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빠악
통렬한 타격음이 울려 퍼졌다.
“켁!”
미래가 허벅지를 부여잡고 바닥을 굴렀다. 상호는 인형을 잠시 정지시키고 말했다.
“느리다, 미래야.”
“개조가 안 끝났어요. 시작은 했는데…….”
“일부러 너한테 맞춰주고 있는 거야. 그 속도 안에서 감각 늘리라고.”
“아야야……. 근데 뿅망치가 왜 이렇게 아파요?”
“세게 치니까 아프지.”
사실은 내공으로 때려서 그렇다. 안 아프면 몸이 배우질 않으니까. 상호는 그 사실은 비밀로 하고 다시 곰인형을 움직였다.
“계속하자.”
“네…… 케헥!”
아이들은 그 후로도 계속 맞았다.
1학년 아이들 중에는 크게 주목할 만한 아이가 없었다. 다들 작년 이맘때의 세희보다 훨씬 약했다. 아무래도 성적순으로 뽑은 게 아니라 형편이 어려운 순서대로 뽑았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눈에 띄는 아이는 셋.
마법공학을 쓰는 미래.
제일 약한 이서.
그리고 곧 불러낼, 딱 한 명의 마법사 아이.
“아리야.”
“네.”
머리에 파란 뿔이 달린 아이가 스탠드에서 일어났다.
파란 단발. 노란 눈동자. 뱀처럼 세로로 길게 찢어진 동공. 몸에 드문드문 돋은 비늘.
용 융합체. 주아리.
“시작하자.”
“네.”
상호는 운동장으로 걸어 나오는 아리를 주시했다.
싸우는 건 어제 이미 봤다. 악마 융합체보다는 정석적인 마법을 쓰는 용 융합체.
아리의 손끝에서 동그란 마법진이 펼쳐졌다.
쩌적……
허공에서 증기가 뭉치더니 수많은 고드름을 만들었다.
태화보다 속도는 느리지만, 변형되지 않은 정순한 마법. 상호는 그 고드름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쟤가 누나한테 더 잘 배울 수도 있겠네.’
데려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태화와 비교하며 서로의 장단점을 파악하면 성취에 도움이 될 테니까.
다만 그가 아리를 뽑은 이유는 태화 때문이 아니었다.
“졸라 신기하게 생겼네.”
“니도 뿔 달렸다 아이가.”
“뿔이 아니라. 걍 전체적으로.”
상호는 태화와 지윤의 속삭임을 들으며 아리를 바라보았다.
확실히 신기하게 생겼다. 태화는 뿔과 꼬리를 빼면 사람과 똑같지만, 아리는 뿔과 꼬리를 빼더라도 평범한 사람과는 한참 거리가 있었다.
“꼬리 되게 굵네. 쟤도 바지 입긴 글렀다. 나보다 더 힘들겠네.”
월남치마처럼 펑퍼짐하고 긴 치마 아래에서 굵은 도마뱀 꼬리가 흔들렸다.
저 보통 사람들하고 다른 외모 때문에, 중학교에서 괴롭힘을 많이 당했다는 듯했다.
‘예쁘게 생겼는데.’
상호는 말없이 아리가 곰인형과 싸우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 * *
“다들 수고했다.”
상호는 그렇게 말하며 교실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모래 알갱이가 눈에 선명히 보일 정도로 교실 바닥을 뒤덮고 있었다. 거기에 머리카락 뭉치는 덤.
‘……사흘밖에 안 됐는데. 사람이 느니까 금방 더러워지는구나.’
청소는 그가 직접 하는 것이 더 빠를 것이다. 면담이 늦어지면 서로에게 부담이 되니까.
상호는 교탁을 두드렸다.
“조심히 들어가.”
“차렷!”
“하지 마.”
“멍!”
아이들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고개를 꾸벅 숙였다.
“안녕히 계세요.”
그중엔 인사도 생략하고 빠르게 도주하는 아이도 한 명 보였다. 상호는 재빨리 내공을 뻗어 이서의 어깨를 붙들었다.
“이서야. 넌 면담해야지.”
“화장실 갔다 올게요.”
거짓말인 건 뻔히 알았지만, 안 보내주면 그 자체가 문제가 된다. 상호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리고 믿을 만한 아이들 중 한 명을 불렀다.
