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점심은 애들끼리 먹으라고 일부러 늦게 먹었다. 그래야 빨리 친해질 테니까.
그리고 2학년들하고만 먹으면 1학년들이 거리감을 느낄 것 같아서이기도 했다. 상호는 교실 의자에 앉아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쌤 왜 점심 같이 안 먹었어?
태화의 문자였다. 상호의 눈썹이 꿈틀했다.
-너 자꾸 반말하면 대답 안 한다
-질렸어?질렸어?질렸어?질렸어?질렸어?질렸……
상호는 화면을 꽉 도배한 질렸어를 보며 한숨을 푹 쉬었다.
‘니들은 선배잖아…….’
1학년에게 신경을 더 써야 하는 게 당연한데. 그게 순탄치만은 않을 것 같았다.
그래도 오늘처럼 시간이 비는 날이면.
‘수업 더 해야지.’
상호는 2학년 아이들이 다 들어와 있는 단체방에 메세지를 보냈다.
-수업할 사람 교실로 와
세희의 답장이 제일 먼저 도착했다.
-곧 갈게요
-저는 짐 정리하고 저녁에 가겠슴당
-저도 같이 가도 되나요?
-저도 가겠습니다
이어진 답장은 지윤과 은율과 이츠키.
그리고 한참 후에야 나디아의 문자가 도착했다.
-저 가다
대충 알아들을 순 있었다.
몇 분 지나지도 않았는데 아이들이 하나둘씩 교실에 도착했다. 세희, 은율, 이츠키, 나디아.
딱 검을 쓰는 아이들만 모였다.
“다 왔네.”
이미 오전에 굴러서 오기 싫었을 법도 한데, 기특하게도 와 줬다.
상호는 전투복을 입은 아이들을 둘러보았다.
“기왕 칼 쓰는 사람들끼리 모였는데, 칼 이야기나 좀 해 볼까? 나디아……는 대답이 아직 잘 안되고. 사카시타. 왜 창이 아니라 칼이야?”
“칼이 주술에 더 알맞습니다.”
“……왜?”
“주술은 대부분 피를 쓰는데 창은 창날까지 손 뻗기가 힘듭니다.”
“그……래? 미안, 주술은 잘 모르겠다. 그럼 은율이가 대답해 봐.”
은율이 잠시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창은 몬스터를 잡기에 적절하지 않아서요.”
“어째서?”
“인간이 인간을 상대하던 옛날에는 창으로 찌르면 금방 죽었지만, 몬스터들은 그렇게 쉽게 죽지 않고, 약점도 제대로 파악되지 않은 경우가 많아서, 창으로 찔러도 죽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고, 오히려 무기를 빼앗기게 되는 구도가 많다……고 알고 있어요.”
상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답이다. 정답은 없지만, 어쨌든 너희가 검을 쓰는 이유 중의 하나는 될 수 있겠지. 그럼 그걸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
그의 말이 뚝 끊겼다.
아이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상호를 쳐다보았다.
“선생님?”
“아, 미안.”
상호의 시선은 복도 쪽 창문을 향하고 있었다.
거기에는 다혜가 고개를 빼꼼 내밀고는 그 큰 눈을 깜작이며 안쪽을 들여다보는 중이었다.
142. 나뭇잎 몇 개까지 벨 수 있어
“으음…….”
상호는 진땀을 흘렸다. 다혜의 반짝이는 눈이 그를 똑바로 응시하고 있었다.
어떻게 알고 온 걸까.
“잠시만.”
결국 그는 아이들에게 손바닥을 들어 보이고 문가로 향했다. 창문에 붙어 있던 다혜도 그를 따라 문 앞으로 걸어갔다.
상호가 문을 열자 다혜가 살짝 거리를 두고 서 있었다. 불안한 듯 손을 꼼지락거리지만, 눈은 그를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들어와서 구경할래?”
상호의 말에 다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몸을 비켜주자 다혜는 안으로 들어오나 싶더니.
“……아?”
입에서 어리벙벙한 목소리를 내었다.
다혜의 시선은 한 명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
그 시선을 받은 세희가 눈을 끔뻑였다.
상호는 둘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다혜는 세희를 본 적이 있는 듯한데, 세희는 알아보지 못하고 있었다.
