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0화 (120/501)

* * *

“도착!”

태화가 갯바위 사이를 펄쩍펄쩍 뛰어다녔다.

순간이동에 비행 마법까지 할 수 있는 아이였지만, 그래도 상호는 걱정이 되어서 내공을 뻗고 있었다.

“뛰지 마라, 태화야.”

“쌤은좀뛰세요!”

“얌마…….”

상호는 결국 내공으로 태화를 잡아 끌고 왔다. 그리고 양 관자놀이를 가운뎃손가락 관절로 꾹꾹 눌렀다.

“누가쌤놀리래? 진짜혼난다.”

“앙~, 아퐝~.”

순간이동으로 빠져나간 태화는 바다 한가운데 솟은 갯바위의 맨 꼭대기 에 올라섰다. 그녀가 손을 붕붕 흔들었다.

“빨리 와요, 쌤. 여기 경치 좋은데.”

“야. 거기서는 바다까지 낚싯줄 닿지도 않겠다. 내려와.”

“나 낚시할줄모르는뎅~.”

다 도착하고 나니 본색이 드러 난다. 물론 상호도 다 알고 있었다.

그는 낚싯대를 꺼내어 조립했다.

“그럼 넌 거기서 놀아. 쌤은 여기서 할게.”

그러자 태화가 슝 날아와 그의 옆에 착지했다.

“내 것도 줘 봐요.”

“조립할줄알아?”

“그럼요. 쌤처럼 늙지 않았다구요.”

“해 봐, 그럼.”

상호는 태화에게 낚싯대와 릴을 건넸다.

태화는 자신 있게 받아들었지만 아니나 다를까, 뭐에 어떻게 조립하는지도 모르고 쩔쩔매기만 했다.

결국 상호는 한숨을 쉬며 태화에게 손을 내밀 었다.

“아까 가게에서 뭐랬어? 잘 들으랬잖아.”

“몰라. 쌤이 다 해줄 거잖아.”

“얘가 진짜…….”

“몰라~ 몰라~.”

다 조립된 낚싯대가 태화의 손에 들렸다.

“막 휘두르지 마. 바늘 찔린다.”

“미끼는요?”

“꺼내야지.”

상호는 가방에서 미끼가 담긴 상자를 꺼냈다.

미끼는 새우와 갯지렁이, 두 가지였다. 하나만 쓰면 안잡힐 수도 있다면서 가게 주인장이 강매하듯 밀어붙인 것이었다그 상호는 바늘에 갯지렁이를 꿰다가 태화를 쳐다보았다.

“너 지렁이 만질 수 있냐?”

“그럼요. 바퀴도 맨손으로 때려잡…….”

미끼통을 내 려다본 태화는 꿈틀거 리는 갯지 렁이 떼를 보고 그대로 굳어 버렸다.

그리고는 뒷걸음질을 치며 씩 웃었다.

“응애.”

“……줘봐, 임마.”

“이거 지렁이가 아니잖아요! 지네잖아요!”

“갯지렁이야.”

상호는 태화의 낚싯바늘에도 미끼를 꿰어 주었다.

둘은 동시에 바다를 향해 던졌다. 찌와 낚싯바늘이 바다에 떨어지자 바늘이 천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이제 기다리면 돼요?”

“응.”

“참치 불러요?”

“불러 봐.”

상호는 가방에서 접이식 의자를 두 개 꺼내 폈다.

자리에 앉으니 한적한 갯바위 풍경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새조차 오지 않는 작은 섬, 그중에도 외진 곳의 갯바위.

세상엔 아무도 없고, 오직 그와 태화 단둘만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쌤.”

태화가 입을 열었다. 상호는 찌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로 대답했다.

“응?”

“저 주술에 재능 있나 봐요.”

“그래?”

“네.”

악마 융합체니까 당연히 그렇겠지만, 배운 적도 없으면서 꽤나 확신에 가득 찬 말투였다.

상호는 내공으로 떡밥을 바다 위에서 부서트리며 물었다.

“왜?”

“제가 생각한 대로 이뤄졌어요.”

태화가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외딴 섬에. 주변에 아무도 없고, 그냥 둘만 있는 거.”

“잘됐네.”

“특히 세희 없이.”

문득 아이들 생각이 난 상호는 핸드폰을 꺼내 화면을 확인했다. 세희와 나빛에게서 연락이 수없이 도착해 있었다.

-선생님 태화랑 어디 가셨어요?

