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3화 (153/501)

* * *

식사 후 설거지는 상호와 효은이 하기로 했다.

싱크대에 나란히 서서 그릇을 뒤적거리는데 갑자기 효은이 고무장갑을 벗으려 했다.

“야, 나 한 대만 피고 올게.”

“뭐?”

 상호는 눈살을 찌푸렸다.

“아직 안 끊었어?”

“자꾸 찾게 되더라고. 벗겨줘.”

 효은이 고무장갑을 낀 양손을 상호의 앞으로 들이밀었다.

화날 때만 피는 줄 알았더니 계속 피고 있었나. 상호는 그녀의 손을 잡고 가까이 끌어당겼다.

“그렇게 계속 펴대니까 혀가 썩은 거 아니야. 피지 마.”

“오늘 한 대도 안 폈어. 빨리 피고 올게.”

“이리 와.”

 그는 효은을 싱크대를 향해 세우고 뒤에 바싹 다가섰다. 상호의 가슴팍에 효은의 등이 닿았다.

“끊어. 슬슬.”

 상호는 짤막하게 말하고 설거지를 계속했다.

효은은 그를 슬쩍 돌아보고는 뺨에 짧게 입을 맞췄다.

“너라도 빨아야겠다.”

“됐어. 남의 집에서 무슨…….”

“볼 빤다고, 볼. 무슨 상상을 하는 거야?”

 효은이 콧방귀를 뀌며 한 번 더 입을 맞췄다. 상호는 볼을 살짝 붉히며 그녀를 싱크대로 살짝 밀어붙였다.

“설거지나 해.”

“너 근데 크리스마스에 나빛이랑 둘이서만 보낸다고?”

“어.”

“그럼 나랑은 언제 노냐?”

 상호는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고민했다.

“좀 있으면 연말회식이라…… 바로는 안 될 것 같은데.”

“너 설에 우리 본가 올래?”

“본가?”

 그는 잠시 멈칫했다가 고개를 저었다.

“설에는 성철이 형 집 갈 거야. ……근데 너.”

“뭐.”

“부모님이랑 사이 안 좋은 거 아니지?”

 효은이 눈살을 찌푸렸다.

“왜?”

“아니, 도저히 상상이 안 가서 그래. 전장에서 죽도록 구르던…… 뭐 너는 비교적 꿀빨긴 했지만. 어쨌든 그런 인간이 어디 평범한 집 딸이라는 게 참…….”

“궁금하면 신정 직후에 오든가.”

 그 말에 상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방학엔 딱히 할 일도 없으니.

“그래.”

 그 뒤로는 그릇 부딪히는 소리와 물소리가 이어졌다. 가끔씩 입을 맞추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둘은 느긋하게 설거지를 계속했다.

* * *

집은 넓어도 객방은 따로 없어서, 상호가 자는 곳은 여전히 나로의 방이었다. 세희와 태화, 효은은 나빛의 방에서 자는 중이었다.

 그가 이불에 누워서 멍을 때리고 있는데, 나로의 목소리가 들렸다.

“상호.”

“응?”

“수녀님이랑 사귀는 사이야?”

 티가 나긴 했나 보다. 상호는 당황했지만 짐짓 시치미를 뗐다.

“무슨 소리야. 수녀님이랑 어떻게 사귀어.”

“그런데 분위기가 그래.”

“분위기?”

“수녀님이 널 볼 때면 눈에서 꿀이 떨어지드만.”

“……잘못 본 거 같은데.”

 그런 여자는 아니다. 그는 나로의 말을 무시하고 몸을 돌렸다.

“잠이나 자. 이상한 소리 말고.”

“맞구만.”

“아니라고…….”

“그럼 나빛이는 진짜 아니었던 거야?”

 이게 무슨 말인가. 상호는 눈살을 찌푸렸다.

“나빛이는…… 아직 어리잖아. 당연히 아니지.”

“그런가. 난 또 진심인가 했지.”

“얌마…….”

“솔직히 내 동생 예쁘다고. 나빛이도 너 많이 좋아하는 모양이고.”

“그냥 선생님이라 그런 거지. 그리고 나빛이가 원래 그런 애잖아.”

 그 말에 나로가 키득거렸다.

“니가 잘 알겠냐, 내가 잘 알겠냐? 나빛이 이미 너한테 푹 빠졌어.”

“그래, 동생 뺏어서 미안하다. 뭐 어떡하겠어. 어른 되면 또 다른 사람 좋아하겠지…….”

“네가 나빛이 좀 책임져라.”

 나로의 목소리가 갑자기 진지해졌다. 상호는 할 말을 잃었다.

‘시바, 이야기가 왜 그렇게 되는데…….’

