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4화 (164/501)

* * *

거르고 걸러 다섯 부.

 이 다섯 명은 어지간해선 받을 생각이었다. 상호는 그 다섯 부를 따로 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른 선생들은 이미 퇴근한 후였다. 그만큼 열심히 봤다.

‘결정할 때까지는 시간이 남았으니까…… 내일 다시 봐야겠다.’

 그렇게 생각하며 일어나려는 순간, 누군가가 교무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상호는 문가를 쳐다보았다.

머리를 뒤로 싹 넘겨 묶은 여학생.

얼굴에 채 닦아내지 못한 검댕이 보였다.

“아!”

 여학생은 그를 보고 탄성을 지르더니, 싱글벙글 웃으며 다가와 고개를 꾸벅 숙였다.

“안녕하세요!”

“어…… 으응.”

 상호는 어색하게 손을 흔들었다. 방금 신청서 더미에서 본 것 같기도 했다.

다섯 명이 아닌 무더기 쪽이었다.

“신입생이지?”

“네. 한미래예요.”

 여학생은 주머니에서 건전지 크기만 한 원기둥 모양의 무언가를 꺼내어 벽면을 향해 쐈다. 그러자 마치 빔 프로젝터처럼 화면이 벽면에 비쳤다.

“에~ 지금부터, 제가 왜 선생님 반에 들어가야 하는지 프레젠테이션을 실시하겠습니다~.”

 상호의 정신이 대략 멍해졌다.

“……뭐?”

“자, 첫째! 일단 넓은 특기 풀!”

 미래는 낭랑한 목소리로 웅변을 시작했다.

“선생님 반에는 무예가, 마법사, 신앙인. 이렇게 세 종류의 선배들이 있지요. 그 말인즉, 다양한 상황에 따른 테스트를 효율적으로 진행할 수 있다는 뜻이죠.”

 꼭 세일즈맨 같은 분위기였다.

“둘째! 그 다양한 특기의 선배들을 데리고 전교 1등 반을 만드는 실력! 이거는 선생님께서 단순히 무예만 가르치는 게 아니라는 걸 반증하고요.”

 상호는 얼이 빠진 채로 프레젠테이션을 바라보았다.

“셋째! 성력이 있는데 대체 왜 눈이랑 다리가 불편하신지. 개인적으로 연구해 보고 싶거든요. 선생님을.”

 미래가 허리에 손을 올리며 씩 웃었다.

“이상으로, 선생님이 왜 저를 받으셔야 하는지 분석한 결과입니다.”

“어…….”

 상호는 간신히 입을 열었다.

“미래? 미래야. 그…… 특기가 뭐야?”

“마법공학이요!”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상호는 난색을 표했다. 하필이면 마법공학. 주술 다음으로, 아니 어떤 면에서는 주술보다도 더 가르치기 힘든 특기였다.

“마법공학은 못 받아.”

“괜찮아요, 저 천재라서 마법공학은 배울 필요 없거든요.”

“그럼 왜…….”

“실전. 실전 데이터를 쌓아보고 싶어요. 최대한 많은 케이스를 상대로.”

 미래가 건전지 모양의 기계를 힘주어 잡았다. 그러자 기계가 펼쳐지고 접히며 손에 장갑을 이루었다.

상호는 그 모습을 보고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뭐야, 네가 만든 거야?”

“그럼요. 배틀피스트 HMR. 특허도 따놨다구요.”

 미래가 자신만만하게 웃었다.

“전 대련만 열심히 시켜주시면 돼요.”

 상호는 한 가지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의욕은 충분한 아이다.

광기가 느껴질 정도로.

 그는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더 깊게 고려해 볼게, 미래야.”

“넵.”

 장갑이 다시 작은 원기둥 모양으로 변했다.

미래는 그 원기둥을 주머니에 넣고는 고개를 꾸벅 숙였다.

“안녕히 계세요.”

“응, 들어가.”

 상호는 최대한 살갑게 손을 흔들어 인사했다.