-선생님, 저 친척집 왔는데 심심해요…

-선생님?

-왜또무시해요…?

나빛이 또 화내겠다. 식겁한 상호는 낚싯대를 내려놓고 급히 문자를 보내려 했다.

하지만 태화가 핸드폰을 뺏어 들었다.

“집중.”

“야. 안 돼. 나빛이 문자 또 씹으면 쌤 진짜 죽는단 말이야우 

“그럼 제가 보낼게요. 낚시나 하세요.”

태화는 그의 핸드폰을 들고 뭐라 문자를 보내기 시작했다.

상호는 불안한 마음으로 낚싯대를 집어 들었다.

‘무슨 짓을 하려고…….’

그때 입질이 왔다.

상호가 낚싯줄을 좀 감다가 단번에 낚아채자 뭔가가 바다 위로 쑥 튀어 올랐다. 그는 그 물고기를 보고 눈을 끔뻑였다.

생김새가 어째 익숙했다.

“……고등언가?”

“꺅! 참치다!”

고등어라기에는 좀 많이 컸다. 거의 태화 키만한 크기였다. 상호가 아니었다면 물고기에게 끌려가서 그대로 바다에 처박혔을 터였다.

상호가 뭍에 그 정체불명의 물고기를 올리자 태화가 꺅꺅거리며 물고기를 끌어안았다.

“참치! 진짜 참치다! 우와!”

크기가 좀 작으면 아닐 거라고 설득해 보겠는데, 드럽게 커 가지고는 아니라고 말하기도 힘들었다. 물론 진짜 참다랑어일 거라는 보장은 없었지만.

저 큰 놈이 왜 여기 있는지. 왜 하찮은 갯지렁이 따위를 물었는지. 상호는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하나는 알 것 같았다.

‘……오늘 집 가긴 글렀군.’

어째 수평선 너머가 어둑해진 느낌이 들었다.

〈비가내리면>

참치는 회를 떠 먹기로 했다.

태화에게서 핸드폰을 돌려받은 상호는 참치회 다루는 법을 검색하는 척하며 나빛과 세희의 문자를 열어보았다.

두 아이들에게 같은 내용의 문자가 보내져 있었다.

-미안해 선생님 태화랑 산부인과 왔다

당연히 태화가 보낸 것이었다.

이전의 문자 내역들을 봤는지 말투까지 제법 그럴듯하게 흉내를 냈다. 상호는 다급히 문자를 보냈다.

-세희야 위에 저거 태화가 장난친 거야

같은 내용으로 나빛에게도.

그러자 세희에게서 답장이 도착했다.

-그래서 어디세요?

-섬…

-언제 오시는데요?

-잘 모르겠어…

세희의 답장은 거기서 끊겼다. 나빛은 아예 대답도 안 하고 있었다. 상호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자판을 두들겼다.

-나빛아

-나빛아

-나빛아 제발…

“뭐 해요?”

참치 앞에 앉은 태화가 그를 멀뚱히 바라보았다.

상호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 핸드폰을 집어넣었다.

“응, 그냥…… 어렵더라고. 회 치는 거.”

나빛을 만나면 절부터 해야겠다. 그는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칼을 들었다.

우선은 강기를 끌어올려 칼을 소독하고, 배를 갈라 내장을 빼고 다시 소독하고. 대가리를 자르고 몸의 중심에 있는 등뼈를 타며 반으로 갈랐다.

“들고 가기 힘드니까, 많이 먹어.”

“엑. 왜 못 들고 가요? 애들한테 자랑할 건데.”

“상하잖아. 이거 들어갈 냉장고도 없을 거고…… 그냥 여기서 먹을 만큼 먹고 남겨.”

“아까운데…….”

“어쩔 수 없지. 아니면 마법으로 얼려 볼래?”

그 말에 태화는 핸드폰으로 뭔가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상호는 회 몇 점을 떠서 태화의 입에 넣어 주었다. 날름날름 잘 받아먹던 태화가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우와.”

“맛있어?”

“으아, 살살 녹는다…….”

다행히 간장과 고추냉이는 가져왔지만, 그래도 회밖에 없으니 어느 정도 먹은 뒤부터는 혀가 그 맛에 익숙해져 버렸다. 기름이 많아서 그런지 쉽게 질리기도 했다.

결국 생각보다 많이 먹진 못하고 딱 배를 채울 정도로만 먹게 되었다.

