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8화 (108/501)

* * *

다행히 외국인 아이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세희를 비롯한 아이들이 워낙 태연하게 받아들였기 때문일까.

그래도 상호는 이전보다 은근히 공손해진 말투와 몸가짐으로 아이들 앞에 섰다.

스탠드에 앉은 아이들이 그를 바라보았다.

“어……. 아까 말한 대로, 이 목각인형이 너희랑싸우게 될 거야. 너희는 다 검사니까, 이 인형도 검을 써야겠지. 우선은 한국 학생 넷이 먼저 시범을 보이고…….“

그때 멀리서 누군가가 손을 흔들었다. 상호는 그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다른 반 아이들이 운동장 반대편에서 수업을 하고 있었다. 거기에는 외국 교사들과 통역사도 참관 중이었다. 하얀 양복을 입고 백발을 늘어트린 여인과 함께.

손을 흔든 사람은 해련이 었다.

‘뭔 일 있나?’

상호는 해련을 향해 걸어 가려고 발을 떼었다.

그러자 해련이 번개처럼 한달음에 달려와 상호의 앞에 섰다. 그녀의 뒤로 흙먼지가 휘날렸다.

“뭘 오려고 해요, 그냥 인사한 건데. 다리도 불편하면서.”

“하실 말씀이 있는 줄 알고…….”

“다음부턴 내가 손 흔들면 강 선생도 손만 흔들어요.”

“그건 좀……. 누가보면 어떡해요.”

“그 긴장감이 좋은 거지. 스릴? 스릴이라고 하나? 아무튼.”

해련은 아이들을 쓱 훑어보았다.

“수업하려고요?”

“예.”

“외국 아이들은 인솔교사 참관하에만 전투 가능한 거 알죠?”

몰랐다.

상호의 눈동자가 이리저리 흔들렸다.

“알죠.”

“몰랐던 것 같은데.”

“……죄송합니다.”

상호가 고개를 푹 숙이자 해련이 씩 웃었다.

“기왕 나온 거 어쩔 수 없으니까, 조금만 기다려요. 저기 끝나고 나면 여기로 데려올게.”

“그런데그러면…….”

상호는 눈살을 찌푸렸다.

“다른 반도 해야 할 텐데…… 그 말은 해봤자 하루에 1교시밖에 못 한다는 말 아니에요?”

“그렇죠.”

“너무 적은데…….”

애들끼리 죽어라 대련시키면서 경험을 늘려주려고 했는데, 그런 식이라면 하루에 한두 판이 고작일 터였다. 맘 같아서는 하루에 인당 100판씩 싸우게 하고 싶은데. 좀 양보하더라도 30판 이상.

고뇌에 빠진 그에게 해련이 말했다.

“정 그러면 강 선생이 저 인솔교사들 설득시켜 볼래요? 없이 수업해도 되겠느냐고.”

솔깃한 이야기 였다.

“그래도 될까요? 근데 저도 어 떻게 설득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는데…….”

“한번 해 봐요. 말로 하는 건데 되면 되고 안 되면 안 되는 거지 뭐. 아니면…… 실력으로 해도 괜찮고. 나도 방법은 잘 모르겠지만.”

해련이 한쪽 눈을 찡긋했다.

“강 선생 실력이면 어떻게든 되지 않겠어요?”

상호는 머리를 긁적였다. 학생의 안전을 다른 학교 교사에게 맡기게 하려면 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또 총알잡기 차력쇼라도 해야 하나?’

그런 고민을 하던 차에 주머 니에서 뭔가가 느껴졌다. 그는 무심코 손을 넣어 그 물건을 잡았다.

옛날에 민정이 만들어 준 목걸이였다. 그의 공격도 몇 번 정도는 막아낼 수 있는 강력한 방어 마법 아티팩트.

상호는 그 목걸이를 꺼내서 가만히 바라보았다.

‘이거면 떡을치겠네.’

