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7화 (167/501)

 * * *

상호는 운동장에 서서 스탠드에 앉은 아이들을 올려다보았다.

‘……참 많네.’

 슬슬 익숙해질 만도 한데, 열넷은 역시 많았다.

 그가 따로 말하지 않아도 아이들은 알아서 학년을 구분해 앉았다. 상호는 2학년 아이들과 눈을 마주쳤다.

“어제 말한 대로 목각인형이랑 대련하고 있어. 나중에 몰아서 피드백 해줄 테니까. 번호 순서대로 계속 돌려.”

 지윤이 손을 번쩍 들었다.

“번호가 우찌 됩니꺼?”

“세희, 태화, 나빛이, 지윤이, 은율이, 이츠키, 나디아. 등록순이야. 시작해.”

 상호는 목각인형을 조종하며 1학년들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너희는…….”

 그의 눈길이 미래에게 향했다.

“미래부터 하자.”

“네!”

 미래가 당당한 걸음으로 운동장에 나왔다.

미래는 어제와 다르게 무언가를 잔뜩 껴입은 모습이었다. 금속으로 된 기계였다. 가슴 부분과 골반 부분만 가린 채로, 그 아래에는 검은 타이즈를 입고 있었다.

마법보다는 과학에 좀 더 치중한 물건 같았다.

미래가 손에 든 헬멧을 쓰며 말했다.

“준비됐어요.”

 상호는 미래를 볼 때마다 궁금했다. 혼자 만들었을까. 돈이 얼마나 들었을까. 저런 물건은 난생처음 보는데, 민정은 저런 걸 만들 수 있을까.

‘물어보는 건 나중에 하고.’

 상호는 뿅망치를 든 곰인형을 조종해 운동장으로 보냈다.

그때 옆에서 돌을 긁는 듯한 소리가 났다.

콰가가각

세희가 목각인형의 목을 잡고 바닥에 쓰러트리고 있었다. 들고 있는 검의 칼끝이 인형의 얼굴을 겨눴다.

목각인형이 검의 옆면을 쳐내자 맑고 날카로운 금속성이 울려 퍼졌다.

째애앵

흙먼지가 풀풀 일어날 정도로 격렬한 전투. 1학년 아이들의 시선이 세희에게 집중되었다.

상호는 손뼉을 쳤다.

“자, 자. 너희는 저쪽보다 이쪽에 집중해야지. 저건 너희가 싸우기엔 이르니까. 곰인형이랑 어떻게 싸울지나 고민해 봐.”

 그리고 곰인형을 미래에게 돌진시켰다. 시작 신호도 없이.

“흡!”

 미래는 급히 헬멧의 바이저를 내렸다. 가슴과 골반의 기계가 작동하며 전신에 전개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상호는 기다려주지 않고 일격을 먹였다.

빠악

뿅망치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충격이 미래의 헬멧을 강타했다.

“윽……!”

 미래는 피하지 못하고 비틀거렸다. 변신에 시간이 걸리는 모양이었다.

너무 느리다. 준비가 다 됐다고 했던 것 같은데. 상호는 일단 지켜보기로 했다.

기계의 장착이 끝나자 미래가 곰인형을 향해 손을 들어 올렸다.

타탕

손가락에서 비살상용 탄환이 쏘아져 나갔다.

 곰인형은 탄환을 요리조리 피해 미래를 향해 달려들었다. 미래도 이번에는 가만히 맞고만 있지 않았다.

앞으로 내뻗은 두 손에서 화염이 뿜어졌다.

콰아아아

인형이 화염에 휩싸였다.

 그 화염은 공격뿐만이 아니라 추진의 용도도 겸하고 있었는지, 미래의 몸이 뒤로 휙 튕겨져 나갔다. 신발에서도 작은 화염이 뿜어지고 있었다.

 미래는 공중에서 균형을 잡고 다시 손을 뻗었다.

위이잉……

마나의 움직임.

미래의 손바닥에 모여든 마나는 곧 노란 광선이 되어 화염 속으로 내리꽂혔다.

콰아앙

“헷.”

 미래가 자신만만하게 웃었다.

