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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운동장에 선 태화가 눈동자를 굴려 머리 위를 올려다보았다.
그녀의 양쪽 뿔에는 빨간 리본이 하나씩 묶여 있었다.
“……이게 뭐예요?”
“술래잡기.”
상호는 그녀의 옆에 있는 지윤과 세희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지윤이랑 세희가 태화 리본 뺏으면 소원권 하나씩 줄게.”
그 말에 태화가 아랫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저는요?”
“태화는…… 안 해도 되는데 도와주는 거니까, 안 뺏기는 데 성공하면 특별히 두 개 줄게.”
“으흠~.”
그녀는 금세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었다.
“제가 작정하면 쟤들 절대로 못 잡을 텐데요.”
“그럴 수도 있고.”
상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쌤은 나빛이 가르칠 테니까 너희는 그거 하고 있어. 그리고 힘으로 하지 마.
뿔 부러트리거나 꼬리 잡아당기지 말란 뜻이야. 태화도 순간이동만 쓰고.”
“네.”
태화는 대답과 함께 검은 연기를 남기고 사라졌다.
다시 나타난 곳은 스탠드에 설치된 플라스틱 차양막 위였다. 그곳에 걸터앉은 태화가 다리를 흔들며 세희와 지윤을 내려다보았다.
“너희 이러면 나 못 잡잖아.”
차양막의 높이는 운동장 바닥에서부터 거의 3층 정도에 달하는 높이.
중간평가 때의 은율처럼 검을 밟고 뛰지 않고서야 다다를 수 없는 위치였다.
적어도 그저께까지의 그녀들에게는.
태화는 아예 드러누워서 휘파람을 불었다.
“뚜벅뚜벅 뚜벅이~ 뚜벅을 한다~. ……어라?”
그녀는 코앞까지 뛰어오른 세희와 지윤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곧 둘의 손이 뿔을 향해 날아들었다. 태화는 식겁하며 운동장으로 순간이동을 했다.
“뭐, 뭐야! 어떻게…….”
세희와 지윤은 묵묵히 투지를 불태우며 태화를 쫓았다.
하지만 태화도 가만히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무예가의 약점은 체공 시간이길다는 것. 반대로 마법사의 순간이동은 공중에 머무르는 과정이 전혀 없다.
태화는 그 이점을 살려서 차양막과 운동장을 왔다갔다하며 순간이동에 집중할 시간을 벌고 있었다.
“아오, 머리 아파 죽겠네……. 니들 왜 이렇게 빨라졌어?!”
당연히 어제 했던 경공 수업 덕분이다.
상호는 세희와 지윤이 맹수처럼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다가 나빛을 향해 몸을 돌렸다.
“우리는 우리끼리 수업하자.”
“네.”
나빛이 방긋 웃었다.
그는 검을 뽑아 허공에 띄웠다.
“조금만 멀리 가줘.”
둘의 거리가 멀어지자 상호의 검이 그 사이에 날아와 둥실 떠다녔다.
학생에게 어검술을 가르칠 줄이야. 상호는 세상일은 알 수 없다는 것을 통감하며 검을 조종해 나빛을 겨눴다.
“오늘부터 너도 무기 다루는 방법을 배울 거야. 창 만들어 봐.”
“네.”
그녀의 양 옆에 창날 없는 성창이 떠올랐다.
“공격해.”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성창이 그를 향해 날아들었다.
하지만 상호의 검이 번쩍이며 사라지자 성창들은 상호에게 가까이 다가가지도 못한 채 튕겨져 나갔다.
완벽히 동시에 일어난 일이었다. 성창은 두 방향으로 쏘아졌고 상호의 검은 하나인데도.
나빛은 어안이 벙벙하며 다시 상호를 공격해 들어갔다.
“지금 우리처럼 무기를 띄워서 공격하는 걸 어검술이라고 해. 용어를 깊이 파고들면 설명할 게 많지만…… 지금 너한텐 필요없는 내용이야. 네가 무예가도 아닌데 단어 따위에 집중할 필요는 없지.”
