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2화 (102/501)

* * *

“2학기부터는 전투 외 교과가 빠지고 몬스터 관련 수업이 생겨. 그거 알아두고…….”

상호는 일정표를 칠판 옆에 붙이며 말했다.

“월말에는 국제교류로 외국 학생들 와서 3일쯤 묵고. 9월에는…… 외부강사 초청이 많네. 뭐 이런 잡다한 건 너희가 알아서 보고. 추석 지나서 10월 초에 중간평가.

그 다음에 운동회랑 축제 합쳐서 하고…… 11월 초에도 국제교류. 이거는 우리 쪽에서 외국으로 가는 거야. 희망자 중에서 뽑아서. 그리고 3학년들은 괴렵수능 보고. 12월에는 월초에 기말평가, 월말에 방학식. 이렇게가 2학기 일정이야.”

“쌤.”

태화가 책상을 두드리며 이목을 끌었다.

“일정 하나가 빠졌는데요.”

“글쎄.”

상호는 세희의 눈치를 보며 심드렁한 목소리를 꾸며냈다.

보나마나 8월 중순에 일정이 하나 더 있네. 자기 생일이네 어쩌네 할 게 뻔했다.

“야외수업 후에 몬스터 생태학 교과서 나눠줄 거니까, 간수 잘해. 3학년까지 쭉 쓰는 거야. 개정판이 나오면 새로 주겠지만.”

“쌤.”

“옷 갈아입고 나와.”

“쌤…….”

태화는 점점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그를 부르다가. 이내 서운한 표정으로 고개를 푹 떨구고 입을 다물었다.

‘선물을 좀 더 비싼 걸로 사올걸…….’

상호는 속으로는 후회했지만, 겉으로는 매정하게 돌아서서 교실을 나섰다.

* * *

태화는 오전 내내 은근히 따돌림을 당했다.

무시당하고, 말을 끊기고, 구박받고. 상호는 그런 태화를 볼 때마다 손에 땀이 났다. 빨리 이 몰래카메라를 끝내고 머리라도 한 번 쓰다듬어 주고 싶었다.

그래도 세희가 말해 둔 게 있어서 참는 중이었다. 최악의 하루를 만들어 두어야 최고의 하루로 바꿀 수 있다나.

‘저러다울면 어떡하지…….’

상호는 급식소의 교직원 입구에 줄을 서며 한숨을 쉬었다.

옆에 이어진 학생 줄에는 상호의 반 아이들도 서 있었다. 그와 가까운 곳에서 세희, 나빛, 지윤이 깔깔 웃으며 쉴 새 없이 재잘거렸다. 아주 밝은 목소리로.

태화는 멀리 떨어진 곳에 혼자 서 있었다.

풀죽은 표정으로 꼬리를 내리며.

그 모습을 보니 심장이 찢어질 것 같았다. 이게 몰래카메라라는 걸 알기에 망정이지, 몰랐다면 다른 아이들을 크게 혼냈을 터였다.

내년, 내후년에 아이들이 많이 들어왔을 때, 그때 만약 반에 따돌림을 당하는 아이가 있다면 절대로 가만히 두지 않으리라. 상호는 그렇게 다짐하며 옆에서 세희가 나 빛과 지윤에게 하는 말을 들었다.

“준비됐어?”

“응.”

“부르자, 이제.”

셋이 태화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태화야!”

“이리 와. 줄 같이 서.”

태화의 얼굴이 금세 환해졌다.

급기야 눈까지 촉촉하게 적시며 배시시 웃는다. 평소와 다른 여린 표정. 그녀의 실제 성격이 어떤지 알 수 있는 모습이었다.

태화는 꼬리를 주인 만난 강아지처럼 흔들며 아이들에게 쪼르르 달려갔다.

“얘들앙~, 나왔엉~.”

“왜 혼자 서 있어. 빨리 오지.”

“밥 따로 먹을 것도 아니면서.”

상호는 그런 아이들을 보면서 애를 태웠다. 그에게 알려주지 않은 작전이었다.

‘또 뭔 짓을 하려고…….’

그와 아이들은 비슷한 때에 급식소 안으로 들어갔다. 상호는 아이들을 주시했다.

지윤이 배식을 받는 태화의 옆으로 슬쩍 다가서는 것이 보였다.

아마 식판을 엎어 버 리려는 것 같았다.

‘그건 너무심한데…….’

상호는 턱에 살짝 힘을 주며 계속 아이들을 지켜보았다. 만약 태화에게 음식이 쏟아지기라도 하면 재빨리 다가가서 밖으로 데려갈 생각이었다.

이윽고 지윤이 몸을 돌리며 팔꿈치로 태화의 식판을 퍽 쳤다.

“엇.”

식판이 휙 돌아가며 음식을 쏟았다.

태화의 옷에는 하나도 묻지 않았다.

하지만 전혀 다행스러운 일이 아니 었다.

“……아.”

멍하니 식판을 바라보던 태화가 움찔하며 옆을 돌아보았다. 세희가 음식을 뒤집어쓴 채로 태화를 노려보고 있었다.

