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야, 상호.”
게임도 질려서 바닥에 이불 깔고 누워 있던 중이었다. 상호는 나로의 목소리를 듣고 뒤를 돌아보았다.
나로가 침대에 누워 있었다.
“응?”
“할 거 없지?”
“어.”
“사업 이야기나 들어볼래?”
“갑자기? 그래, 뭐. 해봐.”
상호는 나로를 향해 돌아누웠다. 나로가 말을 이었다.
“내가 지금 몬스터 가지고 사업을 하고 있잖아.”
“어.”
“몬스터를 잡아서 자재로 만든단 말야?”
“어.”
“그런데 이게…… 시간이 지나면 자꾸 이게 삭더라고. 가죽이랑 뼈가. 방부처리를 했는데도 그래. 삭는다고 말하면 이상한가? 그…….”
나로가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기웃했다. 상호는 찰떡같이 알아듣고 물었다.
“점점 약해진다고? 처음 잡았을 때보다?”
“응. 가죽은 더 잘 찢어지고, 뼈도 잘 부서지고. 뭐 평범한 동물들 것보다는 훨씬 단단하긴 한데…….”
“마나가 빠져나가니까 당연하지.”
지능이 낮은 몬스터들은 마나를 다루지는 못하지만, 그런 몬스터들의 몸에도 마나가 쌓여서 육체를 단단하게 강화시켜 주고 있었다.
나로가 머리를 긁적였다.
“그거 막을 수는 없나?”
“어따 쓰려고?”
“총. 총을 만들 생각이었어.”
나로가 검지를 들어 총 모양을 만들었다.
“총이 안 통하는 놈들이 있잖아. 그런 놈들한테 그런 놈들로 만든 총알을 쏘면 먹히지 않을까, 생각했었거든.”
상호의 옆에서는 나빛이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는 중이었다. 이야기를 듣던 나빛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들었다.
“총은 왜? 헌터가 있잖아.”
“헌터가 아닌 사람들도 대비해야지.”
나로가 진지한 눈빛으로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도시 한복판에 몬스터가 나타날 수도 있잖아.”
상호는 눈을 끔뻑였다.
‘누군가한테 비슷한 말을 했던 것 같은데…….’
“언제 또 전쟁이 일어날지 모르고. 헌터들이 쓰러지고 나면 뒤에 있는 사람들이 싸워야지.”
나로의 말에 나빛이 상호를 바라보며 웃었다. 그걸 본 나로가 눈을 끔뻑였다.
“뭐야, 왜?”
“아니. 그냥.”
상호가 항상 했던 말이었다.
뜻이 잘 맞는다. 상호는 고개를 끄덕이고 물었다.
“그래서 그 사업이 무기를 만든다는 거지? 총 말고 다른 것도?”
“응. 근데 총이 제일 효과적이니까. 지금 총알 문제 빼고는 다 해결하기도 했고…….”
“그런가. 근데 난 그런 쪽은 몰라. 마법학회 쪽에서 알아보는 게 나을 것 같은데. 거기엔 안 물어봤어?”
“거긴 아티팩트를 만들잖아.”
아티팩트는 보호 마법과 공격 마법이 깃든 것이 대부분이다. 하긴 유사시에 안전하게 대처할 수 있다면서 비싸게 잘 팔아먹고 있는데, 몬스터에게 통하는 총의 개발에 적극적으로 협력해 주진 않을 것 같았다.
“사실상 경쟁자지. 그래도 어떻게든 마법사들을 두루두루 만나보려고 하는데…… 힘드네. 아마 학회에서 뭐라 했나 봐.”
나로가 얕은 한숨을 쉬었다.
상호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내가 아는 마법사한테 한번 물어볼게. 근데 바쁜 사람이라 네 회사에 들어가지는 못할 것 같다.”
“그래?”
나로가 씩 웃었다.
“그만큼이어도 나는 고맙지.”
“근데 너 전에 그 기계도 네가 만들었다고 하지 않았나? 마법공학을 배운 거야?”
“아니. 난 그냥…… 발명가라고 하긴 너무 거창하지? 사업가지, 사업가.”
나로의 시선이 상호의 다리를 향했다.
“보행기 만들어 줄까? 로봇 다리처럼 만들면 될 것 같은데.”
상호는 심드렁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냐, 됐어. 이게 편해.”
