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상호는 애꿎은 돌부리를 걷 어차며 입맛을 다셨다.
‘하긴, 후딱 보고 가야지.’
계전추모관의 국립묘지. 그중에서도 저승부대원이 묻힌 곳으로 향하는 오솔길.
옆에서는 효은, 민정, 도현이 나란히 걷고 있었다.
좀 걷던 도현이 민정을 흘끗하더니 상호와 효은에게 말했다.
“둘이 천천히 와라. 잠깐 민정이랑 이야기 좀 할게.”
“……아니.”
상호는 민정이 전에 했던 말을 떠올리고 고개를 저었다.
“형이 나랑 이야기 좀 해.”
도현은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 였다.
“그래, 뭐. 시간은 많으니까.”
그러자 민정이 불안해하는 눈빛으로 도현과 상호를 번갈아 바라보다가, 이내 효은의 손을 잡고 총총걸음으로 앞서갔다.
상호는 둘의 뒷모습을 지켜보다가 입을 열었다.
“형.”
“응.”
“민정이 누나한테 들었는데……. 빙의체를 구해달라고 했다며.”
그는 그 생명체의 텅 빈 얼굴을 떠올리고 눈살을 찌푸렸다.
“그걸 왜 누나한테 부탁하는 거야? 누나가 그거 때문에 내 앞에서 울었어.”
“그랬냐?”
도현은 쓰게 웃다가 하늘을 올려 다보았다.
“미안하다. 나도 답이 안 보여서 지푸라기라도 잡아 보려고 했던 건데…… 너한테 말할 정도로 힘들어할 줄은 몰랐지.”
“누나가 나한테 말한 건 아니야. 내가 알아낸 거지.”
상호는 잠시 발을 멈추고 민정과 효은을 더 멀리 걸어가게 했다. 도현도 그를 따라 멈춰 섰다.
상호가 물었다.
“209명이라던데. 이제 몇 명이야?”
“212명.”
도현은 한숨을 쉬 었다.
“그분도 이제 죽어간다.”
“그 사람들은 형 이 직접 찾아?”
“아니, 부서를 따로 만들어 놓긴 했는데…… 결국 총괄은 내가 할 수밖에 없지. 누구한테 맡기냐? 이걸…….”
“그냥 손 놔. 봉인 풀리면 그 부서 사람들이 책임지는 거지 뭐. 형도 할 만큼 했잖아. 남들보다 훨씬 더.”
“그렇다고 버려놓냐? 야, 나 아직 부모님 있어. 너도 학생들 있잖아.”
그 말에 상호는 끙 하고 앓는 소리를 내었다. 지켜야 할 게 너무 많았다.
도현의 푸념이 이어졌다.
“그리고 인마, 도시 한복판이야. 거기서 옛날처럼 싸우면 다죽는다고. 심지어 그땐 열한 명이었는데 이제 다섯상호. 도현. 민정.
효은은 이제 힘을 잃었고, 영주는 어디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만큼 강한 사람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상호는 해련과 도미니크를 떠올렸다.
아니, 셋이 지 이제. 당장 싸울 수 있는 사람은
“난 싸워볼 만하다고 생각하는데. 그때는 진짜 열한 명밖에 없었지만…… 우리 땅에서 싸우면 헌터가 훨씬 많잖아.”
“야, 무슨 소리야. 너도 싸워 봤잖아. 진짜로 다 죽는다니까?”
“그건 해 봐야 아는 거지. 그리고…… 그렇게라도 해야 세상이 알지. 언제까지 우리만 그 짓을 해?”
상호의 말에 도현은 뒷목을 잡았다.
“너 씨…… 미쳤냐? 너 전쟁 후로 예경이보다강한사람 본 적 있어?”
“없지.”
“그런데 그런 예경이랑 우리 열 명이서 싸워도 못 이긴 새끼를 도시 한복판에 풀어놓자고? 세상이 망해, 임마. 그 새끼가 우리 싹 죽이고 아르게스로 돌아가서 다시 전쟁 일으킨다고.”
