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5화 (125/501)

* * *

“슬슬 끝났으려나?”

해련이 시계를 흘끗하며 말했다. 시계는 3시 반을 가리키고 있었다.

상호는 여전히 해련의 팔에 묶인 채였다.

“이제 애들 보러 가도 될까요?”

“아뇨.”

“제발…….”

상호가 사정사정해도 해련은 요지부동이었다. 그녀가 씩 웃었다.

“걱정 마요. 아이들한테 시험 끝나면 교장실로 오라고 말해놨으니까.”

그 말에 상호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럼 빨리 일어나야 하는 거 아니에요?”

“괜찮아요.”

“애들 교육에 안 좋지 않을까요?”

“요즘 애들은 좀 성숙한 편 아닌가?”

그때 교장실 문 너머에서 아이들이 복도를 질주하는 소리가 들렸다. 발소리를 들어보니 총 네 명.

곧 아이들이 문을 벌컥 열고 들이닥쳤다.

“쌤! 쌤!”

“조용히 해. 바보야! 선생님 주무시잖아.”

태화와 세희가 투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상호는 눈을 질끈 감았다. 해련이 옆에 있던 말던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자는 척하려고.

해련은 어느새 벌떡 일어나서 다시 그에게 무릎베개를 해주고 있었다.

“아, 왔구나. 다들 시험 잘 봤니?”

“쌤 때문에 조졌어요!”

“선생님은괜찮으세요……?“

아이들이 그의 곁으로 몰려들었다.

눈을 감아도 시선이 느껴졌다. 상호는 진땀을 흘리며 가슴을 졸였다.

‘교장선생님 앞에서 이상한 거 하지 마라, 얘들아…….’

“벗겨, 벗겨.”

태화가 태연하게 그의 셔츠를 걷어 올렸다. 상호는 눈을 번쩍 부릅떴다.

“얌마!”

“아이, 배방구가 뭐 어떻다고…….”

태화는 입술을 삐죽 내밀며 셔츠를 다시 내렸다.

다들 걱정 가득한 눈빛이었다. 세희의 표정이 특히 어두웠고, 나빛은 울먹거리기까지 했다. 아플 리 없다고 생각했던 선생이 쓰러졌기 때문일까.

상호의 얼굴이 살짝 붉어겼다.

“뭘 울려고까지 하냐, 얘들아. 그냥 졸린 거였는데…….”

“그냥 졸렸다구예?”

“거짓말하지 마요!”

지윤과 나빛이 따지고 들었다.

근데 그게 사실인 것을 어쩌랴. 상호는 더욱 쪽팔려 하며 몸을 일으켰다.

“진짜야. 아프면 선생 했겠냐, 가서 치료받고 있지……. 너흰 걱정 안 해도 돼.”

“정말요?”

“응.”

상호는 구석으로 손을 뻗어 검을 가져왔다.

“그래서, 너희 시험은 어떻게 됐어?”

실력이 있으니 당연히 알아서 잘 봤겠지만, 그래도 확인차 물어보는 것이었다.

그런데 어째 그와 눈을 마주치는 아이가 없었다. 다들 눈길을 피하기에 급급했다.

얘들이 불안하게 왜 이럴까.

상호는 다그쳐 물었다.

“세희 몇 등이야?”

세희는 거짓말을 하지 못한다.

우물쭈물하던 그녀는 결국 대답을 하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였다.

상호는 설마 싶어 다시 물었다.

“10등 아래야?”

세희가 코를 한 번 훌쩍이자 그의 머릿속이 아뜩해졌다.

“너희…… 1학기보다 성적 좋아진 사람만 말해 봐.”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상호는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벅벅 긁었다.

“나때문이냐?”

아이들은 그제서야 그와 눈을 마주쳤다. 그게 당연하지 않느냐는 듯이. 왜 그걸 몰라주냐고 원망하는 눈빛으로.

“경기 끝나니까 선생님이 없어져서…….”

“항상 계셨는데…….”

“딴 애들한테 물어보니까 쓰러졌다고…….”

“집중이 되겄습니꺼.”

그는 이마를 짚었두?.

“얘들아. 내가 항상 말하지. 실전처럼 하라고.”

옆에 해련이 없었다면 크게 화를 냈을 터였다.

“너희가싸우는 상대에만 집중해야지. 전투하다가 옆에 동료 쓰러졌다고 너희까지 포기하고 죽을 거야? 심지어 거기 없는 사람 걱정은 왜 하는 거야?”

“걱정을어떻게안해요……!”

나빛이 울음을 터트렸다.

“걱정하는 게 당연하잖아요! 선생님이 쓰러졌잖아요!”

태화도 거들었다.

“쌤 잘못이죠. 누가 쓰러지래요? 그럴 거면 우리한테 이야기하고 쓰러지던가.”

“임마, 그래서 너희가 지금잘했…….”

잘했다는 거냐고 물으려는데, 상호의 머 리 위로 뭔가가 날아들었다. 그는 재빨리 손을 들어 그 무언가를 막았다.