〈강자>

반대쪽 반의 수업이 끝나기까진 시간이 걸렸다. 그동안 상호는 자신의 반 아이들에게 목각인형과 싸우는 시범을 보이도록 했다.

지윤이 목각인형을 바닥에 힘차게 메다꽂았다.

“이얍!”

꽈아앙

가벼운 나무인데도 떨어지는 소리가 둔중했다.

방학 동안 늘어난 힘과 기술. 지윤은 내공도 늘었고 유술과 반탄강권도 착실하게 수련하고 있었다.

지윤이 상호를 돌아보며 눈을 반짝였다.

“쌤요! 이겼슴드…….”

그 순간 쓰러져 있던 목각인형이 지윤의 발목을 잡고 확 끌어당겼다.

지윤은 중심을 잃고 뒤로 벌러덩 나자빠졌다.

“……으어어억!”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고 했지? 방금 그걸로 끝이 안 났으면 어떡할 거야.”

“히히, 한 번 먹혀가지고 기분 좋아서예…….”

지윤은 흙투성이가 된 얼굴로 씩 웃었다.

상호는 옆을 돌아보았다. 외국인 아이들은 그저 멍하니 지윤의 전투를 바라볼 뿐이었다. 지윤의 전투가 격 렬했기 때문은 아닌 것 같았다.

아마 앞선 나빛의 전투에 대한 충격이 가시지 않은 듯했다. 성창 일곱 개를 뽑아 자유자재로 다루는 모습 때문에.

‘애초부터 못 따라하는 거에 집중하면 안 되는데…….’

나빛 또한 성장을 했다. 그건 분명 그녀의 노력이었지만, 온전히 그녀만의 노력은 아니었다. 체질의 도움도 상당한 부분을 차지했으니까.

그렇게 세희, 태화. 나빛, 지윤의 시범이 끝났지만, 아직 다른 반의 수업은 끝나지 않았다. 인원수가 워낙 많이 차이나서.

상호는 머리를 긁적였다. 원래는 한 명씩 앞에 내보내서 자기소개도 하고 전투 방식도 모두에게 보여주려고 했는데.

“아비게일?”

“네, 선생님.”

“자기소개 좀 해줄래? 앉아서 간단하게.”

아비게일이 옆을 돌아보며 떠듬떠듬 말했다.

“음, 제 이름은 아비게일 프라이스,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는 세인트 트리니티 아카데미 1학년생입니다.”

미국 헌터는 대부분 캘리포니아에 살았다.

캘리포니아는 미국의 서부, 아르게스와 맞닿은 지역이었다. 한국으로 치면 강원도.

다만 강원도는 몬스터가 자주 출몰하는 탓에 사람이 많이 살지 않고 헌터 학교도 별로 없는데 반해, 캘리포니아는 남한의 네 배에 달하는 크기에 원래부터 미국에서 제일 많은 사람이 사는 지역이었던지라 아르게스와 연결되었어도 사람들이 그 땅을 버리지 않았다.

오히려 헌터가 제일 많이 사는 지역이 되다 보니, 내륙에 출몰하는 몬스터들을 피해 더욱 사람이 몰리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었다.

“스포츠로는 하키를 좋아합니다. 검술을 제외하면요. 그 외에는 주로 노래를 들으며 시간을 보냅니다.”

“고맙다.”

상호는 이번엔 이츠키를 쳐다보았다.

“다음은 이츠…….”

“사카시타입니다.”

“미안. 근데 그게 그렇게 중요해?”

“예의입니다. 애초에 사카시타 양이라고 부르는 게 보통입니다만…… 그것까진 봐드리겠습니다. 특별히.”

“……그래, 뭐, 고맙다.”

이츠키는 옆의 학생들을 둘러보았다.

분명 얼굴은 웃는 고양이상인데 웃고 있다는 느낌이 나지 않았다. 태어날 때부터 눈이 웃음지고 입꼬리가올라가 있었던 것처럼.

“사카시타 이츠키입니다. 일본의 히카와켄사이가쿠엔 제일고교에서 왔습니다.”

