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5화 (135/501)

 * * *

태화가 젓가락으로 상호의 볼을 콕콕 찔렀다.

“쌤.”

“왜.”

“어제 어떻게 됐어요?”

 상호는 몸을 움찔했다. 세희, 태화, 지윤과 함께 고깃집에서 저녁을 먹는 도중이었다.

어제 일이라니, 설마 설미와의 일을 아는 걸까. 그는 대답을 하려다가 사레가 들려서 기침을 쏟아냈다.

“쿨럭, 쿨럭…… 어흠! 뭐가?”

“그분이요. 민정 선생님.”

 그쪽이었구나. 여장 사진을 보냈던 일.

상호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어떻게 되긴. 엄청 웃더라……. 너, 다음부터는 진짜 그러지 마. 나빛이는 실수라 쳐도 너는…….”

“흥. 쌤이 잘해야죠.”

“하아…….”

 얼마나 더 잘해줘야 하는 걸까.

 그러고 보면 전해줘야 할 소식이 있었다.

“얘들아.”

“네.”

“월요일부터 교생 선생님 온다.”

“또요?”

 아이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태화가 물었다.

“그러고 보니 저번에 그 교생쌤은 어디로 갔어요? 쌤이랑 사는 것 같더니. 깨졌어요?”

“깨지긴 뭘…….”

 참 설명하기 애매한 관계였다. 상호는 세희와 지윤의 눈치를 보았다.

세희는 천사화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효은의 과거는 알고, 만나서 이야기까지 나눴다. 지윤은 대강의 사정은 알고 있었지만 바다에 갔을 때 이후로는 만나지 못했고.

 그래도 애들한테 딱히 숨길 이유는 없었다.

“잘 사귀고 있어. 바빠서 자주는 못 보지만.”

“잘 사귀어요? 쌤 여자한테 잘 못 해주잖아요.”

“몰라 임마. 지금 그게 중요하냐. 어쨌든 교생 선생님 새로 오니까 그리 알아.”

“몇 살이신디예?”

 볼이 미어터지게 고기를 우물거리던 지윤이 고개를 들고 물었다.

상호는 해련에게 들은 대로 답했다.

“22살이래. 여자.”

“예뻐요?”

 태화가 묻자 상호의 머릿속에 점심때 봤던 여인의 모습이 떠올랐다.

적당히 도회적으로, 시크하다는 말이 잘 어울리는 여인. 그 이상의 인상은 남아 있지 않았다.

“뭐 그냥…… 대충 생겼어.”

“그건 욕 아녜요?”

“예뻐. 평범하게.”

 그 말에 태화는 아리송해하는 표정을 짓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뭐, 쌤 눈에 안 찼나 보네요. 그럼 됐고.”

“얌마, 난 애인하고 잘 사귀고 있다니까…….”

“근데 그거. 쌤 애인 말인데.”

 태화의 샐쭉한 시선이 세희와 지윤을 향했다.

“너희는 어째…… 이미 알고 있었단 분위기다?”

 세희와 지윤이 당황했다.

“뭐…… 뭐 말이가?”

“이상하잖아. 나야 뭐 감으로 알고 있었지만 너희는 아예 반응이 없더라? 쌤 여친 있는 걸 너희가 알고 있었다고?”

“내, 내도 감으로 알고 있었데이. 모르는 기 바보 아이가.”

“나는 선생님이 말해주셨는데.”

 둘 다 태연한 척 답을 했지만, 태화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녀들과 상호를 노려보았다.

“쌤.”

“……응.”

“나한테만 숨기는 거 있죠.”

‘……많이 있지.’ 정말 많이 있다. 하지만 곧이곧대로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상호는 고개를 저으며 검지로 다리를 가리켰다. 이 비밀은 너만 알고 있다는 뜻으로.

태화는 그래도 심통 난 표정을 풀지 않았다.

“치…….”

“밥 먹으러 왔으면서 뭔 말이 이렇게 많아.”

 상호는 순식간에 쌈을 싸서 셋의 입에 쑤셔 넣었다.

“언젠간 다 말해 줄 거야. 그게 언제가 될지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그러니까 캐묻지 마. 비밀은 괜히 비밀이 아니야.”

 태화가 입에 쌈을 문 채로 말했다.

