없이 가방과 검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교실 문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가다가, 고개를 돌려 태화를 흘끔했다.
세희의 몸이 흠칫했다.
‘어?’
의외였다.
분명 평소처럼 비웃거나, 장난스럽게 웃고 있을 줄 알았는데.
젖은 눈으로 애처롭게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야, 장난치는 거야, 장난…….’
모르겠다.
받아들일 수 없다. 세희는 생각을 포기하고 도망치듯 교실을 빠져나왔다.
* * *
상호는 세희가 나간 문을 쳐다보며 입맛을 다셨다.
“……이러면 되냐?”
“응.”
태화는 그제서야 실쭉 웃었다.
“밑밥 다 뿌려 놨으니까, 이제 낚기만 하면 돼.”
“대체 무슨 짓을 하려고?”
“비밀.”
“나한테도 말 못해?”
“그럼. 쌤은 나보다 세희 더 예뻐하잖아. 쌤이 나 배신때릴지 어떻게 알아.”
“다시 한번 말하지만…… 뭐가 됐든 위험한 짓은 하지 마. 심한 짓도 하지 말고.”
“내 생일에 한 것보다 더하겠어? 그만큼만 아니면 된 거지.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걱정 마.”
“에휴…….”
상호의 입에서 한숨이 쏟아져 나왔다.
147. 농밀
마음을 가다듬으려 해도 평정은 쉬이 찾아오지 않았다.
세희는 방바닥에 앉아 운기조식을 시작했다. 혈도에서 혈도로. 가슴속에 심상을 그리며.
하늘색 불꽃.
하늘색…….
‘……집중이 안 되네.’
세희는 한숨을 쉬며 눈을 떴다. 이런 마음가짐으로 운기를 해 봤자 몸에 독만 될 터였다.
이게 다 이태화 때문이다.
‘……아니.’
따지고 보면, 세상 때문이었다.
고아라서.
친척 하나 없는 천애고아라서.
그래도 근 1년 동안은 선생님 덕분에 서러울 일이 없었는데.
‘역시 걔 때문이 맞을지도.’
세희는 눈을 감고 침대에 등을 기댔다.
* * *
지윤이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물었다.
“어데서 이래 큰 걸 구했노?”
태화의 손에는 평범한 것보다 두 배는 커 보이는 케이크 상자가 들려 있었다. 태화는 상자를 살짝 흔들며 대답했다.
“쌤이 사줬는데. 일곱이서 먹을 거니까 제일 큰 거 사래.”
“으짜피 얼굴에 박을 거 아니가?”
“박고 먹으면 되지.”
방에는 여섯 명이 둥그렇게 둘러앉아 있었다. 세희를 뺀 2학년 전원이.
이츠키가 가느다란 눈을 깜작였다.
“세희 오늘 생일입니까?”
“아니. 이미 지났대.”
“언제입니까?”
“몰라. 안 가르쳐 주던데.”
태화는 상자를 지윤에게 넘겼다.
“딱 10분 후에 들어와. 분위기 팍팍 끌어올려 놓을 테니까.”
“무슨 짓을 할라는 기고?”
“이따 와 보면 알아.”
그 말에 아이들이 아리송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나빛은 아무래도 불안한 모양이었다.
“꼭 몰카를 해야 해? 선생님도 안 계시잖아. 위험하면 어떡해…….”
“뭘 위험해. 그런 거 전혀 아니거든?”
태화는 코웃음을 치고 일어났다.
“간다.”
그리고 검은 연기를 뿜으며 펑 하고 사라졌다.
남은 다섯은 조용히 서로 눈을 마주쳤다.
은율이 제일 먼저 입을 열었다.
“……괜찮을까?”
“괘안타. 괜히 부부가 아닌기라.”
지윤은 상자를 들어 올리며 입맛을 다셨다.
“기다리 바라. 그럼 알겠제. 야, 근디 으짜피 갖다박을 턴디 쫌만 무보까?”