해련의 검이었다. 정확히는 검이 든 칼집.

“……교장선생님?”

“강 선생이 잘못했어요. 확실히.”

해련이 그의 뒤에서 씩 웃었다.

“미리 말해 줬어야죠. 쓰러져도 경기에 집중하라고.”

“저는 항상 아이들한테…….”

“실전처럼. 그건 알겠어요. 그런데 다른 사람을 걱정하지 말라는 건 실전에서도 어려운 일이잖아요.”

상호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해련의 말도 맞긴 하지만.

“……그래도 필요합니다.”

“알죠. 하지만 오늘 원인을 제공한 건 강 선생이니까.”

해련이 검을 거뒀다.

“아이들한테 사과해요.”

부드럽지 만 완고한 목소리 였다.

상호는 착잡한 표정으로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자신도 잘못했지만, 아이들도 잘한 건 아니 었다.

그래서 허리에 손을 올리고 한 명 한 명과 눈을 마주쳤다.

“……다음부턴 그러지 마.”

“끝까지!”

태화가 빽 소리 쳤다.

그리고 지윤과 세희가 동시에 그를 확 밀쳐 소파에 넘어뜨렸다. 항상 그의 편을 들어주던 세희도 오늘만은 참지 않았다.

“미안하다 한마디가 그렇게 어려워요?”

“세희야…….”

“저한텐 항상 몸조리 잘하라 하셨으면서, 정작 선생님께서는 안 그러시잖아요. 그것도 안 미안하세요?”

또박또박하게 따지는데 눈이 젖어서는 도저히 밉지가 않았다.

상호는 더 반박할 거 리를 찾지 못했다.

‘그래, 맞다. 내 문제이긴 하지…….’

따져보면 자신의 개인적인 문제에서 시작된 일이니까.

그는 아이들의 머리를 향해 손을 뻗었다.

“……미안해. 너희 다.”

그러자 아이들이 기다렸다는 듯 그의 품에 머리를 들이박았다. 박 터지는 소리가 품속에서 울려 퍼졌다.

태화가 나빛의 뺨을 손으로 밀어냈다.

“야, 좀 옆으로 가.”

“싫어!”

“너 꼴등이잖아, 가운데 먹지 말고 비켜 !”

“내가 제일 걱정해서 꼴등한 거야!”

상호는 소파에 앉은 채로 조용히 양손을 들어 올렸다. 박치기를 해대는 아이들 몸에 손이 닿지 않게. 결백을 주장하는 용의자처럼.

해련이 그런 그를 보며 인자하게 웃었다.

“애가 애를 가르치네.”

“네?”

“아니, 귀여워서 그만. 아이들끼리 잘 지내는 걸 보니까 기분이 퐇네요.”

“……학생들 말씀하시는 거죠?”

“호호호…….”

그 웃음엔 보이지 않는 장난기가 가득 차 있었다.

* * *

태화가11등. 세희가 16등.

지윤이 17등, 나빛이 54등.

마음 약한 아이들은 낙폭이 아주 컸다. 세희와 나빛. 세희는 16강전 패자조 꼴등을 했고, 나빛은 그냥 꼴찌나 마찬가지.

그나마 태화가 유지를 했고, 지윤은 그럭저 럭 성적이 좋아졌다.

‘어 제 말 못 한 건 그냥 분위 기 때문이 었나.’

상호는 교탁에 출석부를 폈다. 오늘은 10월 5일 금요일.

나빛이 그를 보고 물었다.

“선생님. 어제는 잘 주무셨어요?”

“응.”

사실은 어제도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그래도 상호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웃었다.

“이제 진짜 괜찮아. 수업이나 하자.”

그의 말에 태화가 의자에 축 늘어져 고개를 뒤로 젖혔다.

“으엑~ 또 수업이래~.”

“내일 주말이잖아. 너희 성적 안 좋아진 것도 사실이고.”

“쌤 때문인데!”

“그니까 내가 해결해 줄게. 운동장 나가자.”

“아~ 쌤~ 나 죽어~!”

갑자기 교실 문이 벌컥 열렸다.

“응?”

상호와 아이들은 동시에 문가를 쳐다보았다. 그곳에는 경찰처럼 제복을 입은 사내 두 명이 서 있었다.

그중 선글라스를 쓴 사내가 입을 열었다.

“강상호헌터님?”

“예.”

“헌터관리국에서 나왔습니다.”

사내가 주머니에서 수갑을 꺼내며 말을 이었다.

“동행해 주시죠.”

“……네?”

상호는 눈을 끔뻑 였다.

〈기일>

지은 죄가 없는데. 이게 무슨 일인가.

헌터 관리국은 경찰 산하의 부서. 한마디로 그냥 헌터의 경찰이었다.

일단은 아이들 없는 곳에서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았다.

“일단 밖에서 이야기를 좀…….”

“쌤! 어 디 가요? 잡혀가요?!”

