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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학기 기말평가는 중간평가와 큰 차이가 없었다. 오전에 인당 10번의 예선 시합. 그리고 오후의 토너먼트.
상호는 저번처럼 스탠드에 앉아 여섯 개의 경기장으로 나뉜 운동장을 내려다보았다. 한쪽 경기장에 세희가 올라서고 있었다.
그 맞은편에 오르는 상대는.
‘벌써 만났네.’
도은율이었다.
중간평가 결승에 올랐던 두 명. 주변에서 순번을 대기하는 학생들도, 평가를 진행중인 교사들도 관심을 갖고 그쪽을 흘끔거렸다.
상호도 세희가 검을 뽑아들고 시작 신호를 기다리는 것을 바라보았다.
중간평가 때는 눈치싸움만 하며 끝까지 검을 뽑지 않던 그녀들이었다.
‘강하다는 걸 인정했다는 뜻인가?’
그토록 자존심 강한 세희가.
은율은 아직 검을 뽑지 않고 있었지만, 세희가 검을 치켜들자 따라서 발검했다. 상호는 그 모습을 보고 은율도 세희를 존중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담임이랑은 완전히 딴판이야…….’
수학여행 때 건흠에게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누군가가 상호 자신에 대한 험담을 퍼트리고 다닌다는.
그 후 건흠이 따로 조사해서 들려준 내용은, 역시나 상호의 예상대로였다.
‘문경한.’
그놈도 어딘가에서 지켜보고 있지 않을까. 상호는 그렇게 생각하며 은율을 관찰했다. 정확히는 걸음걸이를.
중간평가 때도 유달리 특출났던 은율이었다. 보법도, 검술도.
하지만 세희도 이제 경공과 보법을 배웠고, 손의 속도와 반응속도는 이미 중간평가 때부터 더 빨랐다.
은율도 부지런한 성격으로 보이니 수련을 하긴 했겠지만, 상호의 예상은 세희의 낙승이었다.
“시작.”
진행교사의 말과 함께 경기장에 결계가 올라왔다.
검을 뽑긴 했지만 행동은 중간평가 때와 같았다. 서로를 노려보며, 대치한 채로 점차 옆걸음을 친다.
그러나 그때보다는 좀 더 빠르고 유려한 발놀림으로.
나선처럼 서로를 향해 가까이 다가갔다.
‘좀 더 가까이서 볼까.’
상호는 스탠드에서 일어나 경기장을 향해 걸어갔다.
그가 경기장 앞에 다다랐을 때도 둘은 단 한 합도 나누지 않은 상태였다.
돌연 세희가 검을 끌어올려 은율을 겨눴다. 얼굴에 가까이 붙이고, 날을 하늘로 향해서.
세희의 발이 은율을 향해 똑바로 다가갔다.
‘한 번 쳐내고 베어들어가거나. 앞으로 확 찌르거나.’
싸우자는 뜻. 들어오라는 뜻.
이미 서로의 사선을 넘었지만, 그 때문에 은율은 섣불리 움직이지 않았다.
둘 사이에 존재하는 간격의 선. 넘으면 죽는다는 말이 무색하게도, 서로가 서로를 죽일 수 있는 실력이란 걸 알기에 사선을 고쳐 긋고, 계산을 수정하며, 최대한 자신의 안전을 도모하고 있었다.
선을 넘는 쪽이 세희. 선을 고치는 쪽이 은율.
상호는 그녀들의 조용히 내딛는 발걸음에서 많은 대화를 엿들을 수 있었다.
‘선 밟으면 죽일 거야.’
‘밟았는데?’
‘넘지 마. 넘으면 내가 더 유리해.’
‘넘었는데?’
곧 마지막 사선의 경계를 밟는다. 더 이상 물러나고 다가감이 의미가 없어지는 간격.
이윽고 세희의 발이 사선을 밟았고.
은율의 검이 공기를 갈랐다.
채앵
세희는 검을 휘두르지 않고 손잡이를 앞으로 뻗어 검의 각도를 틀었다.
칼날을 타고 은율의 검이 빗겨나가며 허점이 드러났다.