미래가 교무실을 나가자 그 손의 속도가 차츰 느려졌다.

‘다시 만나면 기억할 수 있을까?’

 솔직히 자신이 없었다.

세희는 굵게 땋은 머리가 있었고, 태화와 나빛은 말할 것도 없고, 지윤은 처음 만났을 때가 워낙 인상적이라 한 방에 기억할 수밖에 없었다.

다혜나 은율, 이츠키는 뒤에서 보면 다른 평범한 아이들과 구별하기 힘들지만, 그래도 자주 보다 보니 얼굴이 익었다.

 하지만 새로 오는 아이들은.

‘기억 못 하면 섭섭해할 텐데…….’

 상호는 착잡한 마음으로 신청서 뭉치를 뒤적였다. 한미래. 한미래. 오래지 않아 찾을 수 있었다.

양친은 멀쩡.

 그 아래로 각종 발명대회의 수상 경력이 좌르르 나열된 게 보였다.

‘……으음. 어떡하지?’

 마법공학은 못 가르친다. 명백하게. 그러면 또 민정의 손을 빌려야 하는데 그러자니 좀 미안했다.

 하지만 찾아오기까지 할 정도로 열정적인데.

 그는 곧 결정을 내렸다.

‘이 애가 날 선택했으니까.’

 그것도 아주 명백하게.

상호는 먼저 골라놨던 다섯 부의 신청서에 미래의 신청서를 얹었다.

* * *

“쌔앰~.”

 태화가 침대에서 뒹굴거리다가 그를 불렀다.

상호는 뒤를 돌아보았다. 그의 앞 가스레인지에서는 청국장이 보글보글 끓고 있었다.

“왜.”

“나빛이가 문자 보래.”

“앗, 고마워.”

 상호는 서둘러 핸드폰을 꺼내 확인했다. 태화의 말대로 나빛에게서 사진이 한 장 도착해 있었다.

화면을 본 상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나빛, 그리고 그 옆에 선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소녀.

검은색 제복을 입고 있었다.

‘……너까지 왔구나.’

 나디아.

상호는 반갑기도 했지만 곤란하기도 했다. 분명 집안이 엄하다고 들었는데.

사진의 밑으로 나빛의 문자가 도착했다.

 -선생님~

 -오늘 한국 왔어요~ 곧 기숙사 같이 가서 신청서도 낼게요!

 상호는 답장을 치며 생각했다.

‘이러면 2학년은 일곱 명인가.’

 -그래 나중에 보자

 -네~

 그는 핸드폰을 집어넣고 다시 요리에 집중했다.

방에 청국장 냄새가 한가득이었다. 상호는 태화를 흘끗하며 물었다.

“너 이거 이츠키 먹이려고 그러지.”

“웅.”

“으휴……. 밥 먹으라고 불러.”

 그 말에 태화가 핸드폰 자판을 신나게 두드렸다.

세희와 이츠키가 도착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상호가 냄비를 식탁에 올리자 현관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그는 내공을 뻗어 문을 열었다.

“안녕하십니까.”

 이츠키가 태연하게 방으로 들어섰다.

뒤따라 들어온 세희가 코를 킁킁거렸다.

“청국장이에요?”

“응.”

“이츠키. 이거 먹을 수 있겠어?”

“낫토 비슷한 거 아닙니까? 냄새가 비슷합니다.”

“한번 먹어 봐.”

 셋은 식탁에 둘러앉았다.

태화는 계속 침대에서 뒹굴기만 하고 오지를 않았다. 상호는 눈살을 찌푸렸다.

“태화야. 밥 먹어야지.”

“웅…….”

 태화는 뭔가 맘에 안 드는 듯이 입술을 삐죽 내밀다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식탁으로 걸어왔다.

그녀가 자리에 주저앉으며 말했다.

“야, 이츠키.”

“뭡니까.”

“너 진짜 이거 먹을 수 있어?”