태화가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왜 잡아가요? 합의하에 했는데 !”

“……빨리 갑시다.”

상호는 태화의 말을 씹고 부랴부랴 교실을 나섰다.

교실 문을 닫자 사내들이 그의 손목에 수갑을 채웠다.

영 석연치가 않았다. 영장도 없는데 다짜고짜 수갑부터 채우는 게.

‘뭔 일이지? 대체

사내들을 찬찬히 뜯어보니 뭔가 수상한 마나의 움직임이 느껴지는 것 같기도 했다.

그래도 따라가 보면 알 테다. 지은 죄는 없으니까. 수틀리면 그때는 깽판 치는 거고.

다만 걱정되는 것은. 어제도 쓰러져서 아이들 걱정시켰는데 오늘은 체포를 당해버렸다는 것. 이 일이 언제 끝날지는 모르겠지만 아이들 웃는 건 당분간 못 볼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상호는 발을 옮겼다. 사내들도 절룩거 리는 상호와 보폭을 맞춰 걸었다.

본관 현관을 나서자 경찰차가 보였다. 위에 사이렌이 달린 진짜 경찰차.

사내들이 트렁크에서 가죽으로 된 자루를 꺼냈다.

“강상호헌터님.”

“예.”

“간통죄로 체포합니다.”

“……뭐요?”

상호는 황당해서 얼이 빠졌다. 대체 언제 적 간통죄인가.

“간통? 결혼도 안 했는데?”

“그건 서에 가서 말하시고…….”

“아니 간통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니까!”

“가보시 면 압니다.”

사내들은 그의 머리에 자루를 뒤집어씌우고 경찰차 뒷좌석에 밀어 넣었다.

자루는 왜 씌울까. 특수교도소 가는 흉악범도 아니고.

‘뭔 미국드라마찍나…….’

상호는 일단 가만히 있기로 했다. 아직은 위협이 되지 않아서.

곧 운전석과 조수석에 사람이 타고, 그의 옆자리에도 누군가 탔다. 그 누군가가 타자마자 경찰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살다살다 체포를 다 당해 보는구나. 그런 상념에 잠겨 있는데 옆자리에 앉은 누군가가 슬금슬금 다가서는 것이 느껴졌다.

‘뭐지?’

상호는 어둠 속에서 눈을 끔뻑 였다.

그 누군가는 그의 주머니를 더듬는 듯하더니, 점점 위험하고 노골적인 방향으로 손길을 뻗어갔다.

상호의 몸이 벼락을 맞은 듯 움찔했다.

‘씨발! 뭐야.’

그는 단숨에 수갑을 뚝 끊으며 머 리 에 쓴 자루를 벗었다.

그리고 고개를 홱 돌려 옆을 노려보았다.

“……엥?”

“뭘 꼬라봐?”

효은이 손을 주물럭거 리며 쏘아붙였다.

어안이 벙벙한 상호의 귀에 민정의 목소리가 들렸다.

“상호야, 점심 뭐 먹을까?”

“저녁도생각해놔라.”

도현의 목소리도.

상호는 앞자리 에 앉은 둘을 째 려보았다.

“일하는 동생한테 이게 뭔 짓이야?”

“오늘 아니면 날이 없어, 인마. 교장선생님도 잘됐다고 좋아하시드만. 다 허락 받았으니까 걱정하지 마.”

도현이 운전대를 돌리며 낄낄거렸다.

상호는 뭐라 더 물어보려다가, 아직도 제 몸에서 느껴지는 손길에 이를 갈았다.

“넌 손부터 좀 치워!”

“왜. 븅신아. 네 몸이 다 내 건데. 확 떼버릴라.”

“꺼져 ! 형누나들 있는 곳에서 무슨…….”

“흥.”

효은이 툴툴거 리며 손을 뺐다.

넷이서 모인 건 전쟁 이후 처음이었다. 다들 바쁘기도 했고, 올해가 되기 전까지는 상호와 효은이 절대로 만나려 들지 않았었다.

도현에게는 뒷자리의 조합이 참 신기한 모양이었다.

“너희 언제 그렇게 친해진 거야?”

“……몰라.”

상호는 짤막하게 대답하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문득 궁금해진 것이 있었다.

“기자들은 어떻게 했어? 떼어놨어?”

“저번에팬후로는좀줄었지.”

도현이 쯧 하고 혀를 찼다.

“휴일까지 쫓아다니면 내가 직접 똑같이 되돌려 준다고도 했고…… 그걸로 안 되면 또 팬다고 했고. 그러니까 요즘은 살 만하다.”

“진작하나패지 그랬어.”

“모르겠다, 에휴…….”

도현은 한숨을 쉬고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상호는 피식 웃으며 손목에 남은 수갑을 비틀어 벗었다.

“그래서, 지금은 어디 가는데?”

아직 오전 9시. 점심을 먹기엔 너무 일렀다. 시간을 때우든 놀든 해야 할 텐데.

대답은 민정이 했다.

“대장님 보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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