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2화 (122/501)

* * *

텀벙

머 리 잘린 참치가 물 아래로 사라져 갔다.

버리는 것과 크게 다를 것은 없었다. 의미만 다를 뿐. 태화는 부두에 서서 참치가 가라앉은 바다를 향해 합장을 했다.

“내세에는 드래곤으로 태어나기를…….”

상호는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낚시도구가 담긴 가방을 내려놓았다. 배가 올 때까지는 시간도 있고 하니.

“태화야.”

“네.”

“낚시나 할까? 어제 별로 못 했잖아.”

“엥~재미없는뎅~.”

“할 거 없잖아. 쌤이랑 같이 하자.”

“쌤이 그렇다면야 뭐.”

태화는 상호의 옆에 의자를 펴고 앉았다.

곧 바다에 두 개의 낚싯대가 드리워졌다. 둘은 찌가 흔들릴 때마다 낚싯대를 잡아챘지만. 번번이 허탕이거나 작아서 먹지도 못할 녀석들만 잡혔다.

태화가 물고기를 바다로 던지며 말했다.

“니는 가고 느그 애비 데려와라~. 상담 좀 하고 회쳐버 리게~.”

“……태화야. 너부터 나랑 상담 좀 하자.”

* * *

낚시를 하던 와중에 멀리서 배가 다가왔다. 둘은 낚시도구를 정리하고 서둘러 배에 탔다.

드디어 뭍으로 향하는 길.

상호는 갑판에 서서 멀어지는 섬을 바라보았다.

‘다시는안와야지…….’

개고생을 참 알차게도 했다. 정말 다시는 오지 않으리라.

그렇게 다짐하며 돌아서서 배 안으로 들어가려 하는데, 옆에서 태화가 그의 손을 잡았다.

“쌤.”

“응?”

“우리 또 가요. 저기.”

상호는 진땀을 흘렸다.

“얌마, 저기서 또 배 끊기고 너 아프면 어떻게 하라고…….”

“그때쯤이면 제가 공간이동 배웠겠죠.”

“그때쯤? 어쨌든 먼 훗날에 간다는 거지?”

“신혼여행으로 가자는 소린데요.”

태화가 그를 돌아보며 웃었다.

“어차피 일주일 내내 뒹굴 거니까, 근사한 데 필요 없고. 애들 못 쫓아오는 데로 가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그렇지 않아요?”

상호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그런 건 네 신랑한테 물어봐. 난 모르겠다.”

“자기야 어때? 응? 응?”

“됐어 인마. 안 그래도 산속으로 머리 깎고 완전하게 떠나버릴까 고민중인데…….”

“제자 버려? 자기 반 버려?”

“농담……이지, 인마. 내가 너흴 왜 버려.”

사실 가끔 진지하게 그런 고민이 들었지만, 상호는 아닌 척 얼 버무렸다.

태화가 킥킥 웃었다.

“봐봐. 어차피 못 버리잖아.”

“그건 어쩔 수 없으니까……. 너희 버릴 거면 선생 안 했지.”

“내가옛날에 그랬죠?”

“뭐가?”

“내 인생 이미 폈다고. 쌤 본 순간부터.”

그녀는 그 말을 하며 환한 웃음을 지 었다.

“어차피 쌤나못버린다니까.”

첫 면담 때 했던 말.

태화는 그때도 웃었지만, 지금은 느낌이 사뭇 달랐다. 상호는 한숨과 쓴웃음을 동시에 지었다.

“에휴…….”

반박은 하지 못했다.

* * *

그렇게 추석 연휴의 마지막 날은, 태화와 함께 학교에 돌아와서 푹 쓰러져 잠만 잤다.

그리고 다음 날.

상호는 출근하다가 지윤을 마주쳤다.

“아, 지윤아.”

“아재는뉘신데예?”

지윤이 샐쭉한 표정을 지으며 콧방귀를 뀌었다.

“아재는 이제 헌터 아니잖습니꺼. 헌터증도 읎으믄서.”

“에이, 고기 사 줬잖아.”

그의 말에 지윤은 금세 헤헤 웃으며 주머니에서 헌터증을 꺼냈다.

“잘 묵었어예. 감사합니더.”

“동생들도?”

“예. 윽수로 많이 묵든디예.”