셋 중에서는 한국말이 제일 유창했다. 거기에도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일본은 아르게스에 나라를 관통당했다. 때문에 피해가 괴멸적이었고. 몬스터들이 쏟아져 들어오는 입구가 다른 나라와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넓었다. 그래서 인구가 아예 반 토막이 나 버렸다.

그래도 사람들은 어찌어찌 살아남아 남쪽 끄트머리에 모였지만, 워낙 많은 인프라를 잃은 탓에 많은 부분을 한국에 의지하게 되었다. 그렇다 보니 한국어를 아는 일본인도 자연스럽게 많아졌다.

이츠키의 소개는 그게 끝인 모양이 었다. 상호는 고개를 끄덕 였다.

“고마워. 다음, 나디아.”

“네!”

나디아는 벌떡 일어서서 말했다.

“나디아, 나데즈다 블라디미로브나 페트로바.”

그리고 제복의 붉은 견장을 가리켰다.

“전사!”

“군인?”

“전사, 전. 사.”

“그러니까군인…… 헌터 말하는 거야?”

“으으응!”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데 그 모습이 어째 나빛과 닮아 있었다. 상호는 당황하며 핸드폰을 꺼냈다.

그리고 전날 설치해 둔 러시아 번역 어플을 켰다.

“여기다말해볼래?”

그러자 나디아가 핸드폰에 대고 무어라 러시아어를 했다. 핸드폰에서 번역된 말이 튀어나왔다.

“졸병.”

‘이등병이구나.’

학생인데도 벌써부터 군에 소속된 모양이 었다.

뜻을 이해한 상호는 나디아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나디아가 말을 이었다.

“모스크바, 아흐토닉 쉬꼴라 셰스찌…….”

대충 모스크바에 있는 제 6 헌터 학교에 다닌다는 것 같았다. 상호는 다시 고개를 끄덕 였다.

그런데 나디아가 갑자기 등의 양손검을 뽑아 들었다.

‘……응? 나 뭔가 잘못했나?’

당황하는 상호의 앞에서 나디아가 검을 살짝 들어 올렸다.

황금빛 불꽃이 피어올라 검을 휩쌌다.

“보흐.”

나빛의 성력과 완전히 똑같은 색깔이었다.

성력을 다루는 검사. 상호는 이런 경우를 본 적이 없었다.

‘신기하네. 그럼 이 아이도…… 천사화는 아니지만 전투신관인 건가.’

그런 경우 또한 처음이었다.

모든 아이들이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특히 나빛의 눈이 제일 반짝였다. 소개를 마치고 자리에 앉은 나디아의 옆에 나빛이 달라붙었다.

“나디아, 나디아.”

“네.”

“성력 쓰는 거야?”

“네.”

“나도.”

나빛이 신앙회의 목걸이를 꺼냈다.

그 순간 나디아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그녀는 나빛의 목걸이를 보고는 고개를 돌리며 시선을 피했다.

나빛이 멀뚱히 눈을 깜빡였다.

“나디아?”

“나디아, 나디아.”

상호는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아이들을 집중시켰다.

“자, 주목, 주목. 이제 너희 선생님들 오실 거야. 수업 준비하자.”

이윽고 해련과 통역사들. 외국 인솔교사들이 상호의 반을 향해 다가왔다. 앞서 수업한 반도 무예가 반이었고, 지금 오는 이들도 상호가 아까 만났던 이들이었다.

미국 교사, 도미 니크가 상호에게 손을 내밀 었다.

“아까 지켜봤는데 여기는 수업 방식도 다르군요. 라고 합니다.”

상호는 통역사의 말을 들으며 도미니크의 악수를 받았다. 먼저 수업한 반은 아마 대련 없이 평범하고 무난한 수업을 한 모양이었다.

상호의 눈에 도미니크의 옆에 선 사내가 들어왔다.

우람한 체격에 푸른 눈과 하얀 피부를 가진 사내였다. 아주 짧게 깎은 갈색 머리와 각진 얼굴이 입은 제복과 아주 잘 어울렸다.

