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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후에 설미와 해련이 돌아왔다. 실컷 놀았는지 머리가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해련은 아이처럼 웃으며 파라솔 그늘로 들어왔다.
“어휴, 오랜만에 이렇게 놀아보네. 강 선생도 애들이랑 놀아요, 이제.”
“괜찮습니다.”
“에이, 나도 이제 힘들어. 가서 애들 봐줘야죠. 애들도 선생님이랑 제일 놀고 싶어하는데.”
“그럼…… 다녀올게요.”
상호는 자리에서 일어나 바다를 향해 걸었다.
푸른 바닷물에서 튜브를 타거나, 서핑을 하거나, 물장구를 치는 사람들.
그중에 유난히 화사한 다섯 아이가 눈에 띄었다.
나빛이 다가오는 그를 향해 방실방실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선생님 온다! 선생님~.”
상호의 머리 위로 무언가가 둥실 떠 날아왔다. 그의 주변 땅에 그림자와 물이 섞여 흔들렸다.
위를 올려다보니 방어막에 물이 한가득 담겨 있었다.
“……나빛아?”
“헤헤.”
나빛은 멋쩍게 웃더니 상호에게 물을 확 끼얹어 버렸다.
폭포처럼 쏟아진 물벼락이 상호의 머리와 어깨를 때렸다.
콰아아아
“푸웁……. 콜록, 콜록.”
상호는 기침을 하며 양손으로 얼굴을 닦았다.
머릿속이 한 가지 생각으로 가득 찼다. 이걸 어떻게 갚아줄까.
‘……던지자.’
그가 내공을 뻗자 바다에 있던 아이들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우왓, 쌤! 쌤! 저희는 왜요!”
“서, 선생님, 왜 은율이까지…….”
“쌤 빡쳤는갑다, 나빛아. 다 뒤짔다 이제.”
“선생님한텐 죽어도 돼. 헤헤…….”
“아이씨, 몰라, 난 도망친다! 켁!”
“어딜 혼자만 내빼.”
세희가 순간이동으로 도망치려는 태화의 꼬리를 붙잡았다.
수면 위로 몇 미터를 떠오른 아이들은 상호가 내공을 거둠과 동시에 바다로 다이빙을 당했다.
“꺄아아악!”
다섯 아이는 바다에 첨벙 소리를 내며 빠졌다.
살짝 바닥에 가라앉았던 아이들은 금세 수면 위로 고개를 내밀며 머리를 털거나 폭소를 터트렸다.
“꺄하하!”
“으엑, 코에 물 들어갔어!”
“마, 세희야. 쌤도 한번 담가뿌자.”
“응.”
지윤과 세희가 상호를 향해 달려왔다. 은율도 세희의 뒤를 따랐다.
상호는 아이들이 자신을 들어올리는 것을 가만히 내버려두었다.
“살살해.”
“물론이지예.”
말은 그렇게 하지만 지윤의 팔근육은 올록볼록하게 올라와 있었다.
“마지막으로 남길 말 없습니꺼?”
“살살 하라고…….”
“알았으예. 아부지 만나면 안부 전해 주이소.”
“……뭐?”
이게 무슨 미친 소리인가.
상호는 당황하며 아이들을 떼어내려고 했지만, 지윤이 그를 든 채로 펄쩍 뛰어 바다에 메다꽂았다.
그리고는 꽉 끌어안고 물속으로 끌고 들어갔다.
‘아니 염병…….’
얼이 빠진 와중에 처박혀서 폐에 숨이 없었다. 귓가에 성철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했다.
상호는 지윤을 밀어내고 필사적으로 수면 위로 올라와 숨을 몰아쉬었다.
“……푸우!”
간만에 느껴 보는 생명의 위협이었다.
“와하하핫!”
뒤이어 물 위로 올라온 지윤이 호탕하게 웃어젖혔다. 상호는 방금 들었던 웃음소리가 지윤이 물속에서 웃는 소리였다는 걸 깨달았다.
