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거사님, 저녁 드세요.”
영주는 혜소의 목소리를 듣고 슬며시 눈을 떴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나.’
저녁 7시. 혜소가 추모관에서 돌아온 지도 일곱 시간째. 점심 먹고 다시 잠깐 주술에 열중했는데, 어느새 또 저녁 먹을 때가 되어 있었다.
혜소가 그의 앞에 작은 앉은뱅이 식탁을 내려놓았다. 밥 두 그릇과 김치, 고기 몇 점.
고기는 혜소 먹으라고 사온 것인데도 항상 그의 밥그릇 방향에 놓여 있었다.
“잘 먹겠습니다.”
혜소가 식탁 앞에 앉으며 말했다.
숟가락을 집던 영주의 손이 갑자기 우뚝 멈줬다.
“혜소야.”
“네?”
“미안한데 냇가에 가서 물 좀 떠 다 줘라.”
“네. 먼저 드시고 계세요.”
혜소는 군말 없이 일어나 종종걸음으로 문을 나섰다.
영주는 가만히 기다렸다. 가부좌를 틀고 무릎에 손을 얹은 채로.
잠시 후에 문밖에서 어떤 소리가 들려왔다.
절그럭……
금속이 땅을 짚는 소리.
그 소리는 마당을 지나 마루 위로 올라왔다.
절걱, 절걱……
이윽고 문지방까지 넘은 그 소리는 영주의 바로 뒤까지 와서야 멈줬다.
마지막은 소리가 달랐다.
스릉……
그 소리를 낸 물체는 영주의 앞에 놓인 이백여 개 촛불의 빛을 벽에 반사하며, 서서히 위로 올라갔다.
영주는 눈을 감고 중얼거 렸다.
“미안하다.”
“그래? 의외네. 미안할 것 같지 않았는데.”
상호는 양손으로 검을 잡았다.
내려치기 전에 하나 물어볼 것이 있었다.
“죽을 줄 알고 있었냐?”
영주는 대답하지 않았다. 상호의 입가가 비틀렸다.
“오늘 이렇게 뒈질 줄도 알고 있었느냐고.”
그래도 묵묵부답.
칼을 쥔 상호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이렇게 뒈질 거면 그때 뒈졌어야지……. 왜 누나를 죽인 거야? 니가 죽었어야지, 왜 남을 죽이냐고.”
“어쩔 수 없었다.”
영주가 나지막이 대답했다.
그 말에 화가 머 리끝까지 뻗친 상호는 칼집으로 밥상을 뒤엎 었다.
밥그릇이 바닥을 굴렀다.
“뭐가어쩔수가 없어?”
“너하고 그분, 둘이서 봉인을 부담해야 했어. 몸도 영혼도.”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였다. 영주의 나지막한 대답에 상호는 이를 갈았다.
“뭔 개소리야? 누나가살아서 계속 부담하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죽는 건데 뭘 꼭 누나가 해야 했다는 거야? 니가 해서 니가 죽어도 됐던 거잖아?”
“아니. 그래야만 했어.”
그 대답은 단호했다. 스스로 한 치의 의심도 없는 듯했다.
그게 상호를 더욱 화나게 했다.
“왜? 무슨 이유로?”
“그 답은 네 안에 있다.”
알 수 없는 대답에 복장이 터질 것 같았다. 그의 눈에 핏발이 섰다.
“이 씨바……. 그럼 그렇다 쳐. 나하고 누나가 해야 했다고 쳐. 그럼 날 죽였어야지! 누나 말고 나를 죽였어야지 선문답은 질렸다. 상호는 거칠어진 숨을 고르고 다시금 검을 들어 올렸다.
“……비겁한새끼.”
이미 마음속에 정결한 살심만이 가득했다.
“죽어서 사죄해라.”
그는 영주의 목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그순간.
주머니에서 벨소리가울려 퍼졌다.
‘……아.’