등에는 거대한 대검을 메고 있었다.

사내는 상호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젊은 여자 통역사가 대신 말을 전했다. 통역사 또한 러시아인이 었다.

“러시아에서 온 니콜라이 선생님입니다. 저는통역사마리나구요. 잘부탁드립니다.”

“아, 예.”

상호는 해련을 흘끗하고 니콜라이에게 먼저 악수를 건넸다. 니콜라이는 악수를 마다하지 않았다.

손을 흔드는 힘이 꽤나 거셌다.

다른 한 명인 이시무라와는 이미 악수를 했기에. 둘은 간단히 목례만 했다.

“자, 그럼…….”

해련이 말했다.

“어떻게 수업할 건지 설명해주세요, 강 선생.”

“네.”

상호는 목각인형을 일으켜 세웠다.

저 혼자서 움직이는 목각인형을 보자 이시무라와 니콜라이의 눈이 살짝 커졌다.

“제가 이 인형을 조종할 겁니다.”

상호가 인형에게 검을 내밀자 인형이 검을 잡고 뽑아 들었다.

“학생들은 이 인형과 대련을 하게 됩니다. 진검으로요. 저는 인형을 완벽하게 조종할 수 있고, 제 학생들은 절 믿기 때문에 이대로 대련을 합니다만…… 외국 학생들의 안전도 생각해야 하니, 이걸 쓰게 할 생각입 니다.”

그가 주머니에서 꺼낸 목걸이에 외국 교사들의 시선이 몰려들었다.

“공격을 막아주는 보호 목걸이입니다. 타격을 전부 없애주진 않지만, 상처는 나지 않을 정도로 줄여줍니다. 멍은 물론이고 베이거나, 타거나, 동상 등을 포함해서요.”

이 시무라가 물었다.

“안전합니까?”

“안전합니 다. 아마 여기 있는 사람들 증엔 이걸 부술 수 있는 사람이 없을 겁니다.”

아마도 말이다.

상호는 진심으로 공격하면 목걸이를 부술 수 있다. 해련도 마찬가지. 하지만 대부분의 헌터들에게는 힘들 터였다.

상호는 도미니크, 니콜라이, 이시무라를 바라보았다.

냉정하게 말해서 이들에게 한국은 약소국이다. 이들의 학교는 국제교류를 다른 나라로도 보낸다. 미국으로, 러시아로, 중국으로.

그중에서 굳이 한국을 오게 된 선생과 학생들.

상호는 그들이 그리 강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여겼다.

“이걸로 학생들끼리 대련도 시킬 겁니다. 학생 수준에서 부술수 없는 건 당연합니다만, 그래도혹시 모르는 일이니까…… 테스트해 보시겠습니까? 호신강기를두르고, 목걸이를 감은 후 공격하면 됩니다.”

앞으로 건넨 목걸이를 이시무라가 제일 먼저 받아들었다.

학생 앞이니 아마 진심을 다할 터였다. 이시무라는 별것 아니라는 듯 무심하게 검을 뽑았지만, 그 손에 은근히 힘이 들어가 있다는 것을 상호는 알 수 있었다.

이시무라의 팔에 목걸이가 감겼다.

“흡!”

검이 목걸이를 내리쳤다. 푸른 검강을 두르고서.

카아앙

역시나 목걸이는 흠집 하나 없이 멀쩡하기만 했다.

이시무라는 잠시 목걸이를 내려다보다가, 더 해봤자 모양만 빠질 것이라 판단했는지 순순히 인정하고 목걸이를 풀었다.

“괜찮은 것 같습니다.”

상호는 목걸이를 받아들고 도미니크와 니콜라이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누가 먼저 할 거냐는 뜻으로.

그 둘의 시선이 마주쳤다.

서로 미루는 분위기였다. 네가 먼저 해라, 싫다 네가 먼저 해라, 그런 눈빛이 둘 사이에 오고 갔다.