턱에서 김칫국이 방울지고, 가슴팍에서 고등어조림이 굴러떨어졌다.

그리고 싸늘한 눈빛.

저게 연기인지 아닌지, 상호도 구별이 되지 않았다.

“미…….”

태화는 뒷걸음질치며 떠듬거 렸다. 주변이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했다.

“미안…….”

세희가 옷을 툭툭 털었다.

그리고 무서울 정도로 감정이 없는 무표정을 유지하면서, 식판을 조용히 내려놓고, 급식소 출구로 태연하게 걸어나갔다.

태화에게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아…….”

태화는 당황하며 세희를 따라가려 했지만, 지윤이 꼬리를 붙들어서 그러지 못했다.

“으데 가노? 치우라, 인마.”

“잠깐, 잠깐만……, 세희야…….”

태화의 울먹이는 목소리는 다시 분주해진 급식소의 소리에 파묻혀 버렸다. 상호는 식탁에 앉으며 눈을 질끈 감았다.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또다시 절절하게 깨달은 바가 있었다.

‘세희한테는 정말…… 함부로 장난치면 안 되겠다

〈생일축하해>

상호는 교탁에 교과서를 폈다.

헌터가 죽여야 할 생물인 몬스터에 관한 수업. 몬스터 생태학의 첫 수업이었다.

몬스터 생태학이라 함은, 첫째로 갖가지 몬스터들의 생물학적 특징을 연구하여 분류하고, 둘째로 그렇게 분류된 몬스터들의 생태. 전투 방식, 사회적 행동양식을 조사하고, 셋째로 그 모든 정보를 취합하여 가장 효과적으로 몬스터를 토벌하는 방법을 찾아내는 학문이 었다.

속표지를 넘기고 나니 짤막한 서문이 보였다.

쓴 사람은 도현이 었다.

-이 책을 모든 전사자들에게 바친다.

-내용의 대다수는 나를 비롯한 헌터들의 경험에 의거해 작성되었다. 과학적 사실과는 다소 어긋난 정보가 있을 수 있으니, 비록 교과서라도 온전히 신뢰하지는 말기를 학생 여러분들께 당부드린다.

-더해서. 출판사의 극렬한 반대로 책의 본문에는 싣지 못했으나, 본인이 개인적으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여기 적는다.

-두 발로 걷는 개체보다는 네 발로 걷는 개체가 더 맛이 좋으며. 날개가 달린 개체도 대체로 맛이 훌륭하다. 네 발로 걸으며 날개가 달린 개체는 딱 한 종류뿐인데, 그 또한 아주 맛이 좋았다. 아마 발견하기도 힘들 것이고, 잡기는 더더욱 어렵겠지만, 기회가 된다면 꼭 한 번 먹어 보기를 권한다.

드래곤을 말하는 것이리라. 상호는 저승부대에서 먹었던 용 바비큐를 떠올렸다. 더럽게 커 가지고 뒷다리 하나만 떼어가서 구워 먹었는데. 도현의 말대로 극상의 맛이었다.

‘……아차, 수업 중이지.’

상호는 뒤돌아서 물칠판으로 다가갔다.

초등학생 때까지는 학교에 평범한 칠판과 분필이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분필가루가 애들 몸에 안 좋다는 말이 나오면서 싹 다 물칠판과 물백묵으로 교체가 되었다.

이 물칠판이라는 물건은 일반 칠판과는 다르게, 빛이 반사가 되어 거울처럼 상이 비쳤다. 그래서 상호는 칠판에 글씨를 쓰면서도 뒤쪽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볼 수 있었다.

아이들은 다들 칠판을 쳐다보는 중이 었다.

그런 와중에 태화의 꼬리가 세희를 향해 슬금슬금 다가갔다.

‘저거또혼날것같은데…….’

상호는 1단원의 제목을 칠판에 적으면서도 물칠판에 비친 둘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꼬리가 세희의 허벅지 위로 올라갔다.

하지만 세희는 가만히 교과서를 뒤적일 뿐이 었다. 음식 때문에 얼룩진 옷이 눈에 띄었다.

아무런 반응이 없자 태화는 이번엔 세희의 뺨을 꼬리로 살살 문질렀다.

그러자 세희가 눈동자만 들려 태화를 째려보았다.

“더럽게 뭐해.”

아주 작게 속삭였지만 상호는 들을 수 있었다.

태화가 움찔하며 꼬리를 거뒀다. 그러면서도 그 말은 그냥 넘어갈 수 없었는지, 눈을 살짝 치켜뜨며 마주 세희를 노려보았다.

“더러워? 야, 너 맨날만져 놓고서…….”

“너 그거 땅에 끌고 다니고, 아무거나 막 묻히고 다니고, 화장실 갈 때 씻지도 않잖아. 거기 뭐가 튀었을 줄 알고 안 씻어? 그걸 왜 내 볼에 문지르는데?”

