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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유는 다음 날이 되어 알 수 있었다.
상호는 세희와 지윤의 체육복을 쳐다보았다.
‘찜통이네, 찜통.’
무예가의 체육복은 몸에 쫙 달라붙는 타이즈 형태.
게다가 세희는 몸매를 가리려고 후드 집업까지 입은 상태였다. 저렇게 입었으니 싸움 한 판 하고 나면 더워 죽으려고 하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저 특수 제작 체육복이 아니면 대련하다가 다 찢어질 게 뻔했기에 딴걸 입으라고 할 수도 없었다. 특히 땅을 구르며 싸우는 무예가들이니까.
‘호신강기를 쓰게 된다면 좀 풀어 주겠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지.”
그는 태화와 나빛의 상태도 살폈다.
태화는 위에만 체육복이고 아래는 치마. 나빛은 평범한 학교 체육복. 둘 다 여름 체육복이어서 많이 더워하진 않았다.
태화가 세희를 보며 깐죽거렸다.
“야, 세희. 또 물 뿌려 줄까?”
“죽어…….”
세희는 한숨을 쉬며 운동장 한가운데로 터덜터덜 걸어갔다.
오늘 그녀의 상대는 나빛이었다. 나빛이 세희의 곁에서 함께 걸었다.
둘은 자리를 잡고 서로를 향해 돌아섰다.
“시작해.”
상호는 아이들의 목걸이가 제대로 작동하는 것을 확인하고 신호를 보냈다. 그와 동시에 세희가 검을 뽑았다.
칼끝이 나빛의 목을 향해 날아갔다.
카앙
황금빛의 반투명한 봉이 세희의 검을 막았다.
아직 창날만 안 달렸다 뿐이지 거의 성창이나 다름없는 물건이었다. 물론 효은의 것처럼 복잡한 모양은 아니지만, 찌른다는 행동과 막는다는 행동을 명확히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냥 방어막을 던지기만 했다가 상대에게 역으로 이용당하는 일은 이제 줄어들 터였다.
뭉툭한 성창이 빙글 돌아 세희의 목을 겨눴다.
“……윽!”
세희는 급히 땅을 박차고 물러났다.
성창은 손으로 잡고 조종하는 것이 아니었기에 방향의 전환이 자유로웠다. 사람이 잡고 있다면 창대로 검을 막으며 상대를 노리는 동작이 불가능하겠지만, 공중에 떠서 저 혼자 독립된 상태로 움직이는 성창은 어떤 상황에서든 상대를 향해 날을 들이댈 수 있었다.
게다가 길이 조절까지 가능하다.
쭉 늘어난 성창이 세희의 목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미안!”
나빛이 소리치자 세희의 눈이 가늘어졌다.
세희는 빙글 돌아 가볍게 성창을 피하고 그 도는 힘을 이용해 나빛에게 다시 검을 휘둘렀다. 성창이 날아온 쪽의 반대 방향이었다.
나빛이 성창을 다루는 속도로는 그 검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었다. 그 사실을 세희와 나빛 둘 다 알았다. 지켜보는 상호까지도.
하지만 나빛은 당황하지 않고 옆으로 뛰었다.
잠깐이라도 시간을 벌어 보려는 것. 하지만 세희의 검이 훨씬 빨랐다.
카아앙
“어?”
세희는 자신의 검을 막은 성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럴 리가 없는데. 나빛의 성창이 이렇게 빨리 움직일 리 없는데.
의문은 곧 풀렸다.
성창 두 개가 그녀를 향해 날아왔다.
“큭……!”
“이번엔 진짜! 미안!”
세희는 창 하나는 피했지만, 또다른 하나는 피하지 못했다. 성창이 허리를 후려쳤다.
쉴 틈도 없이 성창 두 개가 다시 날아들자 그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칫……!”
그녀는 혀를 차며 죽기살기로 몸을 비틀어 창을 피해냈다.
허공을 날아다니는 두 개의 창은 상대하기가 너무도 버거웠다. 이도류 따위와는 차원이 달랐다. 가히 검술의 극의라는 어검술에 비견될 만했다. 무예의 원리를 전혀 모르는 나빛이 조종하는데도.
둘의 싸움을 지켜보던 지윤이 상호를 올려다보았다.
“저걸 우째 이깁니꺼?”
“열심히 뛰어서 피해야지.”
“잘 피했다 쳐도…… 가까이 가면 또 하나로 막고 하나로 공격하잖아예.”
“원래 강한 능력이긴 해. 전투신관에 재능이 있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그렇지.”
상호는 팔짱을 낀 채로 말했다.
“나빛이도 충분히 1등 가능한 능력이다. 태화 너도 똑바로 봐.”
딴청을 부리던 태화도 그의 말을 듣고는 머리를 긁적이며 운동장을 쳐다보았다.
세희는 창을 피하기에만 급급했다. 나빛에게 달려들으려 해도 창 하나가 계속 진로를 막고 있었다. 안 그래도 더운데 죽어라 뛰어다니니 얼굴에 땀이 폭포처럼 쏟아졌다.
이대론 안 되겠다 싶었을까.
쉴새없이 움직이던 세희의 발이 멈췄다.
“포기했나 본데요.”
태화가 한심하다는 듯이 말했다. 하지만 상호는 세희가 검을 힘주어 잡는 것을 보고 고개를 저었다.
“잘 봐. 순식간이니까.”
성창이 세희에게 날아갔다. 하나는 머리를 노리고, 하나는 복부를 노리고.
세희의 눈동자가 두 성창의 방향을 살폈다.
파창
상호의 말대로였다.
눈 깜빡할 사이에 성창이 박살났다. 단 한 번 휘두른 검의 궤적을 따라 황금빛 파편이 휘날렸다.
수학여행 때 결계를 베었던 바로 그 기술이었다. 한순간에 내공을 집중시켜 평소보다 훨씬 강한 검기를 만드는 수법.
성창이 맥없이 부서지는 모습을 본 나빛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앗…….”
세희가 이때만을 기다렸다는 듯 번개처럼 달려들어 나빛의 머리를 향해 칼을 휘둘렀다.
나빛은 머리를 수그리며 피하면서도 손을 싹싹 비볐다.
“세희야, 진짜, 진짜 미안! 꺅!”
그런데 갑자기 세희의 몸이 비틀거렸다.
나빛에게 달려가던 세희는 검을 놓치고 그대로 나빛의 가슴팍에 박치기를 했다.
둘은 뒤엉켜 넘어져서 땅바닥을 굴렀다.
“아야야……. 세희야?”
나빛은 자신의 품에 얼굴을 처박은 세희를 불렀다. 하지만 아무런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녀는 당황하며 상호를 돌아보았다.
“선생님! 세희…….”
“열사병인가 보다.”
상호는 세희를 허공섭물로 들어 자신의 곁으로 데려왔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말했다.
“교실 올라가. 세희 보건실 데려다주고 올게.”
“저희가 가겠심더.”
“아니야, 따로 말해줄 게 있어서 그래.”
아이들은 그 말을 듣고 순순히 교실로 향했다. 나빛은 성력이 담긴 손으로 세희의 이마를 쓸어주고 태화와 지윤의 뒤를 따랐다.
성력이 효과가 있었는지, 가만히 축 늘어져 있던 세희가 조금씩 몸을 뒤척였다.
“으…….”
발갛게 상기된 볼에 땀이 흘러내렸다.
‘이번이 두 번째인가. 몸이 약해서 큰일이다, 정말…….’
상호는 세희를 안고 보건실로 향했다.