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3화 (73/501)

***

“그래서, 우리는 누가 나갈까?”

상호는 아이들을 향해 말했다.

자리에 앉은 아이들은 서로의 눈치만 보는 중이었다. 머리 쓰는 걸 좋아하는 아이들이 아니라서 그런 듯했다.

나빛이 천천히 손을 들었다.

“아무도 없으면 제가 할게요.”

“하고 싶은 사람이 해야지. 꼭 무조건 반마다 한 명씩 나와야 하는 건 아니야.”

무슨 짬통도 아니고, 하기 싫은 일을 도맡아 할 필요는 없다. 그는 나빛을 향해 팔을 내리라고 손짓하고 입을 열었다.

“대토론회도 대회야. 상도 준다. 상 받으면 저번에 태화처럼 소원권 줄 거야.”

그 말에 지윤이 번쩍 손을 들었다.

상호는 기뻐하며 그녀를 부르려다가 문득 생각이 들었다.

“지윤이 소원권 한 번도 안 쓰지 않았나? 지금 몇 개지?”

“처음 딴 거 이 가시나가 없애뿔고…….”

지윤이 태화를 째려보았다.

“수학여행에서 게임하다 하나. 저번에 술래잡기할 때 하나. 이렇게 두 갭니더.”

‘생각보단 적네.’

상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지윤이 시킨다? 너희는 할 생각 없는 거지?”

“넹. 어차피 전 그런 거 못 받으니까.”

태화는 귀찮아하는 표정이었고, 세희와 나빛은 남들 앞에서 발표하는 게 부끄러운 모양이었다.

“그러면 지윤이로 확정. 이따 주제 알려줄게. 오늘내일 준비해 와. 도움 필요하면 말하고.”

“옙!”

지윤이 씩씩하게 대답했다.

***

“쌤요! 주제가 개똥같아예!”

지윤이 울상을 지으며 종이를 흔들었다.

태화가 발명대회 나갔을 때처럼 방과후에 둘만 남아 도와주고 있는 중이었다.

상호는 그녀가 내민 종이를 들여다보았다.

주제는 ‘몬스터의 생명도 존중받아야 하는가.’

“주제는 좋은데.”

“그치만!”

지윤이 그 아래를 가리켰다.

그녀가 배정받은 진영은 찬성 진영. 몬스터의 생명도 존중받아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이걸 우째 이깁니꺼……. 답이 정해져 있잖아예. 우리는 몬스터 죽일라꼬여기 있는 긴데.”

그 말이 옳다. 답은 나와 있다.

하지만 그래도 화두를 던지며 계속 고민해야 집단이 성숙해지는 법이다. 상호는 허공섭물로 교탁 아래에서 도덕 교과서를 꺼내왔다.

“지윤이 저번에 배웠지? 악마의 대변인이라는 거.”

“어…….”

지윤은 시선을 피했다. 실내 수업에는 별로 집중을 안 하는 그녀였다.

“기억 안 납니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주장을 다방면으로 검증하기 위해서 일부러 반대되는 논리를 전개하는 거야.”

“그 말은 결국은 지게 되어 있다는 거 아닙니꺼.”

“그래도 그 역할을 잘 수행하면 선생님들이 상 줄 수도 있지.”

상호는 자신이 심사위원이라는 것은 말하지 않았다.

“오히려 상 받기 편할 수도 있어. 눈에 띄기 쉬우니까. 몬스터니까 죽여야 된다는 뻔한 입장이면 네 말대로 정해진 답만 주구장창 나올 거 아냐.”

“으음…….”

지윤은 침음하다가 이내 수긍했다.

“알았어예. 해 볼게예. 근데 상 받기는 틀린 것 같심더.”

“열심히 해. 열심히만 하면 쌤이 소원권 줄 수도 있어.”

“증말루예?”

그녀는 열의를 불태우며 핸드폰으로 뭔가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종이에도 무언가를 써내려갔다.

저녁 시간이 될 때까지, 상호는 그녀가 공부를 하는 것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

다음 날 체육관.

“그럼 토론회 시작하겠습니다.”

단상 한쪽에 선 학생이 말했다. 얼마 전 당선된 학생회장이었다.

체육관 강당의 단상에는 길다란 책상 두 개가 놓여 각각 다섯 명씩 앉아 있었다.

“오늘 다룰 주제는…… 몬스터의 생명도 존중받을 권리가 있는가, 에 대해서 토론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발언권은 3분씩 드리도록 하고, 되도록이면 발언을 적게 한 사람부터 우선권을 드리겠습니다.”

상호는 옆에 앉은 해련을 돌아보았다. 그들은 좌석에 앉은 전교생들에게서 살짝 떨어진 곳에 단둘이 자리잡고 있었다.