상호는 둘의 속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거 별것도 아닌 거 가지고 자존심 싸움을…….’

둘은 자신이 없는 게 아니라 자신감이 넘쳐서 나증에 하려는 것이었다. 자기가 부숴버릴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서.

내가 먼저 부숴버리면 네가 얼마나 강한지 알 수가 없으니까 너 먼저 해봐라, 그런 뜻이었다.

니콜라이는 한 고집 하게 생겼고, 도미니크는 표정은 서글서글했지만 물러설 기미가 없었다.

‘씨바, 팔 아프게…….’

상호는 결국 니콜라이에게 먼저 목걸이를 내밀었다.

“니콜라이 씨가 한번 해보시겠습니까?”

먼저 시키는 건 거절할 이유가 없었을까. 니콜라이는 곱게 목걸이를 받아들고 제복의 소매에 감았다.

그리고 등에 멘 대검을 한 손으로 가볍게 뽑았다.

대검에 희미하게 노란 기운이 일렁였다.

“스읍…….”

짧게 숨을 들이마신 니콜라이는 곧 굳게 입을 다물고 팔에 대검을 내리쳤다.

콰앙

약간의 풍압이 주변 사람들을 스쳐 지 나갔다.

목걸이에서 난 소리라고는 믿기 힘든 소리였지만, 여전히 목걸이는 멀쩡했다.

니콜라이의 굳은 얼굴에 당황이 감돌았다.

“이제 도미니크 선생님 차례네요.”

상호는 니콜라이의 팔에서 목걸이를 벗겨 도미니크에게 내밀었다.

도미니크의 양복 위에 목걸이가 감겼다.

도미니크가 허리에 찬 검은 그리 길지 않은 한손 서양검이었다. 짧은 가드는 날을 향해 반원 모양으로 휘어지고, 양날이 평행하게 이어지다가 완만하게 구부러져 칼끝을맺는형태였다.

하지만 그는 검을 뽑지 않았다.

대신 팔을 잡고 엄지로 목걸이의 보석을 눌렀다.

“후우…….”

숨을 들이마신 도미니크의 손에서 하얀 불꽃이 피어올랐다. 그 모습에 상호와 해련의 눈이 반짝였다.

강기의 상위 단계. 초강기.

예전에 설명을 들었던 세희도 눈을 동그랗게 떴다.

“후우우…….”

도미니크의 이마에 비지땀이 한줄기 흘렀다.

쩌적……

목걸이의 보석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곧 도미 니크가 힘을 한 번 강하게 주자 산산조각 난 보석 이 바닥에 후두둑 떨어 졌다.

살짝 당황한 상호에게 도미니크가 웃어 보였다. 그의 말을 한국인 통역사가 전했다.

“이거 대체 누가 만든 거냐고 물으십니 다.”

“……하하.”

상호는 저것보다는 쉽게 부술 수 있었지만, 그래도 생각보다 수준 차이가 그리 크지 않았다. 그는 신경질적으로 뒤통수를 벅벅 긁었다.

저게 부서질 줄은 몰랐다. 이러면 계획이 어그러지는데.

‘다른 방법……? 시바, 이거 말고 다른 방법이 어딨어. 저 목걸이 말고는 방법이…….’

하나밖에 없었다.

믿음에 호소하는 수밖에.

상호는 손을 뻗어 목각인형에게서 날아온 자신의 검을 낚아챘다.

“도미니크.”

비슷한 수준이니까, 이기어검은 당연히 쓸 수 있을 것이다.

상호가 검을 뽑자 도미 니크의 눈이 반짝였다.

“한판뜹시다.”

통역은 필요치 않았다.

〈약자>

힘으로 이기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간단한게임입니다.”

상호의 앞 허공엔 검 두 개와 칼집 두 개가 둥실 떠 있었다.

한 쌍은 상호의 것. 한 쌍은 도미니크의 것.

검은 검끼리, 칼집은 칼집끼리 아주 얇고 가느다란 실로 묶여 있었다.