다혜가 한 살 더 많으니 다혜는 세희를 기억할 나이가 되었겠지만, 세희는 다혜를 기억할 수 있는 나이가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아마 어릴 때 만난 사이.
‘역시, 생일이 같은 게 우연이 아니었구만…….’
다혜는 이제 세희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스스로를 가리키며 손짓 발짓으로 설명하고 있었다. 말을 못 하니까. 하지만 세희는 알아듣지를 못했다.
세희가 머리를 긁적이며 한마디 했다.
“누구……세요?”
그 말에 다혜가 억장이 무너진 표정을 지었다.
다혜는 처연하게 돌아서서 터덜터덜 걸어 교실 구석에 쪼그려 앉았다. 세희가 그 모습을 보고 당황했다.
“저어, 그…… 누군지 기억이…….”
상호는 일부러 말해주지 않았다. 세희가 스스로 기억해내기를 바라며.
그의 손뼉이 부딪혔다.
“자, 자. 집중. 이제 너희가 검이란 걸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 알아볼 거야. 밖으로 나가자.”
* * *
학교 부지의 한구석. 뒷산과 맞닿은 구역.
3월, 봄을 맞은 나무들에는 벌써 잎을 키운 녀석들도 많이 있었다. 그 아래 그늘에서는 바람도 서늘한 것이 수련하기에는 딱 좋았다.
상호는 나무의 줄기를 쓰다듬으며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세희는 전에 해 봤지?”
“네.”
세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뭇잎 베기.
정확히는 나뭇잎 찌르기지만.
“세희부터 해보자. 다들 물러나.”
세희가 그늘 한가운데에 섰고, 다른 아이들은 뒤로 물러났다. 다혜는 그 옆 나무에 올라가서 고개만 빼꼼 내밀고 있었다.
상호는 내공으로 나무와 나뭇가지를 강하게 흔들었다.
나뭇잎들이 우수수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흐읍!”
파파팟
세희의 기합과 함께 주변의 나뭇잎들이 터져나갔다. 상호는 가만히 그 개수를 세었다.
넷, 다섯, 여섯.
파앙
일곱.
베는 게 아니라 찌르는 동작으로, 정확히 나뭇잎의 정중앙을 꿰뚫었다.
나름대로 만족스러웠지만, 상호는 무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잘했다. 다음. 은율이.”
은율도 세희의 동작을 보고 느낀 것이 있었는지, 베지 않고 찔렀다.
터진 나뭇잎은 총 여섯 개. 세희보다 하나 부족했지만, 세희는 작년에 이미 연습한 적이 있으니 그리 큰 차이는 아니었다.
“사카시타.”
3개.
“나디아.”
1개.
다른 아이들보다 무거운 양손검이라 그런지 1개도 겨우 베었다. 상호는 고개를 끄덕이고 물러나라 손짓했다.
“큰 의미는 두지 마. 검만 잘 다룬다고 전투에서 이기는 건 아니니까.”
그래도 수치를 눈으로 보여주면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상호가 이 나뭇잎 베기를 시킨 이유가 그것이었다. 실력 향상에는 큰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상호는 다혜를 돌아보았다.
“다혜도 오랜만에 해 볼래?”
그 말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다혜가 나무에서 뛰어내렸다.
그늘에 선 다혜는 상호를 바라보며 씩 웃었다. 언제든 시작할 수 있다는 듯이.
상호는 그때를 떠올리며 나무를 흔들었다.
팡 팡 팡
다혜가 나뭇잎을 하나씩 찔렀다. 하나, 둘, 셋.
상호의 눈에는 느리게 보였지만, 아이들의 입장에서는 거의 동시에 일어나는 것처럼 보일 터였다.
손이, 검이 세 개로 늘어난 것처럼.
촤좌좍
검을 찌르고 거둘 때마다 바람을 찢는 소리가 났다. 그럴수록 상호는 웃음이 입술을 스멀스멀 비집고 나오는 것을 느꼈다.
아이들이 놀란 표정을 짓기도 전에.
나뭇잎 26개의 파편이 바람을 타고 흩날렸다.
“……아, 으.”
다혜가 씩 웃었다. 아이들을 향해.
뜻은 명백했다.
‘약해~.’
