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6화 (106/501)

* * *

팔부터 떨어졌기에 낙하의 타격은 막았지만, 관성의 충격은 피할 수 없었다. 상호는 평소보다 더 크게 절뚝거리며 빌딩으로 향했다.

학회에 들어와 엘리베이터를 찾고, 민정을 발견했던 층수를 눌렀다. 최하층인 5층.

5층에 다다르자 엘 리 베 이 터 의 문이 열 렸다.

주차장이었다.

‘여긴 아닐 텐데…….’

상호는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아마도 이곳.

그가 서 있는 곳의 바로 아래쪽.

상호는 확신이 들자마자 생각을 실행했다.

콰아앙

검으로 힘차게 찍자 바닥이 진흙더미처럼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다. 상호는 멀쩡한 오른쪽 다리로 바닥에 착지했다.

‘뭐야, 여긴.’

기다란 복도. 푸른색의 무늬 없는 타일이 천장, 벽, 바닥을 무미건조하게 채우고 있었다. 조명도 어째 차가운 빛을 띠었다.

그 복도의 끝에.

금고처럼 생긴 강철 문이 있고, 그 앞에 민정이 서 있었다.

“……서운해, 상호야.”

민정은 웃지 않았다.

그래도 그 눈빛에는 여전히 따뜻함이 깃들어 있었다.

“누나를 못 믿었구나.”

“난원래 아무도안믿어.”

상호는 민정을 향해 다가갔다.

“걱정을 할 뿐이지. 난 누나가 걱정돼서 온 거야.”

“이건 비밀이야, 상호야. 정말로 개인적인…… 비밀이야.”

민정이 손을 들자 마나가 폭풍처럼 휘몰아쳤다.

“너랑은 상관없는 일이니까…… 돌아가 줘. 누나가 부탁할게.”

“나하고 상관이 없으면 누나한테도 상관없는 일이지.”

상호는 검을 짚은 손에 힘을 주었다.

“누나 일이면 나한테도 상관있는 일이고. 우리가 남이야?”

“그럼 상호 너는 나한테 비밀이 없어?”

“없어. 그렇게까지 숨기는 비밀은 하나도 없어.”

“그러면 상호야.”

민정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때, 진짜로…… 자고 있었어?”

상호는 민정의 눈을 보고 살짝 당황했다.

설마 민정도.

‘아니겠지.’

그는 고개를 흔들어 생각을 떨치고 대답했다.

“응. 미안해. 그땐 진짜로…… 자고 있었어. 그래서 기억 안 나.”

“그렇구나.”

민정은 그래도 물러설 기색이 없었다.

“그래도…… 예경이에 대해서는 너도 다 말해주진 않을 거잖아.”

“말해줄게. 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봐.”

“가정사에 대한 것도…… 말 안 할 거 아니야.”

“말해줄게.”

상호는 한 걸음씩 민정을 향해 다가갔다.

“전부 말해줄게. 그럼 돼? 그러면 누나가 대체 무슨 연구를 하고 있는 건지 가르쳐 줄 거야?”

“……아니.”

민정의 얼굴에 희미한 웃음이 떠올랐지만, 눈은 울 것만 같았다.

“미안해, 상호야. 정말 안 돼. 난 이걸…… 너뿐만이 아니라 아무한테도. 정말 죽어도 아무한테도 알리고 싶지 않아 민정의 앞 공간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차라리…… 날 죽이고 가.”

일그러진 공간중앙에서 검은 구체가 나타났다. 구체는 보랏빛 불꽃을 튀기며 서서히 상호를 향해 움직였다.

하지만 상호는 검을 뽑지도. 내공을 운용하지도 않았다.

그저 똑바로 민정을 향해 걸어갈 뿐이었다.

“내가 누나를왜죽여?”

구체도 일정한 속도로 상호에게 접근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상호는 말을 이었다.

“누나가 날 죽여. 그럼 되겠네. 난 안 멈출 거니까그냥죽여.”

“상호야.”

민정은 마른침을 삼키며 구체의 속도를 올렸다.

“누나 화낸다. 누나한테 버릇없이 이럴 거야? 누나는 너한테 비밀이 있으면 안 돼? 누나가 네 여자니?”

“내 여자라고까지는 못하겠지만…….”

이제 구체는 상호의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무형의 압력이 전신을 짓누르는 듯했다.

“우리들은 가족이잖아.”

상호는 눈을 감으며 중얼거 렸다.

“누나도 내 사랑하는 가족이야.”

휘몰아치던 마나가 일시에 사라졌다.

‘뻔하지.’

당연히 이렇게 될 줄 알았다.