 나로가 말을 이었다.

“나빛이가 대체 무슨 병인지는 모르겠지만, 네가 실없는 소리를 할 녀석은 아닌 것 같으니까. 만약 나빛이가 정말 네 말대로 위험하다면…… 좀 잘 부탁한다.”

“……최선은 다할 거야.”

 상호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나도 나빛이가 그냥 죽게 놔두진 않을 거니까.”

“그래. 나빛이가 정말 위험해지더라도…… 불행하게 놔두지는 마.”

 말의 핀트가 좀 안 맞는다. 하긴 치료법이 뭔지 안 알려줬으니 대화가 잘 안 통하는 것도 당연했다.

 어쨌든 상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게.”

“약속했다?”

“당연한 걸 가지고 굳이…… 알았어. 약속한다.”

 나로가 피식 웃었다.

“그렇다고 끝까지 해버리진 말고. 2년은 기다려야지.”

“염병, 안 건드려. 안 건드린다고. 그런 거 안 한다고…….”

“속도 지켜.”

“알았다고…….”

 상호는 한숨을 푹 쉬고 눈을 감았다.

* * *

아침.

태화가 나로의 방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쌤! 일어나! 게임하게!”

“아오…….”

 상호는 몸을 일으키고 눈살을 찌푸리며 태화를 째려보았다.

“니는 쌤 말고 다른 사람이 있는데도 그렇게 막 열어제끼냐.”

“죄송함다~.”

 태화는 게임기 앞으로 달려가 앉았다. 방주인인 나로는 잔뜩 쭈그러들어서는 침대 한구석에 처박혀 있었다.

“아저씨! 이거 해도 되죠?”

“으, 응.”

“이거 캐릭 꽉 찼는데 오래된 거 지워도 돼요?”

“그……거는…….”

“어, 잘못 눌렀다.”

“끄아아악!”

“죄송함다~.”

 상호는 뻔뻔하게 게임을 하는 태화와 절규하는 나로를 보고는 고개를 푹 숙였다.

‘미안하다, 나로야. 하루만 더 참아라…….’

 128. 속삭이다

“안 돼.”

 봉진이 고개를 저었다.

“내일은 가족행사야. 나빛이 너만 따로 가는 건 안 돼. 차라리 같이면 몰라도…….”

 같이라는 것은 상호를 뜻하는 것이었다. 상호는 봉진의 시선을 느끼고 난색을 표했다.

지금은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의 저녁 식사 시간. 방금 막 나빛이 내일은 상호와 있겠다고 선언한 참이었다.

봉진이 말을 이었다.

“아빠도 오빠도 어렵게 쉬는 날 만들었잖아, 나빛아.”

“그치만…….”

 나빛이 시무룩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아빠랑 오빠는 항상 봐왔잖아요. 항상 볼 거고…….”

“나빛.”

 끼어든 것은 의외로 세희였다. 상호는 밥을 먹다 놀라서 살짝 기침을 했다.

얘가 왜 남의 집 일에 끼어드나.

“아버지 말씀 잘 들어.”

 세희가 말하니 그 무게가 달랐다.

조용히 목구멍에 밥을 욱여넣는데 목이 자꾸 메었다. 상호는 가슴을 졸이며 세희와 나빛의 눈치를 살폈다.

나빛도 세희의 사정을 아는지라 대놓고 고집을 부리진 않았다.

“응, 근데 그래두…….”

“선생님보다는 당연히 가족이 우선이어야 하는 거 아니야?”

“그거야 그렇지만…….”

“가족이랑 지내.”

 세희가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태화도 한마디 거들었다.

“쌤은 우리랑 놀 거니까.”

 가족 없는 걸 무기로 삼는구나. 상호는 진땀을 흘렸다.

‘사방이 적이네.’

 봉진도, 세희도, 태화도. 그와 나빛을 찢어 놓으려고 한다.

나로는 부모의 눈치를 살피느라 입을 열지 않았고, 효은은 한 발짝 떨어져 관망하는 중이었다.

‘얘들은 계속 조용히 있을 모양이고…….’

 상호는 유연을 흘끗했다.

그녀는 밥과 반찬만 내려다보며 조용히 식사를 하고 있었다.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무슨 감정을 품었는지 알아보기가 힘들었다.

‘이쪽은 역시 힘들겠고…….’

 상호는 그나마 편한 쪽으로 설득을 시도했다.

“아버님.”

“응?”

“어차피 겨울방학도 긴데…… 나빛이랑 지낼 날은 많이 있지 않을까요?”

“자네야말로 학교에서 맨날 봤잖아. 그리고 나는 연말연초엔 너무 바빠. 내일처럼 하루 통째로 쉬는 날이 별로 없어.”