그 눈길은 세희에게 특히 오래 머물렀다. 세희는 얼이 빠진 표정으로 다혜를 바라보다가 곧 얼굴을 붉게 물들였다.
약이 오른 듯했다.
“으…….”
상호는 쓰게 웃으며 다혜에게 손을 흔들었다.
“잘했다, 다혜야. 이제 수업하게 가도 돼.”
다혜는 말없이 웃어 보였다. 아주 여유로운 분위기로.
그러고는 세희를 향해 손을 흔들며 자리를 떴다.
“아으, 으~.”
만나서 기뻤다는 듯한 목소리를 내며.
그렇게 다혜가 멀리 떠나가자 세희가 상호를 돌아보았다.
“선생님.”
“응?”
“저…… 사람 누구예요? 몇 학년이에요?”
“2학년. 근데 너랑 동갑은 아냐.”
“그럼요?”
“한 살 많아. 19살.”
“으음…….”
세희가 눈살을 찌푸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이 안 나는 듯했다.
“근데…… 선생님이랑 저 언니는 무슨 사이세요?”
“아, 그게.”
상호는 의기소침하게 헛기침을 한 번 했다. 이걸 말해버리면 보나 마나 후폭풍이 있을 텐데.
“첫…… 첫 제자야.”
“……네?”
세희가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첫 제자요? 저번에 말씀하셨던……?”
“어떻게 잘 살아서 돌아왔더라고.”
“……그래요?”
역시나, 세희의 주변에 투기가 폭풍처럼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상호는 그 선명한 기운을 느끼며 세희의 시선을 피했다.
“첫 제자라고 해도 가르친 건 별로 없어……, 그냥 가르치고 배우자는 약속을 한 거지.”
“배우자요?”
“……응? 뭐?”
상호는 당황하며 되물었지만, 세희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 듯했다.
세희가 검을 힘껏 거머쥐었다.
“선생님.”
“으, 응.”
“저 1등 할래요.”
“그래.”
“무조건 이겨야겠어요.”
“그래…….”
“할 수 있겠죠?”
상호는 확답하지 못했다.
속도는 세 배 이상 차이나고, 내공도 비교가 불가능하다. 굳이 비교하자면 뾰족하고 단단한 단 하나의 고드름과, 스스로도 제어할 수 없을 정도로 세차고 드넓은 폭포.
고드름이 폭포를 이겨낼 수 있을까.
부러지지나 않으면 다행일 터.
“할 수 있지.”
상호의 손이 세희의 손을 잡았다.
방학 동안 열심히 축기를 했는지, 작년보다 내공이 두 배는 늘어 있었다. 그만큼 늘어날 수 있었던 이유는 애초에 양이 적었기 때문이지만. 사실 다른 애들과 비교하면 아직도 많지는 않았다.
그래도 천색창염의 기준으로는 많다.
“하지만 뼈를 깎는 노력을 해야 할 거야.”
세희는 다혜보다 느리고, 다혜보다 내공도 적다.
물론 싸움이 속도와 내공만으로 정해지는 것은 아니지만, 문제는 실전 경험 또한 다혜가 훨씬 많다는 것. 백 배, 천 배, 어쩌면 만 배.
생사의 고비를 넘긴 횟수는 아예 0 대 수백. 배수로 나타낼 수조차 없다.
“할 수 있겠어?”
상호는 세희의 질문을 되돌려주었다. 돌아올 대답을 알면서도.
세희는 당연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그래. 한번 해보자.”
상호는 고개를 끄덕이고 아이들을 돌아보았다. 수업을 계속하기 위해서.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드는 게 있었다.
‘다혜가 시험을 보나?’
보면 안 되는 것 아닌가. 1년 휴학해서 돌아오면 공정한 경쟁과는 거리가 좀 있는 것 같은데.
내일 건흠에게 물어봐야겠다. 상호는 그렇게 생각을 정리했다.
* * *
다음 날 아침.
상호는 출근하자마자 건흠의 자리로 찾아갔다.
“주 선생님.”
“아, 어. 강 선생.”
건흠이 자리에 앉은 채로 상호를 올려다보았다.
“웬일이야?”
“어제 다혜를 봤다가 궁금한 게 생겼는데…… 다혜는 시험을 보나요?”
“시험? 아. 그치. 보긴 봐.”