상호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 핸드폰을 꺼냈다. 화면에 뜬 발신인은 세 글자. 나빛이.
이 전화는 안 받을 수가 없다.
그의 검이 천천히 늘어뜨려졌다.
“……응, 나빛아.”
[우와, 받았다.]
밝은목소리였다.
[오늘은 안 바쁘신가 봐요.]
바빴다.
일생에 가장 염원하던 날이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바라지 않을 터. 상호는 목이 메어 대답을 하지 못했다.
나빛이 불안해하는 목소리로 물었다.
[선생님……?]
“……아, 어.”
[바쁘세요?]
“아니.”
그는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선생님은…… 나빛이 전화 받는 게 제일 중요하지, 당연히.”
[정말요?]
나빛은 기쁜 듯 헤헤 웃더니 이내 걱정을 흠뻑 담아 물었다.
[근데 괜찮으세요? 왜 잡혀가신 거예요?]
“별거 아냐. 아는 헌터들이 장난친 거였어.”
[그럼 제가 걱정 안 해도 돼요?]
“응. 아무 일도 없어. 괜찮아.”
밖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상호는 무심코 뒤를 돌아보았다가 문지방에 선 혜소와 눈이 딱 마주쳤다.
혜소가 눈을 동그랗게 뜨더 니 방긋 웃었다.
“밥 드시고가실…….”
하지만 곧 그의 손에 들린 검과 뒤엎어진 밥상을 보고 말꼬리를 흐렸다.
혜소는 터덜터덜 상호를 지나쳐 밥상 앞에 주저앉고는, 작은 고사리손으로 흩어진 밥을 모으기 시작했다.
이따금씩 코를 훌쩍거 리며.
상호는 그 모습을 착잡한 눈빛으로 지 켜보다가 나빛의 목소리를 듣고 고개를 살짝 들었다.
[그럼 월요일에 뵈어요, 선생님.]
“……그래.”
[아직도 기운 없으신 것 같아요. 힘내세요.]
“응. 나빛이도주말잘지내.”
[네~.]
그 말을 끝으로 통화가 끊겼다.
상호는 핸드폰을 집어 넣고 미련이 남은 눈으로 다시금 앞을 노려보았다.
밥알 묻은 손에 걸레를 잡고 바닥을 닦는 혜소와, 여전히 가부좌를 튼 채로 미동도 않는 영주가 보였다.
그 앞에 놓인 촛불과 물 한 그릇.
‘또 누굴 죽이려고, 쓰레기 새끼…….’
그러나 끝내 검을 들어 올리지는 못했다. 나빛의 웃음이 눈앞에 아른거려서.
그는 결국 검을 집어넣고 뒤돌아섰다.
‘씨발…….’
아이들을 실망시킬 수는 없으니까.
상호는 성난 걸음으로 방을 나가서 신경질적으로 문을 닫았다.
밤하늘을 올려다보니 반달이 휘영청 떠 있었다. 꼭 웃는듯 실그러진 모양으로.
하지만 그에게는 반쪽이 없다는 것이 한없이 허해 보이기만 할 뿐이었다.
싫은 날, 싫은 계절. 싫은 세상. 상호는 이 가을밤의 차디찬 바람을 맞으며 걸음을 옮겼다.
* * *
상호가 떠난후.
혜소는 영주와 마주 앉아 밥을 먹 었다.
항상 밥을 잘 먹던 혜소였지만, 오늘만큼은 영 입맛이 없는지 깨작거 리기만 했다. 영주는 그 모습을 보고 말했다.
“밥 이러 줘라.”
“네?”
“새로 담아 먹어. 더러운 건 나 주고.”
“아니에요.”
혜소는 고개를 저었다. 안색이 많이 어두웠다.
“그 아저씨…… 나쁜 사람인가 봐요.”
“아니.”
영주는 고기를 혜소의 입에 넣어주었다.
“화가 많을 뿐이야.”