“편하게 만들면 되지. 그게 발명인데. 불편한 게 있으면 고치고…….”
“아니, 진짜 살짝만 스쳐도 아파. 뭔가를 착용하는 거 자체가 안 돼.”
“그래?”
나로가 쩝 하고 입맛을 다셨다.
“그럼 그 다리는 어쩌다 그렇게 된 거야? 눈도 그렇고. 우리 동생한테 고쳐 달라고 해.”
“안 돼.”
대답은 나빛의 입에서 나왔다. 나로가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응?”
“선생님이랑 내 비밀이야.”
나빛이 상호의 팔을 끌어안으며 웃었다.
나로는 둘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한숨을 쉬고 베개에 뒤통수를 푹 파묻었다.
“그래. 그럼 어쩔 수 없지.”
그때 상호의 주머니에서 벨소리가 울렸다. 상호는 핸드폰을 꺼내 화면을 확인했다.
세희에게서 온 전화였다.
“어, 세희야.”
그가 전화를 받자 나빛이 더 가까이 다가붙었다. 핸드폰 소리가 들릴 위치까지.
세희가 대답했다.
[선생님, 학교 언제 오세요?]
“어…… 조금 걸릴 것 같아. 왜?”
[태화가 선생님 방 털었어요.]
“응?”
핸드폰 너머에서 태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사각빤쓰 졸라 편해~.]
이게 무슨 소리인가. 상호는 몸을 벌떡 일으키고 목소리를 높였다. 나빛도 그를 따라 일어나 앉았다.
“야, 이태화! 너 쌤 물건 막 가져가지 마.”
[시러~ 시러~.]
“혼난다, 진짜! 니가 도둑이냐?”
[그럼 빨리 와요. 뭐 하느라 하루가 넘게 안 오는데요.]
“다 사정이 있어…….”
첫째는 나빛과의 약속. 둘째는 기숙사 관련 상담. 셋째는 담배에 관한 오해 풀기.
유연의 화가 풀리면 그때 공략을 시작할 예정이었다.
“선생님 크리스마스까지 바쁠 것 같으니까, 잘 지내고 있어.”
[빨리 와요.]
“크리스마스까지 못 간다니까……. 최대한 빨리 갈게.”
[응~.]
태화의 목소리가 멀어지고, 세희가 다시 말했다.
[선생님.]
“응.”
[나빛이 집에 계세요?]
“응.”
[감금당하셨으면 헛기침을 해 주세요.]
“응?”
상호가 당황한 틈을 타 나빛이 전화기에 대고 소리쳤다.
“엣헴!”
[아, 나빛이야? 너 선생님이랑 뭐해?]
“히히, 놀아. 게임하고. 티비 보고.”
[그래? 좋겠네.]
“응, 좋아.”
[각오해.]
“응?”
나빛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세희의 스산한 목소리가 상호의 귀에 박혔다.
[어떻게든 선생님 빼낼 거야. 크리스마스 전까지.]
나빛의 입가에 웃음이 걸렸다.
“해 봐.”
[기다리고 있어.]
전화가 끊겼다.
무슨 짓을 하려는 걸까. 상호는 불안해지는 마음을 다스리려고 염주를 굴렸다.
‘범죄만 저지르지 마라, 얘들아…….’
* * *
저녁이 되니 이제는 슬슬 식사가 익숙했다. 그래도 상호의 칭찬 세례는 끊어지지 않았다. 유연의 마음을 녹이기 위해서.
“와, 김치가 진짜 맛있어요.”
“밥이 질지도 않고 되지도 않고. 어떻게 매번 이렇게 물을 잘 맞추세요?”
“이야, 나빛이 기숙사 못 오겠다. 이렇게 맛있는 밥만 먹고 살아서…….”
……잘그락
유연이 밥을 먹다 말고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상호는 그 작은 소리에 급히 고개를 푹 숙였다.
“죄송합니다.”
“강 선생.”
“예, 어머님.”
“기숙사는 안 보내요.”
봉진에게는 금시초문이었을 터였다. 봉진이 나로를 곁눈질하며 설명을 구했다.
나로가 작게 속삭였다.
“나빛이 기숙사 가고 싶은가 봐요.”
“그래? 굳이 왜 가려는 거야?”
봉진이 묻자 나빛이 시무룩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가면 친구들이랑 놀 수 있고……. 학교 다니기도 편하고…….”