상호가 눈을 뜨자 고개를 푹 숙인 민정이 보였다. 그는 태연하게 다가가서 민정을 보듬었다.

“어차피 누나나못때리잖아.”

민정은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바닥으로 무너져 내렸다.

그녀의 입에서 떨리는목소리가새어 나왔다.

“……상호야.”

“응.”

“우리…… 가족인 거지?”

“응.”

“그러면, 저 안에서 뭘 보더라도…….”

목소리에 울음이 섞였다.

“나 버리지 않겠다고…… 약속해 줄래?”

그 정도인가.

상호는 저 안에 뭐가 있는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참혹한 전장을 함께 걸어온 그녀가 대체 무엇 때문에 이런 반응을 보이는지.

그는 민정의 앞에 쪼그려 앉아서, 얼굴을 가린 손을 이끌어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자. 약속.”

민정은 고개를 끄덕이고 옆으로 기어 벽에 몸을 기댔다.

상호는 철제 문을 쳐다보다가 민정을 향해 물었다.

“어떻게 열어?”

그러자 문이 자동으로 열렸다. 민정의 마법이 열쇠인 모양이었다.

그 안으로 들어선 상호는 움찔하며 걸음을 멈줬다. 코를 찌르는 역겨운 냄새가 진동을 하고 있었다.

구토 냄새 같았다.

‘이게 대체…….’

아주 넓고 어두웠다. 마법 학회의 연구실답지 않게 전선이 여기저기 깔려 있었고, 용도를 알 수 없는 파이프도 많았다.

파이프의 끝에는 원통형의 수조가 여 러 개 줄지어 놓였는데, 크기가 상호의 몸통만 했다. 그 안에 둥둥 떠 있는 물체를 본 상호는 민정이 왜 그토록 막아섰는지 단박에 이해했다.

사람의 잘린 머리였다.

‘……뭐야.’

상호는 어안이 벙 벙해하며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민정이 무슨 마음으로 막아섰는지는 이해를 했지만, 민정이 대체 왜 저런 께름칙한 물건을 이곳에 뒀는지, 뭘 연구하고 있는지는 여전히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상호는 여전히 민정을 믿었다.

‘누나가 죽인 건 당연히 아닐 거고. 죽은 사람들 머리를 기증받은 거겠지.’

안쪽에는 좀 더 거대한 수조가 놓여 있었다. 상호의 키보다도 훨씬 컸다. 마찬가지로 원통형의 모양을 한 그 수조에는 사람의 잘린 머리가 아니라 사람이 담겨 있었다.

……아니.

사람이라고 부르기엔 많은 것이 이상했다. 상호는 수조에 가만히 웅크리고 떠 있는 그 존재를 올려다보며 진땀을 흘렸다.

‘이건또뭐야, 시발…….’

전체적으로 여자의 모습을 한 존재였다. 몇 가지 특이한 점을 빼면 인간 여성과 전혀 다를 바가 없었다.

하지만 그 몇 가지가 문제였다.

눈이 없다.

귀도 없다.

코도 없고, 입도 없고, 손가락과 발가락도 없으며 피부는 매끈하고 하얀 무언가로 뒤덮여 있었다.

살아오면서 잔인한 참상을 수도 없이 봐온 상호였지만, 그 존재의 기괴한 형상을 보자 미묘한 불쾌감이 전신을 엄습했다.

그리고 그 존재가 몸을 살짝 꿈틀하며 얼굴을 그에게 향할 때.

상호는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감각을 느낄 수 있는 기관이 없는데도 정확히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아마 진동으로 세상을 느끼는 것이 리라.

그런데도 굳이 눈이 있는 것처럼 고개를 돌린다는 것이, 그 행동이, 정말 인간다워서.

더욱 혐오스러웠다.

그리고 그 혐오가 향하는 곳은.

“누나.”

상호는 민정이 뒤에 다가선 것을 느끼고 입을 열었다.

“이게 대체 뭐야?”

민정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를 돌아보는 상호의 눈에는 불신이 가득했다.

“말해. 대체 무슨 염병할 연구를 하는 거야? 아니, 당신…… 민정이 누나가 맞긴 해? 내가 아는 누나는…… 이런 짓을 할 사람이 아니었어.”

민정이 조용히 웃었다.

그리곤 슬프도록 외로운 눈빛을 지으며.

나직하게 속삭였다.

그러니까 보지 말라고 했잖아.”

< 훔칠 게 따로 있지>

상호는 수조 속의 생물체를 다시 한번 쳐다보았다.

그리고 어떤 사실을 깨달았다.

“누나.”

“응.”