“다행이네. 연말에또사갈게.”

“뭘 또 사옵니꺼. 그러다가는 어무이가 쌤한테 반합니더.”

“얌마

미쳤다고 형수를 뺏겠냐, 그리 말하려던 상호는 한숨만 푹 쉬고 본관 문을 열었다.

둘은 2층에서 길이 갈렸다. 상호가 교무실로 향하는데 지윤이 계단을 오르다 말고 그를 불러세웠다.

“아, 쌤예. 그거 아십니꺼?”

“뭐를?”

“나빛이또쌤뒷담깠습니더.”

“……아.”

상호는 나빛의 연락을 다 씹어버린 것을 떠올리고 진땀을 흘렸다.

“……뭐라고하던?”

“또 연락 안 받는다고, 이젠 진짜로 말 안 할 거라든디예. 그래서 지가 그럴 거면 반을 옮기라고 했더니 고건 또 싫나 봅니더.”

지윤이 킥킥거렸다.

“그 가스나는 쌤 미워할 일 전~혀 없심더. 가서 잘 빌어 보시라구예.”

“그래…….”

상호는 살짝 안심하며 교무실로 향했다.

교무실에 들어가서 수업 준비를 마친 후 나오려는데, 누군가가 복도를 전력질주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그 학생에게 주의를 주려고 교무실 문을 열었다.

“쌤예.”

지윤이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상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뭐야. 괜찮아? 무슨 일 있어?”

“나빛이…….”

“……나빛이가왜?”

상호는 속이 섬뜩해지는 것을 느끼며 물었다. 지윤이 당황한 표정으로 머리를 벅벅 긁었다.

“그기…… 나빛이가 빡칬는지 미칬는지……. 하이고, 모르겠심더. 빨리 와서 봐예.”

“뭔데 그래? 나빛이 괜찮아? 누구 다친 건 아니지?”

“아니, 다친 건 아닌디 상태가 안 좋아예. 손 줘봐예. 부축해 드리겠심더.”

둘은 서둘러 교실로 향했다.

상호는 교실 문을 열려다가 지윤을 돌아보았다.

“세희랑태화는?”

“없어예. 나빛이만…….”

그런가. 들어가자마자 둘이서 눈을 마주치게 되어 있다는 소리였다.

상호는 심호흡을 하고 조심스럽 게 교실 문을 열 었다가.

자리에 앉은 나빛을 보고 할 말을 잃었다.

표독스러운 눈빛. 찌를 듯한 살기. 하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그 소름이 돋을 정도로 생생한 냉기 때문도 아니 었다.

도톰하고 예쁜 분홍빛 입술 사이에. 동그랗고 하얀 원통형의 막대기.

상호는 그 물건을 보고 떠듬떠듬 입을 열었다.

“나빛아……?“

나빛이 담배를 물고 있었다.

<불량소녀>

“……나빛아. 그거 어디서 났어?”

상호가 물어도 묵묵부답.

다행히 담배에 불은 붙이지 않았지만, 또 다른 문제가 있었다.

“그, 치마…… 치마도 줄인 거야?”

치마가 태화만큼 짧았다.

상호는 그 하얀 다리를 보지 않으려고 고개를 돌려 창가를 보았다.

“담요…… 없어? 가져다줄까?”

“…….”

“잠깐만 기다려. 선생님이 가져다줄…….”

그가 그렇게 말하며 밖으로 향하려는 순간, 성창 두 개가 날아들어 문을 막았다. >(자로 교차해서 좌아앙살벌한 금속음이 울려 퍼졌다.

부수고 지나가기야 쉽지만, 그랬다가는 저 담배에 불이 붙을지도 몰랐다. 상호는 조심스럽게 성창에 손을 올렸다.

“춥지 않아? 이제 가을인데 몸 따뜻하게 해야지…….”

하지만 나빛의 눈빛은 그대로였다.

“나빛아, 미안해. 그런데 선생님이 너희를 24시간 신경 쓸 수는 없어 상호는 고개를 푹 숙이고 손을 꼼지락거 렸다.

그때 밖에서 세희와 태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윤이 뭐해?”

“안에 뭔 일 있어? 나빛이는?”

“그기…….”

“뭐야, 뭔 일인데?”

