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6화 (156/501)

* * *

“찍어.”

 상호는 조수석에 앉은 효은에게 핸드폰을 내밀었다. 효은이 눈을 깜빡였다.

“뭐를?”

“내비 켜서 주소 찍으라고.”

“그럼 주소 찍으라고 말을 해, 빡대갈아.”

“아니 누가 할 말을…….”

“빡대가리.”

 효은이 툴툴대며 상호의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상호는 핸들을 돌리며 창밖의 마트를 쳐다보았다.

“과일이라도 사 갈까. 부모님 뭐 좋아하셔?”

“그런 거 안 사도 돼.”

“그래도 사면 좋잖아.”

“필요 없다니까?”

“아니 내가 사다 드리겠다는데 왜 니가…….”

 상호는 효은을 째려보았다.

 그런데 그녀가 심상치 않은 표정으로 핸드폰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야, 이거 뭐냐?”

“뭐가.”

“나빛이 사진이 왜 이렇게 많아?”

 효은은 상호보다 더 매서운 눈빛으로 그를 째려보았다.

“너.”

“……뭐.”

“사실은 나빛이랑 뒹굴 생각 오지게 하고 있지?”

“절대 아닌데.”

“그래?”

 효은의 눈빛에 살기가 깃들었다.

“근데 귀신같이 내 사진만 없다, 너.”

“허끅…….”

 갑자기 딸꾹질이 나왔다. 상호는 시선을 앞으로 돌리며 가슴을 두드려 진정시켰다.

“배경화면도 애들이랑 찍은 거네. 벚꽃놀이도 가고 아주 신나셨었네. 아하~, 내가 괜히 끼어들었구만.”

“아니라고! 내 성격 알잖아. 원래 사진 같은 거 안 찍는다고. 제자들이니까 조금 찍은 거지…….”

“조금? 5천 장이 조금이냐?”

“그…….”

 상호의 목소리가 기어들었다.

“찍다 보니 재밌더라고.”

“아아~, 나는 재미가 없다~?”

“……야.”

 상호는 빨간불에 브레이크를 밟고 효은을 홱 돌아보았다.

“이리 와, X바. 뽀뽀 한번 해.”

“참나.”

 효은이 우습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그걸로 넘어가게? 너 선수 다 됐다. 니 입술 하나면 홀라당 넘어가는 걸 너~무 잘 아시네. 응?”

“싫으면 됐어. 이따가 해.”

“됐네요.”

 효은은 차창에 팔을 기대며 한숨을 쉬었다.

“내가 어쩌다 너 같은 걸 좋아하게 됐는지 모르겠다.”

 상호는 대꾸하지 않았다.

대신에 길가에 차를 세울 뿐이었다.

“뭐야.”

 효은은 주변을 둘러보고는 눈을 끔뻑였다.

신앙회 구원교단의 근처 상가였다.

“여긴 왜 왔어?”

 상호는 이번에도 대답하지 않고 운전석에서 내렸다. 효은의 눈가가 꿈틀했다.

“야, 내 말 씹어?”

 묵묵부답.

상호가 그렇게 무시하자 효은의 눈가에 물기가 스몄다. 그녀는 팔짱을 끼고 고개를 푹 숙이며 중얼거렸다.

“호X새끼…….”

 그때 조수석 문이 벌컥 열렸다.

“내려.”

 상호가 나지막이 말했다.

효은은 젖은 눈으로 그를 노려보다가, 잔뜩 성이 난 듯 발을 구르며 차에서 내렸다.

상호는 그녀를 놔두고는 어딘가로 걸어갔다.

“……야.”

 효은은 눈물을 글썽이다가 다시 빽 소리쳤다.

“야!”

“왜, 뭐.”

 상호가 그녀를 돌아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태도가 참 태평하고 뻔뻔스러웠다.

효은은 어이가 없었다.

“너 나 싫어? 이제?”

“아니?”

“그럼 왜 이러는데?”

“뭐가? 나 뭐 했어?”

 상호는 당황하며 눈을 끔뻑였다. 효은은 턱에 힘을 주고 울음을 참았다.

 하지만 자꾸 눈물이 났다.

“내리, 내리라며……!”

“아니, 내려야지. 케이크 안 고를 거야?”

“……케이크?”

 효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 * *

“아.”

 여직원이 반갑게 웃었다.

“또 오셨네요.”

“예에.”

 상호는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며 말했다.

“모듬으로 하나 주세요.”