“냄새가 나쁘진 않습니다.”

 상호는 둘에게 핀잔을 주었다.

“그만 떠들고 먹어라.”

“네.”

 그와 아이들은 식사를 시작했다.

세희도 이츠키도 청국장을 잘만 먹었다. 이츠키는 처음 먹는데도 입에 맞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정작 태화가 먹지를 않았다. 맨밥만 깨작거릴 뿐.

상호는 혀를 찼다.

“너는 그 나이 먹고 청국장도 못 먹냐?”

“우씨, 냄새나! 안 먹어!”

“이리 와 봐 임마.”

 그는 숟가락으로 청국장을 떠서 태화의 입으로 가져갔다.

“먹어. 남이 힘들게 끓였는데 편식할 거야?”

“우웅! 싫어!”

“애처럼 그럴래? 지윤이 동생들도 편식 안 하더라. 봐봐, 이츠키도 잘 먹잖아!”

“사카시타입니다.”

“……사카시타도 잘 먹잖아!”

 하지만 태화는 입을 굳게 다물고 볼을 빵빵하게 부풀리기만 했다.

이츠키가 그 모습을 보고 한마디 했다.

“세희가 말한 그대로입니다.”

“응?”

 태화가 눈을 끔뻑였다.

이츠키는 청국장을 짧게 호록 들이마시고 말을 이었다.

“몸은 고등학생인데 뇌는 초등학생이라고.”

“뭐? 웃기네. 야, 천세희 너는 몸도 초딩이잖아!”

“청국장도 못 먹는 너한테 그런 소리 듣기 싫은데.”

 이 셋이 모이면 꼭 투닥거린다. 상호는 말없이 아이들을 쓱 둘러보았다.

문득 어떤 생각이 들었다.

‘나디아랑 나빛이도 기숙사에 오면…… 북적북적하겠네. 교실은 더 그럴 거고……. 에휴, 어떡하냐.’

 학교 선생이 된 이상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복잡한 것도, 시끄러운 것도. 그는 그렇게 생각을 정리했다.

아이들은 이제 별 쓸데없는 주제로 입씨름을 하고 있었다.

“야! 독도 어디 땅이야!”

“땅에는 주인이 없습니다. 이양은 그걸 모르니까 주술을 제대로 못 쓰는 겁니다.”

“개소리 말고! 쌤! 독도 우리 땅이죠? 그죠?”

“독도 자체가 아르게스에 파묻혔는데 무슨 소용이냐. 밥이나 먹어.”

“한국땅이잖아아!”

“한국땅 맞는데, 네가 한국인이면 청국장 좀 먹어라.”

“부웨에엑.”

 서서히, 그러나 확실히.

낯선 하나가 익숙한 셋 사이에 섞여들고 있었다.

 140. 제자가 너무 많다

“으음…….”

 이상하다.

상호는 책상 위의 1학년 신청서 뭉치를 내려다보았다.

여기 놓인 것은 따로 떼어놓은 것들이다. 나머지는 이미 다른 교사들에게 보냈다. 그러니까 여기 있는 것은 처음 골라낸 다섯 부에 미래의 것을 합쳐 여섯 부가 되어야 하는데.

일곱 부였다.

‘나디아가 놓고 갔나? 아닌데…….’

 상호는 고개를 갸웃하며 미진을 불렀다.

“미진 씨.”

“네.”

“혹시 신청서 건드렸어요?”

“제가요?”

 기분 나쁘다는 투였다. 상호는 손사래를 쳤다.

“아뇨, 그냥. 한 장 늘어난 것 같아서.”

“또 실수하신 거겠죠.”

 미진은 퉁명스럽게 대답하고 제 할 일을 하러 갔다. 상호는 머리를 긁적였다.

‘그런가? 내가 또 실수했나?’

 평소에 사무 쪽으로 하도 실수가 많아서 뭐라 반박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찾아서 빼내면 될 일이다. 상호는 신청서들을 쓱 훑었다.