 하지만 대련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직 안 끝난 수준이 아니라, 이제 막 시작했을 뿐이었다.

빠악

“케흑!”

 미래의 머리가 앞으로 확 숙여졌다.

“……어?”

 미래는 당황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서는 곰인형이 다시금 뿅망치를 들어 올리고 있었다. 그을음 하나 없이 멀쩡한 모습으로.

상호는 뿅망치로 미래의 어깨를 후려치며 소리쳤다.

“느려, 너무 느려. 이래가지고는 아무도 못 이긴다.”

“윽……!”

 미래는 다리를 뒤틀었다.

 그러자 미래의 발에서 나오는 불꽃이 방향을 바꿨다. 그 불꽃의 반발로 미래의 몸이 빙그르르 회전했다.

인간은 따라 할 수 없다. 기계이기 때문에 가능한 불규칙적인 움직임이다. 미래는 그렇게 곰인형의 추격을 잠시나마 따돌리고 다시 손을 뻗었다.

타타탕

내쏜 총알이 곰인형을 향해 날아갔다.

곰인형은 당연히 여유롭게 총알을 피했지만.

‘……흠.’

 총알의 궤적은 다른 누군가를 향하고 있었다.

세희.

상호는 일부러 총알을 내버려 두었다.

‘고무탄이니 다치지는 않을 거야.’

 맞으면 아프겠지만.

그때 상호는 보았다. 세희의 눈동자가 총알을 향해 휙 돌아가는 것을.

검을 쥐던 양손 중의 하나가, 자연스럽게 검을 놓고 검지와 엄지로 총알을 잡아내는 것을.

“……어?”

 세희가 몸을 움찔했다.

본인이 잡아놓고 본인이 놀라는 것을 보니, 아마 무의식적으로 반응했던 모양이었다.

‘잘했네.’

 상호는 만족한 웃음을 지었다. 비살상용 고무탄이라 실탄보다는 느리지만, 예상치 못한 기습으로서는 충분히 제 기능을 했다.

세희는 거기에 잘 반응해 냈고.

‘그래도 방심하면 안 되지.’

 목각인형이 세희의 목을 덥석 잡고, 곰인형이 미래에게 달려들었다.

세희는 다시 한번 재빠르게 반응해 목각인형을 걷어차며 뒤로 공중제비를 넘었다.

반면에 미래는.

빠악

“윽!”

 뿅망치가 다리를 강타하자 균형을 잃고 바닥에 처박혀 버렸다.

쿠당탕

“쿠엑! 아고고…….”

 상호는 둘을 향해 소리쳤다.

“됐다. 둘 다 들어와.”

“네? 아직 더 할 수 있는…….”

 미래가 벌떡 일어나며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지만, 상호는 손가락을 까딱여 들어오라는 손짓을 했다.

“오늘 하루종일 할 거야. 일단은 들어와.”

“네.”

 미래는 고개를 끄덕이고 터덜터덜 걸어왔다. 세희는 이미 스탠드로 들어와 있었다.

상호는 2학년들에게 먼저 말했다.

“세희 하는 거 봤지? 저렇게 하는 거야. 악바리같이. 새로 온 애들은 잘 지켜봐. 다음은 태화.”

“웅.”

 태화가 운동장으로 걸어 나갔다.

상호는 스탠드로 돌아와 앉은 미래를 바라보았다.

“미래야.”

“아, 네.”

“그 기계는 양산이 목적이야? 아니면 그거 하나만?”

 미래가 헬멧을 벗으며 대답했다.

“이거 하나만이에요. 일단은. 양산을 할 수 있다면 하겠지만…… 지금 목적은 가장 강한 슈트부터 개발하는 거예요.”

“기계는 도구지?”

“네.”

“도구는 도구를 쓰는 이유가 있어야 해. 많거나, 빠르거나, 강하거나. 그런데 지금 네 슈트는 그렇지 않아.”

 상호는 조곤조곤 설명했다.