문이 드르륵 열리고 태화가 나타났다. 태화는 코앞에서 교차된 성창을 보고 당황하다가.

“뭐여, 이거.”

앞에서 쩔쩔매고 있는 상호와, 담배를 물고 치마를 줄인 나빛을 보고는 눈을 끔뻑이더 니.

“……굽!”

폭소를 터트렸다.

“꺄하하하하! 쟤 뭐야? 치마 왜 저래? 졸라 웃겨, 다리 꼭 모으고 있는 거 봐! 푸후……켁느태화는 성창에 이마를 얻어맞고 뒤로 넘어졌다.

문가에 선 세희도 나빛을 보고 깜짝 놀랐다.

“나빛……, 화났어?”

나빛의 입 에 문 담배가 한 번 까딱였다.

성창이 아이들을 들여보내고 다시 문을 막았다.

어쨌든 수업은 해야 한다. 상호는 자리에 앉은 태화를 돌아보았다.

“태화야. 담요 있지?”

“저도 써야 되는데요.”

“하루만 빌려줘.”

“우씨, 그러면 다리 모아야 되잖아요. 아니면 제 빤쓰 볼라고요?”

“……담요를 찢어서 나눠 쓸까? 새로 사 줄게.”

“안돼요! 중학교 3년 내내 쓴 거란 말이에요.”

역시 안 되나.

상호는 한숨을 쉬며 나빛에게 살짝 다가가서 눈을 마주쳤다.

나빛의 날카로운 눈빛이 그의 심장을 꿰뚫었다.

“담배는어디서 났어……?“

묵묵.

“치마 줄인 건 부모님도아셔?”

부답.

태화가 나빛의 치마를 흘끗하더니 한마디 했다.

“이거 줄인 거 아니에요.”

“그럼?”

“말아 입었나 본데. 벨트로 올렸거나.”

“그게 보여?”

“전 딱 보면 알죠.”

그러자 나빛이 태화를 째려보며 중얼거 렸다.

“줄인 거야.”

“웃기네. 내가 모를줄알아?”

“응.”

“흥, 참내…….”

태화가 코웃음을 쳤다.

상호는 천천히 손을 뻗어 나빛의 담배를 잡고 살살 잡아당겼다. 그러자 나빛이 담배를 물고 버텼다.

그는 무릎을 끓고 앉아 나빛과 눈높이를 맞줬다.

“혼낼 거야.”

회색 눈동자가 가만히 그를 바라보았다. 상호는 말을 이었다.

“선생님은 선생님이야. 너 화났다고 이러는 거 못 봐줘. 선생님이 너한테 잘못했다고 해서 네가 이래도 되는 건 아니야. 너는 학생이잖아.”

그가 담배를 조금 더 강하게 당기자 나빛의 입에서 담배가 떨어졌다.

상호의 안색이 밝아졌다.

“그래, 이런 거 하지 말고

하지만 나빛은 물끄러미 상호를 바라보다가, 안주머니에서 담뱃갑을 꺼내 들더니 담배를 또 꺼내어 입에 물었다.

효은이 자주 피는 종이었다.

‘아오, 이 여자를 진짜…….’

보나 마나 효은이 준 것일 터였다. 대체 무슨 생각이었던 건지.

상호는 고개를 푹 숙이고 몸을 일으켰다.

“수업…… 하자. 얘들아…….”

* * *

“저번 시간에 배운 거 기억나지?”

상호는 물백묵으로 칠판에 글씨를 썼다.

“소형종은 무리를 짓고, 대형종은 홀로 다닌다. 이에 따른 주파 능력의 차이와, 신진대사로 인한 사냥 빈도의 차이에서 오는 진격 속도의 비교에는 어떤 계산이 적용되는지…….”

칠판에 아이들이 비쳤다. 아주 명확하게 보이지는 않았지만 어떤 행동을 하는지는 볼 수 있었다.

나빛은 아직도 담배를 문 채로 교과서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반항한답시고 담배를 물었으면서도 공부에는 열중하는 모습이 퍽 기특했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이 아프기도했다.

나빛의 오른손은 책상 위에서 필기를 하고 있었지만, 왼손은 치마 가운데를 잡아서 살짝 내리고 있었다. 다리도 다소곳이 모은 채로. 하지만 상호는 절대로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식량을 보관하고 운반할 수 있는 종족은 소수야. 일부 늑대 인간종과 대다수의 오크, 그리고…….”