“밥을 함부로 대하는 사람이 좋은 사람일 리 없잖아요.”
“그 친구는 자기 자신도 함부로 대하는 사람이야.”
이기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다.
“너무 고깝게 생각하지 말아. 오해가 있는 것뿐이니까. 언젠가는 그 친구도, 너도 알게 될 거야.”
“……네.”
혜소는 고개를 끄덕이고 식사를 계속했다.
* * *
걷다 보니 화가 좀 삭았다. 상호는 멀리 주차된 경찰차를 향해 다가갔다.
운전석 문을 열어보니 민정이 앉아 있었다.
그의 눈이 끔뻑거렸다.
“뭐야. 누나가 운전하게?”
“응.”
“왜? 내가 할게.”
민정은 씩 웃으며 운전대를 잡았다.
“다이유가 있어.”
“그래서 뭐 하다 온 거야?”
효은이 뒷자리에서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차에는 그 둘뿐. 도현은 바쁘다면서 저 녁까지만 먹고 떠났다. 상호는 뒷자리 문을 열며 태연하게 대답했다.
“그냥. 이야기 좀 하다 왔어.”
“볼일 다 본 거야?”
“어.”
“그럼 언니 집 가서 2차 하자.”
순간 그의 마음속에 불안이 가득 찼다.
“……2차가 뭔데.”
“술 먹어야지.”
“술먹고뭐할건데.”
“뻔한 걸 왜 물어?”
“됐어, 오늘 할 기분 아냐. 학교나 데려다 줘.”
상호는 한숨을 쉬며 늘어 지 게 앉았다.
예경 때문에 슬프고, 영주 때문에 화나고, 혜소 때문에 복잡해지고. 도저히 할 마음이 들지 않았다.
돌연 그의 앞에 효은이 뭔가를 들이밀었다. 카페에서 쓰는 큰 종이컵이었다.
“뭐야?”
“커피.”
“나 이런 거안마셔.”
“니가 애기냐? 좀 먹어, 급식새끼야.”
상호는 마지못해 잔을 받아들었다.
‘지랑 나랑 몇 살 차이 난다고, 참나…….’
향은 좋았다. 그는 잔을 기울이 며 차창 밖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풍취라도 즐기 려는데 옆에서 효은이 자꾸 치근덕거 렸다.
“야, 진짜 안 할 거야?”
“안 해.”
“왜? 내가하고싶으면 해야지.”
“내가 못 하는데 어쩌라고. 열심히 시도해 보든가.”
“그래? 그럼 가져오길 잘했네.”
어째 몸 상태가 이상했다. 상호의 머리가 아뜩해겼다.
‘……뭐야.’
또 피곤해서 그런가. 그런데 느낌이 좀 달랐다.
진땀이 송골송골 솟고 사지에 힘이 쫙 빠졌다. 다급히 내공을 운용해보려고 했지만 이상하게도 내공이 모이지 않고 자꾸만 흩어졌다.
상호는 당황하며 옆으로 쓰러졌다. 효은이 기다렸다는 듯 허벅지로 그의 머리를 받쳤다.
“이거 직빵이다, 언니.”
“그래? 상호는 조금 버틸 줄 알았는데…….”
“아니야, 얘 완전 갔어.”
효은의 손이 상호의 뺨을 흝었다. 상호에게는 그 손길이 서늘하게 느껴졌다. 몸이 하도 뜨거워서.
그는 떠듬떠듬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씨부럴, 이게 뭔데…….”
“언니가 만든 약이래. 어때? 효과 좋지?”
“무슨 약이냐고…….”
“뭐랬더라? 혈맥을 마비시키는 약이랬나? 몰라, 그게 뭐가중요해.”
효은은 키득키득 웃으며 그에게 아침에 벗었던 가죽 자루를 씌웠다. 어둠이 시야를 뒤덮었다.
상호는 손목에 감겨오는 수갑을 느끼고 힘으로 끊어버리려 했지만, 어째서인지 내공이 올라오지가 않았다.
