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1화 (141/501)

* * *

“일주일 남았다.”

 상호는 교탁을 잡고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아이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그와 눈을 마주쳤다.

“많은 거 안 바래. 최선만 다해. 그러면 선생님이 절대 혼낼 일 없으니까.”

“네.”

“그래. 내일 보…… 잠깐.”

 그는 종례를 마치려다가 문득 생각이 나서 아이들과 눈을 마주쳤다. 특히 세희와 태화를.

두 아이는 검고 빨간 눈동자를 반짝거렸다.

“절대로 선생님 허락 없이 몬스터 잡으러 가지 마.”

 지윤은 이미 들었던 말. 그녀를 제외한 다른 세 명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태화가 제일 먼저 물었다.

“그럴 생각도 없는데…… 갑자기 왜요?”

“돈이나 뭐 그런 것 때문에 헌터 일 시작하지 말라는 뜻이야.”

 예전부터 품어왔던 한 가지 의문.

“너흰 아직 부족하니까.”

 아이들은 그가 전쟁에 뛰어들었을 때보다 강하다.

“꼭 선생님 허락 받고 해.”

 그 증거로 다혜도 당당히 살아 돌아왔고.

“아직 너희한텐…… 실전은 일러.”

 실전만이 인간을 단단하게 벼릴 수 있다.

말과 생각의 괴리에 위화감이 느껴졌다. 상호는 잠시 입을 다물고 교탁을 내려다보았다.

이게 맞나.

새는 결국 알을 깨야 한다.

다혜는 그 알을 깼다. 알을 깨고 하늘을 날아 세상을 한 번 굽어보기까지 했다.

지금 눈앞에 있는 아이들도 다혜만큼, 아니 그 이상의 가능성을 가진 아이들이었다.

 하지만 상호는 두려웠다.

알껍데기를 톡톡 두드리는 아기새와 같은 아이들이, 알을 깨고 나와 날개를 펴는 게 두려웠다. 떨어질까 봐. 잡아먹힐까 봐.

 그렇지만 새는 날아야 산다. 그의 걱정이 틀렸다는 것은 명백했다.

아이들을 스스로의 울타리에 가두려는 건 아닐까. 더 높이 날 수 있는 새들을 새장에 넣는 건 아닐까.

 하지만 눈앞의 아이들은 아무리 봐도 삐약거리는 병아리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알았지?”

 상호는 착잡한 표정으로 아이들을 둘러보았다.

 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들은 하나같이 환하게 웃었다.

나빛이 명랑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면, 저희가 처음 헌터 일 시작하면, 꼭 같이 가주시는 거예요?”

“응?”

 상호는 눈을 끔뻑였다.

세희와 태화, 지윤이 나빛의 말을 이었다.

“위험하니까 같이 가주시면 되잖아요.”

“쌤이 다 잡아줘요. 돈은 내가 먹게.”

“지는 특별히 쌤이랑 반띵해 드리겠심더.”

 상호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 그러면 되겠다.”

 도저히 못 내버리겠다.

진짜로 평생 책임지는 수밖에.

“어쨌든…… 그런 일은 꼭 선생님하고 이야기한 다음에 해. 알았지?”

“네에~.”

 아이들이 한목소리로 대답했다. 상호는 출석부를 덮었다.

“고생했다. 내일 보자.”

“안녕히 계세요.”

“빠이~.”

 아이들은 상호를 향해 손을 흔들며 교실을 나섰다. 상호도 마주 손을 흔들었다.

출석부를 정리하고, 교실 상태를 쓱 둘러보고 밖으로 나가려는 순간.

누군가가 교실 문을 두드렸다.

‘누구지?’

 상호는 문을 향해 말했다.

“예. 들어오세요.”

 그러자 문이 열리고 한 사내가 나타났다.

날카로운 인상의 30대. 훤하게 넘긴 올백머리. 세련된 회색 양복과 손목에 찬 시계가 부티를 더했다.

이사장.

상호는 그를 향해 돌아서서 말없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강 선생.”

 이사장이 엄지로 복도를 가리켰다.

“이야기 좀 하지.”

 113. 노을에게

“앉지.”

 이사장이 소파를 가리켰다.

별관 1층의 이사장실. 이사들의 회의실을 겸하는지 아주 넓었고, 긴 탁자 앞에 소파가 여럿 놓여 있었다.

외따로 놓인 책상에 명패가 하나 보였다. 새겨진 이름은 류혁.

‘외자인가.’

 상호가 소파에 앉자 혁이 뒷짐을 지고 걸어왔다.

“왜 불렀는지 알고 있나?”

“연말평가 때문입니까?”

“아는군.”

 날카로운 눈빛이 상호를 위아래로 훑었다.

“교장님이 이야기 해줬나?”

“예.”

“이야기가 빠르겠네.”

 혁은 상호의 앞 소파에 앉아 무릎에 팔꿈치를 올리고 손깍지를 끼었다.

“강 선생.”

“예.”

“객관적으로 자네가 다른 교사들보다 낫다고 생각하나?”