“냉동 마법은 찾았어?”

“이거 될지잘모르겠는데…….”

태화가 손을 뻗자 투명한 결정이 참치를 뒤덮었다. 차가운 기운은 느껴지지 않았다.

“일단 이렇게 해 두죠. 저녁엔 구워 먹을 거니까. 정 상태 안좋으면 다른 생선 잡고.”

“그래. 그럼 되겠다. 근데…….”

상호는 먹구름이 가득해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저거좀어떻게안되겠니?”

“뭐가요?”

태화는 모르는 척 능청을 떨었다.

“비 오면 시원하고 좋잖아요.”

“학교 돌아가야지…….”

먹구름뿐만이 아니 었다. 어느새 바람도 거세져서는 파도가 갯바위를 세차게 치대고 있었다.

이미 배 뜨기는 그른 것 같았다.

‘차라리 지금부터 숙소나 찾는 게 나을지도…….’

상호는 낚싯줄을 감았다.

“낚시도 슬슬 그만해야겠다. 처음부터 큰 놈이 잡혀가지고는 얼마 하지도 못했네.”

“그럼 이제 뭐 해요?”

“비 피해야지. 배가 오든 안 오든…….”

그가 낚싯대를 분해해 가방에 넣자 때마침 물 한 방울이 귓등에 떨어졌다.

“태화야, 비

상호가 고개를 들어 태화를 본 순간.

소나기가 미친 듯이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온다.”

“우왓!”

무슨 양동이로 물을 퍼서 끼얹듯 굵은 장대비가 억수로 쏟아졌다. 태화가 손으로 모자 위를 가리며 갯바위를 폴짝폴짝 뛰어 길가로 달려갔다.

“쌤! 빨리 와요!”

“짐이라도 들어주고 그런 말을……, 하아.”

상호는 한숨을 쉬고 가방과 참치를 챙겨 그녀를 따랐다.

비는 점점 거세졌다. 상호는 짐을 다 허공섭물로 띄우고 재킷을 벗어 자신과 태화의 머리 위로 둘렀다.

태화가 재킷을 함께 받치며 잔뜩 신난 목소리로 소리쳤다.

“꺄하~ 소나기 너~무 좋아~.”

“뛰지 마, 인마. 같이 걸어야 씌워줄 거 아냐.”

“자기도 좋아~.”

“……빨랑 먼저 뛰어가.”

작은 섬이어서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짧은 부두 앞에 대충 시멘트로 바닥을 바른 땅. 마을이라고 부르기엔 민망할 정도로 조촐한 건물들 사이, 쉼터 느낌의 건물이 마당을 사이에 끼고 디귿 자로 놓여 있었한옥처럼 마루가 있고 안쪽에 방이 있는 건물이 었다. 상호는 마루에 참치와 짐을 올려놓고 주변을 살폈다.

사람의 기척은 없었다. 이 집뿐만이 아니라 다른 곳에도.

‘배가 안 오면 여기서 자야겠는데…….’

상호는 태화와 함께 방으로 들어갔다.

문이 다 떨어져 가지고는 제대로 닫히지도 않았다. 방도 아주 낡았고, 가구는 탁자 하나에 서랍 하나가 끝.

서랍을 열어 보니 들은 것은 없고, 그 외에도 이불이나 정수기, 화장실 같은 것은 보이지도 않았다.

“태화야.”

“넹.”

“다음부터 웬만하면 섬은 오지 말자.”

“왜요? 난 상관없는데.”

“비 맞았는데 안 찝찝해?”

“벗으시든가요.”

태화가 모자와 남방을 벗어 바닥에 내 려놓았다.

상호는 비 오는 날 흙탕물 속에 누워도 잠을 잘 수 있었다. 지금 그가 걱정 중인 것은 태화였다. 비 쫄딱 맞은 채로 이 난방도 안 되는 건물에서 잠을 잘 수 있을까.

일단은 옷이라도 말리기로 했다.

“태화야, 불 좀.”

“저 담배안펴요.”

“아니…….”

“히히. 자, 여기요.”

태화의 손바닥에 검은 불꽃이 피어올랐다.

상호는 재킷과 와이셔츠를 벗어 불에 쬐었다. 태화도 남방을 말리다가 그의 반팔 윗도리를 흘끗했다.

“그건 안 벗으세요?”

“딱히. 괜찮아.”

“벗어요.”

“괜찮다고…….”