세희는 특유의 또박또박한 말투로 태화를 몰아붙였다. 목소리가 작은데도 힘이 들어가 있었다.

“미안하면 가만히 있지 왜 치근거려? 전에 말했잖아. 선생님 수업하실 때 방해하지 말라고. 1분 1초가 소중하다고. 너 내 말 귓등으로도 안 듣지? 너 나한테 미안하긴해?”

태화의 이마에 핏줄이 솟았다.

“안 미안해. 개년아!”

태화는 그렇게 소리치며 벌떡 일어나서는, 세희를 확 밀쳐버렸다. 세희가 의자 옆으로 넘어져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둘은 서로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그 모습을 다 지켜본 상호는, 물백묵을 내려놓고 허공섭물로 세희를 일으켜 세웠다.

“세희야, 잠깐 나와.”

세희는 문을 향해 걸어가면서도 태화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반면 태화는 세희를 노려보다가. 의자에 앉아서 책상에 엎드려 고개를 팔 사이에 파묻었다.

상호는 세희를 따라 밖으로 나가서, 문을 닫고 한숨을 푹 쉬었다.

“세희야.”

“네.”

“진짜로 화난거……아니지?”

세희는 살짝 후회하는 듯한 눈빛이 었다.

“네.”

“좀 너무했어.”

“네. 그래도…… 이 정도면 충분하니까, 방과후까지 놔두면 될 것 같아요.”

상호는 그 말을 듣고 살짝 안심이 되 었다.

“그래, 믿는다. 들어가자. 혼난 척하고.”

“네.”

세희가 고개를 살짝 숙이고 먼저 문으로 들어갔다.

태화는 여전히 책상에 얼굴을 박고 있었다. 다시 수업을 시작하려고 칠판 앞에 선 상호는 물백묵을 집으며 생각에 잠겼다.

‘내 생일은 절대 말해주면 안 되겠다. 셋이서도 저런데 태화까지 끼면…… 어우, 상상만 해도 끔찍하네.’

* * *

모든 수업을 마치고, 종례 시간이 되었다.

하루 동안 계획한 작전의 성패가 바로 지금, 이 시간에 달려 있었다. 상호는 교탁 앞에 서서 세희와 눈빛을 교환했다.

‘준비됐어?’

‘네.’

둘은 그렇게 뜻을 확인했다.

상호는 착잡한 표정을 지어내며 입을 열었다.

“태화, 세희. 앞으로 나와.”

두 아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향해 다가왔다.

“마주 보고 서.”

서로를 향해 마주 선 세희와 태화.

상호는 둘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둘 다 잘못했다. 그치?”

그가 부드럽게 말해도 두 아이는 다시 서로를 노려보기 시작하는 중이었다.

“세희는 점심에 태화가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 화낸 거 사과하고. 태화는 아까 밀친 거 사과하고.”

다른 누구도 아닌 상호의 말이 었다.

세희는 평소에도 말을 잘 듣는 아이 였고, 태화도 이 럴 때까지 말을 안 듣는 아이는 아니 었다.

하지만 쉽게 사과하지는 않을 줄 알았는데.

“……미안.”

태화가 손을 내밀었다.

“내가잘못했어.”

상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세희도 태화가 이 렇게까지 빨리 사과하리라고는 생각 못 했는지 어깨를 살짝 움찔했다.

그래도 작전은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었다.

철썩

세희가 태화의 손을 쳐냈다.

태화의 몸이 얼어붙었다.

“세희야.”

상호는 화난 목소리를 꾸며 냈다.

“태화가 사과하잖아. 받아주는 것도 아니고 쳐내기까지…….”

“얘가 먼저 잘못했잖아요.”

세희가 눈시울을 붉히며 턱에 힘을 주었다.

“저번에도 그렇고, 이번에도 그렇고…… 항상 얘가 먼저 그런다구요.”

“뭐? 그래서 넌 잘못 없다는 거야?”

상호가 눈살을 찌푸리며 윽박지르자 세희가 휙 뒤돌아섰다.

“…흑!”

그리고 교실 밖으로 뛰쳐나가 버렸다. 가방도, 검도 자리에 놔둔 채.

상호는 당황한 척하며 세희를 따라 교실을 나섰다.

“세희야!”

그리고 문지방에서 아이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기다리고있어. 금방데려올게.”

“네.”

지윤과 나빛이 고개를 끄덕였다. 태화는 말없이 멍한 얼굴로 땅바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상호는 지윤이 자리에서 일어나 태화에게 다가가는 것을 보고 교실 문을 닫았다.

‘이제 됐다.’

급히 계단까지 걸어가자 그 앞에서 세히가 기다리고 있었다. 세희는 상호를 부축하며 계단을 내려갔다.

“어서 가요.”

“잠깐만, 먼저 가 있어. 내 선물 좀 가져오게.”

“저한테 열쇠 주세요. 금방 달려갔다 올게요.”

“아냐, 차에 놨어. 차도 이화관 옆에 주차해 놨다.”

둘은 빠르게 1학년 기숙사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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