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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쌤요.”
운동장에 앉은 지윤이 어딘가를 바라보며 그를 불렀다. 상호의 시선이 그녀가 보는 방향을 향했다.
효은이 성창을 만들어 나빛을 가르치고 있었다.
“저분 그분 맞지예?”
성창을 보고 확신이 든 모양이었다. 상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어쩐지 익숙하다 했습니더. 제 머리도 막 쓰다듬더라구예.”
지윤은 방금 막 상호의 목각인형과 치고받은 직후였다.
운동장에서는 세희와 태화가 대련 중이었다. 상호와 지윤은 그쪽을 바라보았다.
“윽……!”
세희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태화의 훨씬 다양해진 마법 때문에.
뒤로 훌쩍 제비를 넘어 착지한 그녀의 입에서 침음이 흘러나왔다.
상호는 그 동작을 보고 세희가 경공에 완벽히 적응했다는 걸 깨달았다.
‘이제 그 다음이 문제인데…….’
세희의 발이 미끄러지듯이 옆으로 움직였다.
흐르는 물처럼 유연하게 나아가는 보법. 유수의 묘리를 담은 보법 중에 제일 기본적인 물건이었다.
하지만 기본이라도 정확하게 구사하면 충분히 효과적일 수 있다.
세희는 태화가 던지는 작은 불덩이를 피하며 순식간에 그녀의 뒤를 잡았다.
태화는 순간이동을 쓰지 않았다.
딱
그녀가 손가락을 튕기자 눈부신 빛이 아주 잠깐 번쩍였다.
하지만 세희도 여러 번 당해봤던 터라, 달려들 때 이미 한쪽 눈을 감은 상태였다. 뜨고 있던 눈이 잠시 시력을 잃자 그녀는 감고 있던 눈을 떠서 태화를 포착했다.
“흐읍!”
검이 태화의 목을 향해 날아갔다.
태화는 이번에는 순간이동을 썼다.
파악
세희가 땅을 박차자 흙이 크게 튀었다.
단 한 번의 도약으로 태화를 따라잡은 그녀는 다시 검을 휘둘렀다. 이번엔 정수리를 향해.
태화의 뿔 사이에 보랏빛 에너지가 아주 잠깐 뭉쳤다가 바로 폭발했다.
퍼엉
빠악
폭발음 사이로 머리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아약! 우씨, 아프잖아!”
“응, 168전 127승.”
폭발의 연기가 사라지자 땅바닥에 주저앉은 태화와 칼집에 검을 집어넣는 세희가 보였다.
상호는 태화를 향해 말했다.
“검에다가 쏘면 어떡하냐. 검을 잡은 팔에다가 쏴야지. 폭발이 아무리 강해도 그 얇은 거를 어떻게 공기로 밀어내.”
“급해서 실수했어요.”
태화는 투덜거리며 머리를 벅벅 긁었다. 세희가 거기다 대고 한마디 했다.
“실수를 127번씩 해? 그럼 그건 실수가 아니지, 바보야.”
“뭐 바보? 그리고 무슨 127이야, 내가 백 번 넘게 이겼거든?!”
“아니거든?!”
투닥거리며 떼를 쓰는 그녀들의 머리 위로 황금색 깃털이 흩날렸다. 지윤과 상호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운동장을 꽉 채울 정도로 거대한 날개가 하늘을 온통 가리고 있었다.
불타는 듯한 황금빛의 날개가.
그에겐 익숙한 모습이었다.
“……우와.”
엎치락뒤치락 구르던 태화와 세희도 넋을 놓고 그 날개를 바라보았다.
넷의 시선이 서서히 날개를 따라 내려가 그 끝의 주인을 향했다.
효은이 나빛의 손을 잡으며 무어라 말하는 중이었다. 그녀의 등에서 날개가 아주 느리게 퍼덕거렸다.
상호는 그걸 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숨길 생각을 안 하네……. 신앙인들이 보면 다 뽀록날 텐데.’
“쌤.”
갑자기 지윤이 그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응?”
“나빛이 울어요.”
“……뭐?”
그는 깜짝 놀라 나빛을 쳐다보았다.
지윤의 말대로 나빛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상호는 당황해서 그들을 향해 다가갔다.
“아니 수녀님. 애를 울리면 어쩌자는……!”
그러자 효은은 날개를 거두고 말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상호는 그녀를 무시하고 나빛을 달래려 했다.
“왜 울어. 응? 괜찮아?”
그러자 나빛이 그를 째려보았다.
한 번도. 단 한 번도 보여준 적이 없는 눈빛이었다.
“수녀님 때문 아니에요.”
“그러면 왜?”
“선생님…… 진짜 나쁜 사람이에요.”
“……나?”
뜬금없이 화살을 맞으니 억울해 죽을 지경이었다. 그는 효은을 돌아보았다.
뭔가 이상한 말을 한 게 아닐지 의심이 갔다. 어제 때렸던 걸 알려줬다거나.
케이크 먹은 후의 일을 알려줬다거나.
하지만 나빛이 울 만한 일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상호는 그녀의 뺨에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등을 다독였다.
“내가 뭔가 잘못했다면 미안해. 뭔지 모르는 것도 미안해. 선생님 나쁜 사람 맞으니까…….”
“진짜…….”
나빛이 그의 손을 밀어내며 중얼거렸다.
“세상에서 제일 나쁜 사람이에요.”
그녀는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상호는 효은을 향해 도와달라는 눈빛을 보냈지만, 효은은 말없이 그를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도저히 속내를 알 수 없는 표정으로.
그는 답답해서 가슴을 두드렸다.
‘돌겠네, 진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