상호는 그렇게 말하며 검을 회전시켜 검막을 만들었다. 검막에 닿은 성창은 이번에도 맥없이 튕겨졌다.
“네가 알아야 할 거는 창의 특징, 어검술의 자유로움, 그 둘에서 오는 장점과 단점이야. 나빛이 창에 대해서 아는 거 있어?”
“어…… 음…….”
나빛은 자신이 없는지 떠듬떠듬 답했다.
“길어요.”
“길지. 그리고 또?”
“날이…… 작아요. 칼보다.”
“다 말했네. 그거야. 잘했어.”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길고 날이 작기 때문에 멀리서 찌르는 데 유리하고, 가까이 붙거나 베는 데는 불리하지. 그런데 생각해 봐. 어검술인데 길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어차피 네가 휘두르는 게 아니라 창이 직접 날아가는데. 그리고 굳이 찌르기만 고집할 필요가 있을까? 벤다는 선택지가 있는 게 더 유리하지 않을까?”
“어…….”
나빛이 당황했다.
“창이 아니라…… 검이어야 한다는 말씀이세요?”
“어검술의 관점에선 그래. 정확히는 손잡이란 것 자체가 필요가 없어. 근데 뭐…… 그 인간이 성창만 쓰는 이유가 있겠지.”
상호는 효은이 쓰는 기술들을 떠올렸다.
어지간히 약한 놈들은 그 수많은 성창을 조종해서 손쉽게 쓸어버린다. 하지만 특별히 강한 몬스터를 상대할 때는 손에 성창을 만들어 던지곤 했다.
왜 조종을 안 하고 직접 던지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래도 빡대가리가 아닌 이상 뭔가 이유가 있어서 그러는 것일 터였다. 아마 손에 성력을 모으는 편이 더 강해서 그런 게 아닐까 싶었다.
어쨌든 던진다는 용도로는 창이 검보다 낫긴 했다. 왜 허공에서 조종하는 무기들도 창이어야 하는지는 여전히 설명되지 않았지만.
“자세한 사정은 모르겠다. 걔한테 한번 물어봐. 왜 굳이 창을 쓰냐고.”
“네.”
“그리고 또 한 가지 가르쳐줄 게 있는데…… 나빛이 너 자기가 만든 방어막에 올라타 본 적 있어?”
“아…… 아니요.”
“지금 해 봐.”
성창이 하나 사라지고, 나빛의 발치에 삼각형 방어막이 생겼다. 그녀는 마른 침을 삼키며 그 위에 올라탔다.
방어막이 안정적으로 둥실 떠오르자 나빛이 흠칫했다.
“떠요!”
자기 능력인데 자기가 놀란다. 상호는 피식 웃었다.
“일단은 그걸로 싸워. 나중에는 날개로 날아다닐 거야.”
“수녀님은 날개도 만들어요?”
“응. 걔는 그랬었어.”
“우와…….”
나빛의 눈이 초롱초롱해졌다.
그 때 상호의 검이 점점 빨라지기 시작했다. 검은 성창을 쳐내고 곧바로 나빛에게 날아들었다.
그녀는 당황하며 보호막을 움직여 피하려 했다.
“윽……!”
하지만 마음만 앞선 탓에 보호막만 빠르게 움직일 뿐, 몸은 거기 따라가지 못해 중심을 잃고 넘어지고 말았다.
상호는 보호막 아래로 떨어지는 그녀를 내공을 뻗어 붙잡았다.
“네가 익숙해져야 하는 게 그거야. 이해했지?”
“으으……, 네.”
“당분간 나하고 이렇게 어검술이랑 방어막 타는 것만 연습할 거야. 그 수업잘 끝내고 나면 너도 1등 노려볼 만 하다.”
“정말요?!”
나빛은 화들짝 놀라서는 재빨리 방어막에 올라탔다.
“다시! 다시 해요!”
“그래. 대신 마음 차분히 먹고.”
그가 검을 조종하려는데 운동장 쪽에서 환호성이 들렸다.
“잡았다아아!”
지윤이 리본을 하늘로 치켜들었다. 그 앞에선 태화가 주저앉아서 악을 바락바락 쓰며 발을 구르는 중이었다.