“칼의 실이 끊어지면 내가 지고, 칼집의 실이 끊어지면 도미니크 선생님이 지는 겁니다. 거기에…….”

얼마나 잘 조종할 수 있는가의 대결이었다. 그리고 덤으로.

“신체에 가하는 방해도 허용하겠습니 다.”

내공 써서 제대로 뜨자.

니콜라이와 이시무라는 이기어검만 보고도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조용히 서 있었다. 한편 도미니크는 양복 재킷을 벗는 중이었다.

그는 재킷을 누구에게도 맡기지 않고 허공에 띄워 놓았다.

‘은근히 도발을 하는구만.’

상호도 재킷을 벗어 허공에 띄웠다.

검. 칼집, 재킷, 세 개를 조종하며 몸으로도 싸워야 한다. 어지간한 으급 헌터는 꿈도 못 꿀 경지였다.

해련이 손을 들었다.

“준비하시고.”

그리고내렸다.

“시작!”

도미 니크는 자신을 향해 검을 확 당겼고, 상호도 검집을 조종해 자기 쪽으로 날아오게 했다.

서로의 실을 끊으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두 검과 두 칼집의 간격들은 단 1111111도 멀어지지 않았다.

옆으로. 뒤로. 방향을 돌리고 꺾어도 실은 팽팽하기만 할 뿐 절대로 끊어지지는 않았다.

그러던 차에 도미니크가 공격을 시작했다.

하얀 불꽃을 두른 주먹이 상호에게 날아들었다.

‘초장부터 쎄네. 그냥 맞으면 죽겠는걸.’

상호는 손을 들어 도미 니크의 주먹을 막았다.

뒤로 돌아 공격하면 유리할 텐데도 도미니크는 그러지 않았다. 일단은 실력이 어떤지 탐색을 하려는 듯했다.

손으로. 발로. 다른사람이 맞으면 죽겠지만그들의 입장에서는 그다지 치명적이지 않은, 비교적 평범한공방이 둘사이에 오갔다.

상호의 손바닥에 도미 니크의 주먹이 닿자 가벼운 타격음이 들렸다.

하지만 마나를 느낄 줄 아는 자들에게는 마치 폭탄이 터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감각이 예민할수록 더했다. 그래서 일반인인 통역사들은 멀쩡했지만, 그 옆에 서 있는 두 명의 외국 헌터 교사들은 안색이 아주 창백했다.

그보다는 조금 더 떨어진 곳에서 태화와 세희가 소곤거 렸다.

“야, 넌 보이냐?”

“응.”

“뭐? 뻥치지 마, 저게 보인다고?”

선생들은 그나마 보기라도 하지, 아이들에게는 아예 보이지도 않는 속도였다. 서로의 몸이 부딪혀서 잠시 동작이 끊기는 때만 짧게 보이고, 동작이 이어지는 부분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마치 동영상을 잘라서 이어뭍인 것처럼.

허공에서 엎치락뒤치락하는 검과 칼집들은 희끄무레하고 거무스름한 잔상만 남길 뿐이 었다.

‘이대로 가면 끝이 안 나겠는데.’

상호는 내공을 좀 더 끌어올렸다.

이기어검은 내공을 뻗어 검을 움직이는 것.

더 강한 내공으로 주변을장악해 그 내공을끊어버리면, 자연스럽게 이기어검도 멈춘다.

도미니크는 상호의 수상한 움직임을 감지하고 공격을 점점 매섭게 퍼부었다. 이제 실력을 알았다는 듯 등 뒤를 기습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상호는 멀쩡한 발을 축으로 몸을 돌려 공격을 막았다. 순간 도미니크의 눈이 그의 왼 다리를 향했다.

이어서 도미니크의 다리가 지면을 스치며 날아왔다.

‘쓰읍…….’

상호는 입술을 살짝 깨물며 한쪽 발로 뛰어올랐다.

공격을 피하고 착지하자 아릿한 고통이 느껴졌다. 더 길게 끌면 안 될 것 같았다.

