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1화 (91/501)

***

허름한 집이었다.

잘도 이런 곳에 집을 지었구나 싶을 정도로 좁은 골목, 작은 땅. 낮은 지붕에 구석진 그늘.

아이 다섯을 키우기에는 너무도 부족한 넓이였다.

주택이라면 그래도 아파트보다는 넓어야 건물을 세우는 의미가 있을 텐데, 이 집은 그보다도 좁아 보였다. 주변에 비슷한 주택이 많은 걸 보니 아마 나라에서 안 쓰는 땅을 조각조각 모아 싸게 지어 준 집 같았다. 개벽 때 집을 잃은 사람들을 위해.

상호가 주차를 마치고 집을 쳐다보자 지윤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작지예?”

“작긴…… 작네. 어떻게 다섯 명이 사는지 궁금할 만큼.”

“아직 어리니까예. 큰애가 슬슬 사춘기긴 한디…… 그것 말곤 괘안습니더.”

상호는 지윤과 함께 집으로 다가갔다.

지윤이 열쇠로 현관문을 열었다. 그러자 안에서 누군가가 뛰쳐나왔다.

“누나!”

“언니야~.”

대여섯 살쯤 되어 보이는 남매들.

남자아이 쪽은 성철을 닮았고, 여자아이 쪽은 지윤을 닮았다. 피부색과 근육만 빼고.

지윤은 다리에 안겨든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잘 있었나.”

“으응.”

아이들은 지윤의 다리에 얼굴을 비비다가 눈을 끔뻑이며 상호를 쳐다보았다.

이제야 그의 존재를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두 아이의 입에서 동시에 한 단어가 튀어나왔다.

“아빠?”

‘응?’

상호는 선 채로 굳어 버렸다.

지윤이 당황하며 손사래를 쳤다.

“아, 아니다, 마. 아빠가 아니라…….”

“엄마아~. 누나가 아빠 데려왔어어…….”

아이들이 안으로 쪼르르 뛰어가며 소리쳤다. 주방에서 한 여인이 걸어 나왔다.

40살쯤 되었을까. 마른 몸에 구부정한 등. 푸석한 머릿결, 초췌한 표정. 지친 얼굴. 해진 옷과 낡은 앞치마.

허나 눈빛 속에 깃든 한 줄기 강인함이 여인의 성격을 짐작케 했다.

“아, 선생님.”

지윤의 어머니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상호도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어머님. 강상호라고 합니다.”

“들어오세요.”

안에서는 김치찌개 냄새가 났다. 성철의 말대로 상당히 맛있을 것 같았다. 먹지는 못하겠지만.

지윤의 동생들은 여전히 상호를 아빠인 줄 아는 모양이었다. 아이들이 상호의 다리에 달라붙었다.

“아빠…… 아빠 어디 갔다 왔어?”

“아빠 눈은 왜 가렸어?”

“어…….”

곤란해하는 상호를 지윤이 구해주었다.

“아빠 아니다.”

“그럼 누구야?”

“매형이라는 기다. 지영이한테는 형부.”

구해주는 게 아니라 조져버리려는 모양이었다. 상호는 지윤의 어머니의 눈이 큼지막해지는 것을 보며 고개를 푹 숙였다.

“지윤아, 장난치지 마….”

“아이, 어린아들인데 뭐 어떻습니꺼.”

지윤은 씩 웃어 보이고 어머니에게 가서 안겼다.

“어무이, 저 왔심더.”

“그래.”

지윤의 어머니가 지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별일 없었고?”

“예. 지훈이랑 지예는예?”

“지훈이는 놀러 갔고. 지예는 방에.”

“아따, 호로새끼 밥 먹을 땐 어무이 도와달라니까. 찌개는 다 되었어예?”

“응, 너 먹던 대로 끓였지.”

“쌤이랑 이야기하이소. 그동안 지가 차려놀게예.”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식사 쪽으로 흘러간다. 상호는 급히 입을 열었다.

“어머님, 저는 밥 먹기 전에 돌아가야 해서 잠시…… 이야기 좀 가능할까요?”

지윤의 어머니의 시선이 상호에게 향했다. 정확히는 그의 안대와 검에.

몸에 남은 전쟁의 흔적에.