‘아, 이거네.’

 설하솔. 무예 지망.

양친 멀쩡하고 가난하지도 않아서 뽑지 않았는데. 어쩌다가 섞여 들어온 모양이었다.

상호는 그 신청서를 골라서 빼내려다가 멈칫했다.

‘쓰읍…… 애매하네.’

 여섯 명만 받는 것도 좀 적긴 하다. 이미 그만큼 다른 반에 부담이 갔을 텐데.

 그리고 슬슬 신입생들을 추려놓고 정리할 시기였다. 다들 인원수를 정하고 반의 계획을 잡아 놨을 것이다. 이미 입력, 등록을 시작한 반도 있을 거고.

‘아오, 왜 하필 오늘 섞여서……. 다른 선생님 주기가 좀 그런데.’

 상호는 결국 하솔의 신청서를 도로 내려놓았다. 이것도 운명이라고 스스로를 납득시키며.

‘……누가 일부러 섞어놓은 건 아니겠지.’

 * * *

 그렇게 정해졌다. 2학년 7명. 1학년 7명.

나디아의 신청서만 받아서 등록하면 끝이다. 상호는 본관을 나서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마음이 착잡했다.

‘괜찮겠지?’

 14명.

다른 반의 반밖에 안 되지만, 이미 네 명에게 들들 볶여본 상호로서는 걱정이 안 될 수가 없었다.

거기에 둘은 외국인이니 또 챙겨 줘야 할 거고.

 그러면 세희, 태화, 이츠키, 나디아를 챙기면서, 독립을 처음 해본 나빛도 챙기고, 신입생들 학교 적응시켜주면서, 그중에서 또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을 돌봐줘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죽겠다!’

 그래도 세희는 똑똑하고. 태화도 학교 안에서는 알아서 잘 지내고. 이츠키도 똘똘해 보이고.

일단은 나빛과 나디아에게 집중하면 될 것 같았다. 2학년에서는.

“……아.”

 마침 교문에서 길쭉한 외제차가 들어오고 있었다. 상호는 단박에 그 차가 봉진의 차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가 가까이 가자 차 문이 열리고 두 소녀가 뛰어내렸다.

“선생님!”

 나빛이 먼저 폴짝폴짝 뛰며 손을 흔들었다.

뒤이어 검은 제복을 입은 금발과 벽안의 소녀가 경례를 했다. 각을 아주 똑바르게 잡으며.

상호도 진지하게 차렷 자세로 마주 경례를 받았다.

곧 조수석에서 봉진이 내리며 툴툴거렸다.

“어떻게 알고 나왔나?”

“우연입니다.”

 나빛과 나디아가 트렁크에서 짐을 꺼냈다. 봉진은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상호를 돌아보았다.

“기숙사에 들어갈 수 있나?”

“예. 학부모니까요.”

“한번 좀 보지.”

 넷은 이화관으로 들어갔다.

사감은 기숙사 입주 시기라 한창 바쁜 모양이었다. 상호는 정신이 반쯤 나간 사감을 붙잡아 간신히 열쇠를 뜯어냈다. 그리고 계단을 올랐다.

신청을 동시에 해서 그런지 나빛과 나디아의 방은 바로 옆에 붙어 있었다.

방에 들어서자 봉진이 짧게 한마디 했다.

“좁네.”

“혼자 살긴 충분하다고 봅니다.”

“부엌은 없나?”

“방마다 놓기엔 좁고 위험하니까. 1층에 다 같이 쓰는 부엌이 있죠.”

“근데 너무 좁은 것 같은데…….”

“다들 똑같은 방에서 삽니다.”

 나빛은 헤실헤실 웃으며 트렁크를 대충 세워두었다.

“선생님, 다른 애들 어디 있어요? 지윤이는 왔어요?”

“애들은 모여 있을 것 같고…… 지윤이는 아직 안 왔어.”

 지윤은 동생들 돌보느라 최대한 늦게 올 터였다. 아마도 3월 1일에.