“이거……. 뭘로 만든 거야?”

얼굴 없는 여인의 몸은 어딘가 익숙했다.

무예가의 눈썰미로 알 수 있었다. 몸의 비율이 민정과 많이 닮았다는 것을. 더 어리고, 이목구비는 없지만, 확신할 수 있었다.

“이거, 설마…… 누나야?”

말도 안 되는 질문이었지만 민정은 알아들은 듯했다. 다행히도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게 정말 다행이었을까.

“아니, 복제인간은 아니야. 내 난자로 만든 거야. 유전자로만 따지면 자식도 아니고 자매도 아닌…… 그 중간이라고도 말할 수 없는…… 복잡한 이야기야. 상호 넌 모를 거야.”

“설명해.”

“상동염색체가 뭔지 아니? 그걸 알아야 하는데.”

“……아니.”

상호는 신경질적으로 뒤통수를 벅벅 긁으며 수조 주변을 둘러보았다.

수조 한쪽에는 김이 풀풀 흘러나오는 유리 상자가 놓여 있었다. 아마 무언가를 냉장하는 곳인 듯했다. 그 안의 시험관들에는 투명한 액체가 들어서 아주 작은 점이 하나씩 떠다녔다.

그리고 한쪽 구석에. 상호에게도 익숙한 색깔의 액체가 담겨 있었다.

그 시험관의 라벨에는.

-4월 10일, 남(22)

상호는 날짜와 성별, 나이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만으로 22살.

남자.

그리고 4월 10일은, 마법 공학 발명대회 이틀 전.

상호가 민정의 집에서 자고 간 날이었다.

“누나.”

그날은 유난히 침대가 푹신했었다.

“이거 뭐야?”

“……아니야, 상호야.”

민정의 숨이 가빠졌다.

“네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야…….”

“난자로 만들었다고? 그럼 정자도 썼다는 거 아니야? 그럼 그 정자는 어디서 났어?”

상호는 상자를 맨손으로 단번에 깨부수고 희끄무레한 액체가 담긴 시험관을 들어 올렸다.

“이거. 씨발 이거. 대체 어디서 났냐고.”

처음으로 민정에게 욕을 하는 것이었다.

민정은 손으로 입을 가렸다. 구토를 막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한참이 지나서야 그녀가 입을 열었다.

“……미안해.”

그 말이 대답이 되었다.

상호는 시험관을 바닥에 힘껏 집어 던지고 민정을 향해 걸어갔다.

쨍그랑

끈적한 액체가 묻은 파편이 바닥을 굴렀다.

그 파편의 움직임이 끝날 때쯤, 상호의 손이 민정의 멱살을 잡았다.

둘 다 몸을 파들파들 떨었다.

“누나…….”

상호가 먼저 입을 열었다.

“씨발…… 훔칠 게 따로 있지 정자를 훔쳐? 미쳤어?”

그의 손가락이 수조 속의 생명체를 가리켰다.

“누나 난자랑 내 정자로 저걸 만들었다고? 내 뜻은 물어보지도 않고?”

“아니야, 상호야, 아니야…….”

민정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고개를 저 었다.

“네 유전자는 다 잘라냈어. 정자만 필요했던 거야. 원래는 복제인간을 만들고 싶었는데…… 잘 안 됐어. 그래서…… 더 쉬운 방법을 찾다가…… 내 난자하고, 네 정자에 내 유전자를 붙여 넣어서…… 수정시킨 거야. 네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야…….”

상호의 손에서 힘이 쭉 빠졌다.

하지만 아직 멱살은 놓지 않았다.

“그 말을어떻게 믿어?”

“다 알려줄게. 상호 네가 알아들을 때까지 설명해줄게. 몇 날 며칠이고, 1년이, 10년이 걸려도 상관없으니까, 마법, 과학, 이론이고 실험이고 다 정리해줄게……. 저 아이 유전자 검사도 하고, 정말, 정말로 필요하다면, 네가 다른 전문가를 데려와서 검증해도 좋아…….”

민정이 흐느끼며 무릎을 꿇었다.

상호는 그 말에서 진심을 느끼고 민정의 멱살을 놓았다.

머리 좋은 그녀가 작정하고 속인다면 속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상호는 민정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았다. 언제나 상냥하고, 항상 자신보다 타인을 먼저 생각하는사람임을.

그래서 믿었다.

“누나도 뭔가 이유가 있었겠지.”

상호는 한숨을 쉬며 돌아섰다.

수조의 옆에는 종이와 책이 산더미처럼 쌓인 책상도 놓여 있었다. 뭐라고 적혀 있는지는 도통 알아먹을 수가 없었지만, 상호는 그 종이들을 집어서 훑어보며 민정에게 물었다.