“이밍이아명어 앙명익 아 망애우앙아오!”

“비밀이라면서 한 명씩 다 말해주지 않냐고? 그건 내 맘이지. 궁금해도 참는 자제심을 좀 길러. 비밀을 캐묻는 사람하고 누가 친해지려고 하겠냐.”

“궁금하니까 그러죠. 쌤만큼 비밀 많은 인간이 어딨어요.”

 쌈을 다 먹은 태화는 그렇게 대꾸하더니 세희의 옆구리를 툭 쳤다.

“야, 세희.”

“뭐.”

“쌤 비밀 공유할래?”

“넌 뭐 있는데.”

“얘들아…….”

 당사자를 앞에 두고 뭐 하는 짓일까. 하지만 태화는 아랑곳 않고 말을 이었다.

“나 쌤 다리.”

 그 말을 들은 세희의 얼굴에 갈등의 빛이 떠올랐다. 이때다 싶었는지 태화가 세희를 향해 몸을 기울였다.

“야, 바꾸자 바꾸자. 넌 뭐 아는데?”

“나?”

 세희는 멀뚱히 눈을 끔뻑이다가 답했다.

“나 너무 많이 알고 있어서…… 니가 뭘 궁금해하는지 말하는 게 더 빠를걸?”

 태화의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녀는 곧 천천히, 아주 천천히 고개를 돌려 상호를 찢어버릴 듯이 노려보았다.

또 시작이다. 상호는 모르쇠로 일관하며 불판 위 고기를 뒤집었다.

“야, 태화야. 고기 다 익었다. 빨리 먹…….”

 태화가 벌떡 일어나서 빽 소리쳤다.

“이 X바! 맨날 나만 미워해! 세희만 예뻐하고!”

“이젠 쌤한테 욕을 하는구나…….”

“내가 틀린 말 했어?! 오빠가 그러잖아! 왜 맨날 나만 모르는데? 얘는 다 알고 있는데!”

“너…… 앞으로 오빠라고 부르면 대꾸 안 할 거야.”

“변명을 해 보세요! 강상호 씨이이!”

“얌마…….”

 그 후로 상호는 저녁 내내 태화를 달래느라 진땀을 뺐다.

* * *

“……그래서 지랑만 묵는다구예?”

“응.”

 상호는 식판을 내려놓으며 대답했다.

“걔들이 있으면 밥을 못 먹겠다.”

 지금은 일요일 아침. 식판에는 사과와 토스트 등 간단한 음식이 담겨 있었다. 상호의 앞에는 지윤 혼자만 앉은 채였다.

지윤이 산더미처럼 쌓인 토스트 중 하나를 집어 들며 말했다.

“그 가스나들이 가만두지 않잖습니꺼? 전화나, 문자나.”

“꺼 놨어.”

“또 무시하십니꺼. 뒷감당을 우예 하실라구예.”

“몰라.”

 상호는 한숨을 쉬었다.

“좀 무관심해질 필요도 있는 것 같다, 너희한테.”

 챙겨주기만 할 수는 없는 법이고, 곧 부사수도 가르쳐야 했다. 수업은 평소처럼 하더라도 그 외의 생활에서는 조금 거리를 두고 싶었다.

지윤이 토스트를 먹다 말고 눈을 반짝였다.

“그라믄 쌤. 지랑 오랜만에 스파링 안 하실래예? 밥도 소화시킬 겸 말입니더.”

“스파링? 그래 뭐, 유술이나 좀 가르쳐 줄…….”

 그때 상호의 옆에 누군가가 식판을 내려놓았다. 상호는 고개를 들어 그 누군가를 올려다보았다.

어제 보았던 그 여인이었다.

‘뭐야, 벌써 여교사 숙소 들어갔나 보구나.’

 일요일인데도 여인의 옷차림은 딱딱했다. 양복에 구두. 윗사람에게 격식을 차리는 것이라기보다는 스스로를 그렇게 꾸미는 것 같았다. 똑 부러진 인상이 옷차림과 잘 어울렸다.

끝부분을 살짝 구부린 단발머리까지 더해서, 딱 도시 여자라고 하면 떠오를 법한 모습이었다.