상호는 눈을 끔뻑였다. 보긴 봐는 무슨 뜻인가.
“봐요? 근데 수준 차이가 너무 나고, 1년 더 수련한 셈인데…… 뭐 다혜 잘못이라든가 그런 건 아니지만요.”
“그렇지. 그래서 다혜는 연말평가는 따로 볼 거야.”
“따로요?”
“이사들 앞에서. 교사들이 직접 평가하기로 했어. 장학금을 줄지 말지.”
“……아하.”
상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그 전에 중간, 기말, 중간은 애들이랑 보고요?”
“응. 뭐 그때는 괜찮잖아.”
“그렇긴 하죠.”
상호는 씩 웃었다.
“그래도 다혜 잘 지내나 봐요. 어제 표정이 좋던데.”
건흠이 멈칫했다.
“……그래?”
“네. 잘 웃고…… 아, 저희 반에 다혜가 아는 동생이 있거든요. 그것 때문인 것 같기도 하고.”
“그런가.”
어째 힘없는 목소리였다. 상호는 의아하기만 했다.
“반에서는 안 그래요?”
“반에서는 잘 안 웃어. 아니, 웃기는 하는데…… 표정이 좋진 않아. 계속 뭔가를 불안해하고…… 친했던 친구들이랑도 잘 못 섞여.”
다혜의 친구들은 3학년이 됐다.
그 1년의 공백이 꽤 큰 모양이었다. 그 고생을 했으니 사람 자체도 달라졌을 거고. 심지어 말도 안 통한다. 그래서 못 섞이는 것이다.
작년에 입학한 2학년, 그리고 올해 입학한 1학년들과는 당연히 모르는 사이일 거고.
“그리고 뭣보다…… 가끔 경기를 일으켜. 아직 그때 기억이 많이 남아 있나 봐.”
말이 좋아 경기지 아마 발작이리라. 상호도 전쟁 때 그런 유형을 많이 봤었다.
“큰일이네요.”
“그래도 자네 반 가면 밝아진다니…… 다행이지. 다혜가 찾아가면 같이 잘 놀아 줘.”
“예. 그러겠습니다.”
상호는 고개를 살짝 숙이고 물러났다.
* * *
다혜의 상태가 아직 안 좋은지는 몰랐다.
상호는 복도를 걸어가며 생각에 잠겼다. 어쨌든 다혜 때문에 애들이 장학금을 못 받을 일은 없게 되었다. 세희는 그런 것과는 관계없이 다혜를 이기고 싶어 하겠지만.
‘걱정은 안 해도 되겠고.’
또 처리해야 할 일이 있다. 상호는 교실 문 앞에 섰다.
오늘도 칠판 방향에서 태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테디 씨가 우습냐? 깝치지마. 테디 씨는 무적이고 신이다. 만날 때마다 경례해. 알았어? 어린것들이 빠져가지고…….”
상호는 교실로 들어서며 교탁 앞에 선 태화에게 지탄을 날렸다.
“테디 씨가 니들보다 한참 선배…… 아약!”
“나와, 임마.”
“테디 씨는 무적이다! 신이다! 받아라! 플라잉 곰돌이!”
태화가 상호에게 곰인형을 냅다 던지고 자리로 돌아갔다.
상호는 곰인형을 바닥에 대충 내려놓고 아이들을 둘러보았다. 곧 그와 이서의 눈이 마주쳤다.
“이서. 잠깐 복도에서 이야기 좀 하자.”
이서는 바로 일어나서 뒷문으로 향했다. 상호도 그녀를 따라 복도로 나왔다.
텅 빈 복도에 둘이 마주 섰다.
상호는 헛기침을 한 번 하고 말을 꺼냈다.
“이서야.”
“네.”
“음…… 결론부터 말해주자면, 반을 못 바꾸게 됐어.”
이서의 눈썹이 꿈틀했다.
“네?”
“선생님도 최대한 노력해 봤는데, 널 데려가려는 선생님이 없더라고. 네가 중학교 성적이 많이 안 좋아서 선택지가 많지 않아.”
반쯤 사실이었다.
사실 다른 교사들에게 이서를 데려가라고 말한 적은 없다. 시도도 안 했다. 하지만 만약 데려가 달라고 말을 했더라도, 이서가 다른 반에 갈 수 있는 확률은 0퍼센트나 다름없었다.