숨이 턱 막혔다.
“이 염병……, 경찰불러, 미친년들아!”
“응~ 여기가 경찰차야~.”
몸이 땀으로 푹 젖었다. 심장은 빠르게 뛰는데 근육에는 힘이 안 들어가고, 숨도 턱턱 막혔다. 꼭 달리다 온 사람처럼.
“언니, 이 약 진짜 좋다. 진짜 힘을 하나도 못 쓰네.”
평소보다 훨씬 밝은 목소리 였다. 아주 한껏 기쁜 듯했다.
“진짜 좋다, 이거. 자주 먹여도 되나?”
“부작용은 딱히 없지만…… 상호가 힘들지 않아?”
“얘 힘든 게 나랑 뭔 상관이야. 어쨌든 된다 이거네. 그냥 언니 집에 묶어두고 계속 약 먹일까?”
“지하에 안 쓰는 연구실이 있긴 한데…….”
그 연구실은 설마.
상호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황급히 안주머니를 뒤졌다. 핸드폰이 손에 잡혔다.
최근 통화 내역 맨 위에 나빛이 있을 터였다.
‘나빛아, 도와줘…….’
손에 땀이 흘러서 자꾸 핸드폰이 미끄러졌다. 그래도 그는 어떻게든 전화를 걸었다. 하늘에서 내려온 동아줄처 럼 꼭 잡은 채로.
하지만 효은이 그의 손에서 핸드폰을 낚아챘다. 하필이면 통화가 연결된 바로 그 순간이 었다.
[네, 선생님.]
“어, 나빛아. 잘지내지?”
효은은 능청스럽게 받아넘겼다. 전화 너머에서 나빛이 깜짝 놀라는 소리가 들렸다.
[어? 수녀님? 선생님이랑 같이 계세요?]
“응. 술 마시고 있는데 갑자기 울면서 너한테 전화를 걸더라고. 그래서 지금 대신 받는 거야.”
[진짜요?]
상호는 다급히 소리쳤다. 잘못하면 다시는 태양빛을 볼 수 없을 것 같아서.
“나빛아, 나 월요일에 안 나오면 교장선생님한테 말해. 마법학회 지하에 갇혀 있…… 읍! 읍읍!”
“봐. 이 새끼 완전 취했다니까. 걱정 말고, 잘 지내. 빨리 끊어야겠다.”
[네~. 조금만 드세요~.]
나빛의 밝은 웃음소리와 함께 통화가 꺼졌다.
희망의 빛도 꺼졌다.
자루 속 컴컴한 어둠에서 떨고 있는 상호에게 효은의 속삭임이 들려왔다.
“시동 걸어.”
“……네.”
그는 얌전히 효은의 손길을 받아들였다.
〈뜻대로안되는세상>
상호는 다행히 토요일의 햇빛을 볼 수 있었다. 민정과 효은이 잠든 틈을 타 창문을 깨고 탈출해서. 마법학회 앞에는 또 하나의 구덩이가 생겼다.
택시를 타고 학교로 돌아오니 교정이 텅 비어 있었다. 주말 아침에는 항상 그랬다. 그는 터덜터덜 걸어 자신의 방에 다다라 침대에 몸을 던졌다.
“에휴…….”
피곤해 죽겠다. 그런데도 잠은 오지 않았다. 몸을 뒤척이던 그의 시야에 무언가가 들어왔다.
구석에 처박힌 염주였다.
상호는 혜소의 말을 떠올리고 내공을 뻗어 염주를 가져왔다.
‘번뇌가 없어진다고?’
염주를 이리저리 둘러보았지만. 애초에 주술을 느낄 능력이 없었다. 그는 잠시 고민하다가 염주를 손목에 찼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잠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효과좋네.’
그는 곧 오랜만에 잠에 빠져들었다.
혜소에게는 따로 사과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