그나저나 어쩐 일로 옆자리에 찾아왔을까. 그런 고민을 하는데 여인의 옆으로 또 누군가 와서 앉았다. 해련이었다.

“강 선생, 안녕.”

“아 예. 일어나셨어요.”

 상호는 고개를 꾸벅 숙이고 해련과 여인의 눈치를 살폈다. 그러자 해련이 여인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새로 온 교원. 서로 인사해요.”

“강상호입니다.”

“이미진입니다.”

 그렇게 통성명만 끝내고 식사를 계속하려는데, 해련이 눈빛으로 무언의 압박을 보냈다. 뭔가 좀 더 대화를 나눠보라는 뜻 같았다.

둘이면 이것저것 물어보기라도 하지, 어른 있고 애 있는 곳에서 뭘 물어보라는 건가. 상호는 곤란했지만 해련이 원하는 대로 했다.

“저어…… 미진 씨.”

“네.”

 대답하는 목소리도 아주 사무적이었다. 그래도 상호는 최대한 살갑게 물었다.

“무예가라고 들었는데요. 무기는 뭐 써요?”

“검이요.”

“아, 저랑 같네요.”

 그러자 미진이 그의 검을 흘끗하며 물었다.

“등급이 어떻게 되세요?”

“B급이요.”

 미진의 눈썹이 꿈틀했다.

“……B급, 이요?”

 상호는 입맛을 다셨다.

하긴 후배니까 저러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윗사람이라는 양반이 자기보다 등급이 낮은 헌터라니.

미진의 옆을 흘끗하니 역시나 해련이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 꼭 이런 반응이 나오기를 기대했다는 듯이.

 그는 속으로 한숨을 푹 쉬고 태연하게 말했다.

“뭐 문제 있어요?”

 미진은 해련의 눈치를 살피고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미진 씨는 등급이 어떻게 돼요?”

“저는 A급이요.”

 A급이란 단어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물론 상호에게는 개미가 코끼리 앞에서 힘자랑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고, 공교롭게도 동석한 두 사람 또한 그것을 알고 있었다.

지윤은 웃음을 참으며 토스트를 입에 욱여넣었고, 해련은 키득거리다가 상호를 바라보았다.

“강 선생.”

“네.”

“밥 다 먹고 나면 미진 양한테 학교 구경 좀 시켜줘요.”

“네.”

 상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윤이 그 말을 듣고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식후에 함께 운동하려 했는데 불발이 되어 그런 모양이었다.

그녀는 제일 먼저 식사를 끝내고 일어났다.

“쌤, 갈게예.”

“나도 이만.”

 해련도 지윤을 따라 일어섰다. 상호는 둘을 향해 고개를 꾸벅였다.

 그렇게 미진과 둘만 남았다. 옆을 돌아보니 미진은 커피를 여유롭게 홀짝이며 핸드폰을 하고 있었다.

‘뭐, 후배가 꼭 빠릿빠릿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군대도 아니고 직장이니, 일만 잘하면 될 일이다. 상호는 가만히 앉아서 미진이 커피를 다 마시길 기다렸다.

 그렇게 둘 사이엔 침묵만 흘렀다.

한참이 지난 뒤에야 잔이 다 비었고, 미진은 말도 없이 식판을 들고 일어섰다. 상호도 그녀를 따라 일어났다.

미진이 그를 흘끗했다.

“……아?”

 그녀의 입에서 당황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상호는 고개를 돌려 미진을 멀뚱히 바라보았다.

“왜요?”

“아니, 그…….”

 딱딱한 얼굴에 처음으로 감정이 드러났다. 당황, 황당, 기막혀하고 어이없어하는 눈빛.

 그 눈빛은 상호의 절룩거리는 다리를 향하고 있었다.

상호는 그녀의 시선을 가볍게 흘려 넘기고 한 손으로 뒷짐을 진 채 태연하게 급식소를 나섰다.

“교무실 한번 쓱 보고 오죠. 따라와요.”

“……네.”

 미진의 대답에는 못마땅한 기색이 묻어 있었다.

* * *

“일단 올해는 제 반 부담임만 맡으실 거예요. 내년엔 또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상호는 교무실 문을 열고 자신의 자리로 향했다. 뒤에선 미진이 또각또각 구두 소리를 내며 따라왔다.