아무도 데려가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상호도 다른 반에 짬을 때리기 싫었다.
“그런…… 게 어딨어요.”
이서는 납득하지 못했는지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항의했지만, 상호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어쩔 수 없어. 네 중학교 성적 때문이니까. 평소에 노력했다면 네가 원하는 대로 됐을 텐데, 안타깝다.”
“그런…….”
이서는 입술을 자근자근 깨물며 싫은 티를 팍팍 냈다. 어제의 수업이 어지간히도 힘들었던 듯했다.
하지만 이유가 명확하니 따지지도 못하고.
상호는 씩 웃었다.
“그렇게 다른 반 가고 싶어?”
“네.”
“그럼 이렇게 하자.”
그는 이서의 앞에 검지를 들어 올렸다.
“1학기만이라도 좋으니까, 다른 선생님들한테 어필할 수 있는 성적을 만드는 거야.”
“1학기요?”
“응. 중간평가랑 기말평가. 한번 최선을 다해서 성적 올려 봐. 선생님이 도와줄 테니까.”
이서가 눈을 삐뚜름하게 떴다.
“그러면 2학기에 다른 반 갈 수 있어요?”
“그럼.”
상호는 확고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서는 그를 빤히 쳐다보더니, 엷은 한숨을 뱉고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그렇게 할게요.”
“그럼 선생님 수업 잘 따라오는 거다? 그러면 성적 금방 올려 줄게.”
“……알았어요.”
“들어가자.”
상호는 교실 뒷문을 열고 이서를 들여보냈다.
그리곤 문을 닫으며 실쭉 웃었다.
‘미안하다, 이서야.’
완전 개 구라 뻥이다. 절대 다른 반에 넘길 생각 없다.
저 썩어빠진 근성을 직접 뜯어고치고 말리라. 상호는 가볍게 팔다리를 휘적거리며 앞문으로 향했다.
어째 신이 난 듯한 발걸음이었다.
143. 반항아
“선생님 이름은 강상호다.”
칠판에 번호가 적혔다.
상호는 물백묵을 들고 고민했다. 뭘 더 알려줘야 하나.
“나이는 스물넷이고……. 무기는 검. 으음, 뭐 궁금한…….”
“멍!”
“……거 있어?”
중간에 이상한 소리가 섞였지만, 상호는 신경 쓰지 않았다.
아이들의 시선이 한곳으로 집중되었다. 1학년 줄에 앉은 아이.
아이는 몰려드는 시선에 당황하며 몸을 움츠렸다.
“아, 죄, 죄송합니다…… 멍!”
“아냐, 괜찮아. 신경 쓰지 마.”
상호는 손을 내저으며 개 짖는 소리를 낸 아이를 바라보았다.
개과 몬스터 융합체. 견단비.
머리에는 축 처진 귀가, 엉덩이에는 복슬복슬한 꼬리가 살랑거리고 있었다.
“어쨌든, 뭐 궁금한 거 있는 사람?”
미래가 제일 먼저 손을 들었다.
“선생님, 안대는 왜 하셨어요?”
“몬스터랑…….”
“멍!”
“……싸우다 다쳤어.”
“그럼 왜…….”
“멍!”
“……안 고치셨어요?”
“개인적인 신념 같은 거지.”
“그럼 다리는요?”
“다리는 비밀이야.”
“멍!”
오늘따라 심하다. 어젠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신경증이다. 음성 틱. 몸이 제멋대로 움직이는 증상. 그래도 강아지 소리 정도면 무시하기 쉬웠다. 개는 원래 맘대로 짖으니까.
상호는 아이들을 둘러보았다.
“질문은 끝이야? 그럼 이제 나가서 수업…….”
“멍!”
“야이씨!”
뒷줄에 앉은 태화가 단비의 뺨을 집었다.
“개 짖는 소리 좀 안 나게 해라! 야! 된장 들고 와!”
“아야야! 멍!”
“태화야, 놔라.”
틱은 고친다고 고쳐지는 것이 아니다. 느긋하게 시간을 두고 관찰해야 한다.
상호는 교탁을 세게 두드렸다.
“수업 준비나 해. 빨리 갈아입고 나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