상호는 다시 옷을 입었다.

옷을 다 말린 둘은 바닥에 앉아 문밖을 멀거니 쳐다보았다.

조명도 없는 어두운 방에 습기와 한기를 머금은 회색빛이 흘러들어왔다.

“안 추워?”

“추워요.”

그 말에 상호는 재킷을 벗어 태화의 어깨에 걸쳤다. 그러자 태화가 눈살을 찌푸리며 아랫입술을 비쭉 내밀었다.

“안아달라는 뜻이었는데.”

“안 돼.”

“안대는 쌤 눈에 있는 거구요.”

“얌마…….”

상호는 쓰게 웃었다.

아직 오후 두 시. 뭘 먹을 시간도 아니고, 배가 오기는 한참 멀었다. 아마 오지도 않을 터였다.

이제 내일 아침까지 뭘 해야 할까. 심심해진 상호는 핸드폰만 주구장창 만지작거렸다.

그러자 태화가 그의 팔을 붙잡고 흔들었다.

“쌤.”

“응?”

“놀아줘요.”

“뭐 하고 놀까?”

“뭐든 좋아요.”

태화의 빨간 눈동자가 그를 바라보았다.

“뭘 해도 좋으니까, 아무 말이나 상관없으니까. 그냥 놀아주세요.”

상호는 머리를 긁적였다.

세희랑은 할 이야기가 정해져 있어서 이럴 때 고민이 없는데. 그냥 예경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면 되니까. 그런데 태화에게는 해줄 말이 그리 많지 않았다.

그래서.

“태화야.”

“네.”

“선생님한테 뭐 궁금한 거 없어?”

태화는 눈을 끔뻑 였다.

“……진짜 아무거나 물어봐도 돼요?”

“응. 뭐 이상한것만아니면.”

“그럼.”

그녀 가 상호의 앞에 얼굴을 들이 밀었다.

“나 어때요?”

제일 곤란한 질문이었다.

좋다고 대답하면 책임지라 할 거고. 싫다고 대답하면 또 삐질 거고.

하지만 기껏 삐진 거 달래주러 함께 여행 온 건데, 또 삐지게 만들었다가는 뒷감당이 되지 않을 것 같았다.

“예뻐.”

“그게 끝?”

“아껴.”

“나 애 아닌데요.”

태화가 은근히 옆으로 달라붙었다.

상호는 태화를 밀어내진 않았다. 대신에 손을 들어 뺨을 어루만질 뿐이었다.

“너흰 나한텐 다 애야.”

“저희 다요? 세희도요?”

“당연하지.”

그가 그녀들에게 느끼는 감정은 아버지가 딸을 보는 감정, 해봤자 오빠로서 동생들을 보는 감정.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니들이 아무리 나이를 먹고 몸이 자라도, 쌤한텐 다 제자고 애지.”

“쌤 연상 좋아한댔죠?”

“응.”

“근데 왜 우리 취향은 존중 안 해줘요? 내가 쌤 좋아하면 안 돼요? 우리가 몇 살이나 차이 난다고. 그런 식이면 쌤이 좋아하는 여자도 쌤을 애로 보는 거 아니에요?”

허를 찔렸다. 상호는 얼른 대답을 하지 못하고 쩔쩔매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그래도 시작이 다르잖아. 너희랑 나는 학교에서 만났으니까…… 나는 너희를 보살펴야 하는 입장이고, 또 앞으로도 그럴 거고. 대등한 관계가 되기는…… 힘들지.”

“꼭대등한 관계여야해요?”

“응.”

“쌤 첫사랑 어떤 사람이었는데요?”

태화가 따지듯 물었다.

상호는 자신과 예경의 관계를 떠올리며 속으로 진땀을 흘렸다.

‘……얘한텐 절대로 말해주면 안 되겠다.’

“그냥……, 한살차이 나는 누나였어.”

“구라치지 마요.”

“진짜야.”

자꾸 헛기침이 나왔다. 그는 마른침을 삼키며 애써 태연한 척 태화의 머 리를 쓰다듬었다.

‘배 오는지 전화나 해 봐야겠다.’

그런 생각으로 핸드폰을 꺼냈지만 전화가 걸리지 않았다. 상호는 전파를 잡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 마루로 나왔다.

거기서도 전파는 잡히지 않았다.

‘근데 뭐…… 어차피안을것같네.’

상호는 부두에 부딪히는 파도를 보며 입맛을 다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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