나빛의 옆자리는 태화. 태화는 지금 다리에 담요를 덮고 있었다.

상호는 내공을 뻗어 태화의 담요를 슬금슬금 당겼다. 나빛에게 덮어 주기 위해서. 그러자 태화가 담요를 확 잡아당기며 빽 소리쳤다.

“쌤 변태! 내 빤쓰 볼라고!”

“이 중 고블린은 원체 전투력이 약해서…… 얌마, 너도 제발 치마 늘려와. ……약해서 주로 구역의 경계를 맡는다…….”

나빛의 다리 때문에 도저히 집증이 되지 않았다. 칠판에 하얗게 빛나는 저 다리 때문에.

결국 그는 물백묵을 내려놓고 나빛에게 다가갔다. 나빛은 아주 살짝 당황한 표정을 지었지만, 곧 싸늘한 눈빛으로 상호를 올려다보았다.

상호는 양복 재킷을 벗어 나빛의 다리에 덮었다.

“이거 라도 해.”

나빛의 입에서 담배가 툭 떨어졌다.

고개를 푹 숙여서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회색 머리카락 사이로 귀가 새빨갛게 물드는 것만은 볼 수 있었다. 상호는 다른 세 명의 아이들이 몸을 움찔하는 것을느꼈다.

발끈하는 것 같기도 했다.

흥.”

나빛은 더듬더듬 담배를 집어 다시 입에 물고는 칠판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뺨의 홍조는 어쩌지 못했다.

상호는 그 모습을 보며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교실 앞으로 돌아와 수업을 계속했다.

“일반 대형종이 소형종보다 지형의 영향을 많이 받는 것과는 달리. 특대형종은 지형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

* * *

그렇게 4교시까지 끝났다.

곧 점심시간인데 나빛은 아직도 담배를 입에서 떼지 않았다. 상호가 교과서를 들고 교실을 나서며 그녀들에게 말했다.

“밥 잘 먹고, 매점에서 배 채우지 말고.”

“쌤은같이안먹어요?”

“난 다른 일 좀 보고 먹으러 가려고. 맛있게 먹어.”

“넹.”

상호가 문을 닫았다.

그가 떠나자마자 태화는 눈동자를 굴려 나빛의 입에 물린 담배를 흘끗했다.

“재주좋다? 그런 건 어디서 났냐?”

“…….”

“술도살수있어? 나술좀사줘.”

나빛이 태화를 째려보았다. 태화는 입술을 삐죽 내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에이, 몰라. 밥이나 먹자.”

“나빛.”

이번엔 세희가 말을 걸었다.

“담배는 이제 넣어 둬. 밥 먹으러 갈 거잖아. 밥 먹으면서도 물고 있을 거야?”

“…….”

“우리한테도 화났어?”

나빛이 고개를 저었다. 절레절레.

“그냥 말하기 싫어?”

끄떡끄떡.

그러자 세희가 자리에서 일어나 나빛의 책상에 앉았다.

“나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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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너 선생님한테 삐진 거지 사이 나빠지려고 이러는 게 아니잖아.”

한 번 끄덕.

세희는 나빛의 머리카락 끄트머리를 만지작거리며 말을 이었다.

“선생님한테 뭐 받고 싶은 게 있는 거야?”

도리도리.

“그러면 말을 해서 화를 풀어야 하는 거 아니야?”

침묵.

“네가 이렇게 고집불통으로 있으면 계속 제자리걸음이야. 그러다 선생님 진짜 화나시면 어떡하려고 그래? 선생님 화나시면 뒷감당 못 하잖아. 너도 나도, 우리 다.”

냉랭했던 나빛의 얼굴이 차츰 삐진 표정으로 변해갔다.

나빛은 담배를 안주머 니에 집어 넣고 일어나 세희의 소매를 잡아끌었다.

밥이나 먹자는 뜻이리라. 세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책상에서 일어났다.

복도를 걷는 그녀들의 뒤에서 지윤과 태화가 깐죽거 렸다.

“삐순이~ 삐순이~.”

“나삐 져 떠 ~, 뗜땡 님 이 랑이야기 안할꼬야~.”

“……!“

성창이 둘을 향해 날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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