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화야.”
그는 조례 전 복도에서 태화를 발견하고 그녀를 불렀다. 앞서 걸어가던 태화가 뒤를 돌아보고는 씩 웃었다.
“아, 쌤. 잘 잤어요? 내 꿈 꿨어요?”
“너 눈 좀 보자.”
상호는 인사를 가볍게 씹고 태화의 안대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그녀가 뒷걸음질을 쳤다.
그는 당황하며 태화를 바라보았다.
“왜 그래?”
“눈은 왜요?”
“다 낫지 않았어? 시간 많이 지났잖아.”
“낫긴 했는데…….”
태화는 말꼬리를 흐렸다.
상호의 심장이 덜컥했다. 혹시 평생 가는 흉터가 생긴 게 아닐까 해서.
그는 태화의 뺨을 덥석 붙잡으며 황급히 안대를 들어올렸다.
“……뭐야, 다 나았잖아.”
그의 입에서 안도의 한숨이 새어나왔다.
태화의 눈은 다치기 전의 상태로 멀쩡히 돌아온 채였다. 속눈썹이 길고 눈동자가 보석처럼 빛나는 예쁜 눈으로.
그녀가 부루퉁한 표정을 지었다.
“아직 다 안 나았어요.”
“그래? 겉으로 보면 별 문제 없는데…….”
“쌤이 호~ 해 주면 다 나아요.”
“야이…….”
상호는 난색을 지으며 주변의 눈치를 살폈다. 복도에는 방금 막 등교한 학생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애들 좀 지나가면.”
“진짜요? 해 주시게요?”
태화의 입술 사이에서 붉은 혀가 날름거렸다.
“그럼 저 목구멍도 아픈데 여기다가도…….”
상호는 그녀의 이마에 딱밤을 날리고 안대를 들췄다.
그리고 좀 한적해질 때를 기다렸다가 태화의 양 뺨을 잡고 눈에 살짝 입김을 불었다.
“됐어?”
“아뇨.”
태화가 그의 뺨에 손을 얹었다.
“제가 해 드릴 테니까 따라하세요.”
그녀의 손이 상호의 얼굴을 아래로 잡아당겼다.
시야가 없는 오른쪽 눈에 따뜻한 기운이 서서히 다가왔다. 상호는 눈살을 찌푸렸다.
“야, 야. 너무 가깝잖…….”
태화가 갑자기 그의 눈꺼풀 속에 혀를 쏙 집어넣었다.
“야!”
“으엑~ 짭짤해~.”
태화는 혀를 내민 채로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었다.
“자! 따라해요.”
“됐어, 인마.”
상호는 그녀의 안대를 벗겼다. 태화가 당황하며 손을 뻗었다.
“앗! 안대요!”
“그만 써. 멀쩡한데 이런 거 쓰면 눈 나빠져.”
“우씨, 그거 있어야 세희 놀리는데…….”
상호는 안대를 다시 썼다.
익숙한 감각이 머리에 둘러졌다. 다만 눈두덩에 닿는 감촉은 살짝 달랐다. 태화가 놓은 캐릭터 자수 때문에.
그래도 반대쪽에는 안 보일 테니 상관없었다.
“교실 가자. 늦겠다.”
그와 태화는 함께 교실로 향했다.
***
오늘은 6월의 마지막 월요일.
기말평가가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예정된 날짜는 다음 주 수요일.
덕분에 상호의 반은 더 격렬히 야외수업을 했고, 아이들과 더불어 그 또한 먼지와 땀투성이가 되었다. 마법이 떨어질 때마다 터지는 흙과 슬슬 한여름이 되어가는 태양 때문에.
소매를 걷고 단추를 풀었지만, 찝찝해서 짜증이 났다. 그는 신나게 대련중인 아이들에게 말했다.
“됐다. 그쯤하고 그늘 가서 쉬어. 선생님 세수 한 번만 하고 올게.”
“저희도예…….”
땀을 닦는 지윤의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다. 상호는 그 모습을 보고는 아차 싶었다.
“그럼 같이 갈 사람은 따라와. 쉬고 싶은 사람은 쉬고.”
아이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그를 따라왔다.
상호는 아이들과 함께 운동장 바깥쪽에 있는 수돗가로 향했다. 다행히 사용중인 사람은 없었다.
