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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동부는 이대륙과 연결되어 있다.
일본을 관통하고 들어온 아르게스의 땅 끝자락이 강원도 남쪽에 닿아서, 지금도 그 주변은 몬스터가 자주 출몰하는 금지구역이었다. 다혜가 죽은 곳도 그 주변이었다.
때문에 동해에 위치한 해수욕장은 상당수가 문을 닫았고, 동해 최남단에 위치한 일부 해수욕장들만이 헌터의 보호 아래 제한적으로 개장을 하고 있었다.
그중 가장 큰 곳이 해운대였다.
‘……사람 참 많네.’
상호는 해변을 쓱 둘러보았다. 전쟁 전보다는 확실히 수가 줄었지만, 여전히 인산인해를 이뤘다.
동해 해수욕장의 특징은 일행 중에 프로 헌터가 있어야 입장할 수 있다는 것.
때문에 보통 사람들은 주로 서해, 남해의 해변에서 피서를 즐겼다.
허나 올 사람들은 어떻게든 왔다. 인터넷에서 헌터 동행을 찾거나 하는 방식으로. 덕분에 모래사장에는 빼곡하게 사람들이 들어차 있었다.
상호는 탈의실을 멀뚱히 쳐다보았다.
‘언제 나온대냐.’
그는 파라솔과 돗자리를 들고 탈의실 앞에서 기다리는 중이었다.
왼쪽 다리에는 스판으로 된 발토시를 했고, 물에서 놀면 거추장스러울까 봐안대도 벗어 두었다. 검도 물이 닿으면 안 되니까 차에 두고 왔다. 대신 지팡이를 짚고 있었다.
한참이 지나서야 그녀들이 우르르 걸어 나왔다.
“쌤~! 여기! ……우왓.”
“어머, 강 선생.”
태화가 눈을 동그랗게 떴고, 해련이 쿡쿡 웃었다.
“몸이 흉악하네.”
제법 근육질이긴 했지만 그런 뜻으로 말한 게 아니었다. 온몸을 뒤덮은 흉터때문이었다. 크고 작은 흉터가 가슴팍, 배, 어깨와 등과 팔뚝에 나 있었다.
전부 전쟁 중에 생긴 것들. 상처가 나도 성력 치료를 받으면 흉터가 남지 않지만, 효은과 다른 작전에 투입되는 때에는 치료를 받지 못했었다. 그렇게 남은 흉터가 셀 수 없이 많았다.
상호는 해련의 허리에 난 흉터를 흘끗했다.
“교장선생님도 대단하십니다.”
“몸매가?”
“아니요…….”
또 놀린다. 상호는 혀를 내두르며 해련이 살짝 옆으로 도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역시나 등에도 흉터가 보였다. 허나 전혀 가리지 않고 당당히 내보이는 중이었다. 하얀 수영복 차림으로.
그녀의 원래 나이를 생각하면 너무 안 가려서 문제인 것 같기도 했다. 겉으로 보기엔 어울렸지만.
“빨리 가서 자리 잡죠.”
상호는 돌아서서 모래사장으로 걸어갔다.
***
파라솔을 꽂고 돗자리를 깔고. 짐을 다 풀고 자리를 잡으니 태화가 평소처럼 헛소리를 했다.
“에~ 지금부터 미스 예현여고 심사가 있겠습니다~.”
“얌마, 빨리 가서 물놀이나 해. 물놀이 하고 싶다고 그렇게 노래를 불렀으면서…….”
“어허! 사람 말할 땐 눈을 보세요! 정수리만 보지 말고!”
상호는 그 말대로 눈을 아래로 내리지 않는 중이었다. 아주 많은 이유가 있었지만, 당장에 제일 큰 이유는 바로 옆에서 효은이 빤히 지켜보고 있기 때문이었다.
“빨리 가, 가. 은율이 데리고 잘 놀아.”
“등에 썬크림 발라주세요.”
태화가 능청스럽게 수영복 끈을 풀려고 했다.
그 말에 세희가 손바닥에 선크림을 뭉텅이로 짜더니 태화의 등짝을 힘껏 후려 쳤다. 무슨 채찍 휘두르는 소리가 났다.
쫘아악
“끄엑!”
“됐다. 가자.”
“아이씨, 끼어들지 마……, 이익! 넌 또 뭐야!”
분통을 터트리는 태화를 지윤이 번쩍 들어올렸다.