해련이 그와 눈을 마주치며 살풋 웃었다.

“왜요?”

“심사는 저희 둘이 끝이에요?”

“아니. 저쪽에도 있어요.”

해련은 단상을 기준으로 반대편을 가리켰다. 거기에도 선생 세 명이 앉아 무언가를 끄적이고 있었다.

곧 첫 번째 학생이 마이크를 잡았다.

악역을 맡게 된 찬성 측의 학생이었다. 지윤과 같은 진영.

이제 저쪽이 말을 하고 나면 반대 진영에서 논박하는 형식으로 토론이 진행될 터였다.

“몬스터도 생명입니다.”

학생이 당당하게 말했다.

“대부분의 몬스터들이 번식 활동을 한다는 것은 이미 확인된 사실이며, 개중에는 뇌가 발달되어 사회를 이루는 종족도, 인간과 의사소통이 가능할 정도로 똑똑한 개체도 있습니다. 발견 사례는 극히 적지만, 소수의 몬스터들은 인간보다 훨씬 우월한 지능을 가진 것으로 여겨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드래곤과 악마를 뜻하는 것이다. 다만 말한 대로 발견 사례가 적어 제대로 알려진 것은 없었다. 그 둘을 만나면 목격자가 죽거나 해당 개체가 죽거나 둘중 하나였기에. 학자들도 태화 같은 안전한 융합체들을 관찰해서 추측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하지만 자주 죽여본 상호는 알고 있었다.

인간보다 악랄한 몬스터들이 존재하며.

인간보다 고결한 몬스터들 또한 존재한다.

하위종과 고위종을 막론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인식보다 훨씬 다채로운 것이 몬스터라는 생물이었다.

“모든 생명은 그 자체로 존엄합니다. 이를 부정하면 인간도 존중받을 수 없습니다. 인간은 다른 생명보다 특별한 선민이라는 증표를 받은 적이 없습니다.”

학생의 말에 해련이 상호를 돌아보았다.

“어떻게 생각해요?”

너무 애매해서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었다. 상호는 입을 우물거리다가 되물었다.

“어떤 거요? 몬스터도 생명이라 존중받아야 하는지요?”

“우리가 살생자라는 거요.”

해련이 검을 만지작거렸다.

“수천. 수만. 존엄한 생명을 죽여온 우리인데. 그럼 우리는 존중받을 가치가 없는 걸까요?”

“대접받으려고 싸우러 갔던 건 아니니까요. 좀 못 받으면 어때요.”

그는 어깨를 한 번 으쓱였다.

“싸워야 하니까 갔던 거잖아요.”

“그럼 강 선생은 주제에 대해서는 어떤 입장이에요? 찬성? 반대?”

“저는…….”

상호도 해련처럼 검 손잡이를 쓸었다.

“그런 거 모릅니다. 그냥 사랑하는 사람 지킬 수 있는 방법을 선택했던 거죠.

그 시절엔 존중 따위로는 지킬 수 없었으니까 싸운 거고……. 놈들이 변해서, 먼저 평화를 외치고, 존중을 해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킬 수 있으면…… 존중하겠죠.”

그는 한 마디를 덧붙였다.

“실제로 그러면 의심부터 할 것 같지만.”

그녀가 살짝 웃었다.

“내 생각도 그래요.”

반대 진영에서 한 학생이 손을 들었다. 학생회장이 먼저 말하고 있던 학생에게 물었다.

“반론 들어볼까요?”

“네.”

찬성 진영 학생이 고개를 끄덕이자 학생회장은 반대 진영 학생에게 눈빛을 보냈다.

반대 진영 학생이 마이크를 잡았다. 그녀의 목에서 신앙회의 문양이 흔들렸다.

“성력을 쓰는 존재는 인간밖에 없습니다.”

그 또한 사실이었다.

“성력을 쓰는 몬스터는 없죠. 또 성력을 통해 신이 있다는 사실이 입증되었고요. 인간은 선민이 맞습니다. 신이 인간을 선택했습니다.”

“선민이라고 살생의 권리를 얻은 건 아니죠. 그래서 신앙인도 전투신관 몇 명 빼고는 치료밖에 못 하잖아요. 선민이면 우민을 바르게 이끌어야지 왜 죽이려고 합니까.”

그 말에 신앙인 학생은 반박을 하지 못했다. 그러자 옆에 있는 다른 반대 진영 학생이 마이크를 넘겨받았다.