“그래요.”

지윤의 어머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상호는 그녀와 함께 작은 방으로 향했다. 지윤의 어머니의 손이 닫힌 문을 똑똑 두드렸다.

“지예야. 나와. 엄마 선생님하고 이야기 좀 하게.”

그 말에 문이 열리고 어린 소녀가 고개를 빼꼼히 내밀었다. 열 살쯤 되어 보였다.

소녀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누구……세요?”

“언니 선생님. 어서 나와. 바쁘시대.”

“네.”

지예는 잠옷을 입고 있었는지 문을 닫고는 잠시 후에 나왔다. 상호는 빈 방에 지윤의 어머니와 함께 들어섰다.

여자들이 쓰는 방 같았다. 화장대도 있고, 아이들 물건도 있고. 안방이 따로 없이 여자 방, 남자 방을 나눠 쓰는 모양이었다. 방의 대부분을 침대와 옷장이 차지하고 있었다.

“선생님, 차를 좀 내올까요?”

“아니요, 급해서 금방 가야 합니다.”

상호는 바닥에 자리를 잡았다. 지윤의 어머니가 그를 마주보고 앉았다.

방의 한쪽에 부부의 결혼사진이 걸린 게 보였다. 그곳에는 둘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오성철과 권정애.

상호는 그 사진을 곁눈질하며 입을 열었다.

“지윤이한테 반지 이야기 들으셨지요?”

정애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상호는 말을 이었다.

“형수님께 전해드릴 말이 있어서 왔습니다.”

어머님이 아니라 형수님.

지윤은 학비 걱정도 없고 사고도 안 치는 아이다. 그런 지윤의 집을 굳이 찾아온 이유.

상호는 바싹 말라가는 입을 겨우 열었다.

“형님이 그 말만 전해달라 했어요. 미안하다고. 안 빠지는 결혼반지 억지로 빼서 주면서…… 미안하다, 그 말밖에 못 했어요. 그걸 꼭 알려 드리고 싶어서…… 형수님 바쁘신 거 알지만, 이렇게 잠깐이라도 뵈러 왔습니다.”

정애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아마 원망하고 있으리라. 지윤을 처음 만났을 때처럼. 상호는 그 마음을 십분 이해하고 그녀가 입을 열 때까지 가만히 기다렸다.

이윽고 정애가 물었다.

“죽은 건가요?”

상호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네.”

“곁에서 지켜봤나요?”

“네.”

“죽은 건가요?”

되풀이되는 질문에 상호는 눈을 감았다.

‘……기다리고 있었구나.’

“예.”

“……알았어요.”

정애는 숨을 한 번 크게 들이키고 의연한 눈빛으로 말했다.

“고마…….”

말하려 했다.

허나 차오르는 눈물에 말을 잇지 못해 고개를 푹 숙이고, 어깨를 가늘게 떨며 흐느꼈다.

“윽, 으……흑…….”

“형수님.”

상호는 그녀를 위로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그 때 문이 벌컥 열리더니 아이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아이들은 당황한 상호를 지나쳐 정애에게 달려갔다.

“엄마, 엄마 왜 울어? 울지 마…….”

“누나아! 매형이 엄마 울렸어!”

“아저씨 누구예요? 왜 우리 엄마 울려요?!”

주방에서 지윤이 소리쳤다.

“쌤! 저 지금 못 갑니데이. 애들 좀 달래 주이소.”

“어, 어, 그래.”

밥 차린다고 못 오는 모양이었다. 상호는 서투른 손길로 제일 어린 두 아이를 안고 등을 다독였다.

귀 옆에서 기차 화통 터지는 소리가 났다.

“빼애애앵!”

‘환장하겠네…….’

상호는 진땀을 흘렸다.

“얘들아, 울지 마, 울지 마. 뚝…….”

“떼에에엥!”

“아저씨 이상한 사람 아니야. 애초에 아저씨도 아니고…… 너희 울면 어머니도 더 우셔. 착하지, 응?”

“뿌애애앵!”

“하아…….”

우는 아이 셋과 우는 여인 하나를 앞에 두고, 상호는 한숨을 푹푹 쉬어가며 두 손과 내공을 뻗어 모두의 등을 토닥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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