“올인원 박스요?”

“예, 그거. 다 들어 있는 거.”

“네.”

 직원은 카드를 받아들며 카페의 문가를 흘끗했다. 거기에는 수녀 한 명이 멀뚱멀뚱 서 있었다.

“저분이 그때 그분이세요?”

 상호는 잠시 고민했다. 액면상 수녀인데 말해도 되나.

 그래도 별 상관은 없을 것 같긴 했다.

“네.”

 그의 대답에 여직원이 빙긋 웃었다.

“또 울리신 건 아니죠?”

“……예에.”

 울렸다, 살짝.

상호는 직원이 내민 카드를 받아들며 중얼거렸다.

“결혼하면…… 나중에 다 돌아오니까요.”

 둘은 고개를 살짝 숙이고 키득키득 웃었다. 직원은 곧 고개를 들고 돌아섰다.

“금방 준비해 드릴게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네.”

 상호는 멀거니 서서 기다렸다.

옆으로 효은이 다가서는 게 느껴졌다. 그가 아래를 내려다보니 효은이 입술을 삐죽 내밀고 있었다.

“뭐야, 왜.”

“직원이랑 친해 보인다?”

“뭐, 그냥. 면식이 있어서.”

“넌 진짜 숨쉬듯이 여자를 꼬시는구나.”

“……내가?”

 살다살다 그런 말은 처음 들어 봤다. 상호는 고개를 저었다.

“네가 뭔가 착각하는 거겠지. 나 여자한테 별로 인기 없는 타입이잖아. 여자 맘도 모른다는 말을 몇 명한테 들었는지…… 기억도 안 난다. 너무 많아서.”

 그 말에 효은이 혀를 차더니 삐뚜름한 웃음을 지었다.

“그게 꼬신다는 거야, 난봉꾼 새끼야.”

“아니 시바…… 억울해 죽겠네. 내가 뭘 했다고…….”

“넌 줄만 서도 사람을 꼬셨어.”

 효은이 보기 드물게 환한 웃음을 지었다.

“아무것도 안 해도 그렇다고. 진짜 숨쉬듯이 사람을 꼬신다고. 입만 열어도, 눈만 마주쳐도. 그러니까 함부로 웃어주지 말라고. 여자들 착각해서 홀딱 넘어오니까.”

“시발, 배우도 그 정도는 아니겠다. 무슨…….”

 상호는 질색을 하며 효은의 허리를 감쌌다. 그녀가 눈을 치켜떴다.

“어머. 그래도 수녀라 바깥에선 곤란한데.”

“뭔 상관이야. 이미 옛적에 수녀 딱지 뗐으면서……. 차에 가면 입술이나 내밀어.”

“흥.”

 효은은 콧방귀를 뀌며 상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 * *

상호는 차를 세우고 효은의 어깨를 토닥였다.

“다 왔어.”

“으응?”

 축 늘어져 자고 있던 효은이 눈을 떴다. 그녀는 창밖의 아파트를 돌아보고는 작게 중얼거렸다.

“변한 게 없구만.”

“몇 년 만이야?”

“너 만난 후로 온 적 없어.”

 상호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좀만 더 있으면 10년 채웠겠구만. 왜 그랬어?”

“왜라니?”

“부모님이랑 사이가 안 좋거나…… 그런 거야?”

“딱히 그런 건 아닌데.”

 효은은 어깨를 으쓱였다.

“그냥 내가 좀 자유로웠던 거지.”

“얼마나 자유로우면 가족 버리고 사지로 오냐?”

“나만 그랬냐? 오빠들도 그랬잖아. 왜 나한테만 지랄이야.”

“그 형들은 전쟁 끝나면 당연히 가족한테 갔을…… 에휴, 그 이야기는 그만하고.”

 결국 왜 전쟁 끝나고도 가족을 찾지 않았는지는 대답을 듣지 못했다. 상호는 운전석 문을 열고 나왔다. 효은도 그를 따라 차에서 내렸다.

둘은 나란히 아파트를 향해 걸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가족이 누구누구야?”

“엄마 아빠. 언니 하나.”

“언니는 몇 살인데. 집에 계시나?”

“몰라. 지금이면 스물여덟인가. 아, 한 살 더 먹었지. 스물아홉인갑네.”

“결혼하셨어?”

“몰라. 야, 잠깐만. 그건 왜 묻냐? 너 설마…….”

“아니야! 너는 왜 내가 뭐만 하면 그러냐?!”