그는 바깥에서 세수할 때의 버릇대로 안대를 뒤집어 올리고 수도꼭지를 틀어 세수를 시작했다.
“푸우…….”
한참 물을 얼굴에 퍼붓는데 옆에서 키득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태화 목소리였다.
그는 고개를 돌려 그녀를 쳐다보았다.
“왜?”
“아니에요.”
하지만 지윤과 나빛도 그의 얼굴을 보고는 입꼬리를 자꾸 움찔거렸다. 세희만 빼고. 세희는 그의 젖은 얼굴을 훔쳐보며 볼을 붉히는 중이었다.
상호는 멍하니 눈만 끔뻑거렸다.
‘뭐지?’
그때 작은 소형차 하나가 운동장을 향해 들어섰다.
주차할 곳을 못 찾는 것 같았다. 자동차에 무슨 표정이 드러나는 건 아니지만, 바퀴 구르는 꼴을 보니 아마 운전도 초짜인 듯했다.
‘표지판을 못 봤나?’
그는 눈살을 찌푸리며 차를 향해 다가갔다. 교직원이니까 안내를 해야 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이런 곳에 차를 대면 학생들의 공격을 맞고 폐차장으로 직행할 수도 있었다.
상호의 손가락이 차창을 두드리자 창문이 내려가며 운전자의 모습이 드러났다.
“선생님, 주차장은 저쪽…… 인데, 씨바.”
효은이 그를 빤히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는 반사적으로 욕을 내뱉고는 입술을 깨물었다. 왜 이 인간이 여기 있는 건지.
“뭐야. 무슨 일로 왔어?”
“내가 어딜 가든 니가 무슨 상관인데?”
평소와 차림새가 달랐다. 몸매가 전혀 드러나지 않는 펑퍼짐한 수녀복에, 머리카락을 깔끔히 모아 감춘 베일. 알 없는 동그란 안경까지. 상호가 아니면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효은이 그를 보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너 그거 뭐냐?”
“뭐가?”
“너 그런 취미 있었어?”
“대체 뭔…….”
상호는 눈살을 찌푸리다가 효은의 검지가 자신의 오른쪽 눈보다 살짝 위를 가리키는 것을 보았다.
그때서야 안대에 수놓인 고양이 캐릭터에 생각이 미쳤다.
‘씨발!’
그는 당황하며 안대를 제대로 뒤집어 오른눈을 가렸지만, 이미 늦은 일이었다. 효은이 폭소를 터트렸다.
“뭐야? 너? 그거 뭐야? 너 그런 거 좋아해? 꺄하하하!”
“닥쳐, 씨바……. 제자가 선물해 준 거야.”
“구라치는 거 다 티나죠~, 내가 니를 얼마나 봤는데, 병신아.”
“씨발! 진짜라고. 얼마나 봤는데 모르냐!”
상호가 이를 갈아도 효은은 낄낄거리며 비웃을 뿐이었다.
효은이 차에서 내리더니 상호와 수돗가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수돗가에선 아이들이 물장난을 치고 있었다.
“잘 놀고 있나 보네. 교사 일도 할만한가 봐.”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는 본관으로 휘적휘적 걸어가 버렸다.
상호는 효은의 뒷모습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왜 온 거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그는 아이들에게 돌아가려다가 효은의 자동차가 운동장에 주차된 것을 보고 뒷목을 잡았다.
‘아 씨, 이걸 안 빼고 갔네……, 됐다, 걍 폐차되든 말든 알아서 하겠지.’
하지만 상호는 그 차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다가, 한숨을 푹 쉬며 기를 뻗어 차를 들어올리고는 운동장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살포시 내려놓았다.
그리고 물을 뿌리며 노는 아이들에게 돌아갔다.
온몸이 푹 젖은 태화가 그에게 달려와 세희를 손가락질했다.
“쌤! 세희 때문에 빤쓰 다 젖었어요!”
“니가 먼저 뿌렸잖아!”
“넌 체육복이잖아! 난 이거 종례까지 입어야 한단 말이야! 쌤! 세희 좀 혼내주세요! 아니면 쌤 힘 쎄니까 제 빤쓰 좀 짜주세요!”
상호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대체 뭘 보고 이 일이 할만해 보인다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