“그래도 나빛이가 놀고 싶어하니까…….”

 봉진이 눈살을 찌푸렸다.

“안 돼. 가족이 먼저지.”

 뜻이 확고하다. 상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입으로는 그렇게 말하지만, 속으로는 나빛과 함께 몰래 도망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는 일부러 살짝 상심한 표정을 지었다. 옆에서 세희와 태화가 계획대로 되었다는 듯 눈을 반짝이는 것이 보였다.

‘얘들도 참…….’

 아이들은 천사화에 대해서는 모르니까. 상호는 그러려니 하기로 하고 밥을 먹었다.

유연이 빤히 바라보고 있는 줄은 모른 채.

* * *

식사 후 상호는 나빛과 이야기를 하려 했다. 내일 어떻게 도망칠지 계획을 세우기 위해서.

 하지만 아이들의 방해 공작으로 번번이 실패했다.

씻고 나온 나빛에게 다가가면 태화가 달려들었고.

“쌤! 같이 씻을래요?”

“미쳤냐? 아, 나빛아. 잠깐 이야기 좀…….”

“벗어~ 벗어~.”

“야!”

 나빛의 방으로 찾아가면 세희가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선생님. 저 옷 갈아입고 있어요.”

“아, 그래……, 안에 나빛이 있어?”

“읍! 읍읍~!”

“자고 있어요.”

 그 후로는 문이 잠겨 버렸다.

허나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이미 저녁 식사 때부터 일이 이렇게 흘러갈 줄은 예상하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 모두가 잠에 들 시간까지 기다렸다.

‘슬슬 때가 됐나.’

 상호는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오전 4시.

평소에 7시에 일어난다 치면 아직 잠이 부족할 시간이지만, 차에 타면 더 잘 수 있을 테니 별문제는 안 되었다.

나로의 방구석에는 상호가 처음에 입고 왔던 양복이 곱게 놓여 있었다.

‘다 챙겨서 나가야겠지.’

 내일부턴 이 집에 머물지 않을 터. 그는 슬그머니 일어나 양복으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나로의 방을 나섰다.

‘조심조심…….’

 지팡이 소리가 나지 않도록 천천히. 한 걸음, 한 걸음.

 그렇게 고요한 복도를 걸어 나빛의 방 앞에 다다른 그는, 내공을 끌어올려 문틈으로 서서히 집어넣었다.

‘우선은…….’

 제일 먼저 찾을 건 효은의 자동차 키.

실처럼 가느다란 내공이 방을 더듬기 시작했다.

‘책상…… 옷장…… 아, 이게 옷가방인가.’

 옷 가방 옆에 차곡차곡 접힌 옷더미. 아마 수녀복 같았다. 상호는 그곳에서 어렵지 않게 효은의 차 키를 찾을 수 있었다.

차 키가 문 너머에 살포시 놓였다.

‘그리고 칼.’

 그는 옷장 문을 살짝 열고 검을 찾아 더듬거렸다.

 이미 한 번 봐두어서 금방 찾을 수 있었다. 문제는 역시 나빛의 속옷이었다.

상호는 눈을 질끈 감고 그 속옷을 검에서 떼어냈다.

‘난 안 만졌어, 아무튼 안 만졌어…….’

 그렇게 검도 문 옆에 기대어 놓았다.

남은 것은 나빛.

‘침대에서 자고 있겠지?’

 내공이 침대 위를 스쳤다.

 그런데 침대에 누운 사람이 한 명이 아닌 것 같았다. 아니, 네 명 다 침대에서 자는 모양이었다.

상호는 눈살을 찌푸렸다.

‘하긴 침대가 크긴 했어…….’

 네 명 중에서 나빛을 찾아야 한다.

……내공의 촉각만으로.

 그는 진땀을 흘리며 침착하게 침대의 머리맡으로 내공을 뻗었다.

‘일단 이건 태화고…….’

 머리에 뿔이 달렸으니 착각할 리가 없다.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긴 생머리 여자들 셋 중에서 나빛을 구별해내야 했다.

만져서.

‘돌겠네…….’

 어떻게 해야 할까. 계속 고민하는데 한 가지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상호는 내공으로 그녀들의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세희랑 효은은 머리를 자주 땋으니까…….’

 구불구불한 감이 좀 남아 있지 않을까. 샤워를 했더라도.

허나 그의 기대와는 달리 그렇게 확연한 차이가 느껴지지 않았다. 평소에 만져 본 적이 없어서 더 그런 것 같기도 했다.

‘이건 안 되겠고…… 그러면.’

 손과 발의 굳은살.