“이동도 느리고, 공격도 느려. 거기다 나름대로 급소를 가리긴 했지만…… 내가 볼 때는 베고 찌를 곳이 수백 군데는 돼. 만약 그 기계가 양산형이라면 일반인에게 최소한의 전투력을 제공하는 좋은 물건이 되겠지. 하지만 헌터 일을 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해.”

“그거는 실탄을 장착하면…….”

“딱히 의미가 크지 않다. 몬스터 상대로는.”

 그 말에 미래가 머리를 긁적였다.

“으음…… 더 개조해 볼게요.”

“더 빠르게 만들 수 있겠어?”

“방법은 언제나 있죠.”

 상호는 씩 웃는 미래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고 다른 1학년들을 돌아보았다.

 그의 눈길이 앞머리를 염색한 아이에게 붙박였다.

“다음, 이서.”

 * * *

“뭐하냐?”

 상호의 차가운 목소리가 운동장에 울려 퍼졌다.

“안 뛰어?”

“……후우.”

 운동장에서는 이서가 칼집을 짚은 채로 무릎을 꿇고 있었다. 이서는 엷게 숨을 몰아쉬며 고개를 저었다.

“못하겠어요.”

“뛰지도 않아놓고 칼질 몇 번 했다고 힘들어?”

“너무 빠르잖아요.”

 이서가 곰인형을 째려보며 볼멘소리를 내었다.

“못 잡아요. 이게 최선이에요.”

“최선?”

 상호의 눈썹이 꿈틀했다.

이서는 명백하게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 그냥 제자리에 서서 곰인형이 달려들기를 기다리고, 베어서 안 맞으면 안 맞은 거고, 피해서 못 피하면 못 피한 거고. 그렇게 대충이었다.

“옆에 봐.”

 상호는 이서의 옆을 턱짓했다. 이서가 그곳을 쳐다보았다.

거기에는 2학년 마지막 순서인 나디아가 목각인형과 싸우고 있었다. 거의 두들겨 맞다시피 하면서.

“최선은 저게 최선이야. 말도 잘 안 통하는 타지까지 와서, 가족도 지인도 없는 곳에서, 혼자 뒈지게 싸우는 게 최선이고 의욕이라고. 너는 가만히 서 있는 게 최선이야? 그따위로 해놓고 최선이야?”

 상호는 사납게 따지며 강하게 몰아붙였다. 작년 이맘때 나빛을 혼냈던 것처럼.

이서가 입술을 깨물다가 한마디를 내뱉었다.

“어쩌라고요.”

 그 말에 2학년 아이들이 살금살금 상호에게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당장이라도 터질 듯한 폭탄을 대하는 듯이.

나빛은 도저히 못 보겠다는 듯 세희의 품에 얼굴을 묻었고, 태화는 귀를 막았다. 지윤은 혀를 내두르며 목이 잘렸다는 제스처를 했다.

 그리고 상호는 폭발했다.

“……나디아. 그만.”

 나디아와 목각인형이 멈췄다.

“2학년들은 대련 시작해. 목걸이 받아가. 그리고 권이서. 너는 제대로 뛸 때까지 수업한다. 목각인형으로.”

 상호의 이글거리는 눈동자가 이서를 향했다. 그는 시선을 돌리지 않은 채로 말을 이었다.

“다음, 하솔이.”

 * * *

이서는 끝까지 달리려 하지 않았다.

그냥 대충 뛰는 척을 하다가도, 푹 퍼져서는 엎드려 뻗댔다. 상호는 당연히 봐주지 않고 목각인형으로 등짝을 두들겼다.

“안 뛰어? 안 뛰어?”

“…….”

 이서는 묵묵히 맞았다. 이쯤 되면 아파서 뛸 법도 한데, 이제는 자존심을 걸려고 하는 모양이었다.

결국 곰인형이 1학년 모두와 싸우고 나서도, 이서는 목각인형한테 맞고만 있었다. 심지어는 점심을 먹고 난 오후까지도.

이제는 종례를 해야 할 시간이었다.

“그만.”

 상호는 인형들에게서 내공을 거뒀다. 대련 중이던 2학년들도 손을 멈췄다.

“들어가자, 이제.”

 아이들이 하나둘씩 본관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딱 한 명만 빼고.

