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8화 (88/501)

***

7월 초의 여름밤.

달빛과 가로등만 남은 세상. 이따금씩 보이는 편의점 외에는 모든 가게의 불이 꺼져 있었다.

그 가로등 아래 후텁지근한 밤거리를 청년과 소녀가 나란히 걸었다. 둘 다 반팔에 반바지 차림으로 손에 아이스크림을 들고 있었다.

상호는 세희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너무 덥다. 나오지 말 걸 그랬나?”

“저는 괜찮아요.”

멀지 않은 곳에 작은 공원이 보였다.

적적한 한밤중이라 아무도 없었다. 상호는 세희와 함께 공원 벤치에 앉았다.

더울 텐데도 세희는 그의 옆에 꼭 붙어 앉았다.

‘뭐부터 말해야 하나…….’

상호는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곧 그의 입이 열렸다.

“세희야.”

“네.”

“옛날에 말했지? 선생님 부모님 돌아가신 거.”

“네.”

평범한 아이라면 숙연해졌을 이야기도 세희는 담담하게 받아주었다. 상호는 그런 점이 좋았다.

“개벽 때 동해 쪽이 지진이 컸잖아. 이대륙이랑 맞닿아 가지고……. 그때 지진 때문에 부모님이 돌아가셨거든. 선생님 집이 동쪽이라서.”

세희는 아이스크림을 베어물며 조용히 들었다.

“그 때 친구들도 많이 죽었는데, 한 녀석이 살아서 나랑 만났어. 우리는 서쪽으로 가려고 했지. 일단 사람 많은 곳으로 가면 답이 나올 것 같았으니까. 실제로도 그쪽은 좀 사정이 나았고. 그래서 먹을 거 좀 구해서 서쪽으로 걸어가 는데…… 몬스터를 만난 거야.”

세월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기억이었다.

“다행히 약한 놈들이었어. 고블린 세 마리. 그놈들도 개벽 때문에 정신을 못차리고 있었고. 덕분에 짱돌 주워서 죽어라 싸웠고…… 이겼지. 뭐 당연히 이겼으니까 내가 지금 여기서 너한테 이야기를 해 주고 있는 거겠다만.”

상호는 피식 웃고 말을 이었다.

“그 후로도 걸어가면서 몬스터들을 만났어. 작은 놈들하고는 싸우고, 큰 놈들은 피하고. 나랑 친구는 그 때 생각했어. 아 이거다. 저 괴물 잡는 사람이 필요하겠구나. 아마 군대가 잡겠지. 군대 가면 밥도 주고 재워도 주겠지. 군대나 가야겠다, 하고.”

“그래서 입대하셨어요?”

“바로는 아니고. 일단 수도권까지 가고 나니까 난민이 많이 있더라. 거기서 친구하고 이것저것 주워먹고 살다가…… 나라에서 사람을 모았어. 몬스터죽일 사람.”

“군대는 아니었던 거예요?”

“군대 비슷한데 군대는 아니었지. 정식으로 편제가 된 게 아니었거든. 그냥 집 잃은 사람, 돈 없는 사람 잠깐 먹여주고 재워줄 테니까 군인들이랑 같이 몬스터 잡으라는 뜻이었지. 거기서 원하는 사람은 군인이 되고, 싫은 사람은 떠나고. 나랑 친구는 물론 남았지. 그때가 개벽 후 세 달쯤 되는 때였나.”

세희는 그의 말에 한껏 집중한 표정이었다.

상호의 눈이 하늘에 있는 달을 향했다.

“그렇게 군인이 되고…… 가끔씩 도시로 오는 몬스터들을 잡으면서 살았어.

그때 보였던 놈들은 다 총으로 잡을 수 있는 잔챙이들이었거든.”

“……잠시만요.”

이야기를 듣던 세희가 갑자기 흠칫하며 물었다.

“선생님 그 때 몇 살이었어요?”

“15살.”

“15살에…….”

세희는 할 말을 잃었다. 상호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땐 그랬어. 죽은 사람도 많고, 일손도 많이 필요한데 도망치는 놈도 많고.