“지윤아. 이서랑 같이 좀 갔다 와 줄래?”
“맡기두이소.”
지윤이 이서에게 어깨동무를 했다.
“가자~ 아그야~.”
“놔, 놔줘요.”
“화장실 앞에서 놔 주께~. 후딱 싸고 오자잉~.”
이서가 반항했지만 지윤은 쉽게 놔주지 않았다. 상호는 문을 나서는 둘을 보며 지윤에게 맡기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세희처럼 날카롭지도 않고, 태화처럼 덜렁대지도 않고, 나빛이처럼 여리지도 않으니. 이서에게 휘둘리지 않고 잘 데려와 줄 것이다.
이제 슬슬 청소를 해 볼까.
상호가 청소도구함을 여는데, 세희가 아직 안 가고 남아 있는 게 보였다. 그는 눈을 끔뻑였다.
“세희 왜?”
세희가 눈을 깜작였다.
“청소 도와드리려구요.”
“그것 때문에 남아있었어? 어휴…….”
상호는 한탄하며 세희의 머리를 마구 쓰다듬었다.
“가서 쉬어. 선생님 이서 면담 때문에 그냥 후딱 해치울 거야.”
“제가 도와드릴 건 없으세요?”
“없어, 없어. 빨리 가서 쉬어.”
머뭇거리던 세희는 고개를 꾸벅 숙이고 문가로 향했다.
“그럼…… 안녕히 계세요.”
“응. 들어가.”
상호는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 청소도구함에서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꺼냈다.
그가 내공을 뻗자 빗자루가 저 혼자서 비질을 시작했다.
‘머리카락이 가지각색이네.’
대부분 검은색.
나빛의 밝은 회색. 나디아의 금색. 아리의 파란색.
‘잘 모으면 가발 하나 만들겠다. 누가 이렇게 많이 빠지냐.’
그런데 어째 짧은 게 많이 보였다.
‘……난가?’
상호는 황급히 자신의 머리로 손을 가져갔다. 바닥에 떨어진 저 머리카락들이 자신의 머리카락보다 길기를 기도하며.
‘와 씨, X됐다. 똑같다.’
어쩐지 하수구가 자주 막히는 것 같더라니.
상호가 스트레스성 탈모를 검색하려고 핸드폰을 꺼내는 그때, 교실 문이 열리며 지윤과 이서가 들어왔다.
“쌤예~ 잡아왔심더~.”
지윤이 싱글벙글 웃으며 이서를 들어 올렸다. 이서는 아예 지윤의 손에 대롱대롱 들려 있었다.
이서가 흙 씹은 표정을 지었다.
“으…….”
“잘했어.”
상호는 씩 웃었다.
“지윤인 가고, 이서는 앉자.”
“갑니데이~.”
“응. 잘 가.”
지윤이 낄낄거리며 교실을 나갔다.
이제야 첫 면담. 상호는 허공섭물로 의자를 빼고 교탁에서 기록부와 펜을 가져왔다. 빗자루를 계속 조종하면서.
그 모습을 본 이서가 물었다.
“선생님 마법도 써요?”
“응?”
상호는 눈을 끔뻑이다가 피식 웃었다.
“아니, 다 내공으로 하는 거야.”
“내공으로 그런 것도 돼요?”
“배워 볼래? 한 3학년쯤 되면 비슷하게 흉내라도 내볼 텐데.”
“……아니요.”
포기가 빠르다.
상호는 쓸어 모은 먼지를 쓰레받기에 담으며 말했다.
“이서야.”
“네.”
“졸업하고 나면 뭐 할 거야?”
“알아서 살겠죠.”
이서는 툴툴대며 다리를 건들거렸다.
상호는 솔직히 짜증이 났지만,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그러면 여기 학교는 왜 왔어? 솔직히 재미없는 학교 아냐?”
“…….”
이서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마 긍정의 뜻이리라.
분명 여학교보다는 남녀공학을 더 좋아할 부류인데. 아마 부모가 사람 만들어 달라고 이곳에 보낸 게 아닐까.
상호는 넌지시 떠보았다.
“부모님이 여기로 보내셨어?”
침묵 속에서 이서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래서 여기서 딱히 하고 싶은 게 없구나?”