* * *
펑
세희의 뒤에서 무언가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지 않아도 뻔했다. 수천 번을 들었던 소리니까. 세희는 미동도 않고 계속 침대에 기대어 앉아만 있었다. 눈을 감은 채로.
“안뇽.”
장난스런 목소리. 그리고 어깨에 닿는 손.
세희는 속으로 울컥했다.
‘운기조식 중이면 어쩌려고…….’
그래도 화는 내지 않고, 살며시 고개를 돌려 태화를 흘겨보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자 태화가 먼저 입을 열었다.
“천세희.”
“왜.”
“왜 이렇게 예쁘냐?”
세희의 머릿속을 물음표가 가득 채웠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세희는 곧 이를 부드득 갈아붙이며 베개로 태화를 후려갈겼다.
“너 미쳤어? 오늘 왜 이러는데!”
“예쁜데 예쁘다고 말도 못해?”
태화는 콧방귀를 뀌더니 침대에 벌렁 드러누웠다.
“하던 거 해. 운기조식인지 뭔지 하고 있던 거 아냐?”
“맞아.”
“계속 해. 신경쓰지 말고.”
“……안 그래도 알아서 할 거야.”
세희는 눈을 감았다.
하지만 운기는 하지 않았다. 집중이 안 되기도 했지만, 등 뒤에 있는 태화가 무슨 짓을 할지 몰라서.
하는 척만 했다.
“스읍…….”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손을 그릇처럼 모아 단전에 붙이고.
“후우…….”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역시나. 태화가 침대에서 슬그머니 내려서는 게 느껴졌다.
‘그럼 그렇지.’
세희는 온몸의 신경을 곤두세웠다.
눈을 뜨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앞으로 다가온 것, 쪼그려 앉은 것.
그리고 얼굴을 천천히 들이대고 있는 것.
‘진짜…….’
왜 이러는 걸까. 세희는 살짝 실눈을 떴다.
‘……윽!’
태화의 얼굴이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더 가까이, 가까이. 눈썹이 스칠 정도로 가까이까지.
세희는 결국 눈을 부릅뜨고 태화를 노려보았다.
“뭐하자는 거야?”
태화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에 세희의 어깨를 잡고 옆으로 쓰러트린 후, 그 위에 몸을 겹쳤다.
“……윽!”
등에 격통이 느껴졌다. 세희는 입술을 깨물며 눈살을 찌푸렸다.
얼굴에 구불거리는 머리카락이 쏟아졌다.
단발인데도.
그만큼 가까운 곳에서 태화가 속삭였다.
“딱 한 번만.”
“……뭐?”
“맛만 볼게. 오키?”
“뭘 오케이야!”
태화의 입술이 가까이 다가왔다.
붉다. 반짝인다. 그럴수록 세희의 눈은 핑글핑글 돌았다. 친구끼리 무슨 짓을 하자는 걸까. 대체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어쩌면.
이 정도는, 어떻게든 해볼 수 있을지도.
‘친구……니까.’
더 싸우기는 싫다.
세희는 손을 뻗어 태화의 멱살을 잡았다.
“응?”
태화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 * *
“이야…….”
지윤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소리 쥑이네. 질펀~혀. 그제잉?”
이츠키가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윤과 아이들은 세희의 방을 엿듣는 중이었다. 나디아와 나빛이 문에 귀를 댄 채로 어리둥절해했다.
“……이게 무슨 소리야?”
“신앙인들은 몰라도 된디.”
지윤은 간단히 일축하고 문에서 귀를 뗐다.
“둘이서 좋은 시간 보낼라는갑다. 우리끼리 케이키나 묵자.”
“저대로 둬도 괜찮습니까?”
“내비두라. 부부 사이는 방해허믄 안돼.”
“알았습니다.”
아이들은 종종걸음으로 방 앞을 떠났다.
* * *
다음 날, 토요일 아침의 급식소.
입구로 들어서던 태화가 빽 소리를 질렀다.
“야아아아! 개년들아! 왜 안 왔는데에에에!”