“너 언니는 안 돼. 분명히 말했어. 나 진짜 언니랑은 같은 밥 못 먹으니까 그리 알아.”

“안다고, 안 한다고…….”

“그래도 한 번쯤은 이벤트로 해줄 수 있으려나.”

“나 돌아갈래.”

“어딜 도망가, 븅신아. 이리 와.”

“하아…….”

 * * *

꽤 오래된 아파트의 11층.

상호는 그중 한 집의 현관문 앞에 서서 초인종을 눌렀다. 한 손에는 검, 한 손에는 케이크 상자를 든 채로.

오래지 않아 인터폰에서 중년의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누구세요.]

“저어…….”

 상호는 효은을 돌아보았다. 딱히 말을 할 생각이 없는 듯했다.

별수 없이 그가 대답해야 했다.

“따님 데려왔습니다.”

[잘못 찾아오셨어요.]

“효은이 남자친구입니다.”

 그 말에 무언가 박살 나는 소리가 들리더니 인터폰이 끊겼다.

문 안쪽에서 누군가가 달려오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윽고 문이 벌컥 열리며 중년의 여인이 나타났다.

여인은 떨리는 눈동자로 상호를, 그리고 그 뒤의 효은을 쳐다보았다.

“효은? 효은이 맞니?”

 시간이 너무 흘러서 알아보기 힘든 모양이었다. 아니, 성형까지 했으니 오히려 용케 알아봤다고 해야 할지도 몰랐다.

효은이 심드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야. 엄마.”

“……아.”

 효은의 어머니는 뒷목을 잡더니, 집 안으로 뛰어 들어가며 소리쳤다.

“여보! 효은이, 효은이 왔어요! 효린아!”

 반응이 참 격렬하다. 상호는 효은을 돌아보았다.

“여태 전화도 안 했어? 한 통도?”

“응.”

“부모님이 너한테 뭐 죄졌냐?”

“내 맘이지.”

 효은은 그렇게 툭 말하고는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가 버렸다.

남겨진 상호는 현관을 이리저리 둘러보며 고민했다. 그냥 도망칠까.

‘에휴, 별수 있나…….’

 곧 그도 효은을 따라 안으로 들어섰다.

* * *

효은의 머리로 효자손이 날아왔다.

“이 썩을 년아!”

 효은도 저승부대니만큼 반사신경은 보통이 아니었지만, 몸을 움직이는 것은 느렸다. 상호는 황급히 효은의 머리를 끌어안고 효자손을 잡았다.

“십 년, 아니 몇 년이야. 어쨌든 X벌 홀라당 나가놓고 찾아가도 만나지를 않았으면서, 또 홀라당 들어와서는, 웬 놈팽이를 데려와서는 하는 말이 나 이 남자랑 결혼해? 에라이 썩을년아, 부모 맘을 그렇게 썩여야 했냐! 으응?!”

“뭐.”

 거실 바닥에 앉은 효은은 콧방귀를 뀌며 딱 한 마디를 했다. 그 앞에 앉은 중년인이 뒷목을 잡았다.

“……그래. 알겠다. 알겠어. 잘 왔다. 잘 왔는데…… 너는 딸 결혼을 누군지도 모르는 녀석이랑 시켜줄 것 같냐?”

“허락받는 거 아냐. 통보야.”

“그래! 니 멋대로 해 봐라. 혼수 따윈 해주지도 않을 거니까!”

“응~, 아빠가 평~생 번 돈 한 달 만에 벌었어~.”

“……이 썩을년아!”

 상호는 무릎을 꿇은 채로 진땀을 흘렸다. 알고는 있었지만 정말 미친 여자다.

별안간 효은의 아버지가 상호를 향해 고개를 홱 돌렸다.

“너는 뭐 하는 놈이야?!”

 상호는 무릎에 손을 올리고 고개를 깊숙이 숙였다.

“강상호라고 합니다.”

“이름 물었어? 무어 하는 놈이냐고!”

“효은이 남자친구입니다.”

“그거야 당연한 거고!”

 효은의 아버지가 상호를 삿대질하며 소리쳤다.

효은이 옆에서 심드렁하게 한마디 했다.

“나랑 같은 부대였어.”

“부대?”

 그 말에 효은의 아버지는 손을 내리고 못마땅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 저승부댄지 뭔지 하는 거 말하는 거냐?”

“응.”

“헌터라는 거지? 그거 위험한 일 아니냐? 너도 아직 계속 그 일 하는 거냐?”

