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1화 (121/501)

* * *

저녁으로는 참치를 구웠는데, 기름이 작살나게 많아서는 배부르게 먹지를 못했다.

상호와 태화는 다시 방에 앉아서 하염없이 문밖을 쳐다보기만 했다.

문득 태화가 입을 열었다.

“쌤.”

“응?”

“저 사실은 비가싫어요.”

아까는 소나기가 좋다고 하지 않았던가. 상호는 고개를 기웃했다.

“왜?”

“비 온다고술 안 먹는 게 아니거든요. 오히려 집에서 먹지.”

상호는 조용히 허공을 바라보았다.

먼 바다의 파도 소리, 빗소리. 처마의 물 흐르는 소리만이 아스라이 들려왔다.

“난 비가 오면 술 냄새가 나요. 비 오는 날은 특히 냄새가 심해지잖아요. 그래서…… 집 가득히 퍼진 그 술 냄새가 나는데, 이게 또 술 냄새를 맡으면 맞은 데가욱신거린단 말이에요. 특히 머리가.”

태화는 눈을 감고 그의 어깨에 머 리를 기댔다.

“비가 오면…… 그래서 아파요.”

상호는 태화의 어깨를 꼭 끌어안았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안 나는데?”

“그냥 계속 말해줘요. 빗소리가 안 들리게……. 뭐든 상관없으니까. 노래를 불러도 좋고. 욕이라도 난 좋으니까…… 내 귀에, 뭐라도 채워줘요.”

태화는 그렇게 말하고 그의 목덜미에 코를 푹 박았다.

“그리고 코에도.”

상호는 그 말을 듣고 살짝 당황했다. 딱히 말주변이 좋지는 않은데. 노래도 자신이 없고.

그렇지만 이유 있는 부탁을 안 들어줄 순 없었다.

‘좀 쪽팔려도, 애들 웃는 게 더 중요하지…….’

근데 또 부르자니 숨이 턱 막혀서 도저히 소리가 나오지를 않았다.

그는 한참이 지나서야 겨우 입을 열었다.

“파도가…… 부서지는

“풉!

태화의 입에서 뭔가가 뿜어져 나왔다.

태화는 황급히 입을 가리다가도, 결국은 참지 못하고 박장대소를 터트렸다.

“꺄하하하! 쌤 진짜 불렀어 ! 음 그거 맞아요? 쌤 노래 진짜 못 부른다, 와~. 꺄하하핫!”

“노래 안 부른 지 10년이 되어가, 인마…….”

“변명하지 마요. 이거 다른 애들 모르죠? 와, 진짜 깜짝 놀랐어. 계속 불러 봐요. 빨리. 빨리!”

“몰라 임마. 다시는 안 불러…….”

“아~ 진짜! 빨리빨리빨리!”

태화가 깔깔거 리며 그를 마구 흔들었다. 상호는 고개를 푹 숙이고 얼굴을 양손에 묻었다.

뜨거워서 터질 것 같았다.

‘아오. 진짜…… 다른 애들 앞에선 죽어도 안 불러야지…….’

* * *

밤이 되어도 비는 그치지 않았다.

이제 배 타기는 글렀고 여기서 잘 준비를 해야 할 것 같았다. 상호는 다 떨어져 가는 문을 여기저기 둘러보다가, 우그러진 부분을 힘으로 펴고 떨어진 경첩을 강기로녹여 용접을 했다.

그러고 나니 그럭저럭 멀쩡하게 열리고 닫혔다.

‘이건 됐고.’

뒤를 돌아보자 태화가 멀뚱히 눈을 끔뻑이고 있었다. 그는 주변을 둘러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뭐 덮을 거 없나? 너 춥지 않겠어?”

“불 피울까요?”

“그건 네가 자면 꺼지잖아. 그리고 밖이면 모를까 안에서는…….”

“그럼 하나밖에 없네.”

태화는 앙큼한 웃음을 지으며 양팔을 벌렸다.

“내가 쌤 덮을게요. 아니면 쌤이 나 덮든가.”

“불을피워볼까?”

상호는 못 들은 척하고 문을 열어 방 바깥을 훑어보았다. 뭔가 불을 담을 수 있는 금속제 통 같은 것이라도 있을까 싶어서.