“왜 이런 연구를하는거야?”

“209명째야.”

민정의 고운 얼굴이 일그러졌다.

“5년 동안 209명이 죽었어. 상호야. 이제는 대안을 찾아야 해…….”

“그걸 왜 누나가 신경 써? 협회에서 알아서 처 리하게 놔둬.”

민정이 말하는 바는 상호도 잘 알고 있었다.

“누나. 이제 그 일에선 손 떼. 우리가 그것까지 다 처리해야 돼? 그놈 쓰러트리고, 전쟁 끝내고, 세상도 구했는데 시발 뒤치다꺼리까지 우리가 해야 해? 그건 아니야. 누나. 진짜 아니야.”

“근데 어쩔 수 없어. 상호야…….”

민정은 힘들어 죽을 것 같은 표정으로 목소리를 쥐어짜냈다.

“사람은…… 살려야 해.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야…….”

누군가는 해야 한다.

전쟁 내 내 부대원들과 함께 되뇌었던 말. 상호는 그 말이 항상 옳다고 생각해 왔지만, 오늘은 아니 었다.

“그럼 저건 사람이 아니야?”

상호의 검지가 수조를 가리켰다.

“그릇으로 쓸 거잖아. 그럼 사람이란 뜻이잖아. 사람을 살린다면서, 사람을 만들어서 죽여? 누나. 이리 와봐.”

민정이 눈가를 닦으며 그에게 다가왔다. 상호는 민정을 끌어안고 한 손으로 뺨을 쓸었다.

“누나 지금 이상해. 대가리가 정상이 아니라고. 이딴 말도 안 되는 연구에 파묻혀 살아서 그래. 다 때려치워. 그리고 다시 잘 생각해. 응?”

“……상호야.”

민정은 코를 훌쩍이며 물었다.

“너 누나랑 도현이 오빠가 왜 자주 안 만나는지 아니?”

상호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거기에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니.

“……아니. 몰라.”

“오빠는 나만 보면 그 이야기를 해. 207명, 208명, 209명……. 그러면서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 달라고, 울면서 빌어. 너무 힘들어하면서……. 너한테는 말 못 하지. 예경이 생각날까 봐…….”

전혀 몰랐다.

상호는 뭐라 말을 하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가 닫기만을 반복했다.

민정과 도현이 그런 짐을 짊어 지고 있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민정이 작은 수조, 잘린 머 리들이 떠다니는 수조를 가리켰다.

“저게 그 희생자들이야. 그나마 오래 버틴 사람들. 난 저걸 연구해. 마법으로 투시를 하고, 확대를 하고, 성분을 분석하면서…… 그러다 보면 저 머리가 물속에서 빙글돌아. 그렇게 나랑 눈이 마주치면…… 욱.”

상상만 해도 토가 나온다, 라는 말을 하고 싶었을까.

하지만 민정은 그 말을 하지 못하고 진짜로 토를 했다. 토사물이 상호의 품에 쏟아졌다.

“우욱, 웩…….”

상호는 말없이 민정의 등을 토닥였다.

책상 아래에 대야가 하나 보였다. 연구실에 가득한 토 냄새는 거기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마 평소에도 수없이 구토를 했던 모양이었다. 멈출 수 없는 연구를 계속 이 어나가며.

민정은 토가 흐르는 입으로 숨을 헐떡이며 설명했다.

“네 말이 맞아. 사람을 만들어서, 대신 죽이는 거야. 나도 알아. 말도 안 되는 거……, 그래서, 시각도, 청각도, 미각도 후각도…… 다 없애 버렸어. 촉각도 둔하게 만들었고……. 태어난 순간부터, 살아 있음을 최대한 덜 자각할 수 있도록…… 저렇게…… 만들었어…….”

“……그게 더 잔인하다는 생각은 못 했어?”

상호는 감정을 침착하게 조절하며 나지 막이 물었다.

“누나. 나는 누나보다 멍청하지만…… 이건 누나가 틀렸어. 이번에는.”

“그러면 다른 사람들이 죽는 건 맞니? 상호야, 아무리 곧 죽을 사람, 죽고 싶은 사람. 그런 사람들만 찾아서 그 짓을 한다지만…… 그 사람들의 하루. 한 시간,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거나,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거나, 편안히 쉴 수 있는 시간…… 그 시간을, 저 아무것도 느낄 수 없는 아이의 시간으로 대체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는 일이야.”

“지랄하지 마.”

상호가 욕을 하자 민정이 몸을 움츠렸다.

