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7화 (97/501)

* * *

신앙회 구원교단 본부. 도착해 보니 저녁이었다.

사제가 안절부절못하며 상호를 쫓아왔다.

“신을 영접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방해하지 않는 것이…….”

하지만 사제의 말은 상호의 귀에 단 한마디도 들어오지 않았다.

말없이 복도를 걷다 보니 예배당 문이 보였다. 상호는 사제를 돌아보았다.

“가세요.”

“이렇게 고집부리시면 곤란합니다. 효은수녀님은 지금중요한 

“사제님보다 내가 더 잘 아니까 가세요.”

보이지 않는 힘이 사제의 옷을 잡고 끌어당겼다. 사제는 당황하며 저 멀리 끌려갔다.

“후회할 겁니다! 신께서 천벌을……!”

상호는 그 말을 씹고 예배당 문의 문고리를 잡았다.

안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매하도목을신고리 열 이 길늘하날그고르오을산쪽동씩 명 천가라나섯여 …….”

효은의 목소리였다. 그리고 무언가를 긁는 소리도 들렸다.

상호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뭐야.’

그리고 할 말을 잃었다.

수백 개의 크고 작은 성창이 벽에. 바닥에, 창문에, 의자에 쉴 새 없이 무언가를 새기고 있었다.

유리 긁는 소리, 나무 파는 소리. 돌을 긁는 소리. 온갖 거슬리는 소리가 귀를 가득히 채웠다.

그 사이로 효은의 낮고 빠른 목소리가 들렸다.

“고리 내을 벌 게 에들식 자의 마악아달를개 날지 까람사한막지 마’

상호는 예배당 중앙에 엎드린 효은에게 다가갔다.

흐트러진 백발이 바닥에 흘러내렸다. 이제는 후광이 너무 밝아서 주변에 그림자를 만들 정도였다.

효은은 그가 온 것을 모르는지 양손으로 성창을 잡고 바닥에 글자를 새기는 데 열중하고 있었다.

상호는 효은의 어깨를 뭍들었다.

“효은.”

“ 다도었열을길는하향로으상세른다여하족부이힘그나러그 …….”

“효은!”

아무리 불러도 효은은 방언을 멈추지 않았다.

상호는 이를 갈며 힘으로 성창을 쳐내고 효은을 일으켜 세웠다. 효은이 손을 덜덜 떨며 그를 바라보았다.

아니, 바라보지 못했다.

눈동자가 남아있지 않았다.

“ 고열을길에늘하위늘하워태불로제 번을륙대두…… ”

“나 왔어, 보여? 들려?”

“라노왔아쫓께함지까들세권그와마악매하도인를두모로으곳그… …. 으… …, 으…….”

효은이 신음을 흘리며 귀를 막았다. 무언가 시끄러운 소리를 듣고 있는 듯이.

계시가 귀를 막고, 눈도 보이지 않는다. 상호는 더 늦었다가는 돌이킬 수 없으리란 것을 직감했다.

“효은.”

“ 고삼로으종어끌이로길른바을간인한매우의땅새 …….”

“두 번은 못 해.”

상호의 손이 효은의 뺨을 쓸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는 거, 영영 떠나버리는 거. 두 번은 못 하겠다고. 난 못 한다고. 알아들었어?”

효은은 전혀 안 들리는 듯 방언만 쏟아내 었지만, 상호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절대 너 죽게 내버려두지 않을 거라고.”

예배당 안을 둘러보니 구석에 골방이 보였다. 상호는 효은을 안아 들고 골방으로 향했다.

골방은 효은이 평소에 술을 마시던 곳인 모양이 었다. 아무도 모르는 곳이라 청소가 되어 있지 않아서 바닥에 술병과 꽁초가 굴러다녔다.

술 마시다가 잠에 들곤 했는지 얼룩덜룩하게 포도주로 물든 이불과 매트리스도 놓여 있었다.

“라리하성완을국왕어들만로으국천새을땅새 …….”

“시끄러.”

상호는 효은을 매트리스에 눕히고 자신의 목 단추를 풀었다.

“천국 갈 준비나 해. 그 씨 벌놈의 천국 말고 다른 천국.”

<해줘>

상호는 그의 팔을 베고 잠에 든 효은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이제 빛은 안 나네.’

시작할 땐 골방의 불을 꺼도 효은의 후광이 주변을 은은하게 비줬었다. 몸에는 색소가 거의 남지 않아서, 꼭 반투명한 대리석 조각상 같았다. 남김없이 하얗고, 가장진한 부분도 아주 엷은 분홍빛이 었다.

그 분홍빛 입술에서 쉴 새 없이 방언이 쏟아졌었다. 효은은 매트리스에 축 늘어진 채로 상호가무슨 일을 하던 반응하지 않고 손을 덜덜 떨며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증얼거렸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방언은 점차 당황스런 탄식으로 바뀌었고, 덜덜 떨던 손은 허둥거리며 이불을 움켜쥐었다.

그러기를 몇 시간. 효은은 끝내 지쳐 쓰러졌다.

상호도 딱히 상황이 나은 것은 아니어서, 효은을 따라 몸을 누이고 팔을 내어주며 이불을 함께 덮었다.

‘근육 땡겨 죽겠네, 시바…….’

안 쓰던 근육들을 간만에 쓰니 몸 이곳저곳에서 비명을 질렀다.

‘제대로 했는지도 잘 모르겠다.’

말을 안 하니 알 수가 있나. 그래도 빛이 사라진 걸 보면 어떻게 효과를 보긴 한 모양이 었다.

계속 눌리고 있으니 팔이 저렸다. 상호는 효은을 품에 좀 더 가까이 끌어당겨서 머리가 누르는 위치를 바꿨다.

그러자 효은이 살며시 눈을 떴다.