하지만 불이 나는 것도 위험하거 니와 질식의 위험 또한 무시할 수 없었다.

‘……어쩔수없네.’

그는 문을 닫고 뒤를 돌아보았다.

태화가 턱을 괸 채로 누워서 검지를 까딱이고 있었다.

“드루와~ 드루와~.”

“빨리 와서 팔베개 내놔요. 빨리.”

입꼬리가 아주 귀에 걸려서는 내려오지를 않는다. 상호는 태화의 웃음을 보며 한숨을 푹 쉬고는 터덜터덜 걸어가 옆에 누웠다.

태화가 그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쌤.”

“응.”

“자다가 입에 뭐 들어와도 놀라지 마요.”

“……뭔 소리야.”

“이빨 닿으면 아프니까, 뭐가 입에 들어왔다 싶으면 살살 빨기만 해요.”

상호는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깨닫고 눈을 부라렸다. 표정은 그렇듯 무서웠지만, 등에는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너…… 그거 입에 넣으면 진짜 씹어버릴 거야.”

“진짜요?”

“농담 아냐. 절대 넣지 마. 넣기만 해 봐라, 아주 그냥…….”

“모든 도전에는 가치가 있대요.”

“빨리 자. 제발…….”

그는 한숨을 쉬며 태화의 머 리를 쓰다듬었다. 태화가 키득거 리며 그의 팔을 베고 누웠다.

다행히 태화는 머잖아 규칙적인 숨소리를 내며 잠에 빠겼다. 상호는 그제서야 안심하고 눈을 감았다.

그런데 뭔가가 입술 사이를 파고들려 했다. 말랑하고 부드러운 것이. 그가 눈을 번쩍 뜨자 무언가가 빠르게 태화의 등 뒤로 사라졌다.

상호는 이를 갈았다.

“얌마, 꼬리 안 치울래!”

“에이씨, 까비…….”

〈반동>

뜨거운 숨이 닿는다.

온 얼굴을 휩싸는 그 더운 바람은 때로는 가쁘게, 때로는 지친 듯 느리게 헐떡거렸다. 덕분에 잠에서 깨어 버린 상호는 태화가 또 장난을 치는 거라 여기며. 눈을뜨지 않은 채로 미간을 찌푸렸다.

태화가 증얼 거 렸다.

“쌤…….”

상호는 대답하지 않고 자는 척을 하다가.

“나 아파요…….”

이어진 태화의 신음을 듣고 화들짝 놀라 눈을 떴다.

어둠 속 태화의 옷 사이에서 후터분해진 공기가 피어올랐다. 팔에 닿은 뺨은 달군 돌처럼 뜨끈하고, 거기서 흘러내린 땀방울은 끓는 물처럼 살갗을 지지는듯했다.

그는 태화와 함께 몸을 일으켜 앉았다.

“뭐야, 왜 그래. 괜찮아?”

“나’

태화가 눈물을 글썽 였다.

“머리 아프고…… 배도 아파요…….”

상호는 황급히 태화의 양 뺨에 손을 올렸다. 뜨거웠다.

감기인가. 아니면 아까 먹은 회 때문일까.

차라리 굶었어야 했을까. 그는 살짝 떨리는 손으로 태화의 이마를 짚었다.

‘어떡하지?’

전화는 먹통, 교통은 단절. 사람도 없고, 하다못해 따뜻한 물마저도 없다.

그렇지만 뭐라도 방법을 찾아야 했다.

“잠깐만 기다려. 다른 건물에 약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상호는 몸을 일으키려 했다.

하지만 태화의 손이 그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촉촉이 젖은 빨간 눈동자가 상호를 올려 다보았다.

“옆에 있어줘요…….”

“잠깐만 갔다 올게. 여기 있는다고 방법이 생기는 것도 아니잖아.”

“힘들어 죽겠으니까…… 제발 옆에 있어요…….”

괜히 나갔다가 그 사이에 큰일이 나는 건 아닐까. 덜컥 겁이 난 상호는 태화의 손길을 따라 다시 바닥에 앉았다.