겁을 먹은 것은 아니고, 아끼는 동생에게 그런 말을 들어서 상처를 받은 모양이었다느 그렇지만 상호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그 아무것도 느낄 수 없는 사람을 만든다는 것 자체가 죄야. 누나. 대장님이 살아 있었다면, 예경이 누나가 살아 있었다면, 그 앞에서 떳떳하게 설명할 수 있겠어? 누나가 여기서 한 일들을?”

“그럼그사람들은어떡해……?”

민정이 소매로 토를 닦으려 했다. 상호는 그 손을 막고 자신의 윗옷을 벗어 민정의 입가를 닦았다.

그러자 민정은 더 서럽게 흐느꼈다.

“오빠는 어떡하고? 그 사람들 가족은 어떡하고? 그 일들을 아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가 있니? 나는, 누나는, 이럴 수밖에 없어, 상호야. 아무한테도 말못 해도, 누구도 이해 못 해도, 나는 이 연구, 멈출 수가 없어…….”

그녀의 눈시울은 빨갛게 부어 있었다.

“상호야, 나 외로워…….”

상호는 그제서야 깨달았다. 민정이 왜 만날 때마다 외롭다고 말했는지.

“누나.”

아무에게도 말 못 할 비밀을 혼자서 품고, 속으로 썩여 왔던 것이다.

그는 민정의 얼굴을 잡고 입술을 가까이 가져갔다. 민정은 당황하며 상호의 가슴팍을 밀었다.

“……상호야?”

“외롭다며.”

“너, 너무 갑자기잖아. 나, 나 방금 토했단 말이야…….”

“상관없어.”

“그리고 너도, 이제 효은이 있잖아…….”

“걔도 뭐라 안 할 거야.”

“안 돼, 안 돼. 상호야…….”

“괜찮아.”

상호는 딱 잘라 말하고 민정에게 입을 맞줬다. 토 냄새가 났지만 참을 만했다.

안절부절못하던 민정도 곧 눈을 감고 그를 받아들였다.

“으음…….”

민정의 몸이 연신 움찔거렸다.

‘미안해, 누나.’

상호는 그녀 몰래 손을 들어 올리고 내공을 집중시켰다. 마나의 움직임을 알아차린 민정이 황급히 입을 떼며 물었다.

“상……?”

물으려 했지만, 상호는 그럴 시간도 주지 않았다. 손바닥에서 천색창염의 강기가 대포처럼 쏘아졌다.

강기는 단숨에 수조에 걸린 방어 마법을 꿰뚫고, 수조를 깨뜨리고, 얼굴 없는 생물체의 머리를 한 방에 날려 버렸다.

고통조차 모르는 삶은 그렇게 끝났다.

민정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아…….”

입맞춤 때문에 방심해 버렸다. 그것만 아니 었으면 막았을 텐데.

민정은 부서진 수조를 올려다보았다.

안쪽에 남은 물에 생물체의 피가 잔뜩 번지는 중이 었다. 머리 없는 생물체의 몸이 천천히 아래로 가라앉았다.

쏟아진 물이 바닥에 흘렀다. 상호는 물에 젖지 않도록 민정을 안아 들고 일어섰다.

“이제 여기 오지 마, 누나.”

상호가 그렇게 말해도 민정은 죽은 생물체를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만감이 교차하는 착잡한 눈빛으로.

“……상호야.”

“응.”

“장례…… 좀 도와줄래?”

“내가알아서 할게.”

상호는 민정을 연구실 문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그리고 그녀를 내려놓은 후. 다시 연구실로 들어가 문을 힘으로 닫아버리고 안쪽을 향해 돌아섰다.

그가 합장을 하자 몸에서 검푸른 불꽃이 피 어올랐다.

‘다음 생에는 진짜 사람으로 태어나길…….’

반짝이는 눈. 오똑한 코, 도톰한 입술을 가지고 태어나기를.

짧게 묵념을 마친 상호는 내공을 본격적으로 퍼붓기 시작했다. 몸에 피어오른 불꽃이 순식간에 방을 집어삼켰다.

녹는 것은 전부 녹았다.

타는 것은 전부 탔다.

그렇게 모든 것을 불살라 없애니, 남은 것은 유리와 금속이 울퉁불퉁하게 굳은 바닥과 그 위에 소복이 쌓인 잿가루뿐이었다.

‘됐나.’

상호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민정은 일어설 힘조차 없는지 여전히 주저앉은 채였5?. 그녀의 촉촉이 젖은 눈이 상호를 향했다.

“가자.

상호는 그렇게 말하며 민정을 안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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