진한 내공이 서서히 허공을 잠식해 갔다.

그때.

스탠드 쪽에서 아주 작은 신음이 들렸다. 상호의 고개가 무의 식적으로 그쪽을 향했다.

나빛이 가슴을 부여잡고 기침을 하고 있었다.

그 순간 도미니크의 주먹이 날아들고, 검이 뒤로 확 빠졌다. 상호는 당황한 와중에도 도미니크의 주먹을 막고, 검을 따라잡아 실이 끊어지지 않도록 했다.

그렇지만.

풀썩

재킷이 땅바닥에 떨어지며 흙먼지를 날렸다.

‘……쳇.’

상호의 시선이 그 양복 재킷을 향했다. 저건 대결 내용에는 없지만.

모든 상황에 완벽하게 대처하지도 못하면서 어떻게 위험한 교육을 시키려 드느냐, 그렇게 흠을 잡을 수도 있었다.

도미 니크의 검과 칼집이 우뚝 멈줬다.

“더 이상은 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고 하십니 다.”

통역사가 말을 전했다.

도미니크는 먼저 칼집을 당겨서 실을 끊어내고 이어서 검의 실도 끊었다. 그리고 허공에 뜬 자신의 재킷을 가져와 입었다.

검집의 실이 먼저 끊어졌으니 상호의 승리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스탠드에서 태화가 볼멘소리를 냈다.

“에~, 하나빛 때문에 쌤 졌어~.”

“아, 아니야…….”

“그럼 쌤이 저 아저씨보다 약하단 소리야?”

“그것도…… 아니지만…….”

나빛이 울상을 지었다그 상호는 말없이 검을 내리고 칼집에 집어넣었다.

사실 태화의 말이 맞았다. 나빛의 고통스러워하는 목소리에 온몸의 신경이 곤두서 버렸기 때문이 었다.

그것만 아니었어도 지지는 않았을 텐데. 물론 대결을 진 것은 아니지만.

상호가 아쉬워하며 입맛을 다시는데, 그의 앞에 도미니크와 통역사가 다가왔다.

“교사가 전능할 필요는 없지요.”

검은 손이 상호에게 양복 재킷을 내밀었다. 흙은 이미 털어놓은 채였다.

“전 그저 선생님이 대결이 먼저인지 학생이 먼저인지, 그걸 알고 싶었습니다. 학생에게 손을 댄 건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그제서야 상호는 도미니크가 몰래 자신을 떠보았음을 알아차렸다. 나빛이 기침을 한 건 상호 때문이 아니 었던 것이다.

재킷을 입으며 눈을 끔뻑이는 상호에게 통역사가 말했다.

“결정했습니다. 우리 학생은 강 선생님에게 맡기겠습니다.”

도미 니크는 그 말을 남기고 돌아섰다.

어느새 다가온 해련이 상호의 등과 어깨를 툭툭 털었다.

“어떻게 하죠, 강선생?”

“괜찮아요. 딱히 진 건 아니잖아요.”

“아니, 나 어떡하냐고.”

“……뭐가요?”

상호가 돌아보자 해련이 씩 웃었다.

“강 선생이 자꾸 좋아지는데.”

상호는 못 들은 척했지만, 해련의 손은 먼지 한 톨 남겨두지 않으려는 듯 상호의 양복 위를 샅샅이 훑고 있었다.

해 련은 살짝 호승심 이 솟은 모양이 었다.

“우리도 언제 한 번 겨뤄봐야 하지 않겠어요?”

“제가질겁니다.”

“어머, 내가 저승부대를 어떻게 이겨? 비행기 태우는 건가요? 날 어디로 보내려고 그런담?”

“그런 게 아니고…….”

“아마 내가 강 선생한테 뚫릴 것 같은데.”

“……강기 말씀하시는 거지요?”

“후훗.”

늘 그렇듯, 해련은 인자하면서도 놀리는 듯한 웃음을 지 었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