태화가 땀을 흘리 면서 몸을 덜덜 떨었다.

그 모습을 본 상호는 재킷을 벗어 태화의 어깨에 걸치고, 와이셔츠도 다리에 덮어 주었다.

태화는 고개를 저었다.

“더워요…….”

“몸 따뜻하게 해야 돼. 잠시만 기다려 봐.”

그는 마당으로 나가 티셔츠를 벗었다.

그걸 넓게 펼쳐 들어서 비바람을 쐬니 금세 차가워졌다. 상호는 물을 한 번 가볍게 짜고 마루로 돌아와서, 더 차가워지도록 몇 번 펄럭여 주고 방으로 돌아왔다.

태화가 생기 없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우와, 벗었다…….”

아직 농담이 나오는 게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헛소리를 하니 상태가 안 좋다고 해야 할까. 상호는 구태여 답하지 않고 태화의 뒤에 앉아 그녀를 끌어안았다.

그리고 셔츠로 태화의 이마를 닦았다.

어디선가 시체 썩는 냄새가 났다. 아마 참치에 걸어놨던 마법이 풀린 것 같았다.

“쌤.”

“응.”

“목도요.”

목도 닦았다.

태화가 고개를 힘없이 떨어뜨리며 중얼거렸다.

“참치 귀신이 화났나 봐요…….”

마법 같던 하루의 끝.

상호는 빗소리를 듣다가 뭔가를 깨달았다.

“태화야.”

“네.”

“주술은 함부로 쓰지 마.”

다 주술의 반동이다.

“큰 걸 바랄수록 반동이 심해지니까. 경험이 쌓이고 네가 어디까지 감당할 수 있는지를 알아야쓸 수 있는 거야, 주술은 

“그런가…….”

태화가 흐흐 웃었다.

“너무 큰 걸 바랐나 봐요.”

“뭘 바랐는데?”

“쌤 옆에서 같이 자게 해 달라고 빌었는데…….”

“……바보야.”

상호는 한숨을 쉬었다.

“겨우 그런 걸로 이렇게 세게 돌아올 리가 없잖아. 참치 때문이겠지.”

“겨우 그런 거를 내가 그렇게 바랐어요.”

태화는 그를 향해 고개를 살짝 돌렸다.

“세상 어떤 것보다도 더 간절히 바랐다구요. 그래도 뭐……. 이 정도면. 만족해요.”

“뭘 만족해. 다시는 이런 주술 쓰지 마. 또 주술 때문에 아프면 연 끊을 거야.”

“이대로죽어도…… 괜찮을지도.”

태화가 힘없이 웃었다.

가녀린 몸의 열은 도통 내려가지를 않았다. 상호는 애꿎은 핸드폰을 신경질적으로 두들겼다.

‘시발. 데이터는또왜끊겨?’

민정. 효은, 도현. 해련. 하다못해 설미나 건흠에게라도 연락해서 도와달라고 하려 했지만, 이제는 인터넷 통신망도 끊겨서 문자도 보내지질 않았다. 보낸다 하더라도 이 오밤중에 깨어 있을 거란 보장이 없었다. 확실한 방법은 전화인데 그건 아침부터 되지를 않았고.

맘 같아서는 지붕을 통째로 떼어내서 그걸 타고 육지로 향하고 싶었지만, 추운 곳에 나가면 더 심해질까 봐 그럴 수도 없었다.

그저 끌어안을 수밖에 없었다.

“끙…… 으…… 윽…….”

태화가 머리를 싸쥐고 몸을 구부렸다. 상호는 태화를 자신의 다리 위에 앉히고 더욱 빈틈없이 끌어안았다. 찬 기운이 몸에 닿지 않도록.

옷 벗은 맨살에 닿는 싸늘한 공기보다, 품속에 담긴 지독한 열기가 더욱 소름 끼쳤다.

문득 눈이 욱신거 렸다.

‘누나.’

그때와 같은 열기 였다그 눈을 잃고 사경을 헤맸을 때.

하지만 그때 예경이 주었던 것은 기초심법의 내공이었고, 지금 그의 내공은 천색창염으로 변질된 내공이었다.