그것만은 절대로 헷갈릴 리 없다. 상호는 그녀들의 발을 살짝 만져 보았다. 역시나 유난히 딱딱한 것이 한 쌍 있었다.

남은 것은 효은과 나빛.

‘머리카락 길이는 애매하게 비슷하고…….’

 효은의 몸이 더 어른스럽긴 하지만, 만진다고 알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뭔가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던 차에 방법이 하나 떠올랐다.

‘이게 맞나?’

 상호는 효은과 나빛으로 추정되는 여인들의 다리로 내공을 뻗었다. 정확히는 정강이로.

둘 다 맨들맨들하기만 했다.

‘우씨, 나효은 얘는 왜 털이 없냐…….’

 나이가 있으니까 조금은 티가 날 줄 알았는데. 평소에도 제모를 하는 걸까. 아니면 그냥 안 나는 걸까.

 어쨌든 이쪽은 실패였다.

‘그럼 겨드랑이를…… 아냐. 큰일 난다. ……어?’

 상호는 그녀들의 다리에서 내공을 거두다가 뭔가를 알아차렸다.

‘잠옷이 다르구나.’

 한쪽은 파자마고, 한쪽은 좀 더 평상복스러운 옷.

상호는 확신을 갖고 파자마를 입은 쪽의 몸을 일으켜 세웠다.

“웅…….”

 안에서 나빛의 졸린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그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제대로 뽑았다.

“으응……?”

 나빛은 어리둥절해하다가 머리를 쓰다듬는 내공을 느끼고 멍을 때리더니, 곧 침대에서 일어났다.

상호는 내공으로 그녀를 문 앞까지 이끌었다.

마침내 나빛이 문을 열었다.

“선생님.”

 상황 파악이 끝난 듯했다. 상호는 검과 효은의 차 키를 챙기고 나빛의 손을 잡았다.

“가자. 둘이서.”

“네.”

 나빛이 방긋 웃었다.

그때 안방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윽!’

 상호는 움찔하며 안방 쪽을 돌아보았다.

유연이 핸드폰과 웬 상자를 들고 걸어 나오고 있었다. 그녀 또한 많이 당황한 표정이었다.

아마 이런 상황을 예측하고 나온 것은 아닌 듯했다.

“엄마.”

 나빛이 속삭이며 상호의 소매를 꼭 붙잡았다.

유연은 그런 나빛의 손을 바라보며 말없이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이윽고 그녀가 둘을 향해 다가오며 물었다.

“어디 가세요?”

 상호는 살짝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나빛이랑 외출 좀 하겠습니다.”

“이제는 기숙사로 모자라서 아예 가족들에게서 떼어놓으려는 건가요?”

“죄송합니다.”

 상호는 물러설 생각은 없었다. 그의 손이 나빛의 어깨를 감싸 가까이 끌어당겼다.

“조금만 놀고 오겠습니다.”

 유연은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한숨을 쉬었다.

“더 다투기도 지쳤어요. 강 선생도 꼭…… 예쁜 딸 낳아요. 그리고 꼭…… 웬 놈팽이한테 빼앗겨 보길 바래요.”

“감사합니다.”

 상호는 씩 웃었다.

유연이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다가 손에 든 상자를 나빛에게 내밀었다. 나빛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게 뭐예요?”

“생일 선물.”

 유연이 나지막이 말했다.

“못 줬었잖아.”

“아…….”

 상자를 받아든 나빛의 눈이 촉촉해졌다. 상호는 모녀의 모습을 보며 흐뭇한 웃음을 지었다.

“갔다 오겠습니다.”

“따뜻하게 입히고 가요.”

“예.”

“잘 놀다 와.”

 유연은 그 말을 남기고 안방으로 향했다.

그녀는 안방으로 들어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고개를 돌려 상호와 나빛을 일견하고는, 희미한 웃음을 지으며 문을 닫았다.

* * *

“선물 뜯어 봤어?”

 상호는 효은의 차 운전석에 앉으며 물었다. 그러자 뒷좌석에 앉은 나빛이 유연에게 받은 상자를 열었다.

나빛의 눈이 커졌다.

“……아.”

“뭐야?”

“수첩…….”

“수첩?”

 상호는 뒤를 돌아보았다. 수첩치고는 살짝 큰 크기의 책자가 나빛의 손에 들려 있었다.

나빛이 페이지를 넘기며 중얼거렸다.

“요리 레시피예요.”

 회색 눈에 눈물이 글썽거리고 있었다.

상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맘에 드는지 안 드는지는 물어볼 필요도 없을 터.

 그는 차를 출발시키며 말했다.

“나중에 선생님한테도 요리 해 줘.”

“……네.”

 나빛이 코를 훌쩍이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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