“공부…… 그러니까, 수련이랑은 상관없잖아.”
“거기 애들은 저녁에도 수련해요……. 선생님도 저녁에 수업하시고.”
하지만 안 되는 이유는 그런 문제들 때문이 아닐 터였다. 상호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버님.”
“응?”
“나빛이가 기숙사 오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나빛이 말대로 저녁에도 수업을 하고, 아이들끼리 수련하기도 하고……. 시설도 좋고, 안전합니다. 선생도 학생도 전부 헌터들이니까요.”
봉진이 유연의 눈치를 살피고 말했다.
“그러니까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학교에서 하는 수업으로 충분한 거 아니야?”
“수련에는 충분이 없습니다. 최선을 다해야죠.”
“그래도…… 기숙사가 집보다 안전할 것 같진 않아.”
“그건 나빛이가 알아서 하게 놔두셔야 합니다.”
상호는 기시감을 느꼈다. 전에 했던 말을 또 해야 하는 걸까.
눈살을 찌푸리던 유연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나빛이 연말평가 성적이 몇 등이랬죠?”
“9등입니다.”
“9등이면 거기 있는 모두에게서 몸을 지킬 수 있나요?”
사람을 믿지 않는구나. 상호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해는 됐다. 부잣집 딸이니 온실 속 화초니, 그런 것들을 차치하고. 나빛이란 아이 자체가 그런 아이였다.
상호도 항상 그녀를 걱정했다.
“어머님.”
상호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유연과 눈을 마주쳤다.
“사람은 언제 어떻게 죽을지 모릅니다.”
그녀는 딸의 병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스스로의 선택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스스로 선택하면 타인을 원망할 일이 없고, 최선을 다하면 후회가 없으니까요.”
유연은 늘 그렇듯 서늘한 눈빛으로 상호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어떤 사람의 인생에 다른 사람이 지나치게 간섭하면…… 그 사람은 스스로 선택하지 못하고, 최선을 다하지도 못하게 되어 버립니다. 자기 뜻이 아닌데 힘이 나겠습니까. 그렇게 되면 실패를 겪었을 때…… 이유를 자신한테서 찾지 않고, 남한테서 찾습니다. 그렇게 남을 원망하게 되는 거죠.”
상호는 그 매서운 눈빛을 보고도 물러서지 않았다.
“위험도 스스로 선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자 유연이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식탁 위에 내려놓았다.
담배였다.
“강 선생이 이것까지 막을 수 있나요?”
상호는 할 말을 잃었다.
“돌이킬 수 없는 실수들…… 강 선생이 전부 막아 줄 수 있어요? 그러면 보낼게요. 기숙사.”
유연이 나직하게 말했다. 상호는 식탁 위의 담배를 내려다보았다.
어차피 나빛이 그럴 아이는 아니지만.
만에 하나, 타인의 실수와 엮이게 된다면, 그 책임은 누가 지어야 하는지.
아니, 그가 그 책임을 지는 게 가능하기는 한지.
알 수 없었다.
“……좀 더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의 말에 나빛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상호는 그녀를 흘끗했다.
얼굴에 드리워진 그림자만큼 머리카락이 희게 느껴졌다.
느낌뿐일까.
아닐지도 몰랐다.
“잘 먹었습니다.”
그는 심란한 마음에 밥그릇을 채 비우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밤이 깊어갈수록 흰색은 더욱 짙어갔다.
그 하얀 가닥 끝에 맺힌 물방울이 유리구슬처럼 밝게 반짝였다. 상호는 욕실에서 나오는 나빛을 착잡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나빛이 그를 향해 밝게 웃었다.
“씻으시려구요?”
“응.”
상호는 나빛에게서 수건을 건네받아 머리를 말려 주었다.
젖어서 그나마 어두워 보였던 걸까. 물기를 털어낼수록 밝아져 가는 회색이 상호의 가슴속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몸이 밝아질수록 그녀는 더욱 밝게 웃었고.
그게 그의 마음을 더더욱 아프게 했다.
“나빛아.”
그는 수건으로 나빛의 귀를 살짝 감싸며 속삭였다. 귓바퀴의 물기를 닦는 척.
하지만 나빛은 대답하지 않았다.
“나빛아…….”
다시 불러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상호는 이를 악물었다. 턱이 아플 정도로. 목에 힘줄이 솟을 정도로.
