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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시간.
밥을 다 먹고 난 상호는 운동장 스탠드에 앉았다. 바깥바람 쐬면서 소화나 시킬 생각이었다.
본관에서 급식소로, 급식소에서 본관으로 향하는 아이들이 운동장 주변을 돌아다녔다. 상호가 앉은 곳은 그 경로에서 조금 떨어진 곳이었다.
아무도 오지 않을 위치인데도 등 뒤에서 누군가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상호는 굳이 돌아보지 않았다.
“뭐.”
“뭐는 뭐가 뭐야?”
효은이 그의 옆에 앉으며 말했다.
“밥 맛있더라. 일할 맛 나겠네.”
상호는 질색하며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떨어져! 시발, 이렇게 넓은데 꼭 옆에 앉아야겠냐?”
“후다새끼가 존나게 아다새끼처럼 구네. 여자공포증이라도 있냐?”
그녀는 코웃음을 치고는 담배를 꺼냈다.
정말 시간만 나면 언제 어디서든 담배를 피운다. 상호는 담배를 빼앗아 분질러 버렸다.
“애들 앞에서 피지 말라고. 보고 배운다고.”
“와……, 진짜 교사라고 꼴값떠는 거 봐.”
효은은 방어막을 치고 한 개비를 새로 꺼냈다.
“바른생활 지킴이 납셨어, 아주. 어쩌다 그렇게 됐냐?”
“뭘 어쩌다야. 누나가 나한테 했던 대로 하는 건데.”
예경을 말하는 것이다.
효은은 대꾸 없이 먼 산을 쳐다보다가 담배를 한 번 빨고 그를 휙 돌아보았다.
“한 대 필래? 식후연초 불로초야. 너 담배는 한 번도 해본 적 없지?”
“좆까. 안해.”
“치료하면 되는데 뭐가 겁나냐? 담배는 이제 진짜 기호품이야, 병신아. 우리 어릴 때 있던 금연광고도 이제 없잖아.”
상호는 눈살을 찌푸렸다.
“의존하는 게 나쁜 거야.”
없이도 잘 살던 인간이 맛을 들이고 나서는 없으면 못 사는 인간이 되어버린다. 폐암도 간암도 성력으로 치료할 수 있는 시대지만, 중독자에 대한 시선은 그리 크게 변하지 않았다.
“니도 빨리 끊어, 멍청아. 너 여자잖아. 애 장애 생기면 어쩌려고 그러냐?”
성력으로 선천적 장애까지 없앨 수는 없다. 성력은 그 인간을 원래의 상태로 돌려놓는 것이지 몸의 설계도를 바꿔버리는 것이 아니었기에.
그의 말을 들은 효은은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다.
“야, 니는 수녀가 좆으로 보여?”
“수녀? 염병, 툭하면 술담배섹스 이 지랄 하는 년이 무슨 얼어죽을……. 수녀님들한테 실례야, 미친년아.”
“나 아다야.”
“……지랄.”
상호는 믿지 않았다. 의미도 없었다.
“그래서 어쩌라고. 뭐 다행이긴 하네. 아무나 만나서 이름도 모르는 채로 뒹구는 년인 줄 알았는데.”
“……너.”
효은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말이 좀……, 심하다.”
상호는 그 말에 여자한테 너무 지나친 말을 했나 싶었지만, 사과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지랄, 지는 더한 말도 해왔으면서…….’
부대 시절엔 그녀에게서 패드립을 듣는 게 일상이었다. 그래도 심했던 것 같긴 해서 입 밖으로 내지는 않고 속으로만 툴툴거릴 뿐이었다.
효은이 그를 계속 힐끔거리더니 담배를 길게 빨고는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상호는 그녀가 뭘 하려는지 알아채고는 주먹을 꽉 쥐었다.
“푸우…….”
그녀가 그를 향해 연기를 내뿜었다.
이럴 줄 알았다. 상호의 이마에 핏줄이 솟았다.
그는 효은의 배에 주먹을 날렸다.
퍽
“끅!”
효은이 담배를 뱉으며 몸을 확 구부렸다.
상호는 깜짝 놀라 급히 주먹을 거뒀다. 당연히 막을 줄 알았는데.
‘뭐야, 이걸 못 막는다고?’
죽이려고 날린 공격은 아니지만, 같은 급의 강자니까 힘조절을 하지 않았다.