도현의 손가락이 상호의 다리를 가리켰다.
“그리고 인마. 나도 영주한테 설명을 들은 건 아니지만……, 그 영혼이 풀려나면 어디로 가겠어? 네 다리로 가지 않겠냐? 그러면 네 주변 사람들이 세상에서 제일 위험해지는 거라고. 그런 생각 안 해봤어? 이런 말 하기는 미안하지만…… 네가 제일 신경 써야 하는 문제야. 이거.”
상호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걸 알면서 나한테 학교 선생 일을 시켰어?”
“아니, 새끼야. 봉인 풀리면 어차피 다 끝이야. 당연히 나는 절대 안 풀리게 노력할 거고, 그걸 전제로 살아가는 거지.”
둘의 언성이 높아지자 효은과 민정이 황급히 달려왔다.
효은이 먼저 상호의 팔을 잡아당기며 소리쳤다.
“병신아, 기껏 모였는데 왜 또 시비를 걸어 !”
“……딱히 싸운 건 아냐.”
상호는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긁으며 고개를 돌렸다. 아무도 없는 방향으로.
민정이 그의 가슴팍에 손을 얹으며 울먹였다.
“상호야, 그러지 마……. 누나가 미안해…….”
“뭘 또 누나가 미안해?”
“내가 저번에 말한 거…… 그건 그냥 누나가 잘못한 거야. 네가 오빠랑 싸울 일이 아니야…
상호는 민정의 눈물을 보고는 복장이 찢어졌다. 다만 도현을 원망하는 건 아니 었다.
“형.”
그의 부름에 도현이 물끄러미 눈을 마주쳤다. 상호는 말을 이었다.
“알지? 내가왜이러는지.”
“알지.”
도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다 이해한다는 듯이. 화나 짜증은 한 톨도 남지 않은 말투로.
상호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나직하게 중얼거 렸다.
“난 가끔…… 세상이 씨발스럽게 싫어.”
그는 그 말을 끝으로 셋을 남겨두고 먼저 앞으로 걸어갔다.
옆에 걷는 사람이 없으니 바람이 더욱 시리게 다가왔다. 그래도 그는 계속 걸었다.
아직 낫지 못한 상처에 차가운 공기가 스며들고 있었다.
* * *
5년 전. 아르게스 한복판.
저승부대는 전쟁을 끝냈다. 몬스터들을 통솔하는 악마의 거처로 쳐들어가서.
혈투 끝에 다섯 명이 죽었지만, 대신 쇠약해진 악마를 처치하는 데에는 성공을 했다. 몸과 영혼을 나눠 각각 한 사람에게 봉인해서.
한 명은 봉인을 버티다 죽었고.
한 명은 살아서 그 죽은 이 앞에 서 있었다.
‘나왔어, 누나.’
상호는 예경의 묘 앞에 서서 검을 만지작거 렸다.
다른 무덤 앞에서는 도현과 민정이 술을 따르고 있었고, 효은은 한 걸음 떨어진 곳에서 상호를 가만히 지켜보는 중이었다.
도현이 성철의 묘에 잔을 놓으며 중얼거 렸다.
“형은 왜 혼자 기일이 달라, 사람 귀찮게……. 그냥 지금 마셔.”
상호는 그 잔을 쳐다보다가 효은을 돌아보았다. 효은은 눈을 마주쳤지만 입은 열지 않았다. 평소라면 또 뭘 꼬나보냐고 한소리 했을 텐데.
그래서 상호가 먼저 말했다.
“왜 거기 혼자 있어?”
그러자 효은은 퉁명스럽게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역시 말은 하지 않았다.
삐진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했다.
“왜 그러는데?”
상호는 효은에게 다가가 뺨을 만지작거 렸다.
효은이 그의 눈길을 피하며 뚱한 말투로 대답했다.
“그냥. 너 언니랑 있고 싶을 거 아니야.”