상호는 문밖을 가리켰다.

“태화 방 가봤지? 거기 가 봐.”

“네! 나디아, 빨리 가자!”

“네, 네.”

“짐 놓고!”

“네에…….”

 나디아는 당황하며 나빛의 손에 질질 끌려갔다.

놀 생각으로 가득한 모양이다. 상호는 쓰게 웃으며 봉진을 돌아보았다.

“저희는 나가죠, 이제.”

 봉진은 뒷짐을 지고 창가에 서 있었다.

“강 선생.”

“예?”

“부탁이 하나 있어.”

 상호는 착실하게 대답했다.

“걱정 마십쇼. 나빛이는 제가 잘 챙기겠…….”

“아니, 그게 아니야.”

 봉진의 목소리에서 쓸쓸함이 느껴졌다.

“막내까지 떠난 집을 상상해 본 적 있나?”

 상호는 입을 다물었다.

솔직히 해본 적 없었다. 아이가 있는 것도 아니고.

봉진이 무겁게 말을 이었다.

“나로는 옛날에 독립했어. 이제 나빛이까지 기숙사로 떠나면…… 집이 너무 조용해. 텅텅 빈 느낌이야. 괜히 쓸데없이 넓게 지었나…… 하는 생각도 들어.”

 상호는 잠자코 듣다가 한마디 했다.

“거 죽은 것도 아닌데 엄살이 심하신 거 아닙니까?”

“이 새파란 짜식이…….”

 봉진은 혀를 찼다.

“하여튼 그렇다고. 그러니까…… 나빛이한테 너무 잘해주지 마.”

“잘해주지 말라구요?”

“집에 좀 자주 찾아오게.”

“으음…….”

 상호는 머리를 벅벅 긁었다.

“일부러 못해주진 못합니다. 저는 최선을 다할 뿐이라서.”

“쯧, 알아서 해.”

 봉진이 투덜거리며 방을 나섰다. 상호는 그를 배웅하기 위해 뒤를 따랐다.

봉진은 이화관 앞에서 차에 올라 상호를 바라보았다.

“가네. 잘 부탁해.”

“예. 들어가세요.”

 차는 미끄러지듯이 스르르 움직여 교문 밖으로 나갔다.

상호는 고개를 돌려 이화관을 한 번 흘깃했다.

‘알아서 잘 놀고 있겠지?’

 나디아의 신청서는 저녁에 받아도 되니까. 지금은 놀게 놔둬도 될 것 같았다.

 그는 남교사 숙소로 향하며 핸드폰에 메모해 둔 내용을 떠올렸다. 신입생들에 대한 정보.

‘찬찬히 읽어서 외워야겠다. 말조심해야 하는 부분도 생각해두고…….’

 형편이 안 좋은 애들 먼저 골랐으니까. 다들 마음에 상처가 하나씩 있을 것이다. 다행인 점은 세희랑 태화보다 힘든 아이는 없다는 것.

상호는 자신의 방 앞에 서서 문고리를 잡았다.

‘……?’

 안쪽에서 아이들 목소리가 들렸다.

왁자한 걸 보니 한두 명이 아니었다.

“야! 오지윤! 우리 쌤 방에 모였다!”

[누구 놀리나, 문디 가스나야! 너거들 만나면 다 쥑이뿐데이!]

“쥑이…… 쥑이뿐데이?”

“죽인다는 뜻이야.”

“문디 가스나?”

“으음, 나쁜 사람…… 정도?”

 태화와 지윤이 통화하는 소리. 나디아에게 나빛이 사투리를 가르쳐주는 소리.

 그 사이로 이츠키와 은율의 대화도 들려왔다.

“번호 뭡니까?”

“찍어 줄게.”

 세희도 있을 게 뻔하다. 목소리는 안 들리지만.

상호는 조용히 문고리를 놓았다. 들어가면 도저히 감당이 안 될 것 같아서.

 그래서 물러났고,

밖으로 도망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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