몸에 맞지 않는 내공을 주입해 봤자 역효과. 뜻밖의 기적은 전혀 기대할 수 없었다.

상호는 염주를 세었다.

‘만약 내가 주술을 쓸 수 있다면…….’

그렇다면.

어차피 세상에 한 번 바쳤던 목숨. 지금 태화에게 주어도 전혀 아깝지 않다고.

하늘과 거래해 목숨을 목숨으로 교환해도 좋다고.

그런 생각을 했다.

‘아프지 마라, 제발…….’

추워서 콧물이 조금 나왔다. 상호가 코를 훌쩍이자 태화가 손을 들어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울지 마요.”

“……우는 거 아냐.”

“뚝 그쳐요. 울지 말라고 주술 걸어 버리기 전에…….”

“주술 쓰지 마, 진짜.”

“그니까 울지 마요.”

태화가 속삭였다.

상호는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과 품에서 규칙적으로 고동치는 태화의 맥박을 느끼다가, 자기도 모르게 스르르 잠에 빠져들었다.

* * *

“띵동~.”

무언가가 그의 가슴을 눌렀다. 초인종 버튼처 럼.

근히 자고 있던 상호는 그 날카로운 감각에 깜짝 놀라 눈을 떴다.

“띵동, 띵동~.”

태화가 방글방글 웃으며 그를 꾹꾹 누르고 있었다.

아주 말짱한 모습이었다. 흘렸던 땀 냄새가 조금 날 뿐. 그나마도 거슬리지 않을 정도로 미미했다.

상호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태화의 볼을 문질 렀다.

“괜찮아?”

“띵동~.”

“……누구세요.”

“배달왔어용~.”

“안 시켰는데요.”

“모닝키스배달왔쪄염~.”

“안 시켰다고…….”

“문열어! 쾅쾅쾅!”

태화가 그를 밀쳐 바닥에 넘어뜨렸다. 그러고는 입술을 붕어처럼 쭉 내밀며 다가왔다.

“웅~.”

“야이씨, 저리 안 치워!”

상호는 몸을 돌려 거꾸로 태화를 자빠뜨리고 양 뺨을 꼬집어 흔들었다.

“아주 살판이 났네 그냥. 혼날래? 혼날래?”

그런데 태화의 눈빛이 이상했다.

흰 얼굴에 또다시 열기가 감돌았다. 아픈 듯 게슴츠레해진 눈은 상호의 몸에 고정되어 있었다. 상호는 자신이 웃통을 벗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움찔했다.

그러자 태화의 붉은 눈동자가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쌤.”

태화가 나직하게 그를 부르며 그의 가슴팍에 손을 가져갔다.

상호는 곧바로 그녀의 이마에 딱밤을 날렸다.

빠악

“분위기 잡는 척하지 마.”

“끄엑! ……쳇.”

태화는 입술을 비쭉 내밀고 꿍얼거렸다.

“우씨, 왜 뽀록났지? 연습 오지게 했는데…….”

“어른한테 통할 것 같냐? 제발 그런 쓸데없는 거 연습하지 말고 철부터 들어. 그게 쌤한테 예쁨받는 길이야, 인마.”

상호는 핀잔을 주며 옷을 입고는 다시 태화에게 다가앉았다.

“이제안아파?”

“네.”

태화는 다리에 두른 와이셔츠와 어깨의 재킷을 상호에게 돌려주었다.

“그러고 보니…… 꿈에 테디 씨가 나왔어요.”

“무슨꿈이었는데?”

“아직올때가아니랬어요.”

상호는 쓰게 웃으며 태화의 볼따구니를 마구 문질 렀다.

“그쪽에서 잘 살고 있대?”

“그런가 봐요.”

둘은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어제 아침과 똑같은 날씨였다. 화창하고 하늘 높고. 구름은 잔잔히 흐르고 바람은 산들거 리는.

다만 바로 옆의 마루에서 나는 썩은 참치 냄새가 비위를 약간 상하게 했다.

상호는 태화를 돌아보았다.

“버려야겠지?”

“버리지 마요.”

“그럼 어떡하게? 저거를 들고 가자고?”

“아뇨.”

태화는 신발을 신고 마당에 서며 말했다.

“장례 치러 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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