 그렇게 생각하니까 선생이 된 거다. 상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런데 자네. 1학기 때는 성적이 좋더니……. 2학기 들어와서는 갑자기 뚝 떨어지더군.”

 혁의 고개가 삐딱하게 기울었다.

“이상하지 않나? 2등, 1등을 하던 학생이 갑자기 16등……. 나는 이걸 이렇게 해석했어. 1학기 때는 학생들 간의 재능의 차이가 나타났지만…… 2학기부터는 선생의 교육의 차이가 나타난 거라고.”

“……그렇게 보이긴 하겠죠.”

 상호는 흔들림 없는 눈동자로 혁과 눈을 마주쳤다.

“다 연말평가 때 드러날 겁니다.”

“그걸 확실히 말해두려고 불렀어.”

 혁이 검지를 들어 올렸다.

“강 선생 반에서 1등이 나오지 않으면 교직을 내려놓는다. 확실하지?”

“예.”

 상호의 단호한 대답에 혁의 눈썹이 꿈틀했다.

“……어지간히 자신이 있나 보군.”

 혁은 곧 손을 내저었다.

“가 봐.”

“예.”

 상호는 고개를 까딱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줫같네.’

 상호는 별관 현관에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점점 짧아지는 해가 이제는 지평선으로 저물고 있었다. 아직 저녁을 먹기도 전인데.

겨울이 가깝다.

“쌤예!”

 별안간 그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상호는 그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지윤이 별관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웬일로 여기 계십니꺼?”

 상호는 씩 웃었다.

“잠깐 이사장님 좀 보느라.”

“같이 운동하실래예?”

“밥은?”

“하고 가지예. 늦게 가믄 남는 거 다 묵는다 아입니꺼.”

 지윤이 빙글거리며 손바닥으로 탄탄한 배를 탁탁 두드렸다.

“으짜피 오늘 제육볶음이라 무조건 남습니더. 한 개씩 주는 게 아이니까예.”

“그럼 수업 조금만 할까. 지윤이 경공 연습 많이 했어?”

“예.”

 상호는 칼집을 잡고 검을 들어 올렸다.

“이거 잡는 거야. 도저히 못 잡겠다 싶어도 계속 쫓아. 어떻게 움직이는지 볼 거니까.”

“넵!”

 칼을 던지자 지윤이 뛰어올랐다.

검은 완전히 천방지축으로 날아다녔다. 좌로 갔다가 우로 꺾고. 지윤은 그 검을 쫓다가 휘청거렸지만, 금세 다시 중심을 잡고 달렸다.

나무를 박차고, 별관 벽을 달려 오르는 모습을 보며 상호는 생각에 잠겼다.

딱히 1등을 못 해도, 최선만 다한다면 후회는 없다.

‘솔직히 애들이 1등 못 할 이유는 없어 보이는데…….’

 그래도 다른 반 아이들을 무시할 수는 없다.

‘중간평가 시합을 찍어놓은 건 없나?’

 한번 찾아봐야겠다.

상호는 그렇게 생각하며 지윤의 경공 수업을 이어나갔다.

* * *

어두운 교무실에 기합이 울려 퍼졌다.

[흐얍!]

 채앵

이어지는 날카로운 금속성.

상호는 턱을 괴고 모니터에 얼굴을 바싹 붙였다. 화면에서는 세희와 모르는 학생의 대결이 펼쳐지고 있었다.

‘실수가 많아졌네.’

 그가 쓰러지고 난 후의 시합. 딱 봐도 감정의 동요가 눈에 띄었다. 헛디딘 발, 미끄러지는 손. 흔들리는 칼끝.

완전히 다른 사람 같았다.

‘이러면 안 되는데…….’

 몸이 강해도 마음이 약하면 소용없다. 강하게 다잡아야 하는데.

상호는 한참 동안 아이들의 전투를 바라보았다. 불을 끈 교무실에 화면과 그의 얼굴만이 퍼렇게 빛났다.

다음 영상을 재생하려고 마우스를 잡는데 누군가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강 선생님?”

 미진이었다.

그녀는 눈살을 찌푸리며 상호의 자리로 다가왔다.

“퇴근 안 하고 뭐 하세요?”

“조금 볼 게 있어서.”

 상호는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로 대답했다. 잠깐 모니터 아래쪽의 시간을 확인하니 9시 32분이라고 나와 있었다.

“미진 씨는 왜 왔어요?”

“지나가다 불빛이 보이길래…….”

 가까이 다가선 미진이 허리를 숙이며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뭐예요?”

“애들 중간평가 찍은 거요.”

“분석하는 거예요?”

“예.”

“도와드려요?”

 상호는 피식 웃고 말았다.

“아뇨, 괜찮아요.”

 그게 자존심을 건드렸을까. 미진은 대꾸 없이 몸을 돌렸다.

상호는 화면에 집중하느라 그녀의 표정을 보지 못했지만, 매몰찬 태도에서 화가 났다는 느낌은 받았다.

 그래도 애들 시합 보는 게 우선이었다.