“난 은퇴했고. 얘도 사실상 은퇴했고.”

“은퇴? 그럼 돈은 어떡하고?”

“나한테 이미 아빠가 평생 번 돈의 백 배가 있다니까?”

“이년이 말을 해도……!”

 효은의 아버지가 효은에게 방석을 집어 던졌다. 상호는 그 모습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오히려 이렇게 대놓고 싸우니까 편한 것 같기도 하고……. 나빛이네보단 낫네. 내가 눈치 볼 일은 없으니까.’

 주방에서 지켜보던 효은의 어머니가 한숨을 쉬었다.

“밥이나 먹으면서 이야기해요.”

 132. 마음이 어린

‘이야…….’

 상호는 밥을 우물거리며 효은의 가족들을 둘러보았다.

‘아직도 싸우네.’

“이 썩을년아. 십 년 만에 먹는 집밥이 그렇게 맛없드냐!”

“아직 십년 안 됐는데. 덜 채워서 맛없나? 채우면 맛있어지나?”

“여보, 저것 봐. 내가 저런 것 때문에 당신을 업고…….”

“식사나 하세요.”

 효은의 어머니의 말에 효은의 아버지가 툴툴거리며 숟가락을 들었다.

상호의 옆에는 효은이 앉았고, 효은의 옆에는 효은의 언니, 효린이 앉았다. 외모에 어릴 때의 효은과 닮은 점이 꽤 보였다.

“…….”

“…….”

 안 싸우니까 말이 아예 없어진다. 싸우는 거 말고는 소통이 안 되는 집안인 모양이었다.

 그래서일까. 유일하게 가족의 구성원이 아닌 상호에게 모두의 눈이 몰려들었다.

효은의 아버지가 제일 먼저 입을 열었다.

“자네.”

“예.”

“몇 살이야?”

“올해 스물넷입니다.”

“효은이보다 동생이라고?”

“예.”

“좀 삭은 것 같은데.”

“고생을 좀 해서 그런가 봅니다.”

 상호가 고분고분 대답하자 효은의 아버지의 태도가 누그러졌다.

“고향은 어딘가?”

“강원돕니다.”

“부모님은 어떤 일 하시고?”

 그 말엔 효은이 답했다.

“얘 엄마아빠 없어.”

“…….”

 당황한 효은의 아버지가 둘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이…….”

 말을 하려 하지만, 곧 다시 입을 다문다.

표정을 보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만했다. 너희들 애인 맞냐, 이런 딸을 데려가고 싶냐, 하지만 시집을 보내기는 해야겠으니 제발 좀 데려가 달라.

 그 모든 뜻이 눈빛에 담겨 있었다.

상호는 밥그릇을 비우고 허리를 펴 자세를 바로 했다. 그러자 곧 효은의 아버지가 물었다.

“자네. 진지하게 생각하는 거야? 우리 딸?”

“예.”

“결혼까지?”

“예.”

 효은의 아버지는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을 짓더니, 한숨을 쉬고 말을 이었다.

“정말로 사랑하나?”

“그렇습니다.”

“얼마나?”

 상호는 그제서야 깨달았다. 효은이 왜 그를 여기로 데려왔는지.

얼굴이 살짝 달아올랐다.

“그거야 당연히 말로 다 못 할 정도…… 컥!”

 효은의 팔꿈치가 그의 옆구리를 쳤다.

대답에 집중하느라 방심하고 있다가 일격을 허용하고 말았다. 상호는 황급히 말을 고쳤다.

“하늘만큼……?”

 퍽.

“어…… 3천만큼……?”

 퍽.

‘씨X랄, 어쩌라는겨…….’

 상호는 고개를 푹 숙였다.

“누나만큼…….”

“응?”

 효은의 아버지가 눈을 끔뻑였다.

상호는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못 알아듣겠지만.

“……누나만큼 사랑합니다.”

 효은만 알면 되는 것이다.

 그는 눈동자만 슬쩍 돌려 효은을 흘끗했다.

‘이 멍청이 알아듣긴 했으려나 모르겠네…….’

 그가 말한 것이 정답이었을까.

효은은 만면에 흡족한 웃음을 띠고 있었다.

‘……처음부터 이럴 생각이었구나.’

 상호는 양손에 얼굴을 파묻었다. 손바닥에 느껴지는 얼굴 거죽이 퍽 뜨거웠다.

효은의 가족들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둘을 바라보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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