그렇다보니 총 쏠 수 있으면 어린애든 누구든 상관없었던 거지. 설령 애한테 총을 들려주는 게 위험하다 하더라도…… 몬스터가 도시로 들어오는 게 훨씬 더 위험한 일이었으니까.”

“그래도 지금 저보다 두 살이 어렸다는 거잖아요.”

“그만큼 힘들었던 거지. 세상이.”

세희의 눈이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저보다 어린 선생님이 상상이 안 돼요.”

“사진 봤잖아. 그게 1년인가 2년인가 후야. 아, 그거 얼굴 가려져 있지, 참.”

상호는 머쓱해서 뒤통수를 긁적였다.

“어쨌든 그렇게 입대를 했다가 반 년쯤 후인가. 평소처럼 명령을 받고 출동했는데…… 총으로 안 잡히는 몬스터를 만난 거야.”

“어떤 몬스터였어요?”

“인간형이었는데 얼굴이 개 해골 같았어. 팔은 사마귀마냥 손 대신 칼이 달렸고. 전체적으로 하얀색. 털은 없고.”

그 팔에 달린 칼날이 아주 날카로웠었다.

“처음 봤을 때는 당연히 총이 안 먹는 놈인지 몰랐지. 그래서 그냥 다 같이 쐈어. 아무 생각 없이. 웃기까지 하면서. 근데 그놈이 총성을 듣고 우리를 보는 거야. 죽지는 않고.”

그것이 화근이었다.

놈은 조준을 할 수 없을 만큼 빠르고, 총알을 튕겨낼 만큼 단단했다.

“지금이야 그놈보다 훨씬 빠른 놈도 날파리 잡듯이 잡지만……. 그때는 진짜 충격적이었어. 무슨 원숭이 나무 타듯 건물 사이를 폴짝폴짝 뛰어오는데 말도 안 되게 빠른 거야. 다들 그놈한테 탄창 하나를 다 썼는데…… 탄창을 갈다가 그 생각이 딱 들더라. 가만히 총 쏘고 있으면 안 되겠다. 이러다가 다 죽는다. 하고.”

“도망치셨어요?”

“응.”

세희에게는 상상이 안 되는 모양이었다. 그 누구보다도 강한 선생님이 몬스터에게서 도망치는 모습이.

“몬스터가 많이 강했나 봐요.”

“아니, 지금 기준으로는 딱히 그렇지도 않지. 너 정도면 충분히 잡을 수 있는 놈이었어. 다만 일반인의 시선으로는 그랬다는 거야.”

그때는 가장 강한 헌터도 세희보다 약했을 시기였다. 상호는 말을 이었다.

“그래서 뿔뿔이 흩어져 도망쳤어. 분대원 열 명이 제각각 방향으로. 나도 죽어라 뛰었지. 근데 뒤에서 비명이 들리는 거야. 친구 비명이.”

“고향 친구요?”

“응. 같은 분대에 들어갔었거든.”

그 말에 세희가 그의 손을 잡았다. 상호는 피식했다.

“괜찮아.”

“그래서…… 어떻게 됐어요?”

“돌아보니까 친구가 잡혔더라. 그리고 순식간에 죽었어. 뭘 해볼 새도 없이.”

굳이 머리가 날아갔다는 묘사는 하지 않았다.

“근데…… 돌아본 게 나 혼자더라. 다른 분대원들은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쳤더라고. 뒤쳐진 건 나 혼자였고…… 놈이 날 봤지.”

그는 다 먹은 아이스크림 막대기를 내공으로 불사르고 그 불꽃을 들여다보았다.

“그 짧은 순간 많은 생각이 들었어. 웃던 친구가 죽고……. 그 전까진 다 총으로 해결이 됐으니까,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안 했거든. 근데 정신을 차려보니까 그놈 칼이 내 눈을 찌르고 있더라.”

“아…….”

“그렇게 죽었다 싶었을 때…… 그 녀석이 반으로 갈라졌어. 머리부터 가랑이까지. 완전히 두 쪽으로.”

왜 그랬는지는 너무도 명백했다. 세희가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그분……인 거네요.”

“응.”