상호의 눈이 반짝였다. 지금 공격하면 이긴다.
하지만 세희는 공격하지 않았다.
‘……뭐야.’
상호는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분명 공격할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은율이 막아낼 수 있었다 쳐도 충분히 노려볼 만한 허점이었다.
상호와 세희의 실력차가 아무리 크다 하더라도, 방금 그 허점은 무예가라면 누구나 알 수 있을 정도로 크고 명확했다.
일부러 공격하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그 말은, 전투를 진심으로 하고 있지 않다는 뜻. 상호는 말없이 세희를 바라보았다.
노는 것도 싫어할 정도로 성실한 세희가 그의 말을 어기다니.
‘대체 왜……?’
그 사실이 여러 생각을 들게 했다. 제일 큰 감정은 두 개.
무슨 일인가 싶은 걱정.
그리고 이유가 있을 거란 믿음.
때를 놓친 세희는 공격권을 잃었고, 은율이 두 번째 기회를 잡았다.
은율의 검이 세희의 목을 향해 날아왔다.
퍼억
“……윽.”
세희가 비틀거렸다.
은율이 몸을 흠칫했다.
“어……?”
고운 입술에서 새어나온 당황성은 진행교사의 선언에 묻혀 버렸다.
“도은율, 승.”
결계가 사라지자 세희는 곧바로 뒤돌아섰다. 그런 그녀를 향해 은율이 조용한 목소리로 물었다.
“왜 그랬어?”
분명 이렇게 끝날 전투가 아니었다. 그 사실을 상호도, 은율도 알고 있었다.
하다못해 강기의 강약이라도 겨루어 볼 줄 알았는데.
세희는 은율에게만 들리도록 속삭였다.
하지만 상호의 귀에는 들렸다.
“결승까지 올라와.”
졌는데도 목소리에 여유가 넘친다.
은율은 그런 세희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진행교사의 말을 듣고 퍼뜩 정신을 차렸다.
“얘들아, 내려가라. 다른 애들 빨리빨리 경기해야지.”
“아……, 죄송합니다.”
은율이 고개를 꾸벅 숙이고 황급히 내려갔다. 세희도 반대쪽 계단으로 향했다.
경기장에서 내려온 세희는 그 앞에 기다리고 있는 상호를 보고 몸을 움찔했다.
상호는 그런 세희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죄송해요.”
세희가 먼저 입을 열었다.
상호의 손이 그녀의 뺨을 살짝 꼬집었다.
“아야…….”
“왜 그랬어?”
“꼭 이기고 싶어서요.”
세희는 눈을 내리깔았다. 죄송해하는 것 같기도 했고, 뺨을 잡은 상호의 손길을 느끼는 것 같기도 했다.
“지금 밑천을 드러내면…… 결승에서 못 이길 수도 있잖아요.”
그 말에는 반드시 결승에서 다시 만나게 되어 있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었다. 형태는 다르지만, 그 또한 상대에 대한 믿음.
그래도 상호는 꾸중을 해야 했다.
“지금 이기고 그때도 이길 생각을 해야지. 전투에 두 번째 기회는 없어.”
“죄송해요, 선생님. 그래도 후회는 안 해요.”
세희가 그와 눈을 마주쳤다.
“혼내주세요.”
혼내는 게 맞다.
하지만 상호는 혀를 차며 세희의 손을 잡고 지압을 해 주었다.
“됐어. 다음 경기나 집중해.”
그렇게 가느다란 손가락을 살살 돌리기도 하고, 손바닥을 꾹꾹 누르기도 하고. 손의 감각을 잘 살리라고 주물러 주는데, 세희가 어딘가를 쳐다보고 있었다. 상호는 그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경기장 너머에서 은율이 그들을 바라보는 중이었다.
동경이 담긴 눈빛으로.
그런 은율을 향한 세희의 눈빛은 아주 도발적이면서도 자신만만했다.
‘부러워 죽겠지? 이게 우리 선생님이야.’
그렇게 말하는 표정이었다.
상호는 그녀들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다가 한숨을 쉬었다.
‘얘들은 경기가 끝났는데도…… 대체 무슨 싸움을 계속하고 있는 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