“니가 언제부터 그런 걸 신경 썼어?”
입으로는 쏘아붙이지만, 팔은 효은의 허리를 감싸고 있었다.
“이미 허락받았어. 누나한테 직접.”
상호는 효은에게 입을 맞추려고 살짝 고개를 숙였다.
그런데 효은은 그의 말을 듣고는 눈살을 찌푸리며 멀뚱멀뚱 쳐다보더니, 그를 확 밀쳐내고 민정을 향해 빽 소리쳤다.
“언니 ! 얘 정신병 걸렸나봐! 예경 언니랑 이야기를 했대!”
“뭐?!”
민정이 황급히 달려와서 상호의 어깨를 붙들었다.
“상호야, 괜찮아? 헛게 들리는 거야? 나, 나 누군지 알아보겠어?”
“나 멀쩡해.”
“그니까 나 누군지 알겠냐구! 졸려서 그래? 또 그때처럼 착각하는 거 아니야?”
“멀쩡하다고…….”
상호는 한숨을 쉬었다그 예경의 내공과 넋에 대해서 말했다가는 정신병자 취급을 받을 것이 뻔했다.
“그냥…… 누나가 옛날에 말했었어.”
그러자 이 번엔 효은이 그의 뺨을 후려 쳤다. 상호의 눈이 핑 핑 돌았다.
“아오……, 넌 또 왜!”
“이 씨바, 그러면서 못 사귀네 대준 거네 그 지랄을 했어? 개새끼야!”
효은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 상호는 끽소리도 못 하고 그냥 맞을 수밖에 없었다.
‘거 짓말을 하면…… 도망칠 구석이 없구나…….’
정직하게 살지 않으면 구멍이 생긴다. 그는 그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며 효은에게 따귀를 맞았다.
그때 민정이 손을 들어 길 쪽을 가리켰다.
“저 애는 누구지?”
“응?”
“여기로 오는 것 같은데. 누구 가족인가?”
“누구…….”
상호는 그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아.’
동그란 두상에 온화한 미소. 조그만 몸에 회색 장삼.
혜소가 하얀 꽃을 안고 아장아장 걸어오고 있었다.
< 죽은 자와 죽인 자>
하얀 꽃이 묘비 앞에 하나씩 놓였다.
상호는 예경의 묘에 헌화하는 혜소를 착잡한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계속 그러고 있으니 효은이 한마디 했다.
“왜 눈빛이 그래?”
“뭐가.”
“애가 안 귀여워? 전혀 예쁘게 보는 눈이 아닌데.”
“귀엽기야하지.”
“근데 왜 눈이 그러냐고. 저래야지.”
효은이 민정과 도현을 턱짓으로 가리켰다. 둘은 기특하다는 듯한 눈빛으로 혜소를 보고 있었다.
상호는 그들을 흘끗하고 투덜거 렸다.
“뭔 상관이야. 신경 꺼. 너는 저 애 누군지도 모르잖아.”
“너는 알아?”
“알지.”
“누군데?”
“몰라도 돼.”
“참나…….”
효은은 뾰로통한 표정으로 그를 한 번 노려보고는 고개를 돌렸다.
헌화를 마친 혜소가 상호를 향해 걸어오며 방긋방긋 웃었다.
“안녕하세요, 아저씨.”
“그래.”
상호는 혜소의 가슬가슬한 머 리를 쓰다듬었다.
그러자 효은과 민정, 도현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는 아이야?”
“응.”
상호는 민정의 물음에 짤막하게 대답하고 혜소의 손을 잡았다.
“이야기 좀 하고 올게.”
둘은 셋을 뒤로하고 무덤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나왔다. 야트막한 숲이 보이는 오솔길로.
혜소가 그의 손을 조물조물 만지작거 리다가 갑자기 서운해하는 눈빛을 보냈다.
“염주는어디 갔어요?”
“아.”
불면증이 시작된 날 벗어던지고 까맣게 잊어버렸다. 상호는 입맛을 다셨다.