상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엔 사람 모습을 한 몬스터인 줄 알았지. 생각해 봐. 내가 방금 총으로 쐈는데도 멀쩡한 놈을, 웬 누나가 뛰어와서 회칼로 썰어버린 거야.”

“회칼이요?”

“그땐 이런 제대로 된 칼이 없었으니까.”

상호가 검을 살짝 흔들자 세희의 시선이 그쪽을 향했다.

“그때는 마나가 뭔지도 몰랐거든. 마나에 민감한 몇몇 사람들만 기초적인 검기를 뽑고, 공기 중의 마나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이것저것 실험하던 때였어. 스승님도 딱 그 정도였지. 지금 기준으로는 딱히 강하지 않았어.”

“강해진 건 전쟁 때…….”

“그렇지. 그래도 당시에는 그 정도면 최강인 거나 다름없었지.”

한쪽 눈으로만 보는 세상에, 갈라지는 살덩이 사이로 보였던 여인.

둘 다 몬스터의 피를 뒤집어쓴 채로 한참 동안 서로를 바라보았었다.

“그게 첫만남이었어.”

그는 씩 웃었다.

세희의 눈이 반짝였다.

“그 다음에 바로 제자가 되신 거예요?”

“아니. 그건 또 나중의 일인데…… 말이 너무 길었다. 그건 다음에 이야기 해 줄게.”

“아…….”

세희는 동화를 듣다가 자라는 소리를 들은 아이처럼 울상을 지었다.

“더 해주세요…….”

“에이, 오늘만 날이 아니잖아. 너랑 나랑 2년은 더 볼 텐데. 그렇지?”

상호는 세희의 머리를 마구 쓰다듬었다.

학년 평가 때 당연히 10등 안에 들 거라고 믿고 있다는 뜻. 세희는 그 뜻을 알았는지 빙긋 웃었다.

그리고 고양이처럼 목을 들어올리며 그의 손바닥에 머리를 비볐다.

“그럼 나중에 꼭 해 주세요.”

“그래. 곧 방학이니까 그때 많이 해 줄게.”

어느새 하늘이 점점 밝아왔다.

상호는 검을 짚고 일어났다.

“가자. 너무 늦으면 애들한테 들키겠다.”

***

집으로 돌아온 상호는 조심스럽게 문고리를 돌렸다. 침실에 있을 아이들이 깨어나지 않도록.

그리고 뒤에 있는 세희와 눈을 마주치며 조용히 들어가자는 눈빛을 보냈다.

세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조심조심…….’

상호는 문을 살살 밀었다.

그런데 현관에 아이들이 모여 있었다.

‘?’

상호의 머릿속이 멍해졌다.

태화는 벽에 기대어 서 있고, 나빛은 쪼그려 앉아서 무릎을 끌어안고 있고, 지윤은 허리에 양손을 올린 채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태화가 다리를 건들거리며 툭 내뱉었다.

“뭐하다가 이제 들어왔어?”

‘…’

뭔가 많이 들어 본 대사였다.

나빛이 뒤이어 훌쩍거렸고, 지윤도 바락 소리쳤다.

“나느은…… 자기 때문에…… 지금까지 잠도 못잤는데에…….”

“그렇게 집이 싫습니꺼! 그라믄 그냥 나가 살으이소!”

그녀들이 소리치는 것을 들었는지 주방에서 은율이 뛰어나왔다. 앞치마를 하고 머리를 묶었는데 키가 커서 그런지 주부 티를 물씬 풍겼다.

아이들이 은율을 쳐다보았다.

“너도 한마디 해.”

“어…….”

은율은 국자를 든 채로 굳어 버렸다.

그러다가 볼을 붉히고 떠듬거리며 말했다.

“그…… 밥, 차렸으니까…… 어서 들어오세요.”

“아~ 재미없어!”

“하이고~ 은율이는 현모양처인갑네~.”

“얌마, 선생님 학생도 아닌데 그런 말 하지 마.”

상호는 태화와 지윤의 이마에 딱밤을 날리며 안으로 들어왔다.

꽤 맛있는 냄새가 집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어디 은율이 밥 한번 먹어 보자.”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