 그는 의자를 뒤로 꺼내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아마 겨울방학 전까지는 자리가 따로 없고, 저랑 같이 쓰게 될 거예요. 앉아 봐요. 비밀번호 알려줄게요.”

 미진이 의자에 앉아 키보드에 손을 올렸다.

“비밀번호는 교무실강상호고, 여기 보면…… 이게 학생들 개인정보 든 폴더. 그래서 비번이 따로 걸려 있어요. 그건 학생 느낌표 4321…….”

 자신도 아직 모르는 게 많은데 업무를 후배에게 가르친다는 게 참 어색했지만, 그래도 상호는 최대한 열심히 설명을 했다.

“……까지만 알면 돼요. 어차피 평소에는 제가 다 할 거니까. 학생이 넷이라 일이 별로 없거든요.”

 설명을 다 들은 미진이 물었다.

“네 명이요?”

“아, 네. 원래 셋이었는데 중간에 한 명을 더 받아서.”

“다른 반은……?”

“보통 서른 명 정도죠. 학년당 열 명 남짓. 저는 1년차라 1학년 학생들밖에 없고.”

“그러면…… 반도 안 되는 건가요?”

“그런 셈이죠.”

 미진은 그의 말을 듣고는 짧게 고개를 기웃했다. 어리둥절한 것이 아니라, 뭔가 마음에 안 든다는 듯이.

아까부터 거만하게 구는 것이 자꾸 눈에 밟혔지만, 상호는 계속 사람 좋게 웃었다.

“뭐 더 궁금한 거라도 있어요?”

“아니요. 그냥.”

 미진이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상호는 들었다. 그녀의 입술 안에서 희미하게 흘러나온 혀 차는 소리를.

입가에 자꾸 쓴웃음이 걸렸다.

‘에휴, 일만 잘하면 되지. 일만…….’

 그의 손에서 염주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106. 멸시

월요일. 미진이 교생으로서 처음 시작한 수업.

소개는 이미 조례 시간에 간단하게 마쳤고, 이제는 몬스터 생태 수업 시간이었다.

“……용과 악마는 몬스터 중에서도 특히 강한 놈들이다.”

 상호는 칠판에 물백묵으로 ‘마법’과 ‘주술’을 썼다.

“마법의 정점은 용이고, 주술의 정점은 정령이지. 그리고 이 둘을 초월한 존재가 악마야.”

“엣헴.”

 태화가 어깨를 으쓱이며 젠체를 했다. 상호는 태화를 무시하고 설명을 이었다.

“용의 몸은 거의 마나로 이뤄져 있어. 특히 심장이 그래. 그래서 용을 죽일 때는 주변에 마나가 확 퍼져. 폭탄처럼. 약한 헌터가 그 마나에 직격당하면 졸도를 하기도 해.”

 ‘마법’ 쪽에는 ‘용’이, ‘주술’ 쪽에는 ‘정령’이란 글자가 적혔다.

“정령은 일시적으로 물질의 형태를 빌려 나타나지만, 그 근원은 다른 차원에 있어. 그래서 정령은 죽는 것처럼 보여도 부르는 사람만 있다면 얼마든지 다시 나타난다. 그 개체 그대로, 똑같은 정령이.”

 상호는 ‘용’과 ‘정령’의 사이를 이어 하나의 가지로 묶어 내렸다.

“악마는 용과 정령의 특징을 모두 지닌다. 다른 차원에 존재하지만, 마나로 육체를 구성해서 우리 세상에 나타나는 거지. 그래서 일부 연구자들은 악마가 마나의 정령이라는 주장을 하기도 해. 육체를 파괴하면 용처럼 마나가 터지고, 정령처럼 원래 자기가 있던 세상으로 돌아가니까. 그래서 죽일 수 없는 거다…….”

 거기까지가 교과서에 적힌 내용이었다. 상호는 지우개를 들어 칠판을 싹 지워버렸다.

“……라는 게 일반적인 헌터들의 생각이야.”

 아이들이 눈이 휘둥그레졌다.

반면에 교실 뒤에 서 있던 미진은 눈살을 찌푸렸다. 눈에 불신의 빛이 가득했다.