평범한 사람이면 내장까지 타격이 갔을 위력이었다.
그리고 효은은 성력을 빼면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것도 연약한 축에 속하는.
그는 당황하며 그녀의 어깨를 잡았다.
“야……, 괜찮아?”
효은이 그의 손을 쳐냈다. 고통이 극심한지 몸을 경련하고 있었다.
“으, 으흑…….”
비틀거리며 일어난 그녀는 차가 있는 곳을 향해 걸어갔다. 고개를 푹 숙인 채로 이따금씩 코를 훌쩍거리며.
상호는 효은을 쫓으려 했지만, 그의 걸음은 고통스러워하는 여인보다도 느렸다.
그는 멀어지는 효은을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착잡한 표정으로 돌아섰다.
‘평소엔 잘만 막았으면서……. 몰라, 씨발. 내 인생에 도움되던 년도 아니고. 이제 안 보면 되지.’
생각은 그렇게 하지만, 본관으로 향하는 그의 걸음은 한없이 무겁기만 했다.
***
“상호 씨.”
상호는 부름을 듣고는 말없이 옆자리를 돌아보았다.
설미가 그를 향해 몸을 기울이고 있었다.
“표정이 안 좋은데. 무슨 일 있었어?”
“그냥요.”
그는 입을 우물거렸다.
“실수를 좀 해서.”
“그래도 얼굴 펴. 내일부터 좋은 일 있잖아.”
“좋은 일이요?”
눈을 동그랗게 뜬 그에게 설미가 활짝 웃어 보였다.
“막내 탈출!”
상호의 머릿속이 멍해졌다.
뒤통수를 골프채 풀스윙으로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효은이 수학여행 때 했던 말이 떠올랐다.
‘교사 일은 재밌냐? 할만해?’
설마.
상호는 아니길 바라며 물었다.
“누구…… 누가 오는데요?”
“신앙인 헌터. 나보다 한 살 어리니까, 상호 씨보다 한 살 위네. 잠깐 봤는데 엄청 예쁘더라. 이름이…… 김효은. 맞아. 김효은 수녀님이었어.”
“교사로요?”
“교생이지, 일단은. 우린 사립이니까 인턴 같은 거라고 해야 하나?”
가명 참 대충 짓는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상호가 벌떡 일어나서 퇴근할 준비를 하자 설미가 당황했다.
“사, 상호 씨……. 업무 있지 않아?”
“급한 일이 생겨서요. 내일 봐요.”
“어? 으, 으응…….”
그는 교무실 문을 박차고 나와서, 그 어느 때보다도 빠른 발걸음으로 주차장을 향하며 핸드폰으로 지윤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곤 지윤이 전화를 받자마자 물었다.
“아, 지윤아. 그…… 저번에 나빛이랑 조각케이크 먹었잖아. 그거 어디야?”
애증을 넘어
“씨발년…….”
상호는 씩씩거리며 효은을 노려보았다.
효은도 그를 꼬나보며 이를 갈았다. 그녀는 민정이 소환한 사슬에 꽁꽁 묶여있었다.
그는 효은에게 달려들어 면상을 치려고 했지만, 예경이 그를 붙잡고 절대로 놔주지 않았다.
상호의 독기 서린 눈이 예경을 향했다.
“이거 놔요.”
그녀가 그의 뺨을 찰싹 쳤다.
“그만 싸워!”
“저 씨발년이, 자꾸 부모님 이야기하면서, 건드리잖아요……!”
“그래도 말로 싸워야지, 전우를 때려? 내가 그렇게 가르쳤어?”
그래도 상호는 다시 그녀의 팔에서 빠져나오려고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힘의 차이가 너무 났다.
그때 효은이 입을 열었다.
“애미없는 새끼.”
뱉은 침이 상호의 얼굴 한가운데에 정확히 명중했다.
민정이 깜짝 놀라며 효은의 입을 틀어막았지만, 이미 벌어진 일이었다.
“어이쿠.”
주변에서 지켜보던 남자 부대원들도 당황했다.
흘러내리는 침을 따라 상호의 머릿속 이성도 함께 무너져 내렸다.
목에 시뻘겋게 힘줄이 불거졌다.
“닌 뒈졌어.”
그는 온 힘을 다해 예경을 확 밀쳐내고 효은을 향해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