아버지를 꼭 닮아 있었다.
‘진짜 저승 가는 줄 알았네.’
상호는 고개를 흔들며 정신을 차리고 아이들을 향해 물을 뿌렸다. 힘이 잔뜩 실린 물보라가 세차게 아이들을 때렸다.
“아야! 쌤! 아파요!”
“수련이야, 인마. 알아서 피해.”
“우씨…… 하나빛! 방어막! 천세희! 몸통박치기!”
“명령하지 마, 바보야.”
상호는 그렇게 몇 시간씩 아이들과 물놀이를 했다. 그 자신의 예상보다 훨씬 열심히.
< 나 항상 그대를 (여기서부터 유료 연재입니다) >
여름의 긴 해도 이제 슬슬 저물어 갔다. 그래도 아이들은 바다에서 놀았다. 평소에 체력을 단련했기 때문일까, 예전보다도 훨씬 오래 노는 것 같았다.
상호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튜브 위에 누워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아이들에게 좀 쉬겠다고 말해놓은 참이었다.
갈매기 몇 마리가 하늘을 날았다.
‘새만 보면 잡아 죽였던 때가 있었지…….’
저승부대에서 아무거나주워 먹었던 시절. 산짐승 들짐승은 찾아다니기가 영 힘들었지만, 새는 쉽게 볼 수 있고 맛도 퐇았다.
‘소금만 어떻게 구하면 진짜 맛있었는데…….’
상호는 군침을 삼키며 갈매기를 올려다보았다. 물론 지금 먹으면 치킨보다 맛없을 터였다.
그렇게 옛 생각에 젖어있는데 옆으로 누군가가 다가왔다.
“선생님.”
튜브에 탄 세희였다.
상호는 세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응?”
“쉬러 왔어요.”
다른 아이들은 뭘 하고 있는지 봤더니, 나빛의 보호막을 타고 모터보트처럼 바다를 누비는 중이었다.
“애들이랑더안놀고?”
“많이 놀았어요.”
하긴 세희의 기준으로는 충분히 놀았을 터였다. 상호는 고개를 끄덕이고 세희와 함께 바다에 떠다녔다.
눈이 살살 감기려 하는 찰나에 세희가 물었다.
“선생님.”
“응?”
“천색창염은 초식이 없어요?”
놀러 와서도 배울 생각만 하는 모양이 었다.
“없어. 그땐 누굴 체계적으로 가르치려고 만든 게 아니 었으니까.”
“그러면 선생님이 만드실 생각은 없으세요?”
“뭔가 더 배우고 싶어서 그래?”
“네.”
대체 이 아이는 칼을 안 잡았으면 뭘 하고 살았을까. 상호는 쓰게 웃었다.
“몸을 움직이는 초식은 없지만…… 강기를 운용하는 기술은 있지. 근데 내공이 너무 많이 필요해서 너한텐 불가능그는 거기까지 말하다가 세희의 실망 가득한 눈빛을 보고 말을 바꿨다.
“……하겠지만, 네가 배우고 싶다면야 선생님이 방법 찾아서 가르쳐 줘야지.”
그러자 세희의 안색이 환해졌다.
“정말요?”
“응. 너한테 기술 쓸 수 있을 정도만큼 내공을 줄게. 대신 그 내공은 그날그날 바로 돌려받을 거야.”
“그럼요.”
세희가 발로 물장구를 치며 그에게 다가왔다.
“언제부터 가르쳐 주실 거예요?”
“당장은 안 돼. 너 단전부터 키워야지. 그게 시간이 좀 걸릴 거야.”
“그럼 그건 언제부터 해요?”
“너 좋을 때.”
“전 언제든 좋아요.”
“그럼 오늘 저녁 먹고 나서 할까? 밤에 바닷가 나와서.”
“네.”
세희는 데이트 약속이라도 잡은 것처럼 볼을 붉히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