“특수한 술법을 쓰면 악마의 영혼을 봉인할 수 있어. 그 말은 뭐겠어. 소환되기 전에는 다른 차원에 있었더라도, 소환된 후에는 몸도 영혼도 우리 세상에 들어와 있다는 거야. 단지 우리가 영혼을 공격하는 방법을 모를 뿐인 거지. 그래서 못 죽이는 거야.”

“악마를 봉인한다는 말은 처음 들어 보는데요.”

 미진이 따지듯이 물었다.

“강 선생님은 본 적 있으세요?”

“저는 제가 아는 사실을 말하는 것뿐이에요.”

 상호는 태평하게 대답했다.

“미진 씨는 교과서대로 가르쳐도 돼요.”

“아니, 그게 아니라…….”

 교육을 그렇게 맘대로 해도 되냐, 그런 말이 하고 싶은 듯했다. 하지만 미진은 곧 고개를 내저었다.

“죄송합니다. 수업하세요.”

 그 죄송하다는 말도 겉치레일 뿐, 실상은 한심하다는 눈빛을 지우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도 어쩌랴. 그의 말이 사실에 더 가까운 것을. 상호는 칠판을 향해 돌아서서 수업을 이어 나갔다.

* * *

“상호 씨, 상호 씨.”

 복도를 걷던 상호는 설미의 목소리를 듣고 뒤를 돌아보았다. 오전 수업을 모두 끝낸 후 점심을 먹고 교무실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설미가 가벼운 걸음으로 깡충깡충 뛰어오고 있었다.

“아, 네. 선생님.”

“그거 들었어? 응? 응?”

“뭔지 말을 해야 알죠.”

“있잖아, 있잖아.”

 미진이 온 후로는 항상 표정이 어두웠는데, 오늘은 어쩐 일인지 안색이 아주 밝았다. 상호는 방글거리는 설미를 멀뚱히 바라보았다.

설미가 한껏 신이 난 채로 말했다.

“미진 씨 남친 있대!”

‘……?’ 그게 그렇게 기쁜 일인가. 상호는 그녀가 왜 이러는지 이해를 하지 못했다.

“그래서요?”

“상호 씨 조심해야지. 남자 있는 여자 건드리면 안 되잖아. 그치?”

“건드리고 자시고 아예 생각이 없는데요.”

 하지만 지금 설미의 귀에는 듣고 싶은 것만 들리는 듯했다.

“미진 씨 예쁘다고 말 많던데. 아쉽게 됐네, 상호 씨. 역시 팔자가 아닌가 봐.”

“무슨 팔자요?”

“미인이랑 사귈 팔자.”

 설미는 헤헤 웃었다.

“상호 씨는 좀 못난 여자가 어울려.”

 멕이는 걸까. 상호는 눈을 끔뻑였다.

“못난 여자라면 어떤……?”

“음, 뭐. 굳이 고르자면…….”

 설미가 검지로 자신의 뺨을 꾹 누르며 말했다.

“……나라든가?”

 상호는 설미를 빤히 내려다보았다.

대꾸 없이 그러고 있으니 설미가 머쓱해하며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렸다.

“에이, 좀 아닌가? 나는 영…… 그렇지? 키도 작구, 옷도 후줄근하구……. 미진 씨 보다가 나 보면 너무 비교되니까. 그치? 헤헤…….”

“아뇨. 누나가 더 예쁜데.”

 상호는 별생각 없이 그렇게 말했다. 무덤덤한 목소리로.

 그런데 그 말을 들은 설미의 얼굴이 삽시간에 뻘겋게 물들었다. 꼭 심장이 터져버려서 혈관으로 피가 쏟아진 것처럼.

그녀는 떠듬떠듬 입을 열었다.

“……내, 내가?”

“네. 누나…… 아니, 설미 선생님이요. 그냥 내 눈에는 그렇게 보이는데.”

“……그래?”

 설미는 고개를 푹 숙이고 걷기 시작했다. 빨갛게 익은 귀가 눈에 띄었다.

“상호 씨는…… 눈이 안 좋은가보다. 그치?”

“남은 건 멀쩡해요.”

“아냐, 많이 안 좋은 것 같애, 헤헤…….”

“근데 왜 그렇게 웃어요.”

“히힛…….”

 설미는 교무실로 들어가 다른 사람들을 마주칠 때까지, 그렇게 바보처럼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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