“생명의 본능은 생존입니다. 생존의 과정에서 다른 생명을 희생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사람이 고기를 먹고, 짐승이 영역싸움을 하는 것처럼요. 사람은 생명을 존중한다면서 사실은 자각도 없이 생명을 소모하고 있습니다. 이런 우리가 굳이 몬스터의 생명을 존중해야 할까요? 존중한다고 해봤자 대체 뭐가 달라질까요?”

그녀가 찬성 진영을 검지로 가리켰다. 정확히는 지윤을.

“거기 학생분, 대답해 주세요. 평소에 평범하게 고기를 먹지 않나요? 살해와 존중이 동시에 이뤄질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그러자 지윤이 망설이다가 마이크를 잡고 말했다.

“지는 비건인디요.”

‘?’

상호는 얼이 빠져버렸다.

해련이 폭소를 터트리며 손바닥으로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아하, 아하하핫! 깔깔깔…….”

지윤을 지목한 아이는 지윤의 친구였던 모양이었다. 그녀가 얼굴을 붉히며 소리쳤다.

“거짓말 하지 마! 지윤이 너 고기 엄청 많이 먹잖아!”

“오늘 시작했습니다.”

“야!”

좌석에서 지윤을 아는 아이들이 깔깔거렸다. 지윤을 지목했던 아이는 한숨을 푹 쉬고는 마이크에서 손을 뗐다.

다음은 지윤의 차례였다.

그녀가 마이크를 잡았다.

“저는…… 애초에 몬스터를 본 적이 없어요.”

대부분의 아이들이 그럴 터였다.

“근디 또 우리 아부지는 몬스터한테 돌아가셨걸랑요.”

웃던 학생들이 조용해졌다.

“까놓고 말하면…… 몬스터가 다 나쁜 놈들이지요. 그걸 모르는 인간이 어딨습니까. 근디 이것이 또…… 직접 만나 본 것은 아니란 말이지요. 싸워 보지도 않았고, 죽어 보지도 않았고. 그런 상황에서 아무리 짱구 굴려 봐야…… 상상에 불과하단 말입니다.”

지윤은 무심하게 말을 이었다.

“그래도 머, 굳이 생각을 말하라면은…… 존중하는 마음이 있어야 평화가 오지 싶어요. 백년천년 싸울 것도 아니고, 씨를 말릴 수 있다는 보장도 없는데. 아부지는 몬스터 죽이러 간 게 아니라 평화 만들겠다고 갔을 테니까요.

평화를 귀하게 여기는 입장이라면…… 존중할 준비도 되어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저는.”

그녀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여기까집니다. 할 말 다 했어요. 반론 안 받습니다. 전 머리가 나빠서 반박못 하거든요.”

상호는 평가지에 점수를 적었다. 주장 논리 40/40. 토론 자세 60/60.

그의 종이를 슬쩍 살핀 해련이 또 웃음을 참지 못하고 끅끅거리며 그의 어깨를 흔들었다.

“이거 뭐야, 다른 애들 말은 들어볼 필요도 없어요?”

“잘 모르겠고 우리 애가 최고입니다.”

“어우, 어떡해, 강 선생 큰일이네. 깔깔깔…….”

해련은 허리를 구부리며 웃다가 상호의 허벅지에 이마를 묻으며 몸을 들썩였다.

“아하하하…… 킥킥…….”

그 모습이 그녀의 젊은 얼굴과 맞물려서, 꼭 소녀 같은 순수함이 묻어났다.

상호는 아직도 웃음을 멈추지 못하는 해련을 보며 눈을 끔뻑였다.

‘어디까지 젊어지는 건지…… 이러다 사춘기까지 회춘하시는 건 아닌가 모르겠네.’

네가 여길 왜 오냐

‘슬슬 다 나았을 텐데…….’

상호는 수건으로 얼굴을 문지르며 생각했다.

항상 세수를 하고 나면 안대를 찾던 그가, 더 이상 안대를 찾지 않는 데에 익숙해진 지도 한 달째.

이쯤 되면 얼룩 하나 없이 말끔히 나았을 시간인데, 태화는 눈에 대해서 아무런 말도 해주지 않았다.

그는 거울에 비친 오른눈의 흉터를 쳐다보았다.

‘생각보다 뭐라고 안 하네.’

아주 오래 전, 나이도 실력도 애송이였을 때. 처음으로 느꼈던 죽음의 공포.

상처를 만든 몬스터는 그 직후 예경에게 죽었다.

하도 오랫동안 안 써서 눈동자도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상태다. 흉지고 혼탁한데다 옆을 돌아볼 때는 사팔뜨기가 되어 버리지만, 보기 싫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래도 모르는 사람을 만날 때는 여간 신경쓰이는 게 아니었다.

‘오늘 가서 확인해 봐야겠다.’

상호는 수건을 걸어놓고 욕실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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