“다녀올게예.”
“가자~!”
나빛도 밝게 웃으며 은율을 바다로 밀었다.
다섯 명의 아이들이 바다를 향해 뛰었다. 한 명은 네 명의 손에 들린 채로.
그 한 명이 바다에 처박히자 해련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설미 선생님. 우리도 같이 가서 애들 보죠.”
“네? 아, 네…….”
설미는 자리에 남고 싶은 듯했지만, 해련의 말을 거역할 위치가 못 되었다.
해련은 아이들을 향해 걸어가며 상호를 향해 눈웃음을 쳤다. 전우끼리 즐거운 한때를 보내라는 뜻 같았다.
상호는 입맛을 다셨다.
‘덕분에 편히 쉬겠구만.’
애들은 이제 설미와 해련이 돌볼 테니 신경쓰지 않아도 될 터였다. 그는 그때서야 여유를 갖고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세희는 프릴이 달린 연분홍색 원피스 형태의 수영복을 입었다.
태화도 원피스 수영복이었다. 빨간 바탕에 검은 끈으로 장식된 물건. 평소 하는 짓을 봐서는 비키니라도 입을 줄 알았는데 의외였다.
허나 태화가 뒤로 돌자 상호는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옷의 아래쪽이 엉덩이 골이 보이기 직전까지 아슬아슬하게 파여 있었다. 다행히 보이지는 않았다. 꼬리로 가려져서.
하긴 저것 때문에 바지도 못 입는다고 했는데, 제대로 입지도 못할 비키니를 입고 바다에 들어갔다가는 어떤 참사가 벌어질지 안 봐도 뻔했다.
나빛은 남색과 하얀색이 섞인 래시가드.
지윤은 혼자 배가 보이는 검은색 투피스형 수영복이었지만, 평소 운동하는 옷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갈색 피부가 바다와 퍽 어울렸다.
은율 또한 하얀 원피스형 수영복으로, 딱히 튀는 복장은 아니었지만 키가 커서 그런지 모델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그녀는 교복을 입었을 때도 그랬다.
“어딜 봐?”
상호는 멍을 때리다가 옆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효은이 오일 통을 내밀고 있었다.
“발라.”
효은은 검은 비키니를 입고 있었다. 그녀가 돗자리에 엎드려 등의 끈을 풀었다.
상호는 효은의 맨살에 손을 대는 것은 딱히 거부감이 없었다. 그래서 손에 오일을 바르며 물었다.
“이거 태닝할 때 쓰는 거 아니야? 살 태우게?”
“바보야, 난 살 안 타.”
효은이 피식 웃었다.
“나빛이도 선크림 필요 없는데 발랐더라. 아직 잘 모르나 봐.”
상호는 효은의 등에 오일을 바르며 그녀의 머리카락을 보았다.
검은색으로 염색했던 머리가 색이 많이 빠져 있었다. 뿌리도 새하얗게 올라온 채였다.
“염색을 했는데도 색이 빠지네.”
“생명활동 같은 게 아니니까. 저주지, 저주.”
“지금 눈은 렌즈지?”
“응.”
효은의 피부는 무섭도록 창백했다. 백지장처럼 하얗단 말이 과장이 아닐 정도로.
머리카락은 염색. 눈동자는 렌즈. 원래대로라면 그녀의 외모에 남아있을 색소는 단 하나. 적혈구뿐이었다.
그나마도 이제는 사라져 가는 것 같았다.
상호는 어릴 때 책에서 읽었던 내용을 떠올리며 물었다.
“너 눈은 잘 보이냐?”
투명인간은 앞을 볼 수 없다고 했던가. 이 경우는 투명한 게 아니라 하얀색이지만, 정상적인 기능을 하지는 못 할 것 같았다.
효은은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
‘제멋대로야, 아주 그냥.’
그도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묵묵히 오일을 발랐다.
“됐다.”
꼼꼼하게 다 발랐다. 상호는 오일 통을 닫고 효은의 옆에 내려놓았다.
효은은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팔에 얼굴을 묻고 엎드려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설마.’
상호는 덜컥 겁이 나서 효은의 머리를 살짝 돌려 얼굴을 확인했다.
눈을 감고 새근새근 숨소리를 낸다. 아마 잠에 들은 듯했다.
‘씨바, 괜히 사람 걱정시키게 만들고…….’
생각은 그랬지만, 손은 효은이 깨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등의 끈을 묶어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