상호는 운동장에 무릎을 꿇고 엎드린 이서를 돌아보았다.

한 것은 없지만 몇 시간째 맞고 있었으니 힘들 만은 했다.

“이서야.”

“…….”

“힘들어?”

“…….”

“업어 줄까?”

“……아니요.”

 하지만 이서는 몸을 일으키지 않았다.

결국 상호는 내공을 뻗어 이서를 번쩍 들어 올렸다.

“종례는 해야지. 가자.”

“…….”

 이서는 당황하면서도 심통이 난 표정으로 둥둥 떠서 상호의 뒤를 따랐다.

* * *

“오늘부터 하루에 한 명씩 면담할 거야.”

 상호는 뒷짐을 진 채로 아이들을 둘러보았다. 아이들은 세수를 했어도 꾀죄죄한 모습으로 자리에 앉아 있었다.

원래는 번호순으로 하려 했지만.

“오늘은 이서. 이서는 종례 후에 남아 있어.”

“……네.”

 이서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작게 대답했다.

상호는 출석부로 교탁을 두드렸다.

“수고했고. 조심히 들어가.”

“차렷! 경례! 충!”

“하지 마.”

“나디아는 쌤 볼 때마다 경례하잖아! 왜 나는 안 되는데!”

“안녕히 계세요.”

 태화가 난리를 치는 사이 아이들이 교실을 나섰다. 상호는 바로 앞까지 와서 따지는 태화의 이마에 딱밤을 날리고 아이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잘 가, 얘들아……. 너는 임마. 존댓말 쓰라고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을래?”

“그럼 쌤도 우리한테 존댓말 써!”

“초등학교냐? 너도 빨리 가. 이서 면담 기다리고 있…….”

 상호는 말하다 말고 퍼뜩 고개를 들었다. 뭔가 싸한 감각이 느껴져서.

이서의 자리에는 텅 빈 의자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아.”

 그의 입에서 허탈한 신음이 새어 나왔다.

 144. 불량아

다음 날 아침. 조례 시간.

상호는 교탁에 출석부와 교과서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이서야.”

 자리에 앉은 이서가 그를 멀뚱히 바라보았다.

“네.”

“어제 그냥 갔더라.”

“네.”

 죄송하다는 말조차 없다.

상호는 혈압이 살살 오르는 것을 느끼며 칠판을 향해 돌아섰다.

“오늘은 그냥 가지 마. 수업하자. 교과서 꺼내.”

 * * *

“헌법은 국민적 합의에 의해 제정된…….”

“멍!”

“국민생활의 최고 도덕규범이며…….”

“쿠우울…….”

 상호는 칠판에 글씨를 적다가 뒤로 휙 돌아 태화의 이마에 지탄을 날렸다.

 빡

“아얏!”

“누가 자래, 임마.”

“어차피 다 배운 거잖아!”

“너 이거 다 외웠어? 헌법 다음에 뭐야.”

“어…….”

 태화는 교과서를 들춰보려고 했지만, 상호가 내공으로 누르고 있어서 그러지 못했다.

곧 태화가 환하게 웃었다.

“몰라!”

 지탄이 한 번 더 날아갔다.

“쿠엑!”

“니들 사람 되라고 기초적인 것만 꾸역꾸역 집어넣고 있는데 그걸 기억 못 하면 이걸 배우는 의미가 뭐냐? 한 번 배우고 땡이야? 시험 없다고 그런 식으로 할래?”

“헌터가 그런 게 뭐가 중요해!”

“너 말 잘했다.”

 상호는 양손으로 교탁을 잡았다.

“너희 진짜 그렇게 생각해? 헌터는 법이고 도덕이고 가정이고 필요 없다고?”

“아니요~.”

 아이들이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 딱 둘, 태화와 이서만 빼고.

상호는 태화와 눈을 마주쳤다.

“태화. 헌터가 어떤 직업이야.”

 태화는 눈살을 찌푸리다가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몬스터 죽이는 일.”

“정확히.”

“사람 구하는 일?”

“그래. 정확히는 사회가 만든, 사회를 지키는 직업이야.”