‘나빛이는 아예 안 싸운 수준이네. 태화는 또 방심하면서 대충 하다 졌고. 지윤이는 열심히 했고…….’

 갑자기 그의 앞에 무언가가 놓였다. 상호는 책상을 내려다보았다.

종이컵에 담긴 커피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드시면서 하세요.”

 미진은 싸늘한 목소리로 그 말을 남기고 교무실을 나갔다.

 그래도 노력하는 게 기특하긴 했을까. 상호는 커피를 홀짝이며 동영상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밤이 새도록, 몇 번씩 돌려가며.

* * *

연말평가는 다음 주 수요일.

오늘은 금요일. 주말이 지나고 나면, 순식간에 시험이 다가온다.

상호는 아이들과 함께 스탠드에 앉아서 운동장을 내려다보았다.

세희, 태화, 나빛, 지윤과 함께 앉아서.

“쌤예.”

“응?”

“지들 차롄 언제 옵니꺼?”

 지윤이 운동장을 멀거니 쳐다보며 멍한 목소리로 물었다.

운동장에는 사람이 바글바글했다. 수업하는 반, 대련하는 반. 모두가 바쁜 시기였다. 괴렵수행능력평가를 본 3학년만 빼고.

덕분에 상호의 반에게는 자리가 없었다.

“……나도 모르겠다.”

 상호는 한숨을 푹 쉬었다.

다른 곳을 가려 해도 이미 교정 전체가 꽉 찼다. 심지어는 옥상에서 수업하는 반도 있었다. 아마 주말까지도 계속 이럴 터.

어쩔 수 없었다.

답은 하나.

“얘들아.”

“네?”

“기숙사 가서 3박4일 짐 싸라.”

“놀러 가요?!”

 태화가 눈을 반짝이며 벌떡 일어났다. 상호는 혀를 찼다.

“세희랑 지윤이는 무기 챙겨. 신발도 전투화랑 운동화랑 둘 다 챙기고…….”

 세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훈련이에요?”

“응.”

“어디로 가요?”

“선생님 집.”

 그 말에 아이들의 얼굴이 환해졌다. 상호는 당황하며 엄한 목소리를 지어냈다.

“훈련이야. 노는 거 아니야.”

“네!”

“언제 가요? 지금 가서 준비해요?”

“응. 어차피 수업 못 하는데 뭐. 가서 준비하고 있어. 선생님 나빛이 집 데려다주고 다시 올 때까지.”

“네!”

 태화와 세희, 지윤이 기숙사 방향으로 잽싸게 달려갔다. 홀로 남은 나빛이 상호의 손을 잡았다.

“가요, 선생님.”

“그래.”

“근데 부모님이 허락 안 해주시면 어떻게 해요?”

“어떻게든…… 해야지. 이번 시험은 중요하니까.”

“그럼 선생님이 갈아입을 옷 사주시는 거예요?”

“그럴게.”

“속옷도요?”

“……그렇겠지.”

“우와, 변태.”

 나빛이 방긋 웃었다.

손을 잡고 웃으며 그런 말을 하니 심장에 과히 좋지 않았다. 상호는 검을 부여잡으며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둘은 상호의 차로 향했다.

* * *

“문열어! 경찰이다!”

“비켜 임마.”

 상호는 태화를 밀어내고 문을 열었다.

특별히 바뀐 것 없어 보이는 집이 드러났다. 그는 안으로 들어서며 아이들을 돌아보았다.

“들어와, 얘들아…… 왜, 왜?”

 아이들이 눈살을 찌푸리며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당황한 상호의 귀에 태화의 핀잔이 꽂혔다.

“집에 여자 있죠?”

“응? 아, 아니?”

“그럼 저건 뭔데요.”

 태화의 검지가 신발장 위를 가리켰다. 그곳에는 하얀색의 여자 속옷이 아무렇게나 대충 던져져 있었다.

상호의 이마에 진땀이 흘렀다.

‘X바! 저거 뭐야.’

 잘 생각해 보니 빠따로 데이에 효은과 현관에서부터 껴안고 뒹굴었던 게 기억났다.

‘이 미친년이 안 입고 갔구나……!’

 상호는 황급히 속옷을 집어 빨래통에 던졌다.

 그의 손에는 4일 동안 아이들 먹일 게 한가득 들려 있었다. 오늘 금요일 저녁부터 월요일 아침까지.

상호가 냉장고로 가서 음식을 정리하자 세희가 곁에 붙어 돕기 시작했다.

“소스는 어디 놔요?”

“아, 저쪽 찬장에 넣어 줘.”

 대충 정리를 끝내고 시계를 보니 오후 세 시. 저녁까지는 충분한 시간이 남아 있었다.

상호는 냉장고를 닫고 아이들을 돌아보았다.

“체육복으로 갈아입어. 나가서 수업하게.”

“어디로 가요?”

“뒷산.”

 그 말에 태화의 얼굴이 찌그러졌다.

“등산해요? 엑~.”

“별로 안 높아. 그냥 낮은 언덕이야, 언덕.”

“흐음……. 알았어요.”

 아이들은 가방을 들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