흐릿한 회색 눈동자가 상호를 바라보았다.

효은은 어딘가가 아프기라도 한지 눈살을 찌푸리며 상호에게 안겨들었다.

그렇게 어리광을 부리는 아이처럼 품에 얼굴을 비비더니, 갑자기 몸을 크게 움찔했다. 벼락이라도 맞은 듯이.

“어?”

효은의 입에서 멍청한 소리가 튀어나왔다.

그녀는 곧 상호의 품에서 튕겨 나와 이불 밖으로 도망쳤다. 그리곤 양손으로 몸을 가리며 다리만 꿈지럭거려서 필사적으로 구석까지 기어갔다.

머리를 망치로 맞은 듯한 표정이었다.

“뭐, 뭐야, 너……?!”

꼴을 보니 잠들기 전의 일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상호가 몸을 일으키자 이불이 내려가고 흉터로 뒤덮인 상체가 드러났다.

“뭐긴 뭐야. 네 약이지.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고 다 했구만, 기억 안 나?”

“……뭐? 뭐? 왜?”

효은이 또 손을 덜덜 떨었다그 하지만 이번에는 이유가 달랐다.

“나, 나 기억 안 나……. 너 뭐야? 왜 그러고 있어? 왜 여기……. 우리 밤새도록 같이 있었어?”

“어.”

“왜?”

“왜는 무슨…….”

상호는 신경질적으로 혀를 찼다.

효은은 얼빠진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다가 바닥을 굴러다니는 술병들을 발견했다.

그녀의 눈에 불똥이 튀었다.

“너 씨발 설마…….”

“아닌뎁쇼.”

“너 진짜…….”

효은이 이를 부득부득 갈며 울먹였다.

“아무리, 아무리 니가 빡대가리라도, 처음…… 처음이라고 그렇게 말했는데, 그거를 이렇게….’

“아니라고요. 지가 처마셔 놓고는…….”

… 기억도 못하게……!”

상호는 한숨을 푹 쉬며 이불을 걷어차고 일어나 효은에게 다가갔다.

“꺄아악! 옷좀입어!”

“너 정신줄 놨었어. 아오……, 그토록 입 아프게 떠들었는데 그걸 또 말해야 하네. 야.”

그는 효은을 번쩍 안아 들며 눈을 마주쳤다.

“이제 같이 살아야 한다고.”

“……뭐?”

효은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구라……치네.”

“구라인지 아닌지는 지금부터 알아보시고.”

“꺅!”

다시 눕혀진 효은이 허겁지겁 몸에 이불을 둘렀다. 상호는 눈살을 찌푸렸다.

“뭐하냐. 기억 안 난다길래 처음부터 다시 해주려고 하는데.”

“시, 싫어.”

그 말에 상호는 멍하니 눈을 끔뻑 였다.

“뭐야, 싫어?”

“나, 나 씻지도 않았고, 화장도 해야 한단 말야, 그리고 향수랑, 머리 세팅이랑 상호가 옆에 누워서 빤히 바라보자 효은의 목소리가 점점 잦아들었다.

“손톱발톱 관리랑…….”

더 가까이 다가갈수록 모기만 해진 목소리로 웅얼거 렸다.

“잘 몰라서…… 방법도 검색해야 하는데…….”

“개잘하던데.”

그 말에 효은이 상호의 얼굴을 후려치며 빽 소리를 질렀다.

“병신아! 말을 해도 꼭……!”

“아니 왜 칭찬을 해도 지랄이야!”

“진짜, 사람 맘 하나도 모르는 새끼…….”

효은은 씩씩거리며 홱 돌아누웠다.

상호는 그녀를 뒤에서 끌어안으며 귀에 대고 속삭였다.

“야.”

“왜. ……윽.”

효은은 이불을 꽉 끌어안고 얼굴을 묻었다.

“……살살해.”

“살살하면 싫어하던데.”

“내 취향을 왜 니가 정해!”

“내가더잘아는것같은데?”

“대체 뭔 짓을 했던…… 끄응.”

갑자기 효은의 말이 뚝 끊겼다.

그 대화를 끝으로, 둘은 조용히 서로에게 자신을 내어주었다.

마음까지, 전부 다.

* * *

“야.”

얇은 이불을 뒤집어쓴 효은이 핸드폰을 만지작거 리며 말했다.

“나빛이한테 부재중 엄청 많이 와 있는데.”

“나중에 연락해야지.”

상호는 수건으로 머리를 털었다. 둘은 예배당 위층에 있는 효은의 방으로 온 참이었다.

“나빛이가 네 문제 때문에 걱정 많이 했대. 다음에 보면…….”

괜찮다고 말해 줘, 라고 말하려다가 문득 생각이 들었다.

그는 이불을 들추고 효은을 찬찬히 뜯어보았다. 효은이 얼굴을 붉히며 짜증을 냈다.

“왜, 변태야.”

“너 상태 괜찮아?”

후광은 없어졌고, 눈동자도 약간 보인다. 하지만 여전히 새하얀 백발에 창백한 피부.

“이제 괜찮은 거 맞아?”

“글쎄.”

효은은 무언가에 집중하는 듯 눈동자를 굴렸다.

“아직도계시는들려.”

“전보단 괜찮아졌어?”

“응. 근데…… 이불 좀 훌렁훌렁 들추지 마.”

상호는 효은의 째려보는 눈빛을 흘려 넘기며 이불을 놓았다.

“거 본다고 닳는 것도 아니잖아.”

“진짜무드 없다, 너.”

“그래서 좋아하는 거 아니었어?”

효은은 대답하지 못했다. 볼만 발갛게 물들 뿐.

상호는 혀를 차며 침대에 걸터앉았다.

“대봐. 또 하자.”

“니는진짜주둥이가…… 에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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