 상호는 검지를 들어 올렸다.

“만약에. 정말 만약에. 몬스터를 죽이거나 사람을 구하는 일이 사회에 해가 된다면, 너는 어떤 선택을 할래?”

 태화가 짧게 고민하다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그게 뭐야, 상황 따라 다르겠지.”

“그렇지? 그럼 그 판단은 어떻게 할 거야?”

“내 꼴리는 대로.”

“그러니까 사람들의 기준을 배우는 거야.”

 상호는 칠판을 향해 돌아섰다.

“헌법 다음은 법률이야. 알아 둬. 법률은 국회, 그러니까 입법부에서 의결된 법규로서…….”

“멍!”

 * * *

‘정신이 없네.’

 상호는 복도를 걸어가며 생각했다.

시도 때도 없이 침투하는 단비의 짖음은 그렇다 쳐도, 인원이 워낙 많으니 제대로 따라오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조차 벅찼다. 다른 반은 대체 30명을 어떻게 가르치고 있는 걸까.

 그래도 학기가 시작되니 다시금 생겨난 취미가 하나 있었다. 상호는 소리를 죽이고 교실로 살금살금 다가갔다.

문 너머에서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좀 무서워 보이셔요. 안대랑 과묵하신 거 때문에 더 그런 것 같아요.”

 1학년 아이의 목소리였다.

상호는 살짝 기대했다. 세희나 나빛이 변호해 주기를. 사실은 착하고 다정한 사람이라고 말해 주지 않을까, 그런 바람을 품으며.

 하지만 지윤의 입에서 전혀 딴판인 대답이 튀어나왔다.

“그렇제? 쌤이 실은 범죄자거덩.”

“……네?!”

 1학년 아이들이 깜짝 놀랐다.

“어떤 범죄요?”

“학생 건드려서 경찰 조사받고 난리 났었지.”

 태화가 키득거리며 대답했다.

“대단했지~, 수업 시간에 경찰들 들어오고. 쌤 잡혀가고. 그래도 어떻게 잘 해결돼서 지금도 선생 일 하고는 있지만…… 범죄는 범죄지.”

“학생……을 건드려요?”

“누구를요?”

 그 질문에 세희, 태화, 나빛, 지윤이 동시에 대답했다.

“나.”

“……나.”

 뒤늦게 끼어든 조그마한 목소리는 은율의 것이었다. 상호의 이마에 진땀이 흘렀다.

‘은율이 너까지 왜 그러냐…….’

“어…… 그럼 선생님이 언니들 건드린 거예요?”

“응. 툭하면 껴안고 그래.”

“우와, 싫어…….”

‘나도 싫어!’ 상호는 속으로 절절하게 소리쳤지만, 당연히 아이들에게 들릴 턱이 없었다.

“더 가면 껴안는 걸로 안 끝나. 야, 나빛. 쌤이 친한 여자들한텐 어떻게 한다고?”

“욕하고 때려, 헤헤…….”

“진짜……요?”

“응!”

“와…….”

 나빛이 말하니까 진짜로 믿는 분위기였다.

“그럼 언니들은 왜 여기 있어요? 다른 반으로 못 가요?”

“못 가지. 쌤이 안 보내 줘. 도망쳐도 다시 잡아올걸?”

“으엑…….”

“여기 들어온 이상 어쩔 수 없어. 너희 이제 쌤 노예…….”

 더 듣고 있을 수가 없었다. 상호는 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야, 이태화! 너 임마!”

 그가 소리를 지르자마자 태화가 그를 턱짓하며 다른 아이들에게 말했다.

“봐봐. 맨날 나부터 부른다니까? 그리고 임마 점마 그러면서 이마 때리고. 이게 다 내가 제일 친해서 그런 거라니까?”

 1학년 아이들이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상호는 그 모습을 보며 평소 자신의 행실을 되돌아보았다. 이래서 늘 말조심 손조심 했어야 하는데.

‘업보다, 업보…….’

 그는 한숨을 쉬고 교탁으로 걸어갔다.

“수업이나…….”

“멍!”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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