다섯의 시선이 태화에게 집중되었다. 급식소에 있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도.
지윤이 양 볼에 빵빵하게 든 음식을 삼키고 콧방귀를 뀌었다.
“하이고, 색시 왔나.”
“야, 오지윤! 내가 케익 들고 들어오라고 했잖아!”
“느그들이 너무 빡씨게 허길래 못 들어갔다. 안 들어간 기 아이고.”
“아아아악!”
태화가 머리를 쥐어뜯으며 절규했다.
나빛이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어제 풀지 못한 궁금증이 아직도 남아 있는 모양이었다.
“태화야, 어제 세희랑 뭐 했어?”
“하긴 뭘 해? 아무…… 아무것도 안 했어.”
하지만 아무것도 안 한 사람의 표정이 아니었다. 태화는 얼굴을 붉히며 성난 걸음으로 다가와 자리에 앉았다.
그때 급식소 문이 열리고 세희가 걸어 들어왔다. 어째 뺨에 손바닥 자국이 시뻘겋게 남아 있었다. 꼭 누군가에게 따귀를 맞은 것처럼.
나빛이 손을 번쩍 들었다.
“세희야!”
세희는 살짝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 식판에 과일과 빵 약간을 담아 여섯 친구들에게 걸어왔다.
나빛이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어제 태화랑 뭐했어?”
“어…….”
세희는 자리에 앉지도 못하고 우물쭈물하다가, 친구들의 눈치를 살피고 대충 얼버무렸다.
“그냥…… 둘이 놀았어.”
“볼은 왜 그렇게 빨개?”
“이거…… 이거는 내가 잠 깨려고 때린 거야.”
“세희.”
이번엔 이츠키가 물었다.
“어제 저녁은 왜 안 먹었습니까?”
“아, 저녁…… 배가 별로 안 고팠어. 한창 집중하고 있기도 했고…….”
“그런데도 그렇게 적게 먹습니까?”
“다이어트 중이라서…….”
세희는 말끝을 흐리며 태화의 옆에 앉았다.
그러자 태화가 슬금슬금 엉덩이를 의자 끝으로 움직였다. 세희와 거리를 두기 위해서.
세희의 손이 태화의 옷자락을 붙들었다.
“어디 가.”
“……윽.”
어제와는 정반대. 태화의 입에서 당황성이 흘러나왔다.
태화는 흔들리는 눈동자로 세희를 흘겨보고는 태연한 척 빵을 한 입 베어 물었다.
그 앞에서 둘을 지켜보던 지윤이 툭 물었다.
“마, 세희야.”
“응?”
“좋드나?”
그 말에 세희는 손으로 입을 가리고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다가, 이내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쁘지 않더라.”
뺨이 붉었다. 따귀를 맞지 않은 쪽도.
그 말을 들은 태화가 허리를 확 숙이고 기침을 했다.
“커흑! 콜록, 콜록!”
씹다 만 빵조각이 식탁에 튀었다.
태화는 사레가 잦아들 때까지 기침을 하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세희를 노려보았다.
“미친년……!”
그리고는 급식소 밖으로 나가 버렸다. 도망치듯이 급하게.
지윤은 태화가 나간 문을 빤히 쳐다보다가 세희를 돌아보았다.
“참말이가?”
“당연히 뻥이지.”
세희는 무심한 표정으로 태연하게 대답했다.
“진짜 좋았겠어? 그냥 살짝 놀려준 것뿐이야.”
“그 말은 하긴 했다는 이야기구마.”
지윤이 정곡을 찔렀다.
세희는 그 말에는 얼른 대꾸하지 못하고 뺨을 살짝 붉혔다.
“……안 좋았어. 정말로.”
“안다, 안다. 당연히 그라겠제.”
지윤은 고개를 끄덕이고 식사를 계속했다.
하지만 세희는 시원스럽게 식사를 하지 못하고 과일만 깨작거리며, 태화가 나간 문을 연신 흘끔거렸다.
새로 생긴 홍조는 여전히 그대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