‘그래도, 그래도 방법은 있으니까…….’
하지만 그건 최후의 수단이고.
그게 나빛이 진정으로 원하는 게 맞는지도 의문이고.
그 방법이 가능해질 때까지 나빛이 받는 고통도 무시할 수 없었다.
상호는 수건을 나빛의 어깨에 걸쳐주었다.
“자, 다 됐다.”
“헤헤.”
나빛이 그를 돌아보며 웃었다.
늘 웃는다. 항상 웃는다. 꼭 그날의 태화처럼.
하지만 분위기가 달랐다. 태화는 웃기 싫어도 감추려고 웃는 느낌이고, 나빛은 그저 웃어주고 싶어서 웃는 느낌.
상호의 손이 나빛의 볼을 문질렀다.
“나빛아.”
“네.”
“내일 같이 외출할까?”
“둘이서요?”
“그럼.”
나빛이 다르게 웃었다.
“좋아요.”
상호는 그 웃음을 보고서야 비로소 나빛을 놓아주었다.
욕실로 들어가는데 문득 머릿속에 떠오른 것이 있었다. 그는 방으로 돌아가는 나빛을 향해 말했다.
“나빛아, 선생님 칼 꺼내 줘야 돼.”
“음…….”
나빛은 잠시 고민하더니 눈웃음을 치며 혀를 쏙 빼물었다.
“그건 내일 아침에 정해드릴게요.”
“그래…….”
상호는 고개를 푹 숙였다.
* * *
“이야~ 날씨 좋네.”
“…….”
“겨울인데 따뜻하네. 안 그러냐, 나빛아?”
“몰라.”
“으휴, 아는 게 뭐야.”
나로가 나빛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낄낄거렸다. 반면 나빛은 간만에 뾰로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상호는 나빛의 옆에서 걸으며 먼 산을 쳐다보았다.
‘이럴 것 같긴 했지…….’
손에 들린 지팡이가 너무 가벼워서 익숙지 않았다. 결국 검은 돌려받지 못했고, 감금 생활은 계속 이어질 전망이었다.
상호는 하 남매와 함께 거리를 걸었다.
무언가 계획을 갖고 나온 것은 아니었다. 그저 나빛과 함께 시간을 보내려 했을 뿐. 그래도 거리를 걷다 보니 볼만한 구경거리가 많았다. 성탄절 준비 때문에.
“아, 선생님. 저거.”
나빛이 어딘가를 가리켰다.
영화관의 포스터였다. 성탄절 특선 가족 영화. 상호는 포스터를 쓱 훑고 나로를 돌아보았다.
“보자?”
“그래, 뭐. 난 둘이 뭐 하는지 보려고 따라온 것뿐이니까.”
나로가 어깨를 으쓱였다.
* * *
어두운 영화관.
한창 영화가 상영 중인데, 상호의 입가로 무언가가 다가왔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나빛이 그의 입가에 콜라를 들이밀고 있었다.
“괜찮아.”
그렇게 속삭여도 나빛은 손을 내리지 않았다. 상호는 하는 수 없이 빨대를 쭉 빨았다. 딱 하나 꽂힌 빨대. 나빛이 쓰던 것을.
그러자 누군가가 그의 어깨에 손을 턱 얹었다.
“콜록!”
상호는 헛기침을 하고 빨대를 입에서 떼었다.
뒤를 돌아보니 나로가 씩 웃고 있었다.
“왜, 왜.”
“아니 그냥.”
나로는 그의 어깨에서 손을 떼고 스크린으로 시선을 돌렸다. 상호도 다시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잘 보고 있는데 또 팔걸이에 얹은 손의 손등에 무언가가 닿았다. 곱고 따스한 것이 살며시.
나빛의 손이었다.
상호는 잠시 고민하다가 손을 돌려 나빛의 손을 마주 그러쥐었다.
그러자마자 어깨에 타격이 느껴졌다.
터억
“야, 상호야.”
“……뭐.”
“내 동생 고등학교 1학년이다.”
“알아…….”
그래도 상호와 나빛의 손은 떨어지지 않았다.
어깨를 꽉 잡던 나로의 손이 스르르 떨어졌다. 상호는 그때서야 다시 영화에 집중할 수 있었다.
손안에 들어온 손이 퍽 보드라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