이번에도 끄덕.
상호는 한번 강하게 나가 보기로 했다.
“이서야.”
“…….”
“이서야.”
“네.”
“여기 학비가 얼마인지 알아?”
“……네.”
“그거 다 환불해줄 테니까 다른 학교로 갈래?”
이서는 살짝 당황한 표정으로 시선을 피했다.
“……아니요.”
“부모님이랑 싸우기 싫지?”
“아뇨……. 그런 건 아니고.”
“한심한 버러지 되기 싫은 거 아냐?”
상호는 창밖을 가리켰다.
“최선을 다한 적도 없으면서 불평불만만 하는 놈들. 돈이 적으면 남을 미워하고, 돈이 많으면 남을 업신여기는 놈들. 평생 남 탓만 하고 살아가는 그런 개밥버러지들이랑은 달라지고 싶은 거 아니야?”
“……그.”
이서의 입가가 비틀렸다.
“어차피, 저는…… 그런 버러지 아니에요.”
“그렇지?”
상호는 씩 웃었다.
“선생님도 알고 있어.”
그 말에 이서가 눈살을 찌푸리며 바닥을 꼬나보았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 중에서도…… 그렇게 살고 싶어서 그렇게 된 사람은 별로 없어. 다 자기 나름대로 호쾌하고, 당당하게 살고 싶었겠지. 그런데도 그렇게 되어 버리는 거야.”
상호는 이서와 눈을 마주치려 했지만, 이서가 고개를 돌려서 그러지 못했다.
그는 이서를 향해 몸을 기울였다.
“이거 하나만 약속할게. 네가 나 따라오기만 하면, 부모님이 널 절대로 한심하게 여기지 못하도록 만들어 줄게.”
“……필요 없어요.”
“만약 날 따라왔는데도 부모님이 무시한다면, 그땐 나한테 말해. 내가 직접 네 편이 되어 줄 테니까.”
그 말은 솔깃했을까. 이서가 고개를 들어 그와 눈을 마주쳤다.
“내 편이요?”
“응. 네 편. 네가 진짜 전교 꼴찌를 하더라도, 내 수업 따라오기만 하면, 네가 최선을 다한 거라고 네 부모님께 대신 화내 줄게.”
상호는 흔들림 없는 눈동자로 말을 맺었다.
“네가 인정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는 뜻이야.”
이서는 한참을 말없이 고민했다.
손을 꼼지락거리고, 발끝으로 땅을 두드리고.
그러다가 결국은 상호를 바라보며, 퉁명스럽게 물었다.
“그런다고 뭐가 달라져요?”
“많은 게 바뀌지.”
상호는 이서의 손을 움켜쥐었다.
“1년. 아니 반년만 따라와도 많은 게 바뀔 거야. 정말로.”
“……알았어요.”
이서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한번 속아 볼게요.”
“그래. 잘 생각했다.”
“그런데.”
“응?”
이서의 시선이 아래를 향했다.
“진짜 막 만지시네요. 소문대로.”
“……아.”
상호는 당황하며 이서의 손을 놓았다. 이제 이 정도의 접촉은 무의식적인 습관이 되어 버렸다.
“미안, 조심할게…….”
“선생님.”
“응.”
“선배들이 그러던데…….”
“아니야.”
말이 나오기도 전에 단칼에 잘라 버렸다. 상호는 손과 머리를 동시에 내저으며 강하게 부인했다.
“그건 어쩌다가 소문이 이상하게 퍼진 거야. 믿지 마. 특히 태화가 하는 말은.”
“그래요?”
이서가 다시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속아 볼게요.”
“아니라고…….”
“면담은 끝이에요? 가도 돼요?”
“아차, 잠깐만…….”
상호는 황급히 기록부를 폈다. 물어봐야 할 건 물어보지도 않았다. 가족관계는 어떤지, 형편은 괜찮은지, 고민은 없는지 물어봐야 하는데.
이서가 다리를 꼬며 팔짱을 끼었다.
“빨리 물어보세요. 저도 가서 좀 씻게요.”
“알았다, 알았어…….”
상호는 한숨을 푹 쉬었다.
이 아이를 사람으로 만들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았다.