“이이이익! 마법 개구데기 쓰레기야! 나도 무예 배울래!”
“흥, 니가 무예 배웠으면 무예가 쓰레기고 마법이 사기라고 했겠지.”
세희가 콧방귀를 뀌었다. 그녀의 손에도 리본이 들려 있었다.
“넌 학교 끝나면 맨날 티비보고 핸드폰만 하잖아. 우린 하루도 안 거르고 수련했어. 어제도 선생님한테 수업 받았고.”
“아니야! 무예가 사기야! 무사기무사기무사기!”
“뭐래, 마징징아.”
세희는 핀잔을 주고는 상호를 돌아보았다. 그는 검을 멈추고 그녀들을 향해 말했다.
“세희, 지윤이. 소원권 하나씩 줄게.”
“아아아아악!”
태화가 상호를 보며 울먹였다. 억울해 죽겠다는 눈빛이었다.
“마법 쓰고 뜨게 해주세요! 1대1로 하면 내가 무조건 이긴단 말예요!”
“뭐라카노, 약골이.”
“너 싸움도 못하잖아.”
지윤이 풉 하고 비웃었고, 세희가 한심하다는 눈빛을 보냈다.
그러자 태화의 눈에 불꽃이 타올랐다.
“뭔 개소리야! 지윤이 너랑은 90전 90승이고 천세희 너랑은 127전 71승인데!”
“뻥치지 마. 내가 더 많이 이겼거든?”
“90승이면 뭐하나 마. 지금 약해빠졌는디. 우리 태화 도망도 못 치까꼬 우짜노~.”
“그럼 다시! 다시 해! 순간이동만 쓸 테니까 다시 하자고!”
“응~ 안해~.”
지윤의 손이 태화의 머리를 마구 쓰다듬었다. 태화는 땅을 손바닥으로 내려치며 분통을 터트렸다.
“나도! 나도 존나 쎈 마법 배워올 거야아아!”
그녀의 절규가 온 학교에 울려퍼졌다.
마법사의 가르침
“이런 건 왜 하는 거예요?”
태화가 복도에 붙은 벽보를 보며 눈을 깜박였다.
뭔가 하니 학생회장 후보들의 공약이었다. 1부터 5까지 번호를 매겨 놓은, 의미 없는 약속들.
상호는 태화의 옆에 서서 벽보를 읽으며 말했다.
“선거가 뭔지 경험해 보라는 거지, 뭐.”
“근데 누구 찍든 똑같잖아요. 바뀌는 것도 없고. 뭐 잘못 찍는다고 학교 망하는 것도 아니고.”
“그거야 그렇지.”
태화에겐 정말로 이해가 안 되는 모양이었다.
“이 언니들은 할 거 참 없나 봐요. 차라리 놀지. 이거 하면 뭐가 좋다고.”
“정치에 관심이 있을 수도 있지. 헌터가 몬스터랑 싸우기만 하지는 않으니까.”
헌터도 결국은 노동자. 누군가는 그들의 권익을 위해 목소리를 내 줘야 한다.
이런 식으로 간단하게 정치를 가르치는 것도 학교에서 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가 벽보를 다 읽고 교실을 향해 돌아서자 태화가 졸졸 따라왔다.
“저희는 반장 안 뽑아요?”
“담임이 다 하면 되는데 왜 뽑아? 너흰 수련에만 집중하면 돼.”
“그럼 저 반장 할래요.”
“언니들은 할 거 없냐더니…… 됐어. 마법 공부나 열심히 해.”
“치, 그럼 저 마법 상대나 해 주세요. 새로운 마법 배워왔으니까.”
상호는 그녀의 말을 듣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네가 진짜로 공부를 했어?”
“우씨……, 저도 노력하고 있다구요.”
태화가 혼자 팔짱을 끼며 팩 토라졌다. 그러고 보면 엊그저께 강한 마법 배워 오겠다고 난리를 쳤었다.
그는 기특해하는 눈빛을 보내며 물었다.
“무슨 마법인데?”
“최면 마법이요.”
‘?’
상호의 머릿속이 멍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