그래도 딱히 미안할 정도는 아니 었다.
“그냥 깜빡했어.”
“꼭 하고 다니세요.”
혜소의 작은 양손이 그의 손을 감쌌다.
“차고 다니면 좋은 일 있을 거예요.”
“그런 게 어딨어.”
“제가 직접 만들면서 빌었어요. 이거 차는 사람은 꼭 번뇌가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상호는 그 말을 듣고 가만히 혜소를 내 려다보았다.
최고의 주술사가 거둔 아이.
이 아이도 주술을 쓸 수 있을까.
“……알았어. 내일부턴 다시 차고 다닐게.”
마지못해 한 대답인 것을 알았을까. 혜소는 맑은 눈동자로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결국 상호는 무릎을 짚고 허 리를 숙여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약속.”
“약속했어요.”
혜소가 새끼손가락을 걸며 말했다. 상호는 고개를 끄덕이고 허리를 폈다.
꼭 물어봐야 할 게 있었다. 그는 묘 앞에 놓인 꽃들을 곁눈질했다.
“그 인간이 시켜서 온 거니?”
“네. 거사님이요.”
혜소는 거사님 이란 표현에 힘을 주었다.
상호는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혜소에게 따지지는 않았다.
“여기 오면 아저씨가 있을 거라고 했어?”
“아니요. 그냥 꽃만 놓고 오라고 하셨어요.”
거짓말을 하는 눈은 아니 었다.
상호는 혜소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어깨를 토닥였다.
“그럼 오늘은 나한테 전해 줄 말이 없겠네.”
“네. 전해 드릴 말은 없어요.”
전해 줄 말은 없고, 대신에 스스로 할 말이 있다는 투였다. 상호는 눈을 끔뻑였다.
“그러면?”
“저 부탁이 있는데…… 거사님이랑 화해하시면 안 돼요?”
그 말에 상호의 표정이 굳었다. 그래도 혜소는 꿋꿋이 말을 이 었다.
“거사님이 그랬어요. 오해가 있는 거라고……. 저는 뭔지 모르겠지만, 둘 다 좋은 분들이시니까. 이야기를 해 보면 풀 수 있지 않을까, 해서요
“난 그 인간이 어디 있는지도 몰라.”
“여기서 가까워요.”
혜소가 마른침을 삼켰다.
“한번…… 만나 보실래요?”
추모관 근처에 살고 있었나. 상호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아니. 굳이 볼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그 말에 혜소는 풀이 죽었다.
상호는 그런 혜소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물었다.
“밥이라도 같이 먹을까? 슬슬 점심 먹으러 갈 건데.”
“아니요. 괜찮아요.”
혜소가 아주 살짝 웃었다.
“거사님은 저 없으면 밥 안 드시거든요.”
“그래. 그럼 어쩔 수 없고.”
“다음에 또 뵈어요.”
그 말을 끝으로. 혜소는 허리를 꾸벅 굽히고 왔던 길을 따라 멀리 떠나갔다.
상호는 작아지는 혜소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상호야.”
뒤에서 민정이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돌아서서 부대원들에게로 향했다.
민정이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가자, 이제. 배고프잖아.”
“잠시만.”
상호는 예경의 묘 앞에 섰다.
“조금만 더 있다 가자.”
“야, 얼마나 더 오래 있으려고…….”
“내버려 둬. 둘이 있게.”
효은이 역정을 냈지만, 도현과 민정이 말려서 더 따지지는 못했다.
상호는 아예 바닥에 앉아 버렸다. 좀 오래 머무를 생각이었다. 검을 어깨에 기대고 고개를 푹 숙인 뒷모습에서 처량함이 진하게 묻어났다.
하지만눈에서는.
‘가깝다고 했다…….’
고요한 눈빛이 흔들림 없이 허공을 노려보았다.
그의 몸에서 실처럼 뻗어 나간 한 자락 내공이, 혜소의 어깨에 붙어서 그 뒤를 따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