145. 놀림
“선생님 다리랑 눈은 왜 그런 거예요?”
미래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상호는 그 부담스러운 광채를 외면하며 손사래를 쳤다.
“그 질문은 안 받는다고 했잖아.”
“그래두요. 저한테만 살짝 알려주시면 안 돼요?”
“안 돼. 비밀은 비밀이야.”
“저 궁금한 거 못 풀면 정신병 걸린단 말이에요!”
“선생님은 비밀을 말하면 죽는 병이 있어…….”
“제가 선생님 바지를 벗길지도 몰라요!”
“물론 농담이겠지만 가능할 것 같진 않네.”
“두고 보세요.”
미래가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언젠가 선생님 다리를 보고 말 테니까.”
“그래…….”
상호는 쓰게 웃고 펜을 들었다.
“부모님은 어떤 일 하셔?”
“작은 사업 하셔요.”
“작은 사업인데…… 그런 걸 만들 돈은 어디서 나와?”
“제 특허로요.”
“특허…….”
예현여고가 헌터 업계에서는 명문이긴 하지만, 이 아이는 더 좋은 곳에 가야 하는 게 아니었을까. 상호는 자신이 미래를 데리고 있는 것이 국익에 해가 되는 건 아닐지 걱정이 되었다.
“……많이 벌려?”
“네. 등록금도 제가 내고 있어요.”
“대단하네. 마법공학 특허야?”
“마법공학도 있고, 그냥 마법 없이 평범한 특허도 많구요.”
“이야……. 그러면 너는 돈 걱정은 없겠네.”
“그런 편이죠.”
미래가 어깨를 으쓱였다.
상호는 감탄해서 혀를 내둘렀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중3이었던 아이가 이미 먹고살 만큼 벌고 있다니.
“그럼 그건 됐고……. 미래 예전에 그랬지? 여러 유형이랑 싸우면서 연구해 보고 싶다고.”
“네.”
“어때? 잘 될 것 같아?”
미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이미 연구하고 있어요. 다른 애들이랑 언니들 싸우는 거 녹화하면서.”
“그래?”
상호는 잠시 고민하다가 물었다.
“너는 그 슈트로 뭘 하고 싶은 거야?”
“음…….”
미래가 턱을 짚고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렸다.
“결국은…… 상품화죠. 갖다 팔 수 있도록 만드는 거. 그게 제 최종 목표예요. 당장은 아니지만.”
“어디다 팔 건데?”
“그게…….”
미래는 머리를 긁적이다가 대답했다.
“태궐이 요즘 몬스터 관련 사업에 눈독을 들이는 거…… 아세요?”
“……알지.”
“그래서 거기에 한번 팔아볼 생각이에요. 몬스터 사냥에 특화된 슈트로. 태궐은 원래 전자제품이 강세였기도 하니까요. 전투 기계의 상품화에 관심이 많을 거예요, 분명.”
장래의 구상이 확실하다. 상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잘 될 것 같네.”
“헤헤……. 그거야 모르죠.”
“아니, 정말로. 뭐…… 어쨌든 알겠다.”
상호는 면담 기록부를 내려다보며 고민했다.
“그럼 다음은…….”
* * *
“멍!”
단비가 깜짝 놀라 스스로의 입을 틀어막았다.
“아, 죄송…….”
“됐어. 괜찮아.”
상호는 펜으로 머리를 긁적이며 기록부를 내려다보았다.
“단비야, 네가 개과 몬스터 융합체잖아?”
“네!”
“그럼 혹시 냄새도 잘 맡아?”
“네!”
“그렇게 앉는 것도…… 그게 편해서 그래?”
단비는 의자 위에 쪼그려 앉아 양손으로 의자를 짚고 있었다. 꼭 개 같은 자세로.
단비가 날갯짓처럼 고개를 빠르게 끄덕였다.
“멍! 아, 아니…… 네. 이게 편해요.”
“그래…….”
그게 좋다면야 어쩔 수 없다. 상호는 입맛을 다셨다.
“부모님은 어떤 일 하셔?”
“가게 하세요. 고깃집.”
“남동생이 있지? 사이는 어때?”
“맨날 싸워요. 그래도 놀 땐 잘 놀아요.”
“그럼 다행이네.”
상호는 기록부에 글을 끼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